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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힘들떈, 세상에서 내가 제일 불행한 것 같은거..맞죠

캄돌 |2014.04.11 10:03
조회 314 |추천 2

고2 때까지는 꽤나, 아주 많이 부유한 가정이었습니다.

 

이후 어떤사정으로 가정의 경제가 붕괴되고, 6억 이라는 빚이 생겼더랬죠.

 

19 살떄부터 정신나간 양아치에서 인간이 되려 마음 먹었습니다.

 

살면서 쓴돈중에 가장 아까웟던 대학등록금도 자력으로 벌고..

 

4살 위의 누님께서는 알바로 가정 경제를 돕고 있었조.

 

2살 위의 작은 누님은 평범했습니다.

 

제가 군대 다녀오기 전까지는 큰누님께서 집안경제를 책임지고 계셨고

 

군 제대로 24 살부터는 제가 친구들과 술자리 한번 해본적 없이,

 

그 흔한 해수욕장도 아직 한번도 못가봤네요 ㅎ 어디 계곡도 가본 적 없죠 아직도

 

일만 했습니다.

 

호주에 26 에 넘어가 워홀 1년 중 빡세게 일한 결과 비지니즈비자를 좋은 보스에게서 받고

 

29 까지 개처럼 일했습니다, 몰래 쓰리잡까지 뛰었죠 캐시잡으로..

 

한국으로 넘어와 망해가는 호프집을 하나 인수했습니다.

 

1억5천 정도 줬나요... 근방 1등 가게로 만들고 10 개월만에 3억8천에 처분했더랬죠.

 

장사라는게.. 월수입이 중요한게 아니라, 그 가게의 비전으로 권리금 장사하는거죠 아시다시피.

 

그리고 집안의 빚도 이제 2억이 조금 안되게 남았습니다.

 

물론 서른전까지는 다른 것들도 안해본게 없었겠죠 ㅎ

 

남은 빚은 부모님 거주하시는 아파트 싯가로 충당 가능하기에,

 

제 인생을 짜보기 시작했습니다.

 

나름 적성에도 맞는 괜찮은 직장에 들어갔엇죠, 초봉은 3천정도 밖에 안됐던거 같습니다.

 

호주에서부터 만나온 3년째 만난 여자와 결혼도 하려했죠,

 

돈따위에 삶의 가치를 두지 않는, 행복하고 소박한 가정을 꿈꾸고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항상 나를 믿어주고, 받쳐주는, 나를 정말 더 더 좋은사람이 되게 하고 싶은

 

그런 여자였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네요 ㅎ

 

다들 아시다시피 몇년전 일본에서 일어난 쓰나미 덕분에요.

 

센다이 해변에서 쓰나미가 시작되었었죠.

 

당시 여자친구의 어머님께서 센다이 해변 200m 근교에 계셨는데 ,

 

유일한 재산인 집이 다 쓸려 사라졌죠..

 

그 친구도 어릴때 야쿠자였던 아버지가 빚만 어머니께 안겨주고 이혼하셧고

 

여동생은 18 살때 결혼해서 애 둘낳고 잘 살고있고.. 본인도 본인이 열심히 어머니 모시고

 

틈틈히 모은돈으로 호주에 잠시 머리식히고 공부도 할겸 왓엇거든요

 

여튼 어머니를 계속 케어해야 하니..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ㅎ

 

천재지변으로 이별을 경험하니 정말 우습기도하고 미쳐버리기도 하고 오락가락 하더군요 ㅎ

 

훌륭한 여자였기 때문에, 좀더 여유롭고 멋진 남자를 만날거란 확신이 잇어서,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그러다 회사를 6개월만에 퇴사하게 됏어요,

 

4개월째에 아버지꼐서 폐렴이 오셨거든요, 금연하신지 15년이 되셨는데도 말이죠.

 

생활비에 병원비 까지는 정말이지 일반 직장인의 수입으로는 감당이 불가능 했습니다.

 

평생 술 입에 대보지도 못한 제가, 호스트 , 소위 선수라고 부르죠

 

선수 일을 찾았습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갔죠,

 

처음엔 겁도 너무 많이 나고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해보니.. 별거 없었습니다. 술 같이 마셔주고 얘기해주고 노래 불러주면 되더군요

 

심한 진상이나.. 거부감있는 손님들은 제가 충분히 피하면서 할 수 있는 여건이었습니다.

 

돈때문이라지만 도저히 회사일과 병행하기란 한계가 있더군요..

 

당장 돈이 급했던지라, 그나마 즉시 현금이 지급되고 일반 직장보다는 수입이 더 되는

 

밤일을 붙잡고 회사를 그만두게 되더군요.

 

그렇게 10개월을 일했습니다.

 

돈도 조금 모았고 해서, 가게 한곳에 중간세를 놓고

 

그동안 선수하면서 알게된 손님들을 믿고 장사를 시작했어요.

 

고맙게도 거의 모든 손님들이 제 가게로 와서 도와주셨어요.

 

그렇게 또 6개월을 장사했습니다.

 

부모님 생황비 용돈 드리고, 빌렸던 캐피탈 은행 대출도 모두 갚고나니.

 

이젠 밤일에서 발을 빼고 싶어지더군요, 이미 서른하나가 되었죠,

 

인맥좋은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권유로 작은 사업을 같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3천정도가 투자금으로 들어가고, 뒷방으로 2천을 가지고 시작했습니다.

 

잘되는가 싶었지만 2개월만에 큰일이 닥쳤네요

 

친구가 도박에 빠져있었던걸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저는 오전에 일을 보고 친구는 밤시간대에 일을 봐주고 직원이 2명 있었거든요.

 

매일매일 올라오는 수입은 모두 빼돌리는 중이었고

 

저에게 3천을 융통해갔죠,

 

알고보니 저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많이도 빌려서 털어먹었더군요,

 

결국 그친구는 잠수를 탔고, 저는 하던업을 살려보고자

 

여기저기 대출을 해서 막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도 없이 혼자 24시간 잠도 안자고 2주를 버티는중

 

결국 포기하고 한푼도 못건지고 빚만 늘어난 상태로 아는 분에게 넘겼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출로 막아보려는 그때의 행동이 지금 저를 더 목졸라 오지만..

 

어떻게 이루어 간 내 일인데..포기할수 없었던거죠 ㅎㅎ

 

2달이나 아무것도 하지못했습니다. 인생의 첫 실패여서 많이 힘들었나봐요.

 

그해 9월 광안리 바다에 들어갔다 왔습니다.

 

아는 바다라곤 광안리뿐이었고, 여러가지 방법을 다 생각해봤는데,

 

차에서 연탄질하면 부모님 가끔 타시는 차라도 잇어야 해서 참앗고

 

목메는건 보는이가 너무 힘들것 같구요.

 

치사 가능한 수면제는 이제 구하기가 힘들더군요.

 

어릴때부터 운동을 많이 했고 경호학과 출신이라 스포츠 레저에 통달했는데

 

저는 바다에서는 몸이 굳어 수영을 못하거든요 ㅎ

 

발이 닿지않는 곳 까지 들어간 후 2분만에 수영까진 아니지만 헤엄이 되더군요..

 

머리완 달리 몸은 살고 싶었나봅니다.

 

물에빠진 생쥐꼴로 기어나와서 펑펑 울었나봅니다.

 

큰누님이 걱정 됬는지, 조금 쉬라고, 본인이 버텨본다 했습니다.

 

타지, 해외 생활을 전전하는 이미 시집간 출가외인에게 부담주기 싫었지만

 

2달정도 쉬었나요..

 

뭐라도 해야겟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면접도 보고 했습니다만,

 

잡코리아 이력서를 보고 영업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대문 어느 쇼핑몰 회장님 경호원으로 들어가기로 했던 찰나였지만

 

영업이라는게 상위 1% 만 살아남기는 하지만, 본인이 잘만하면 신의 직장 아니겠습니까.

 

아시겠지만 브리핑 영업이라는 저축보험을 판매하는 일이었습니다.

 

개인적 영업이나 지인 영업이 아니라.. 회사에서 섭외를 전담하는 직원이

 

일을 잡아주면 약속된 회사에가서 프레젠테이션 해주는 방식이어서,

 

아무런 부담이 없고 최선과 진심으로 설명만 잘해주면,

 

계약의 여부는 고객의 몫인 것이었습니다.

 

죽기살기로 했죠 회사 영업사원이 250 명 정도 되는데

 

첫달에 신입사원 1위를 했습니다. 급여는 1700 정도 나왔습니다.

 

희망이 보이는 듯 했습니다. 영업직 특성상 나가는 돈이 많긴 했지만

 

11개월동안 월평균 800 정도 나왔습니다.

 

저희 가족 먹고살기엔 괜찮았습니다. 정말 즐겁게 일했죠,

 

시간적 여유도 많아서, 티비 드라마나 예능도 챙겨보고 온라인 게임도 하고,

 

장사할때 일해줫던 동생들 만나서 밥도 사주고 참 좋았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따로 저축이 가능했던 정도의 여유는 아니었구요..ㅎ

 

3개월전..회사에 일이 터졌습니다 ㅎ 본사가 서울이라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사장파와 부사장파가 갈라섰다더군요,

 

회사의 거의 모든 직원이 섭외영업과 실영업 사원으로 이뤄지다보니.

 

다들 당장에 일이 스톱되어 버리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재빠르게 하루 두번의 스케쥴중에 저는 하나만 하겠습니다 못 박고,

 

어떻게 했을까요 , 또 다시 밤일을 나가고 있습니다. 호빠가 아니라 콜받아서 이동하는

 

사무실 선수입니다. 남보도라고도 하더군요. 억지로 술을 먹지 않아도 되고 더 편하더군요

 

제 나이 서른셋 이지만.. 같이 일하시는 분들중에 저보다 형들도 몇명 계시고 하니

 

위안삼아서 하고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대구지부에 얼굴도 잘 못비추다보니 , 회사에선 이미 왕따가 된 듯 합니다 ㅎㅎ

 

평생 술이라곤 밤일할때 마셔본게 전부인 제가

 

회사 회식때도 밥만먹고 가버리니, 좋아하진 않았겠죠, 상사에게 아리가또질도 잘 못하는지라..

 

어차피 필요없는 사원 버리자 라는 마음이 자사장님 까지도 들었나봅니다.

 

그냥 붙어잇긴 하지만.. 얼마나 갈까요...

 

아직도 빚은 몇천이 남아있고,

 

당장이라도 수입이 끊기면 안되기에. 다시 밤일까지 하고있지만

 

매월 최소 5~600 은 벌어야 하는 제가.. 서른셋의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과연 난 뭘 할 수 있는 걸까요...

 

앞이 캄캄하네요,

 

요즘도 걸핏하면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이 팽배하네요

 

가끔 우울하고 염세적이 되긴 하지만

 

항상 긍정적으로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고 있기에

 

버티고 있습니다.

 

이젠 외롭기도 너무 외롭고,

 

내 처지에 그 어떤 여자도 넘보기엔 불행으로 끌어들이는 듯 하고..

 

예전처럼 결혼하고 싶을정도로 소박한 여자는 우리나라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이런 저같은 남자를 좋아해 줄, 미래에 함께하고 싶은 그런 여자는 없겠죠..

 

답답한 마음에.. 마구 휘갈겨 봅니다 ㅎㅎ...

 

그냥 저런 사람도 잇구나..하면서 다들 화이팅해서 인생 사세요!

 

인생 짧잖아요 ㅎ 19살에서 33살까지는 정말 번개처럼 지나간거 같아요.

 

돌아보니.. 친구도 없네요 ㅎㅎ

 

24살때부터 봐온 동생 한놈과 29 살때 알바로 썻던 동생 두놈

 

이렇게 저포함 네놈이 제 인생 친구의 전부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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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떠들어 버리고 나니

 

오늘은 좀 푹 잘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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