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존을 봤다. 주연배우가 무려 조셉 고든 레빗과 스칼렛 요한슨임에도 불구하고, 쓸쓸하게 국내에서 막을 내린 영화였다. 미국에서는 개봉 이틀 만에 제작비를 회수하고, 흥행가도를 달렸던 것에 비하면 1만도 못 채우고 극장에서 내렸다는 것은 이 영화가 관객 수마저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얘기다. 우선 저예산 영화답게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어 상영관을 많이 잡지 못한 점도 있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그 이유를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건 이 영화가 훈훈한 두 남녀가 나오는 외관과는 다르게 로맨틱 코미디, 스크루볼 코미디와는 다른 삐딱한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돈 주앙의 현대판이라고 별명이 붙여진 돈 존은 매일 늘씬한 미녀들과 원나잇을 하면서 한가롭게 사는 녀석이다. 직업도 변변찮고, 내세울 것도 별거 없지만 스스로 그런 자신에게 만족하며 사는 매이지 않은 남자다. 그에게 낙이 있다면 매일 야생개처럼 혀를 내밀고 나이트 클럽 죽순이들을 자신의 눕히며 욕정을 푸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매일 집을 청소하고, 체육관에서 몸을 만든다. 즉 겉모습을 번지르르하게 하여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그에겐 관계를 위한 시간 따윈 소모적인 꺼리에 불과하다. 오로지 쾌락을 위한 섹스 그것만이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다. 이로서 연인들이 볼만한 로맨틱 코미디와는 한 걸음 물러선 이 영화의 설정을 엿볼 수 있다.
돈 존이 가진 남들과 구별되는 특징이라면 매일 여성들을 탐하며 그녀들을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격렬한 섹스 후에 잠자리에 든 이후에도 돈 존의 욕망은 좀처럼 채워지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옆에서 자는 하룻밤 상대 몰래 컴퓨터 앞으로 가 자신이 원하는 섹스를 해주는 외모의 여성과 자체적인 시간을 즐긴다. 돈 존에게 하룻밤 상대와 매일 보고 지우는 포르노는 다르지 않다. 돈 존은 그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할 뿐이다. 보잘 것 없는 일상의 유일한 낙이 그것뿐이니까. 피곤한 관계와 매듭짓기의 불편함 따윈 집어치우라. 오로지 육체의 탐닉에 빠진 그 시간만큼 가치 있는 것은 없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십점 만점의 십점까지 넘어서는 섹시한 여성이 나타난다. 그에게 그녀의 이름(존재) 따윈 페이스북 검색창에서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는 용도 이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스칼렛 요한슨을 조토끼는 심접 아니면 레드(그저 자극)라고 지칭한다.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라면 오로지 섹스에만 몰두하는 주인공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 관계에 눈을 뜨게 된다는 훈훈한 결말이 진행될 것이다. 하지만 돈 존의 행보는 좀 다르다. 돈 존은 그저 레드와 섹스를 하는 것만이 주된 목표다. 그녀의 마음을 얻는 과정은 복잡하고 지루하지만 결국에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아니라, 그저 그녀를 포르노와 동일시하여 취급하는 것이다. 마치 구글에서 맘에 드는 포르노가 나올 때까지 바지를 내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진짜 섹스심벌과의 만족스런 쾌락을 얻기 위해 좀 더 노력할 뿐이다. 이 영화가 얻어내는 재미의 대부분은 그런 관계맺기에 서툰 이 남자가 관계를 흉내 내는 상황에서 발생된다.
결국 이런 식이다보니 모든 연인들이 기대하는 달콤한 로맨틱 코미디가 주는 만족감을 채워가기 어렵다. 사실 미국에서도 이 작품이 오랜 시간동안 흥행가도를 달릴 수 없었던 점 역시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와 태생부터 다른 감독의 시각 때문이다. 이 영화의 감독은 아시다시피 주연이기도 한 조셉 고든 레빗이다. 조토끼 형은 <500일의 썸머>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다. 따듯한 눈과 근사한 미소를 가진 늙어버린 휴 그랜트를 이을만한 로맨틱 코미디 계의 유망주였다. 그에게 돈 존은 500일의 썸머가 지닌 달달함의 재현이 아니다. 그는 여성을 포르노로 비교한 것과 같이 헐리우드가 소비하는 주류 영화들의 뻔한 도식화에 대한 날선 비판을 로맨틱 코미디의 껍데기 안에서 풀어낸다.
돈 존은 영화 중반 자신의 이상형 레드(물론 스칼렛 요한슨)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이 증오하는 헐리우드 로맨스 영화를 본다. 돈 존은 이 영화를 시간낭비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여성을 벗기고, 눕히며, 흥분시키고, 격렬한 과정 끝에 사정에 이르는 그 과정이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컨벤션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때 콜롬비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영화판을 떠나려했던 조셉 고든 레빗의 은밀한 속마음이자, 다시 그런 영화에 섞여 들어가지 않겠다는 감독으로서의 대답이기도 하다. (물론 500일의 썸머는 그저 그런 영화와 구분되는 특별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돈 존을 보다가 최근에 본 한국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그건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황정민, 한혜진 주연의 영화다. 이 영화 역시 두 스타배우를 캐스팅했고, 사랑을 모르는 남자(건달)이 한 여성을 만나 사랑을 배워간다는 영화다. 이 영화는 온갖 자극적인 설정들을 동원하여 감동을 자아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문제는 그 자극들이 기존에 봐왔던 뻔한 수준의 것들로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정민의 케릭터는 마치 기존 그의 출연작들의 모든 캐릭터를 흡수한 것만 같은 과잉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극도의 마초와 지고지순한 순정녀가 만나서 이렇게 재미없기도 힘들 것이다. 아마도 돈 존이 말한 시간낭비라는 영화의 적절한 예가 바로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일 것이다. 그 뻔한 자극이 하룻밤짜리 포르노와 별다를 바 없다.(그러고보면 동명의 영화였던 맥라이언 주연의 영화 역시 대체로 비슷했던 것 같다. 그 지루함이..)
돈 존은 레드와 깊은 관계가 된 이후에도 포르노를 끊지 못한다. 그녀 역시 하룻밤 지나간 포르노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자극은 새로운 자극을 필요로 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올린 페이스북 사진을 보고 자위를 하는 돈 존의 모습은 슬프기까지 하다.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미지가 실사의 그녀보다 더 자극적일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 하지만 재밌는 점은 이영화의 진행과정이다. 신날하게 헐리웃 영화에 대한 비판과 포르노에 대한 격찬을 아끼지 않던 이 영화는 결국엔 자신이 그토록 비판했던 도식화된 뻔한 결말로 치닫는다. 이것은 의아함이자 이 영화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는데, 마치 기상천외한 체위로 잠자리를 진행하던 프로노도 결국엔 남성의 사정이라는 결말로 수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체념이자 무기력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엔딩크레딧이 뜰 때의 그 황당함이 아직도 선현하다.
이 영화엔 영화의 입체성과 스토리의 마무리를 위해 줄리엔 무어가 투입된다. 섹시한 레드를 쟁취한 돈 존 앞에 나타난 지적인 고령의 여성. 돈 존은 레드의 육체가 아닌 지성의 머리 앞에서 진정한 사랑을 보려한다. 뭐 섹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이다. 누님들의 로망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설정이자, 영화 초중반의 지나친 섹스남발에 대한 대안의 성격으로 투입된 것이다. 마치 1부는 섹스 2부는 사랑이라는 듯 전개도 쉽게쉽게 나아간다. 영화는 자극적인 발언과 섹시한 여성의 돌출된 출현으로 자극에 자극을 더해내고, 헐리웃의 주류영화 시스템을 발밑에 두고 신날하게 까대기 바빴지만, 돈 존 역시 장편영화로 서기 위해서 그 뻔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배우와 이야기의 설정을 인용하기 바빴으니 결국엔 하품만 나오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를 상업영화와 독립영화의 어중간한 위치에 가져다 놨다. 아니 제작비는 포르노 수준으로 적게 쓰고, 주제의식은 예술영화로 포장됐지만, 내 눈에 그 수가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이 영화의 가장 재밌는 장면은 스칼렛 요한슨이 돈 존에게 노트북을 들이대며 나랑 사귀는 중에도 야동사이트를 46개나 들어갔다며 다그치는 장면이다. 스칼렛 요한슨 앞에서라는 말이 중요하다. 남자는 다 야동 본다면서 궁색한 답변을 늘어놓는 돈은 기어이 당신이 보는 시시한 영화들과 포르노는 다를 바 없다면서 그녀를 설득하려 한다. 그리고 이것이 이별의 계기가 되어 그를 떠나가는데 돈은 한치의 아쉬움도 없이 훌훌 털어버린 가뿐한 모습이다. 스칼렛 요한슨을 두고 이 영화의 각본을 썼다는데 실로 대단한 집념(?)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영화는 연이어 끝내주는 야동을 10번 넘게 보는 돈 존을 보여준다. 피자를 옆에 놓고, 콜라를 마시면서 야동을 탐닉하는 모습이 어딘지 않게 낯설지가 않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모습.
난 영화를 거의 주말마다 보고, 집에서도 쉬지 않고 본다. 돈 존이 말한 뻔한 영화들을 그렇게 매주 일상처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돈존이 매일 포르노 찾아 삼만리를 떠나는 것처럼. 그가 새로운 자극을 찾듯 나 역시 영화를 통해 기존의 영화를 넘어서는 기똥찬 영화를 찾는다. 조금이라도 기존의 영화들과는 다른 새로운 감동을 얻어내기 위해서 이리저리 다양한 영화를 보기위해 극장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돈 존은 자극적이기는 했으나 한 번 보고 지우는 포르노 이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비판의 자아복제 아 이제 지겹지 않은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