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살 아기엄마가 된 지 이제 갓 1년..
지난해부터 생긴 가족으로 정신이 없다. 결혼하고나니 시댁에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들러야 하고 챙겨야하다보니.
어린시절 불우한 가정에서 자란 나는 친정에 정이 없다. 그냥 엄마라니까 엄만가보다, 아빤가보다.. 하는거지.
내겐 할머니밖에 없었다. 엄마아빠는 사고뭉치 오빠 외에 얌전한 내게는 관심이 없었고, 오빠는 나를 때리고 욕하는데만 능했으니까.
비오는 날 할머니의 부침개를 둘이 먹으며 책을 읽던 내방이 참 좋았다. 그렇게 나는 태어나서 핏덩이때부터 21살이 될 때까지 할머니 옆에서 잠들었었다.
집은 망했고 부모님은 이혼하셨다. 할머니는 오갈데가 없어졌고 나는 서울의 대학을 다니느라 학교 앞 고시원에서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계속 했다.
할머니는 모시기 싫어하는 자식들덕에 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그 병원은 서울과 5시간 거리.. 돈이 없는 나는 집에 가는 차비조차도 부담스러워 잘 찾아뵙지 못하고 통화만 간간히 했었다.
그러다 나는 재작년 결혼을 했다. 그리고 작년엔 아기도 낳았다. 그 아기를 데리고 할머니에게 다녀왔다. 병원이라 10분정도 아기를 보여드리고 다음을 기약했다.
핸드폰을 해드렸고, 신생아를 돌보며 시댁살이를 했던 나는 여유가 없단 핑계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제일 편한 할머니에게 짜증도 내고 신경질도 냈었다. 그리고 위독하시다는 걸 알게 된 올해 2월, 손을 덜덜 떨며 지방에 다녀왔다.
할머니는 곡기를 넘기지 못하고 계셨고, 나를 보는 눈도 힘이 없으셨다. 할머니 침대 앞에 하얀 기둥이 있었는데.. 그 기둥을 보며 죽음을 기다리고 계셨다. 그리고 서울로 돌아왔다.
다음주에 다음주에 하다가 티켓이 없어 4월 초의 티켓을 끊어놓았었다. 그리고 가기 3일전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많이 울었다. 정작 장례식장에서는 사이 안 좋은 이들뿐이라 울지 않았지만 신랑을 붙잡고 혹은 혼자서 그 뒤로도 틈날 때마다 눈물이 났다.
어제가 49제였고 그 전날 10시쯤 제사를 지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방을 쓰고 음식을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머니 밥상을 차려드렸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절을 하며 좋은 곳 가시라고 죄송하다고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 때 미처 못한 말을 하니 또 제사 내내 펑펑 울었다.
맛있게 잡수셨는지 꿈에 나오셨더라. 보자마자 안겨서 펑펑 울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또 엉엉 우니 아기도 남편도 울었다.
할머니께..
할머니, 이제 갈라고 마지막으로 내 본다고 왔었나?
증손주랑 손주사위도 보고 갔나?
증손주 많이 컸제? 요새 엄청 땡깡핀다. 내 닮았는갑다.
나도 얼라 때 할머니한테 그래 떼를 부맀었는데..
할머니 내가 진짜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거 알제?
미안해요.. 병원에서 가시게 해서..
할머니 사랑해..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싶다. 종종 좀 꿈에 나와줘요. 불효막심한 손녀라도 내 제일 이뻐한 거 다 안다. 할머니 보고싶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