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10년전첫사랑과의 7년만의 재회. (스압주의)

외톨이 |2014.06.02 23:50
조회 13,818 |추천 7

 

첫사랑 하면은 어떤 노래가 떠오르나요?

 

얼마전 응사에 나왔던 그노래

 

 

 

중1때까지 맨 첫째줄에

겨우 키 160이되었을 무렵

쓸만한 녀석들은 모두 다

이미 첫사랑 진행중

 

 

 

델리스파이스 - 고백

 

 

근데 난 중1때 이미 170이었고 ㅋㅋㅋ

쓸만하질 못해서 첫사랑 진행도 못했었는뎈ㅋㅋㅋ

 

 

 

그래서인지 고3때 첫사랑을 만났어요

 

 

오늘은 그 첫사랑과의 재회를

 

 

7년만의 재회 당시 사진과 함께

썰을 풀어나가볼 예정이예요

 

 

스크롤 압박 심해요

그러니 진득하게 글을 읽지 못하시는분은

지금 빽하시는게 좋을것같아요

 

 

 

 

 

어느 한산한 평일이었어요

 

외로운 저녁에

집에서 혼자 깡쏘주를 조금 두병ㅋㅋㅋ 마셨고

술은 마셨지만 취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어요

 

바로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이천에 있는 한 기숙사 학원에서 만난

 

 

첫사랑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어느 한 여자예요.

 

 

 

그녀와 나는요

그땐참 어렸어요

많이 사랑했고 때론많이 다퉜었..던적은 없었지만

 

고3이면 확실히 어릴때에요

 

그때우린 미처알지 못했어요

우리가 어린거라고는

 

하지만 어른의 사랑도

아이의 사랑도

청소년의 사랑도

 

다 같은 사랑이예요

 

 

여름날의

비오는 농촌 풍경과 그 냄새...라고 하니까 이상하네요.

그 향기를 아시나요

 

마치 손예진 주연의 "클래식"이라는 영화에서 나오는

그런 희미한 풀향기와 약간은 비릿한 비 냄새가 나는 그런 풍경이요

 

 

 

 

첫사랑(이하 A라고 통칭해요)

A의 그때 모습이 아직도 떠올라요

뭔가 어색한 걸음걸이는

금방이라도 넘어질것 같아서

보고있는 내가 다 조마조마 했어요

단발에 펌을 했었고

하얀 피부와 하얀 허벅지 *-_-* 는 변태같네요.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어요

기숙사학원 우리 기수 우리반에는

말로는 형용할수 없는 변태가 한마리 있었어요

나는 변태는 아니지만

그녀석이 공교롭게도 같은 동네에 사는 녀석이라

금방 그 변태와 친해질수 있었어요

 

그 변태의 실명은

상원 이예요

실명거론을 한 이유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전자발찌를 빛내며

클럽에서 여성들 뒤에서 부뱌부뱌 꽁냥꽁냥을 하고 있을지도 몰라서

주의하시라는 차원에서 공개한 거예요

 

어쩌면 아마도 이미 철컹철컹 하고 있을지도?

ㅋㅋㅋ

 

즐기고 싶으신분은 즐겨도 좋아요

준수한 외모에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변태이지만

 

아마 허파꽈리쯤은 순수한 면모가 있을 거예요

 

아뭏튼 그친구가

매일 나의 첫사랑 A에게

허벅지 죽인다며 속삭였고

나는 굳이 훔쳐보긴 했지만

그래도 순수한 마음에

그녀석을 묻고 싶었어요

 

나만보고싶었기 때문이예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뭏튼 그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

A양은,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아이였어요

 

감성적인 글귀가

플랜카드처럼 따라다니는

그런 계피맛 캔디같은 아이였어요

 

내눈엔 그만큼 달콤씁쓸한 아이였어요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한건 정말 행운이였어요

 

 

매일매일이 설레였어요

 

하루 일과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갈때엔

형용할수 없는 아쉬움을 항상 따랐고

 

잠이들때엔 다음날을 기대기대하고 학수고대 하며 잠들었고

눈을뜨는 아침조차도 설레였어요

 

아침에 더 숙면하고싶은 그딴 마음은

내 설렘으로 인해서

아웃오브안중 이었어요

 

 

하지만 좋아해도 좋아한다는 말도

다가갈수도 없었어요

 

왜냐면 나는 용기가 없었어요

이런젠장

그냥 그때 확 질러볼걸

 

어차피 퇴교하면 못볼걸

 

하지만 그때 그랬다면

아마 A와 이렇게 재회조차도 하지 못했을거예요

 

왜냐면 

그때 우리들 사이에는 반삭발이 유행이었어요

 

가뜩이나 인상도 좋지 않은데 ㅋㅋ

고백을하면 거절을 당했을거고 분명

그 거절은 A에게 쭈욱 연락할수 없게 만들었을테니까요

 

 

 

그때당시 우리반에는 나의 라이벌이 있었어요

 

나랑 똑같이

A를 좋아하는 녀석이었어요

 

물론 내가 더많이

내가 더 순수하게 좋아했을거에요

 

 

키는 나보다 10센티정도 작은 녀석이

자신감이 대단했어요

 

그놈 이름이 아직도 기억나요

그놈 이름은 영설이예요

 

 

기숙사 학원에서 한번 휴가를 주는데

휴가때 A에게 향수를 사다줬다고 해서

앙심을 품고 실명을 공개한건

절대절대절대절대절대 아니에요

 

 

 

고놈참 띠꺼웠어요

 

기숙사 학원의 대부분 아이들은

고위층의 자녀이거나

상위권 집안의 자식들이었어요

 

그리고 그자식의 아부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었어요

 

그래서 원장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었어요

 

 

지도 그걸 알아서 악용을 해댔어요

 

 

 

나는 국회의원이 무섭지 않았어요

그래서 맨날맨날 괴롭혀줬어요

 

뒤에 앉아서는 뒤통수에 무언가를 던져도 보았고

날개뼈를 쎄게 때려도 보았어요

 

 

근데 이자식

A를 좋아하는 낌새가 보여요

휴가를 갔다 왔어요

이자식

A에게 향수를 줘요

알마니예요

11만원줬다고 자랑질을 해대요

 

나한테는 저런걸 사줄 돈이 없었어요

내가 매우 처량하게 느껴졌어요

 

하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도 좋아하고 있다는걸

우리반 애들 누구도 다 알아요

 

 

그날 이자식 날개뼈 두짝에

알마니 문양을 새겨줄까 했어요

 

 

하지만 A가 안받았어요

 

 

A가 영설이자식을 살렸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받았어~♬

안받았네~♪

케케케케케케케

 

 

 

   

우리 아부지는 평범한 공무원이예요

 

무리를 해서 나와 내동생을

스파르따!!! 학원에 집어넣은거예요

거기 정원이 300명 이었는데

 

영화 300과 무언가 연관이 되요

 

 

 

왜냐면 난 거기서 신나게 펑펑 매질을 당했어요

 

원장에게 다이렉트 30대 빠따맞았어요

하지만 A에게 약한모습 보이지 않으려고

당황하지않고 그대로 쭈욱 맞았어요

 

그때 난 나와 내 엉덩이가 작별하는줄 알았어요

하지만 난 남자다움을 택했어요.

 

원장은 고단수에요.

 

잘못을 할 때마다

 

어렸을때 엄빠가 써먹던

"몇대맞을래?"

전법을 구사했어요

 

딴애들은 다들 다섯대? 열대? 이랬는데

나는 혼자

"서른대 맞겠습니다" 했어요

 

나사실 이러면 원장이

좋게봐줘서 조금 깎아줄줄 알았어요

근데 진짜 풀스윙으로

꼴데 이대호가 홈런을 날리듯

 

내 엉덩이를 날리고

1루를지나고

2루를 지나고

3루를 지나서

홈인을 할 생각이었나봐요

 

 

 

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걸까요

 

왜냐면 A와

홍대 라운지클럽 약국에서

이런 저런 이러한 이야기들을

마구마구 나누었기 때문 이예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나의 짝사랑은 점점 커져만 갔어요

 

짝사랑은 좋은거라고 누가 그랬던게 생각나요

왜냐면 돈도 안들고

또 뭐가 좋다더라

 

또 뭐가 좋은지는

더 생각할 필요는 없는것 같아요

 

왜냐면 그건 다 개똥같은 소리니까요

 

 

집어쳐요

 

짝사랑 보다는

그냥 차라리

보기 안좋아도

시원하게 차이는게

백만스물하나 백만스물둘 좋아요

 

 

 

 

 

또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드디어 원치않던 퇴교 시간이 왔어요

 

마지막 날이예요

 

퇴교할때 아쉬움을 남기고 서로를 보내기 싫어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맞아요

개네도 거기서 사랑이 싹튼거예요

 

6.25때도 일제강점기때도

3.1절 독립운동때 만세를 외치면서도 

우리네 조상님들은

사랑은 항상 꽃피었고

연애는 항상 했어요

 

스파르따!!!!학원이라고해서

예외는 아니예요

 

 

나는 끝내 내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난 어렸을때부터

굉장한 독서량으로 인해서

글은 좀 쓰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정성이 담긴

한글자 한글자 장인의 손으로

손톱이 빠지도록 아프게

정성을 들여 꾹꾹 눌러 쓴 편지와

 

내가 10년동안 항상 지니고 다니던

행운의부적인 목걸이를 그아이에게 주었어요

 

직접 줄 용기가 없었어요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했어요

 

 

이미 내 마음을 A는 알고 있었어요

 

 

한참후에 그것들을 전해준 아이가 그랬어요

 

 

 

A가 받고 눈물을 글썽였다고

 

 

 

그렇게 기숙사 학원을 나오고 나서는

A와 연락을 할수가 없었어요

 

생사확인조차도 안되었어요

 

그아이는 지방에 살고 있었고

집주소를 알아도

찾아가면 난 스토커가 되는거니까요

 

밤마다 꿈도 꿨어요

다시 스빠르따 학원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밤마다 옆자리 친구와 침대에서 야한상상 *-_-*은 물론 했고

이성 이야기를 하며 밤을 지새웠었어요

 

물론 여자애들도 그랬었어요

 

내 이야기도 했었었대요

 

 

너무 무섭게 생겼다고......

 

 

 

 

 

그래서 나는

"강원대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같은 카페를 만들었어요

위의 카페는  길에서 일상에서 본 마음에 드는 이성을

찾아주는 대학, 지역 커뮤니티죠

 

 

A를 찾기 위해서예요

 

 

"이천 정일학원 XX기 동기들의모임"이라는 명목하에 개설된 그 카페는

사실 지극히 내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카페예요

A를 찾기 위해서 였어요

 

 

 

결과는 성공적이었어요

 A는 미끼를 물었.....다고 하니까

왠지 적절한 표현 같네요 지금생각해보니 하하핳

 

 

A가 카페에 나타났어요

나는 바로 아는체를 못했어요

왜냐면 심쿵했잖아요

 

대체 어떻게 아는체를 할까

계속 이불팡팡을 했어요

 

 

 

 

 

참 고맙게도

동기녀석들도

카페 분위기도

A와 내가 연락이 되게끔

몰아주었어요

 

아 나 토낀줄?

막 몰아

위에서부터 아래로

 

 

그렇게 나는 A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연락을 하며 지냈어요

 

 

  <miss A>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시즌 크리스마스날

A에게 크리스마스 카드가 왔어요

거기에는 예쁜 카드와 함께

선물이라며 자신의 증명 사진을 함께 보내왔어요.

 

지금은 그때 대체 무슨 깡으로 그런걸 보냈냐고

갈구었어요

 

하지만 그당시엔 나에겐 굉장히 소중한 물건이었어요

 

매일 꺼내 보다가

결국엔 하늬바람에 실려 잃어버렸지만.

 

 

졸업을하고

 

대학교에 갔어요

 

 

나는 대학 샌애긔 '-^*

샌애긔 시절은 참 좋았어요

 

일주일에 서너번은

전혀 수확없는 미팅을 항상 했었고

서울내 여대와는

전부 미팅을 해보았thㅓ요

 

성신여대 이쁘기로 소문난 학과와는

쪼인MT도 갔었었어요

 

 

술을 많이 마셨고

술도 많이 마셨어요

 

그래도 언제나 내 머릿속에서

A는 잊혀지지 지워지지 않았어요

 

 

 

 

 

어느날 학과 모임에서

술을 진탕 먹었어요

 

나는 전화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은 술취하면

카톡을 미리 지워버리거나

전화기를 방전을 시켜버리지만

그때는 자제를 할수 없었는데

 

 

 

 

난 빠른년생이라

19세이기 때문에

아직도 알 요금제를 쓰고 있었어요

 

알이 모두 소진되면

문자도 전화도 못하는

지옥같은(지옥을 되게 빠르게 읽으세요)

요금제예요

 

 

 

 

하지만 난 당황하지 않고

친구폰을 빌려 A에게 전화를 했어요

 

취기도 있었고

그냥 울적했어요

 

눙물이 났어요

콧물도 났는데

 

A에게 말했어요

 

보고싶어도 볼수없고

갖고싶어도 가질수없는 너에게로부터

이젠 진짜 안녕 하려구

안녕

 

 

 

지금이야 이렇게 농담섞어서 말하지만

 

그날 나는

세상 누구보다도 취했었고

세상 누구보다도 슬펐어요

 

소주 한병을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드링킹을 했으니까요

 

돈이없는 학생 시절에는

녹색 소주병 한병한병이

모두에게 소중해요

 

나는 우리 학우들의 소중함을 잃게 했던 장본인 이예요

 

 

  아뭏튼 그로부터 1년넘게 A와 나는 연락을 하지 않았어요   A는 A의 남자친구에게 충실했을테고   나는 학업 친구 여친말고   그때도 항상 솔로였으니까.    

 

    "너의 그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너의 그 작은 눈빛도 쓸쓸한 그 뒷모습도 나에겐 힘겨운 약속"  

 

 

그로부터 1년후 어느 겨울날 제이의 어제처럼 이라는 노래가 문득 생각나서 듣고있는데   전화가 오는거에요.   응? 전화 올 곳이 없어요 그때나 지금이나 시계이기는 마찬가지에요   또 어떤 광고일까 들어보기로 했어요   폰을 들어 액정을 봤어요     한번 떨어트렸어요       -발신자 : A-     꿈이야 생시야 받아말아 ...     코를 훌쩍거리면서 받았어요 감기때문에

 

  잘지냈냐는 말 한마디도 없었어요   언제나 그렇게 차분한 A였어요     미국으로 유학을 간대요   날짜를 알려주면서 그날 미국 대사관에 비자 인터뷰를 하러 서울에 온대요   그날 만나재요     심쿵...   어떻게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요 만났어요 ㅋㅋㅋㅋㅋ   신촌이예요 2004년도의 신촌 어느 건물에 인디오, 파라오 라는 술집이 같이 있었는데 (2,3층이었나)   거기서 만났어요.   항상 미팅을 하던 술집들이예요 왜 거길 갔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어렸고 학생때였고 스무살이어서 그랬나봐요   지금이라면 조용한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겠죠.   그때 유행하던 칵테일 소주를 시켰어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포도맛의 씁쓸한 맛이 기억나고 아직도 입 안에서 맴돌아요   . . .   "부드러운 노랫소리에 내 마음은 아이처럼 파란 추억의 바다로 뛰어가고 있네요   깊은밤 아름다운 그 시간은 이렇게 찾아와 마음을 물들이고 영원한 여름밤의 꿈을 기억하고 있어요"   아이유 리메이크 앨범 - 여름밤의 꿈  

 

  잠시 대화가 끊겼어요 옛 생각에 추억에 젖어 창밖을 바라보았어요   어디선가 앞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나요   소리나는쪽은 내 정면이었어요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거먹고 취한거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이블위에 엎드려있는 A가 스팟되었어요   맛있다고 드링크 드링킹하듯 드링킹 할때부터 알아봤어요   조절하면서 마시라고는 했지만 처음 같이 뭘 먹고 술을 마시는거라   당최 주량을 할리가 없었어요     계산을 하고 나갔어요       라디오헤드의 Creep이란 곡을 좋아했었는데   그 노래에 이런 가사가 나와요   "You float like a feather in a beautiful world"       ... 깃털같을줄만 알았던 A도 그냥 사람이었어요 하하핳       나는 그때 순수했고 어쩌지를 못하다가 결국 비어있는 우리집 *-_-*에 데리고 왔어요   내방 내 침대에 재웠어요     난 정말 피곤했어요   침대에 기대어 있다가 앉아서 침대위에 엎드린채로 잠들었어요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어요

누가 자꾸 내 머리를 쓰다듬어요

살짝 꺠었는데

A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어요

애완견이 된것만 같아요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어요

일단 자는척을 했어요

계속 쓰다듬어요

머리에서 열이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마찰이예요

머리에 불이날까 무서웠어요

이.. 일어났어? 하며 어색하게 웃으며 쳐다봤어요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오는 가로등빛이 아름다웠어요

​어색해졌어요

그당시에 내방은 이랬어요

 

 

 

 

 

<쓰레기통 대1때 내방>

​ 

​ 무얼 해야할지 몰랐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아노로 갔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 한창 유행하던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연주햇어요 ㅋㅋㅋㅋㅋㅋ

내가 좋아하는 캐논변주곡도 연주했어요 ㅋㅋㅋㅋㅋ

새벽두시엨ㅋㅋㅋㅋㅋㅋㅋ

물론 가운데 패달을 밟아서 소음이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매너도 챙겼어요

 

지금 생각하면 오글이 토글이예요 ㅋㅋㅋㅋㅋㅋㅋ

 

 

연주를 마치고는

그렇게 아무일도 없이

나는 거실로가서 잤어요

 

 

 

 

날이갔고 A도 갔어요

 

 

그날 이후로

다시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출국을 했다는 소식만 들렸어요

 

 

 

나는 문득 상상해봤어요

공항에서 한국을 떠나는 A의 뒷모습을...

 

 

 

"기어코 떠나버린 사람아

편안히 가렴

날으는 그 하늘에 미련따윈

던져버리고

 

바뀌어버린 하루에

익숙해져봐

 

내게 니가 없는 하루만큼

낯설테니까

 

모두 이별하는 사람들

그속에 나 우두커니

어울리는게

 

우리 정말 헤어졌나봐

 

모르게 바라보았어

니가 떠난 모습

 

너의 가족 멀리서

손 흔들어 주었지

 

하늘에 니가 더 가까이 있으니

기도해 주겠니

 

떠올리지 않게 흐느끼지 않게

무관심한 가슴 가질 수 있게

 

 

 

도착하면 마지막

전화 한번만

 

기운찬 목소리로 잘 왔다고

인사 한번만

그저 그것뿐이면 돼

 

습관처럼 알고 싶던

익숙한 너의 안부

거기 까지만"

 

- 하림, 출국

 

 

 

 

 

그후로 몇달후

 

나도 다니던 광운대를 그만두고 유학길에 올랐어요

 

 

 

 

 

<유학시절 한국을 오가며 모았던 비행기표들. 첫 출국때 표>

 

 

군대 가기전에 6개월만 견문 넓힐겸

놀아도 좋으니 다녀오라는 아버지 말씀에

가기 싫었지만 별 타협점이 없어

나도 떠나게 되었어요

 

 

그러다가 나는

현지 적응을 현지인처럼 너무 잘해서

그곳에 7년이라는 세월 가까이 눌러앉았어요

 

 

 

모든걸 다 털어버리고 잊고

마음 한켠에도 두지 않은채

각자의 삶을 살았어요

 

사진 한장도 없었고

추억하거나 회상할 기억들이 많지 않았어요

 

 

그러던 어느날  방학중 잠시 귀국을 하였어요

 

매번 귀국할 때마다 집이 바뀌었는데 ㅋㅋㅋ

 

이번엔 대전쪽인

계룡대 였어요.

 

 


 

나는 아마도 예전에 다른 친구를 통해

A가 충남대에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던것 같아요

 

어렸을적에 유성구 자운대에 살았던 기억이 있어서

충남대의 위치를 매우 잘알고 있었었어요.

 

충대면 계룡대랑 가깝잖아....

 

 

설마설마 하는 마음으로

잊혀지지 않는 그 번호로 문득 전화를 걸었어요

 

 

수화음이 들리고...

 

"여보세요?"

 

 

기대도 않았는데 A가 전화를 받았어요

 

왜냐면 그 번호는 A가 모르는 번호 였으니까요

 

 

나를 기억하냐고

언제 한국에 온거냐고

왜 연락을 안했냐고

 

 

A도 내가 출국을 한 소식을 들었었대요

 

어쩐일이냐고..

 

난 당장 만나자고 했어요

 

 

 

그렇게 우리는

다시 4년만에 재회를 했습니다.

 

충남대 앤젤리너스

내게 밥을 사주었던 그 양식집

 

 

그날을 그렇게 시작으로

한국에 있던 일주일 이라는 시간동안

 

우리는 매일매일 만났어요.

 

 

전에 그랬듯

옛날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함께 좋아하는 가수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았고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스물넷의 나이에

다시금 순수했던 그 감정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나는 곧 다시 떠날걸 알고

또다시 보고싶어도 볼수 없다는걸 알면서도말예요.

 

 

 

 

예전과는 달라진게 하나 있었어요

 

A도 내게 마음을 여는것 같았어요

 

 

이별이 두려워 망설이는것도 느낄수 있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 때에도

어느 관계적 정의나 행동도 하지 못한채

다시 서로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아마도 인연의 끈을 놓고싶지 않아서였던것 같아요

 

 

 

 

<대전에서 4년만의 재회, 그리고 다시 출국>

 

 

4년만의 재회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어요

 

일주일.

 

 

일주일의 시간동안 우린 충분히 플라토닉 감정 교감을 했습니다.

 

 

대전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에

타려는 찰나

 

A도 함께 가고싶다고 했어요

 

...

..

.

 

 

아니.

안돼.

 

 

 

 

 

차창밖으로 작아지던 너

 

 

 

 

 

그렇게 대단했던 우리의 재회는

일주일만에 다시 닿을수 없게 되었고

 

흔들리는 비행기 안에 앉아있는 내가

정말이지 너무 미웠어요

 

난 다시 유학생의 신분으로 돌아가

또다시 현지에 닿았어요

 

 

 

나는 잘 도착했다고 전화했고

 

그 후에도 간간히 국제전화로 전화했어요

 

 

전화를 할 때마다

기다렸다는듯이 받는 A가 고마웠어요

 

 

전화를 할 때마다 목소리가 별로 좋지 않았어요

 

A가 웃어도 웃고있는게 아니라고

난 마음으로 느낄수 있었어요

 

 

 

어느새인가부터

A는 내 전화를 받지 않았고

 

이제는 연락을 주고받는 기숙사학원 동기들도 없었기에

소식 조차도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어딘가에서

어디에서도

 

행복하게 잘 지내길 바라는 수밖엔

그런것들 외에는

할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휘성 일년이면>

 

"시간이 자꾸 빨리 흘러서

애꿎은 시계 마저 부수고

 

사랑한 날을 거꾸로 세며

아직 그대만 기다리죠

 

우리 함께 있던 날이 많아요

걷던 길이 너무 많아요

 

그시간들을 더듬어보며 기억을 살려내죠

 

 

일년이면

입 맞추던 기억을 잊고

 

더 지나면 목소리도 까맣게 잊고

 

나만 혼자 파란 불과 하얀

겨울 속에 추억들과 살아도

 

십년이면 나도 지쳐 그대를 잊고

더 지나면 다시 사랑 못할 것 같아

 

단 하루도 못 가게 잡고 헤어진 그 날에 살죠"

 

 

 

다시 시작된 씁쓸했던 유학생 기간동안

나는 정말 바쁘고 바쁘게 살았어요

 

아무것도 추억하지 않았고

그무엇도 회상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사업을 시작했었고

꽤나 성공적이었어요

 

적은 나이에 많은 돈을 벌었었지만

당시 사업 파트너들과의 관계를 유지하느라

모아지는 돈은 없었어요

 

 

사업이 한창 본격적으로 성행하게 될 때즈음

 

나라에서 더이상 여권 연장을 해주지 않았어요

 

병역문제가 걸려있었어요

 

 

2011년 12월 28일.

여권과 비자 만료 이틀을 남겨두고

 

나는 정말 쓴 눈물을 삼키며 귀국을 하게 되었어요

 

 

 

한국에 와서는 별 의미없이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여자친구가 생겼지만

한창 좋을때에 나는 군대에 가기로 했어요.

 

어떻게든 해결을 해야만 했으니까요.

 

병무청 사이트를 뒤져보니

아버지께서 장교 신청을 해둔걸 발견했어요

 

바로 취소를 했어요

 

아버지는 통역병으로 가기를 원하셨지만

워낙 초 고도의 난이도인 통역병 시험에 두차례 떨어졌어요

 

지금도 현역으로 영관급 장교이신

아버지의 허울에서 벗어나 군생활을 하고싶어

나는 해군에 지원하려 했지만

시기가 맞질 않았고

 

가장 빠르게 갈수 있는 특전사 시험을 보았어요

 

하지만 전날 과도한 음주탓에

체력측정에서 ㅋㅋㅋ 탈락.

 

 

결국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입대하게 되었어요

 

 

아직도 생각이 많이 납니다.

2012년 20대 중후반의 나이에 102보충대로 향했던 내 발걸음이

 

입대 당일까지도 아무 실감도 나지 않았지만

잘려나가는 내 머리를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여자친구도 어머니도 많이 울어요

 

 

보충대 안에서 나는

여자친구와도 가족과도 떨어지고싶지 않아서

"연고지복무" 라는걸 신청했어요

 

집 근처에 가까운 부대에 배치되는 제도인데,

 

그 말이

"집 근처 가장 빡쎈 예비사단에 배치"되게 된다는 줄임말이라는걸 몰랐어요

 

 

나는 27사단 이기자부대 신병 교육대대에서

첫 군생활을 시작했어요

 

 

정말 굉장히 열심히 훈련병 시절을 보냈어요.

 

27사단이면 아버지가 계시는 2군단의 예하 부대인데

아버지 얼굴에 먹칠하고싶지 않았어요.

 

우리 아부지가 군인이시라는것도 그렇게 티를 내지 않았어요

 

 

 

특별외박을 따내려고 훈련중 과도하게 훈련을 받다가

무릎과 어깨를 다치게 되었지만

 

꾹 참고 11개월간 군생활을 했지만

점점 심해져오는 통증탓에

매우 힘든 군생활을 했어요.

 

결국 무릎수술1회, 어깨수술 2회

이렇게 세번의 관절경 내시경 수술을 받았어요.

 

어깨뼈에 핀7개를 박고 와이어로 찢어진 인대를 봉합하는 수술을 받았고

무릎도 내시경 수술을 받았어요

 

 

일병 말, 상병 초에 연인관계에 위기가 온다는

일말상초를 나도 피해갈수 없었어요

 

out of sight, out of mind

철저한 법칙이예요.

 

 

여자친구가 이별을 요구했고

나는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설상가상으로 어깨 2차 수술때에는

수술중 마취가 풀려

극심한 고통을 겪었어요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였어요

 

 

 

 

세번의 작지않은 수술을 마치고는

군병원에 네달동안 입원을 했어요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 보상이었는지

나는 입대 11개월만인 2013년 8월 15일에

전역을 명 받았습니다.

 

그날 공휴일이라 전역자가 없었는데

 

전군에서 딱 저 한명만 전역을 하는 날이었었어요.

 

 

전역을 하고나서는

마음을 추스리려 미친듯이 경상도로 여행을 다녔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몸도 마음도 다 회복해서

보통적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날

어느날처럼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데

문득 A가 떠올랐어요

 

이제는 희미한 기억속의 그 번호를

애써 회상해내어 전화를 걸었어요

 

 

다시 연락이 닿았고 만났어요.

 

 

 

<홍대 2차>

 

마침 자기도 그날 아침에

엄마와 내 이야기를 했었다고

 

그런데 거짓말처럼 신기하게도

내게 전화가 왔다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이번주 주말에 만나자고 했고

 

그렇게 우리는 다시 만났어요

 

 

 

우리는 7년만에 다시 만났어요

 

 

외모도 성격도 서로 완전히 변했고

예전의 그 둘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지나간 나날속 외에는

 

 

 

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었고

지금은 각자 서로가 하는일 이야기도 하고

좋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물론 지나간 이야기들이 대화의 주 소재가 되었죠

 

 

 

 

이제는 어디에도 없는

옛시절 순수했던 두 아이의 이야기들은

모두 흩어져 이렇게 낱말로 남게 되었어요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고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여자인 A와 작별인사를 하고

 

 

오후가 되서야

나는 춘천으로 돌아와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이젠 후념도 상념도 없이

 

푸욱 잠들수 있었습니다.

 

 

나에게는 언제쯤 새로운 인연이 올까요?

 

 

추천수7
반대수11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