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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치유07) 종교적 시한부 인생

소검 |2014.06.03 23:23
조회 52 |추천 0

종교적 시한부 인생

 

인생(人生)이란, 인간의 몸집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아가는 삶을 말하며, 한평생의 삶이란,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형태의 일들에 의한 경험들이 일생을 이루는 삶을 말한다. 그리하여 일생(一生)이란, 살아있는 동안이 일생이며, 일생을 통하여 일생(一生)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이다. 그런즉,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 안에 종교가 있는 것이며, 종교론적 목적 안에 인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은 절대적 진리에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이 절대적 진리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인간이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이며, 인간이 절대적 진리인 것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이 절대적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하느님의 절대적 진리의 세계에서 절대적 이치에 따라 창조되어진 존재가 인간이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인 인간 이외의 그 무엇에도 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인간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란다면 하느님 또한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는 말이 된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인 인간을 배제시키고 인간으로부터 외부적인 것에 절대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 주장 자체가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절대적 진리를 왜곡시키는 것이니, 그것은 또한, 하느님의 절대적 진리를 왜곡시키는 짓이 된다.

 

인간의 삶이 진리적인 삶이 되게 하기위하여 인간세상에 종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는 종교의 본질에 따라 두 가지 형태의 종교가 존재하게 되니, 그것은 절대적 종교와 상대적 종교이다. 절대적 종교는 인간의 본질을 절대성에 둔 종교이며, 하느님을 절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따르는 종교이다. 그러나 상대적 종교는 인간의 본질을 상대성에 둔 종교인즉, 상대적 종교에는 하느님이 존재할 수 없으며, 하느님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리하여 상대적 종교는 상대적인 존재로서 신(神)을 결정하여 정하고, 그에 따른 믿음을 갖고 인위적인 인식적 신앙이 형성된다.

 

인간의 삶으로부터 진리를 왜곡하여 절대적 진리인 인간을, 상대적 진리로 취급하는 상대적 종교로 인하여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이 상실되고, 목적달성을 위한 인생이 행복한 삶에서 존재를 이루지 못하고, 불행한 삶에서 존재론적 목적을 실패로 만들게 된다. 또한, 모든 인간은 이러한 절대적 진리로서 평등한 존재이다. 종교적 사상을 포함한 어떠한 사상이든 그 이전에 인간의 평등이 있는 것이며, 어떠한 사상에 근거하거나 종교적 사상에 근거하여 인간의 평등이 있지 않다. 이러한 인간의 평등을 상대적 종교에서 주장한다면 그것은 상대적 평등이니, 그렇게 하여 인간세상에 인간차별이 이루어지며, 특히, 남녀의 차별이 이루어져 불행한 인류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게 된다.

 

인생의 의의

철학의 길은 “나는 누구인가?”에서 시작하여 “나는 누구인가?”로 끝이 나며, 그 사이에서 존재론적 자아의 깨달음이 열린다. 만약 철학의 길에서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고 한다면, 그것이 철학이 아닌 것은, “나”라는 존재를 모르고서 내가 무엇을 믿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철학적인 정신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된다. “나는 무엇을 믿을 것인가?”라는 것을 철학의 명제로 하는 인간이 있다면 그러한 인간은 영혼을 잃은 인간이다.

 

영혼을 잃은 인간이기에 자신자신에 대한 존재론적 목적을 포기하고 믿음의 대상을 찾아 굴욕적 자아를 찾게 되는 것이다. 또한, “나”라고 하는 자기자신을 모르면서 인생의 의의를 안다고 하는 인간은 쇄뇌된 정신에 의한 인생의 의의다. 자신을 모르면서 인생을 찾고, 인생을 모르면서 인생의 의의를 찾는 인간은, 영혼을 잃은 불행한 삶을 사는 인간이다. 그러나 자신을 모르면서 인생을 안다고 하는 인간은 인생을 포기적 정신으로 살겠다는 것이며, 그러한 인생에서 자신을 찾았다고 자랑하는 인간이 있으니, 그러한 인간은 종교이념에 쇄뇌된 인간이다. 종교이념에 쇄뇌된 인간에게는 더 이상의 존재론적 자아를 이룰 길은 없으니, 그 영혼을 찾아 이룰 기회가 영원히 없게 된다.

 

시한부 인생(時限附 人生)

시한부인생에서 삶의 희망을 찾기 힘든 것은 죽음의 날자가 정해져, 그 안에서 포기적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 짧은 남은 시간에 그래도 뭔가 뜻있는 것을 찾으려 하지만, 죽음을 염두에 둔 시한부인생은 마지막이라는 운명의 무게감 때문에 근시한적 생각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시한부인생이야 삶의 종착점에서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그러한 시한부가 아니면서 인생 자체를 시한부에 놓고 시한부적인 인생을 살고 있는 인간이 있으니, 그것은 죽음을 염두 해두고 삶을 이루고 있는 악의 종교에 구속된 노예인간이다.

   시한부인생적인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서 삶의 모든 의미는 죽음을 놓고 생각을 하며, 모든 것은 죽음을 전제로 한 행위일 뿐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삶에서 삶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존재를 이루게 된다. 죽음을 전제로 한 인생이 아니라 죽음이전의 삶, 즉,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삶에서 삶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죽음을 염두에 두었다는 것은 삶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차피 맞이할 죽음이기에 그 죽음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죽음을 받아들여 죽음이후를 걱정하는 것. 이것이 죽음을 염두에 둔 시한부인생의 인간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진정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며, 그러한 두려움을 극복한다는 것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니, 즉 모든 삶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포기적 삶에서 희망은 없다. 희망이 있다면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것이니 그것은 희망이 아니며, 그러한 인간의 인생의 본질은 불행이다.

   가장 큰 불행은 죽음이며,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불행이기에, 모든 인생을 불행 속에 집어넣고 불행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가장 큰 불행이 있기에 그 안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불행은 가장 큰 죽음의 불행에 비하면 참을 수 있다는 것이며, 또한 그것을 인정하고 참으라는 것이다. 그러한즉, 불행을 극복하는 방법은 참는 것이며, 참는 방법은 더 큰 불행인 죽음을 염두에 두라는 것이니, 이것으로 죽음을 염두에 둔 시한부적인 인생은 불행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거짓종교들이 이러한 짓을 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삶을 불행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인생으로 만든다. 인간의 약점 아닌 약점인 죽음으로 인간의 영혼을 구속시켜, 그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여 쇄뇌를 시키니, 그렇게 쇄뇌된 인간은 불행한 삶에서 불행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한부적인 인생은 현재의 삶으로부터 이루어질 수 있는 존재론적 자아를 부정하게 되고, 그렇게 부정된 자아를 죽음 뒤의 세계를 그려놓고 미래적 자아에 현재의 삶을 희생하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현재의 삶을 이루는 인생을 죽음 뒤의 사후의 세계에 모두 맞추게 되니, 그러한 인생이 삶은 없고 죽음만이 있을 뿐인 시한부인생인 것이다.

 

인간은 탄생하였기에 삶이 있으며, 삶이 있기에 살고 있고, 삶에서 삶이 있어야 삶이 있게 된다. 즉, 삶에서 존재를 이루어야 존재에서 존재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며, 현재적 존재가 존재를 이루지 못하면 죽음 뒤의 존재는 없다. 죽음 뒤의 존재는 현재의 삶에서 이루어진 만큼의 존재로 존재할 뿐이니, 그러한 이유에서 죽음이란 없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이라 할 것이며, 현재의 삶으로부터 존재를 이루지 못한 시한부인생과 같은 인생에게는, 죽음이후에 존재가 없는 귀신의 세계로 사라지게 될 뿐임을 알라.

 

빛을 잃는 인생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는 길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혼을 깨워 밝음을 이루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의 빛을 밝게 하는 삶이 하느님의 세계로 가는 길이며, 하느님의 빛을 맞이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존재론적 자아를 자신의 내면에서 찾지 않고 종교적 대상이나 외부에서 찾는 것은 자신의 영혼을 죽이는 행위가 된다. 자신을 찾아가는 수행적인 삶에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게 되고, 자신의 영혼을 진보시키는 삶에서 신의 세계를 이해하고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의 주체적 자아가 없으면서 종교에 영혼을 떠맡기는 것은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영혼의 불씨를 스스로 짓밟는 행위가 되며, 그 죄는 스스로 짓는 죄이니 변명할 수 없는 죄인즉, 스스로 그 죄에 대한을 댓가를 받게 될 것이다. 자신의 존재론적 자아를 버리고 무엇을 믿는 다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론적 자아를 망각하고 어떠한 것에 희망을 걸고 그 인생을 망각적인 삶으로 사는가? 자아를 진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장소는 자신의 육체인 것을, 육체를 떠나 어디에서 자아의 진보를 이룬다고 말하는가? 자신을 스스로 죄인으로 취급하면서 어떠한 생각으로 선행을 한다고 말하며, 인간의 삶에 근본을 절망에 두고서 어떻게 행복을 이룬다고 말하는가?

 

인간이 자아를 이룰 수 있는 가장 신성한 신전은 가정이며, 사랑을 실천하고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교당은 가정인 것을, 가정을 버리고 가족을 배반하며 어디에서 자아를 이루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하는가? 화려하고 웅장한 종교장에 하느님께서 존재하지 않으시며, 자신의 머릿골 깊은 곳에 계시거늘, 자신의 내면에 있는 영혼을 찾아 이루지 않고, 어디에서 자신의 영혼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의 내면에 있는 하느님의 성품을 더럽히는가? 존재론적 자아인 영혼의 불빛은 자신의 내면을 벗어나면 곧 꺼지고 마는 것을, 종교적 이념에 속아 하느님을 버리는 짓을 하는 것은, 그 누가 그 무엇으로 변상을 해줄 수 없는 것이니, 참으로 아까운 인간의 영혼이며, 참으로 안타까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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