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적 부모의 삶
아버지는 하느님의 자손으로써 아버지이며, 어머니는 하느님의 자손으로 어머니이다. 아버지 위에 아버지는 없으며, 아버지 아래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 위에 어머니는 없으며, 어머니 아래 어머니는 없다. 또한, 아버지 위에 어머니는 없으며, 아버지 아래 어머니는 없고, 어머니 위에 아버지는 없으며, 어머니 아래 아버지는 없다. 하느님의 빛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직접 내려온다.
인간이 하느님의 자손이라고 하는 것을 일차 아버지와 어머니를 놓고 말하는 것이며, 자식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자식일 뿐 아직 하느님의 자손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남자를 창조한 것은 아버지가 되게 하기위하여 창조한 것이며, 여자를 창조한 것은 어머니가 되게 하기위하여 창조한 것이다. 그러한즉 아버지된 자의 삶과 어머니된 자의 삶은 그 어떠한 삶보다 숭고한 삶이며, 이보다 더 숭고한 삶은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아버지된 자는 어머니된 자를 도와 존재론적 목적과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하며, 어머니된 자는 아버지된 자를 도와 존재론적 목적과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러한 삶이 인간세상의 가장 기초적인 진리의 삶이면서 영원히 변할 수 없는 절대진리의 삶이다.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의 이러한 진리적 삶은 자식을 별도로 위하지 않아도 자식을 위한 삶이 되니, 자식은 아버지의 행복과 어머니의 행복에서 행복을 배워 행복한 삶을 이루고, 아버지의 불행과 어머니의 불행에서 불행을 배워 불행한 삶을 이룬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진리적으로 왜곡된 삶을 이루게 한 것은, 자식을 위하여 그 삶을 희생한다고 하는 생각이다. 그리하여 아버지된 자는 자식을 위하여 불행을 참아야 하고, 어머니된 자는 자식을 위하여 불행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은,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가 스스로 불행한 삶을 이루고, 자식에게 불행해도 불행을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하니, 그러한 희생이라는 생각은 결국 불행에 인생을 빼앗기는 삶이 되며, 자식에게 인생을 불행한 삶에 빼앗기는 희생의 삶이 되게 한다.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가 서로 존재를 이루게 하며 자식을 키우는 것은, 하늘의 성품과 공기의 성품과 땅의 성품을 실천하는 삶으로써, 스스로 하늘의 성품을 이루게 되고, 스스로 공기의 성품을 이루게 되고, 스스로 땅의 성품을 이루게 되니, 그 스스로 이룬 성품이 존재론적 목적인 자기완성을 이루는 영혼의 삶이 된다. 그러한즉 아버지된 자나 어머니된 자가 노력하는 삶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숭고하고 보람된 삶이며, 이외의 어떠한 삶도 숭고하고 보람된 삶이 없는 것은,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을 이루는 삶보다 더 숭고하고 보람된 삶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간혹 인간의 정신적 한계와 육체적 한계에 의하여 때로는 힘들고 고달프기도 하지만, 그것은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가 스스로, 또는 서로가 도와서 그때그때마다 쉬거나 안정을 취하는 즐거움에서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힘들고 고달픈 것이 불행이라고 하여 그것과 싸우는 삶이 되면, 계속 힘들고 고달픈 인생이 되니, 그래서 불행이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그러한 것을 불행이라 생각하고, 불행한 삶이 진정한 삶이라 결정하니, 그리하여 스스로 불행한 삶에 인생을 두어 존재론적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는 명심하여야 한다. 아버지된 자의 삶과 어머니된 자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어, 존재론적 목적과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지 못하게 하는, 사악한 사상과, 사악한 사상을 쇄뇌시키는 사악한 집단과, 사악한 집단의 하수인인 사악한 인간에 의하여,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의 삶을 왜곡하여 존재론적 목적을 잃게 만들고,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버지된 자로써 아버지의 자리에서 아버지의 정당한 삶을 사는 것을, 그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가정을 보호하고 안정된 삶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권위의식에 따른 비합리적인 삶이라 비난하고, 어머니된 자로써 어머니의 자리에서 어머니의 정당한 삶을 사는 것을, 그것을 비웃으며 자식을 낳고 키우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삶을 쓸모없는 희생이라고 비아냥거린다. 그러나 여기에서 아버지된 자와 어머니된 자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아버지된 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어머니된 자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어머니된 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자는 오로지 아버지된 자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약, 아버지된 자의 삶이나 어머니된 자의 삶을 이간질하며 책임져 질 수 있다는 인간이 있다면, 그러한 인간이 바로 사악한 인간으로써 그 가정을 파괴하려는 인간이며, 아버지된 자의 삶이나 어머니된 자의 삶을 비난하고 가정을 벗어나 삶을 책임져 질 수 있다고 하는 사상이 있다면, 그러한 사상이 바로 사악한 사상이며, 아버지된 자의 삶이나 어머니된 자의 삶을 이루는 가정을 벗어나 그 삶을 책임져질 수 있다고 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러한 집단이 바로 사악한 집단임을 잊지 말라.
아버지된 자로써의 삶과 어머니된 자로써의 삶의 세계인 가정이, 존재론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유일한 세계이며, 유일한 세계인 가정의 삶에서 행복한 삶을 이루어야 하는 것이 절대적 진리의 삶이다. 이외의 어떠한 것, 어떠한 곳에서도 존재론적 목적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없으며,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는 곳은 없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한 이치적 이유가 바로 이것이며, 이외의 어떠한 무엇으로도 이치적 이유는 없음을 알라.
아버지의 씨가 어머니를 통하여 육체를 갖추고 되니, 아버지의 씨는 영혼의 씨가 되고, 어머니의 씨는 육체를 갖추게 되며, 그리하여 태어나는 순간에 영혼의 씨가 발아하여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이 씨는 문중으로부터 받아 태어나니 그래서 문중에 따른 성씨를 갖고 태어나는 것이며, 문중의 씨인 성씨가 곧 영혼의 씨이다. 인간은 삶에서 이 영혼의 씨를 진화시키는 삶을 사는 것이 인생이며, 삶에서 이 영혼의 씨가 자라는 것만큼 자아의 영이 되고, 자아의 영이 사후에 문중의 조상님의 세계로 돌아가 신(神)이 된다.
인생을 통하여 영혼의 빛을 이루는 것이 자아의 실체적 영혼이 되는 것이다. 영혼의 빛을 가장 강하게 갖추는 것은 깨달음이며, 영혼의 빛을 성숙시키는 것은 마음의 다스림에 의한 본성을 이루는 것에서 정점을 이루게 된다. 영혼의 빛은 육체 안에서만이 그 빛을 진화시키거나 질적변화를 시킬 수 있으며, 육체를 떠난 사후에는 진화나 질적변화는 이루어지지 않고, 능력에 따라 사라지는 시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20대에 영혼의 빛을 가장 밝게 이룰 수 있고, 40세를 전후로 성숙단계에 들어간다. 영혼의 빛이 일시적으로 밝아져도 그것이 성숙된 영혼의 빛이 되기 위해서는 세월의 흐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를 벗어난 사후에도 영글은 영혼의 빛은 밝은 자아의 영이 되지만, 영글지 않은 영혼의 빛은 우주의 여과되지 않은 빛에 의하여 점차로 영혼의 빛이 사라지게 된다.
그 영혼의 빛이 꺼지기 전에 윤회를 하여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 강할수록 영혼의 빛이 강해지고 본성의 이루어짐에 따라 영혼의 빛이 밝아진다. 이성이 흐리면 영혼의 빛은 응집력이 약해지니 사후에 내성이 약하여 우주의 빛을 견디기가 힘들게 되고, 마음에 의한 본성의 다스림에서 영혼의 밝음을 이루지 못하면 우주의 밝음 자체를 견디지 못하여 귀신이 되거나 빠른 윤회를 하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은 인간으로서 어디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라는 것이며, 스승이 제자에게 바라는 것은 사회적 인간으로서 바르게 우뚝 서서 상호 협조적으로 떳떳하게 살라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바라시는 것은 깨끗한 영혼의 인간으로 바로 서서 풍부하고 화목하게 잘 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삶에서 인간은 자아를 찾을 수 있고, 밝은 영혼을 이루어 조상님의 세계나 하느님의 세계로 갈 수 있으니, 그래서 하느님과 스승님과 부모님은 스스로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느님과 스승님과 부모님 이외의 그 무엇이 있어 인간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어떤 사악함이 인간에게 복종을 강요하는가? 사악한 인간들이 인간을 인간이하로 취급하여 복종시키려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신적 복종이며, 하나는 육체적 복종이다. 정신적 복종을 강요하는 집단은 인간의 영혼을 치욕스럽게 하여 창조적 퇴보를 하게 하니, 그것은 하느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며, 육체적 복종을 강요하는 인간은 인간의 육신을 짐승으로 취급하여 진화적 퇴보를 하게 하니, 그것은 그 부모님과 조상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정신이 강하다고 하여 상대의 정신을 복종시키려는 것은 진정한 정신이 아니며, 육체가 강하다고 하여 상대의 육체를 복종시키려는 것은 진정한 육체가 아니다. 진정한 정신의 강함은 상대의 정신을 복종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정신이 부족한 인간이 상대의 정신을 복종시키려하는 것이고, 진정한 육체의 강함은 상대의 육체를 복종시키지 않으며, 오히려 육체가 부족한 인간이 상대의 육체를 복종시키려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상대의 정신을 복종시키려하는 인간은 그 정신으로 칠 것이니 쉽게 무너질 것이며, 상대의 육체를 복종시키려하는 인간은 그 육체를 칠 것이니 쉽게 무너질 것이다. 복종시키려는 인간은 나약한 인간임을 알고, 그러한 인간은 그에 맞는 다스림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인간세상에 그러한 사악함이 존재하지 못할 것이며, 인간세상이 밝아질 것이니, 인간의 영혼의 길이 밝아질 것이다.
조상님과 나
인간은 누구나 조상님의 세계로부터 이어져 존재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조상이 된다. 이 말에는 어떠한 미사어구도 필요치 않다. 또한 인간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손이다. 자신의 조상님들 또한 하느님의 자손이며, 자신의 후손 또한 하느님의 자손이다. 만약 조상이 하느님의 자손이 아니란다면 자신 또한 하느님의 자손이 아닐 것이며, 자신이 하느님의 자손이 아니란다면 그 후손 또한 하느님의 자손이 아닌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머릿골 속에 하느님의 씨가 심어져 있으며, 그 씨를 틔워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어야 한다. 자신의 조상님들 또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기 위한 노력적 삶을 살았을 것이며, 자신의 후손들 또한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기 위한 삶을 살 것이다. 현재론적 땅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머릿골 속에 심어진 하느님의 씨를 틔워, 존재론적 자아를 완성하기는 쉬우면서도 어렵고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쉽다.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쉬운 길은, 조상님과 후손 사이에 내가 있다는 것을 안다면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기는 어려울 것 같으면서도 쉽다. 그러나 조상을 끊고 후손을 져버린 후, 혼자만이 존재론적 자아를 이루겠다고 하는 길은 간단하고 쉬울 것 같지만 어렵고, 어려운 것이 아니고 이치적으로 불가능하다. 갈 곳이 있기에 온 곳이 있을 것이며, 온 곳이 있기에 갈 곳이 있을 것이다. 갈 곳을 모른다면 온 곳을 모를 것이고, 온 곳을 모른다면 갈 곳 또한 모르게 된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 나가서도 샌다.”는 말이 있다. 자신의 내면의 마음을 닦지 않고 겉으로 깨끗한척하여도, 소리와 풍기는 색채에 의하여 나타나며,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지 않거나 부모님에게 효도를 하지 않는 인간은 사회에 나가서도 충실하지 않으며 불효한 짓을 하고, 인간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인간은 신의 세계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신의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 인간이 곧 귀신이 되는 것이며, 인간들의 말을 무시하고 신의 세계만을 따지는 인간은 바로 귀신의 하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