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적 진리의 가정
진리를 실천하여 존재의 결실을 이룰 수 있는 환경적 터전이 가정이다. 가정이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적 터전이라고 하는 것은 진선미를 실천할 수 있는 가정이기 때문이며, 진선미를 실천하는 진실과 정성과 사랑은, 가정을 통하여서만이 진실한 정성과 진실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진리를 실천할 수 있는 환경적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되고, 진리를 실천할 수 없는 환경적 가정이 불행한 가정이 된다.
인간은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이다. 하나의 유기체적인 “나”라는 존재가 존재적 개체를 이루었을 때, 전체가 존재론적 전체의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니, “나”라는 존재적 개체가 빠진 전체는 무가치한 전체가 되고, 무가치한 전체에서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는 없게 되어, 그리하여 인간의 가치는 없게 된다. 이러한 “나”가 전체를 이룬 것이 가정이고, 이러한 “나”가 전체를 이룬 것이 사회이며, 이러한 “나”가 전체를 이룬 가정이 전체를 이룬 것이 사회다. 즉, 하나하나의 개체가 전체를 형성한 것이 가정이고, 하나하나의 가정이 전체를 형성한 것이 사회인 것이다. 그러한즉, 전체적 가정을 위한 개체여야 하고, 전체는 개체적 가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니, 전체가 없는 개체는 바르게 존재할 수 없으며, 개체가 없는 전체는 바르게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는 개체가 모인 것이 전체이지, 부분(部分)이 모인 것이 전체가 아니다. 가족의 개개인이 가정의 부분이라고 하여, 개체적 존재의 가치를 부정하고, 개개의 가정이 사회의 부분이라고 하여, 개체적 가정의 가치를 부정한다. 그렇게 개체가 개체가 아닌 전체의 부분이란다면,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가정의 구성원인 개인이 가정의 부분이란다면, 가족의 개인은 더 이상 가족의 일원이 되지 못하고, 사회의 구성요소인 가정이 사회의 부분이란다면, 사회의 가정은 더 이상 사회의 구성요소가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개체적 인간과 가정이, 전체적 개체가 아닌 전체적 부분이라고 하는 것에서 인류의 비극적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던 것이다.
가정은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최소단위로서, 가족의 공동체적 삶을 이루는 삶의 기본이며 기초이다. 이러한 삶의 기초인 가정에서 개체적 가족이 구속을 당하게 된다면, 그 가정의 영혼은 고여 있는 물과 같이 그 영혼들이 썩게 되며, 그리하여 또한 사회에 피해를 주는 가정이 된다. 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가족이라 하여 부분적 존재가 아닌 것이니,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은 모두 개체적 영혼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 그러할 때 가족은 가정에서 구속당한다는 느낌을 갖지 않게 되는 것이며, 가장 작은 삶의 단위인 가정에서 개체적 영혼이 불편하다면, 그 가정은 불행한 가정이 되는 것은 당연하며, 가정의 구성원 모두 불행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종교적 구속은 그 영혼의 길을 원천적으로 막는 짓이 되어 가족 개개인의 삶과 가정의 삶이 불행에 떨어지게 된다. 그런즉 가정을 위한 종교가 돼야 하고, 종교를 위한 가정이 돼서는 안 되는 것이며, 자유로운 영혼의 삶을 이룰 수 있는 가정이 되어야, 가족 구성원 각자가 자신의 영혼을 찾아 존재를 이루는 삶이 될 수 있는 것이니, 그러한 가정이 되어야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된다.
인간이 삶의 행복을 학문적인 지식에서 찾거나 사회적인 권력에서 찾거나, 또는 물질적인 부에서 찾거나 종교적인 믿음에서 찾거나, 또는 오락적인 향락에서 찾는 것은, 왜곡된 희망에 따라 빛바랜 영혼의 인생이 되고 마는 것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행복은 가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정으로부터 진정한 행복을 이루려는 노력을 할 때 행복을 이룰 수 있으며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고, 그 외의 것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영혼의 갈증만 더해지게 되어 불행한 삶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가정이 종교에 구속된다는 것은 가정의 근본을 망가트리게 되고, 가정의 근본이 망가졌다는 것은 전체로서의 기능이 상실됐다는 것을 말하니, 전체적 기능이 상실된 가정에서의 개체적 가족은 존재의 가치와 현재의 행복을 잃고 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쇄뇌된 인간은 자아를 망각하게 되어 그 가정의 소중함을 모르니, 가정을 희생하여 종교적 노예가 되는 것이며, 가정의 불행과 불효는 여기에서부터 발생하고, 가족의 불행과 충돌은 여기로부터 발생한다.
그러한 불행의 연속적인 삶에서 그 영혼을 잃고 귀신으로 타락하는 줄도 모르는 우둔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 인간의 영혼은 가정에 뿌리를 내려야 영혼이 밝게 이루어지며, 그 뿌리가 깊어질수록 영혼이 더욱 밝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즉, 자신의 최소 활동범위인 가정에서 영혼을 밝게 이루지 못한다면, 그 어디에서도 영혼을 밝게 이룰 수 없으며, 자신의 가정을 벗어나서 구걸하듯 영혼을 찾는 것은, 풀뿌리가 얽힌 것 같은 인생이 되어, 가정의 불행과 함께 영혼의 고통속에서 헤매다, 허무한 인생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
가정의 책임
한 가정을 이루어 자식을 낳고 행복한 삶을 이루기 위하여 노력하는 남성과 여성에게 사명이 있다면 일차 가정에 대한 의무적 책임이다. 인간세상의 인간이라면, 이것은 당연한 것이고 천리라 해도 인정할 것이다. 그것은 인간은 누구나 가정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가정에 대한 책임을 실천함에 있어서, 그 책임에 따른 의무는 남자로써 또한 여자로써 각기 의무적 책임이 있다.
남성의 일차 의무적 책임은 가정을 지켜야 하는 것이며, 여성의 일차 의무적 책임은 가정의 원활한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다. 남성이 가정을 지키는 것은 먼저 물질적인 생활에서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이며, 여성이 가정의 원활한 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심신을 안정시킬 수 있는 가정이 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가정의 기본을 지키는 기초적 생활환경의 현재론적 실천적 의무이다.
가정이 원활한 가정이 되게 하는 것은 두 가지 이치적 원인이 있다. 하나는 현재론적 행복한 삶을 이루는 것이고, 하나는 존재론적 삶을 보람되게 갖는 것이다. 그리하여 가정의 남성과 여성의 일차 의무적 책임은 현재론적 행복한 살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며, 이차 의무적 책임은 존재론적 보람된 삶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기정은 이 두 가지에서 각기 두 가지 의무적 책임 있게 된다. 즉, 남성의 현재론적 의무의 책임과 존재론적 의무의 책임이 있으며, 여성의 현재론적 의무의 책임과 존재론적 의무의 책임이 있다.
가정을 존립하게 하는 의무적 책임의 네 기둥에 의하여 가정의 행복과 불행, 존재론적 삶의 성공과 실패를 이루게 된다. 남성과 여성은 가정의 중심인 이 네 기둥이 튼튼하고 건강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책임이다. 인간의 삶을 간단한 차원에서 볼 때, 더 이상의 의무적 책임은 없다고 하여도 현재론적 이치나 존재론적 이치에 어긋나지 않는다. 다만 가정은 또 다른 가정이 있고, 가정은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단위이며, 국가를 구성하는 기초단위이기에, 그러한 면에서 가정의 삶은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가정은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존재하고, 사회는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존재하고, 국가는 또한 자신의 가정을 위하여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또한 여기에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가정은 또다른 가정에 의무적 책임이 없으며, 가정은 사회에 의무적 책임이 없고, 가정은 국가에 의무적 책임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인간의 행복은 가정에 안에 있고, 인간의 존재론적 목적은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이러한 가정을 안정된 삶이 되도록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며, 사회는 이러한 가정을 보호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또 다른 가정은 자신의 가정에 대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침과도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을 이루는 근본이며, 이 근본을 지키면서 보다 확장된 삶을 이루어야, 자신가정과 이웃, 사회와 국가가 바르게 존립할 수 있게 된다. 확장된 삶이란, 자신의 가정에 의무적 책임을 다하면서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며, 자신의 가정에 충실하고 나서 사회나 국가를 위하여 자신의 능력에 맞는 일을 찾아 능력껏 삶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인간세상의 근본이며, 이러한 근본이 지켜질 때, 인간 개개인이나 인간세상이 행복한 세상을 이루어 존재론적 목적을 원활히 이룰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부터 개인의 불행과 인간세상의 비극이 시작됨을 알라.
또한, 국가는 가정을 보호한다는 미명아래 가정에 강제적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사회는 가정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구호아래 가정에 강제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국가와 가정의 중심은 가정이며, 사회와 가정의 중심은 가정이기 때문이며, 또한 국가는 가정의 남성과 여성이 운명하는 것이며, 사회 또한 가정의 남성과 여성이 운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즉, 국가 위에 가정이 있는 것이고, 가정 위에 국가가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 위에 가정이 있는 것이고, 가정 위에 사회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당연한 이치인 것은 남성과 여성이라고 하는 개체적 인간의 삶은 가정에서 시작하여 가정에서 끝나기 때문이며, 가정에서 존재론적 목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 가정의 부부관계를 이루고 있는 남편과 아내는 서로의 배려심에 의하여 행복한 삶과 존재론적 보람된 삶을 이룰 수 있으며, 이러한 삶이 되는 가정의 근본은 남편과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말을 아끼는 것은 그 아내를 존중하기 때문이며, 아내가 남편에게 말을 아끼는 것은 그 남편을 아끼기 때문이다. 또한 아내가 말을 많이 하면 남편은 말을 적게 하고 아내의 말을 존중하여 받아주되, 아내의 말에서 흠을 잡아 책하지 말아야한다. 그리고 또한, 남편이 말을 많이 하면 아내는 말을 적게 하고 남편의 말을 존중하여 받아주되, 남편의 말에서 흠을 잡아 책하지 말아야한다.
이것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지켜야할 가장 기초적인 도리이며, 이러한 도리를 지킬 때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존중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말이 악해지고, 또한 아내가 남편을 아끼지 않고 악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을 아끼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말이 악해지고, 또한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지 않고 악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부부가 악한 말을 하기 시작하는 것은 말에 꼬리를 물고 말을 탓하는 것으로 시작하니, 편안할 때는 말을 많이 해도, 불편할 때일수록 말을 아끼는 것은,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 언행에 의한 지혜로운 삶이 된다.
가정의 삶은 남편이 아내를 선택하고, 아내가 남편을 선택하여 이루어진 삶이다.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선택하여 부부로써 가정의 삶을 이루는 것은 전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문제이다. 그러한즉 남성은 가정에 좋은 남편과 아버지가 되어야할 의무적 책임이 있고, 여성 또한 가정에 좋은 아내와 어머니가 되어야할 의무적 책임이 있다. 부부가 그러한 의무적 책임을 다할 때, 자식이 좋은 자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가정에서 부부의 삶은 자기희생이라는 것은 없다. 먼저, 자신이 선택한 자신의 삶인즉, 그러한 삶에 자기희생이라고 하는 것은 이기주의적인 발상일 뿐이다. 남편과 아내는 행복을 위하여 서로를 선택하여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삶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목적을 이루어가기 위한 삶이, 부부의 삶이다. 부모의 행복과 희망에 의하여 남편이 탄생했고, 부모의 행복과 희망에 의하여 아내가 탄생했다. 그러한 행복과 희망을 품고 남성과 여성이 가정이 이룬 것이니, 그리하여 행복과 희망을 갖고 자식을 갖는 것이다. 그 사이 어디에도 불행은 없었으며 절망을 품지 않았다. 그러한즉 부부의 삶은 그 삶 자체가 행복이며, 자식과 함께하는 그 삶 자체가 희망인즉, 그러한 행복과 희망의 삶에서 존재론적 자아가 완성되게 된다.
모성의 삶
여성의 고귀한 모성을 자기희생이라고 하여 그 가치를 떨어트리고, 장차 결혼하여 고귀한 모성을 갖게 될 여성을, 신에게 바쳐야할 순결한 처녀라고 하는 말은 인간세상에서 가장 비열하고 사악한 말이며, 그러한 것을 좋아하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은 신이 아니라 귀신이며, 결혼도 하지 못하고 죽은 귀신이, 인간에 대한 미련이 남아 변태적 성도착증이 있는 인간과 같은 귀신 짓을 하지만, 그러한 신도 귀신도 없다. 그것은 야비한 인간의 변태적 성도착증에 의하여 만들어진 더 이상 사악할 수 없는 사악한 말일 뿐이며, 인간세상의 기본적 중심인 가정의 근본을 더럽히려는 간악한 인간의 말일 뿐이다.
인간의 삶에는 자기희생이라는 것이 없다. 그런데 왜 자기희생이라는 말로 인간의 삶의 가치를 고통스럽게 하고, 인간세상을 더럽혀 비극적으로 만드는 것인가? 그러한 이유는, 첫째, 인간의 본질을 악에 두었기 때문이며, 둘째, 인간의 삶의 본질을 불행에 두었기 때문이며, 셋째, 인생의 목적을 삶에 두지 않고 죽음에 두었기 때문이며, 넷째, 산모가 아기를 낳는 순간의 고귀한 경험을 쓸모없는 고통이라고 비웃기 때문이며, 다섯째,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며 행복한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을, 서로가 마지못해 이룬 삶이라고 헐뜯기 때문이며, 여섯째, 부부가 자식을 아끼고 키우는 애정을 애완동물을 키우는 부정한 취미로 취급하기 때문이며, 일곱째, 남성과 여성이 가정의 행복한 삶에서 존재론적 목적인 자아를 이루는 삶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고통의 삶이라고 속이기 때문이며, 여덟째, 남편은 아내에게, 아내는 남편에게, 서로가 존재론적 영혼을 이룰 수 있도록 행복한 삶을 이루고 있는 것을 시기하는 간악한 인간 때문이며, 아홉째, 가정의 행복하고 보람된 삶에서 하느님의 세계로 갈 수 있는 것을 질투하는 사악한 인간 때문이다.
그렇게 가정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 부부가 가정을 소홀하게 만들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소홀하게 대하도록 만들어 불행한 삶이 되게 하려는 말이 자기희생이라는 말이다. 그러한 부정적인 가정의 인식으로 인하여 가정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러한 고통스런 삶에서 벗어나 가정을 파괴시키라는 말이 자기희생이라는 말인즉, 그렇게 하여야 인간세상이 귀신의 천국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자식을 낳아 갖은 고생을 다한 여성을 가정 밖으로 끌어내어 부려먹으려는 야비한 인간으로 인하여 여성의 삶의 본질을 추악하게 만든다. 가정을 책임져야 할 여성을 빼내어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려는 사악한 인간으로 인하여 가정이 불행해진다. 또한, 장차 가정을 이루어야 할 어린 여자를 그리고 한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전인 여자를 처녀라는 말에 음흉한 속심을 숨기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없도록 간악한 짓을 하는 변태 성도착(性倒錯)적인 인간으로 인하여 가정의 근본을 더럽힌다.
모정이란 자식에 대한 어머니가 갖는 애정을 말한다. 이러한 모정은 천륜에 따른 모정인지라 인간세상의 가장 깊은 정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여성의 이러한 모성을 오히려 약점으로 이용하여 사악한 집단의 노동자로 부려먹으려는 비정하고 비열한 인간으로 인하여 모성이 퇴색되어지고 여성의 삶을 비정하게 만든다. 여성의 모성으로 하여금 그 자식을 이용하여 사악한 집단의 노예로 만들려는 인간이 어머니와 자식의 천륜(天倫)를 끊으려 하고, 여성의 애정으로 하여금 그 남편을 이용하여 사악한 집단의 노예로 만들려는 인간이 부부 간의 인륜(人倫)를 끊으려 한다.
그러나 천륜과 인륜을 끊으려는 자나, 끊는 자는 천벌과 인벌을 받아 현세나 내세에 절망에 떨어지게 됨을 알라. 좋은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있고, 좋은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있으며, 좋은 남편은 여성에게 행복의 보배며, 좋은 아내는 남성에게 행복의 보배이다. 그러나 악한 남편은 여성에게 불행의 씨며, 악한 아내는 남성에게 불행의 시작이다. 가정의 남성과 여성은 그 선량함을 지킬 수 있지만, 가정의 떠난 남성이나 여성은 그 선량함을 지키지 못하고 사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