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도시가 있다. 물론 좋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내게도 그런 도시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 어떤 도시를 특별하다고 꼽을 때는 이성과의 추억 때문일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의 제목 역시 굳이 경주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이 그랬던 것처럼 결코 가깝지 않은 정도의 도시면 되지 않을까.
영화의 주인공 최현은 갑작스럽게 죽은 선배의 장례식 참석차 어느 도시를 가게 되는데, 문득 경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춘화 생각 때문이라고 말을 하지만, 아마도 옛 연인이었던 여정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 것이다.
영화 경주가 내 맘을 가져간 지점은 불명확하다. 그냥 편안한 차림의 교수 최현이 가방 하나 짊어지고, 신경주역에 내릴 때의 모습이 맘에 들었다. 작년 부산영화제 때 부산역을 내릴 당시의 설레는 기분이 떠오르기도 하고, 뭔가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흥분을 최현과 내가 공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신경주 역에 내려서 최현은 자전거 하나를 빌린다. 그리고 보문호수와, 고분능, 전통 찻집을 여행한다. 딱 이대로가 좋아요. 다른 일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아요. 난 장률 감독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최현 감독에 완전히 동화된 나는 그저 이 도시에서 딱 이 정도만 가져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그는 이 도시에 오래된 추억들 몇 개가 자신의 머릿속에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최현은 먼저 희미한 기억에 의지해 찻집 먼저 방문하기로 한다. 사실 영화 경주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모를 착란의 순간들이 가득한 영화다. 이것은 그가 술 먹고 꿈을 꾸는 것인지, 그가 바라는 환상의 순간인지도 구분이 없다. 진짜 현실 같은 순간들도 있고, 참담한 비극을 종용하는 어느 소설 속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낯선 여자와의 로맨스, 더더욱 옛 연인과의 하룻밤은 결코 생길 리 없어. 내가 해봐서 알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현은 부지런히 여자들을 찾아 나선다. 춘화를 찾는다고? 그게 변태나 할 짓이지 여자야 여자. 결국 찻집 주인을 꼬시는데 성공한 최현은 자신의 북경대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를 본의 아니게 이용하게 된다. 그가 교수라는 것을 안 이후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경주 여신을 보라. 자신의 집까지 경찰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끌어들인 이 여자는 귀를 만지면서 자신의 방으로 유혹하려 하지만, 우리의 유부남 최현은 아내의 음성메시지를 듣고 헛힘만 쓰다가 칼국수를 먹으러 나간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그가 찻집에 들러 찾은 춘화는 하나의 메타포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내와 사이가 멀어져 예전 같지 않고, 친한 선배가 죽었으며,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다. 속물이 되어버린 친구들과 학문에 대한 애착마저 떨어져 괴로운 심정이다. 그 누구는 그를 보고 장군이라고 말할 만큼 학자로서 그를 존경하지만, 자기 자신을 책망하는 그는 그 속물성에 역겨운 맘이 든다. 인생이 너덜너덜해진 최현은 기억에 의지해 춘화를 찾아 헤맨다.
장례식, 모녀의 자살, 젊은 폭주족들의 사고, 여정의 낙태와 찻집 주인 전남편의 죽음까지 이 영화는 지천에 깔린 죽음의 흔적들을 스쳐 지나가는 장면이 가득하다. 비록 세상이 이런 지경에 놓여있다 할지다로 과연 우리는 긍정하며 세상의 환희를 맞이할 수 있는가. 영화는 생각하는 최현을 통해 관객과 접촉한다. 죽음과 폐허가 가득한 이 참혹한 세상에서 그가 의탁할 곳은 기억 한 구석의 춘화 하나뿐이라니.
과거 장률의 영화에서 가장 명징한 주제는 죽음이었다. <두만강>도 그랬고, <이리>도 그랬다. 죽음이 남긴 상처를 지닌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에 살아남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은 사실 견디기 힘든 무거운 분위기를 종용했다. 경주가 장률의 필모그라피에서 죽음에 관한 첫번째 이야기는 아니지만, 분명한 사실은 가장 첫 번째로 삶을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수단을 삶의 이유로 다뤘다는 점이다.
마치 과거 김기덕 감독이 <빈집>을 만들었을 때처럼, 홍상수 감독이 <해변의 여인>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처럼 내게는 이 영화가 장률의 아웃팅으로 보였다. 장률의 영화세계는 이제 더 이상 어둠속에 침잠하지 않겠다는 듯 무심하게 관객의 마음을 얻어간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이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을 버텨나갈 수 있는 것은 행복했던 그 시절을 기억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금 그 시절을 찾아오길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일까. 영화를 보고 나오며 난 최현처럼 낯선 길을 걸으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싶어졌다.
영화로서 경주는 결코 지루하지 않다. 곳곳에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삽입하여, 극의 리듬감이 처지지 않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특히, 고분능에서 진행된 세 남녀의 산책길은 남녀 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노는 기대치 않은 명장면이었고, 혼자 칼국수를 먹다가 여정의 의처증 남편의 습격을 피해 도망가는 모습 역시 킥킥거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이 영화를 보며 홍상수와 김기덕을 떠올리는 이유는 그의 유머가 평소 어느 영화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독특한 지점에서 동작하고 있다는 점에서일 뿐이지, 결코 스타일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장률은 장률의 언어 안에서 작동한다. 장률이 던져준 경주라는 도시의 풍경은 오랜 시간 들춰볼만한 인상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빨리 시간을 내어 경주 여행을 하고 싶구나.
지난 주말 자전거 하나를 가지고 서울에서 여주까지 따라갔다. 경주는 아니었지만, 뭔가 변화가 필요했던 삶의 사이클에 기점이 되길 원했기에 체력고갈을 무릅쓰고 다다랐다. 낯선 곳에 내려 국밥을 먹고, 숙박업소 여주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어느 모퉁이 치킨집에서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했다. 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문득 난 시간이 지난 후 이곳에서 있었던 일들을 어떤 방식으로 기억해 낼지 무척 궁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