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은 삼십대 초반, 저는 이십대 후반입니다. 3년간 만났죠.
시작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남친의 태도가 무심해 지더니 어느 순간부터
남친은 자기 친구들한테 연락해서 헤어질 마음 먹었다고 정리 해야겠다고 연락을 하고 다녔고
카스에 제 사진도 싹 다 지웠었습니다.
이 이전부터 조짐들이 있었는데 친구들에게 헤어짐을 다짐하고 공공연히 우리 커플의 존재를 알리던 카스같은 곳에서 제 사진을 지우고하니 화도나고, 배신감도 들고, 슬프고...
그래도 제가 원하는건 남친의 마음을 다시 돌리는 것이지 고작 카스에 다시 제 사진이 올라 가는것도 아니고 내가 같이 평생 보고 싶은건 남친이지 남친 친구들이 아니니까, 우리 관계만 회복하면 자연히 해결될 문제들이기에 우선 좌절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겠다고 마음부터 잡았습니다. 신경만 쓰이는 카스도 과감히 지워버리고 남친 핸드폰에도 일절 손대지 않도록 다짐했습니다.
전형적인 A형인 남친은 친구들한테는 그렇게 '마음 정리 다 했다.' '잘 말해 볼거다.' '이번 휴가에는 혼자되지 않겠나 그땐 술이 한잔 하자.' 매번 다짐을 하면서도 막상 저랑 만나면 차마 이별을 자기입으로 말 못하겠는지 빙빙 돌리기만 했습니다. 아마도 저 한테서 먼저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길 바랬는지도 모르죠.
우리의 3년은 헛으로 보낸 세월은 아니었는지, 딱히 엄청 큰 잘못이 있어서 수습할 수 없는 사태였던 것도 아니고 본인이 권태감에 혼자 이별을 준비한건데 미안한 마음이 컸나봅니다. 또 결혼식 준비는 이미 다 벌려놔서 상견례도 마쳤고 예식장도 잡았는데 책임감에 부담감도 있었겠죠.
오늘은 말해야지, 내일은 말해야지 남자친구가 매일매일 다짐하는 것이 보였고 이 매일의 다짐이 또 본인에게 엄청 큰 스트레스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스트레스에서 오는 불만이 쌓이고 자신의 우유부단함은 생각도 안하고 그게 저를 향하고 정말 악순환이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우리 헤어져라는 말만 없었을 뿐 거의 이별을 통보했다고 봐야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전 절대로 '오빠 왜 그래?', '변했어!',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거야?' 이런 말을 절대로 입밖에 내지 않았습니다.
남친이 빙빙 돌려서 정말 어렵게 강도 높게 한 말이 '우리 다시 생각 해 볼까 싶어' 였는데 묵묵히 듣고만 있다가 '노력 해 보고 싶다는 거지?'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식으로 남친이 헤어짐을 암시 할 때마다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 아닌 그래도 오빠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암시를 주면서 부정적인 단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새벽같이 찾아서 아침밥을 차려주고 예비 시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도 드리고 혼자 찾아뵙는 등 평소보다 훨씬 더 생활의 세세한 부분을 챙기면서 한편으론 스킨쉽 같은건 내 선에서 먼저 자제했습니다. 예전 사진들을 보면서 서로의 추억들을 끄집어내는 대화를 계속 시도했고, 우리가 사귀기 전의 남친 사진들을 보면서 공감과 공유를 하기 위해 노력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절대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았습니다. 이 아슬아슬한 때 조금이라도 트집잡힐거리를 만들면 끝입니다. 최대한 트러블없는 소강상태를 유지해야합니다. 추억 이야기를 한참 늘어 놓았던 날은 밤에 남친이 아직 안자는걸 알면서도 일부러 남친이 잠들어서야 운다라른 느낌으로 펑펑 울기도 했습니다. 물론 눈물은 진짜였습니다. 타이밍의 문제 였을 뿐. 애가 계속 강한척 해왔구나 애도 많이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친이 많이 놀라더군요.
남친 몰래 손편지도 정성껏 써서 가방에 몰래 넣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달정도 시간이 흐르니 헤어지잔 타이밍도 놓쳤고, 극에 달했던 감정도 꺾이니 이젠 제가 안쓰럽기도하고, 생각해보니 우리 크게 싸운것도 아닌데 이건 내 단순한 권태기인가? 라는 고민을 남친이 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쯤 남친도 알고 있는 내쪽 지인. (친구보단 언니가 좋습니다.) 이 언니랑 술 한 잔 하면서 남친도 불렀죠. 마침 언니도 자기 친구를 불렀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친구는 남친도 저도 그 날 처음 만나는 언니의 이성 친구였습니다.
이 남자분은 제 남친보다 나이도 어리고 잘생기고 돈도 잘버는 분이었는데 심지어 저랑 취미도 딱딱 맞고 말이 잘통하더라고요. 딱히 제가 그 남자랑 썸탄건 절대 아니고 그냥 보란듯이 웃으면서 몇마디 하면서 귀엽게 생기셨다고 그 남자분을 좀 치켜세워주고 솔로냐고 물어봤었습니다. 같이 있던 언니가 뜬금없이 제 손이 작다고 하면서 그 남자분에게 한 번 만져봐라고 해서 그 남자분이 제 손도 잡고 막 그랬죠. 그랬더니 남친이 말없이 술만 계속 마시더니 갑자기 제 손을 덥석 잡더라구요. 한달동안 남친이 먼저 해 온 스킨쉽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 저런 분위기에 그 날 술자리 중간에 남친하고 전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집으로 걸아가면서 이제까지 이별에 관한 대화는 늘 피하던 제가 처음으로 먼저 물어봤습니다. '힘들어?' 이 세마디요. 남자친구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응'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없이 또 한참을 걸었는데 제가 먼저 조심스레 남친 손을 잡았다가 눈치가 보여서 그냥 다시 손을 놓았더니 남친이 다시 제 손을 꼭 붙잡아 줬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 아냐고 물어 보더라구요. 그래서 카스도 알고 친구들하고 카톡한거도 안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핸드폰 허락없이 본건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 날 이후로는 절대로 손 안댔다라고 사과도 했고요. 그러자 남친도 카스 사진 내린것도 친구들이랑 그런 카톡 했던것도 순순히 다 인정했습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참았죠. 그냥 그렇게 다시 침묵속에 손만은 꼭 잡고 남자친구 집에 갔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뭐가 문제 인것 같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우선 날씨도 덥고 일은 힘든데서 오는 체력적인 문제, 개인적으로 처리해야하는 일이 있어서 휴일엔 쉬지도 못하고 자문 구하러 다니고 알아 보고 고민하는 정신적은 지침. 그냥 매일 매일이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은 답답함. 본인 스스로가 자기 자신도 감당이 안되는데 저 까지 챙겨야한다는 책임감 뭐 이런 것들이라고 그냥 한마디로 멘붕이라고 하더라구요.
많고 많은 문제중에 당장 떨쳐버림으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저 였던 걸까요? 솔직히 많이 섭섭했습니다. 그래도 한없이 지칠대로 지친 남친을 꼭 안아주면서 저한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해 보라고 했습니다. 나름 생각한게 있었는지 세가지 정도를 이야기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럼 나도 이 세가지를 한 번 고쳐보고 해결 해 볼테니 오빠도 지금 당면한 문제들을 천천히 풀어 보라고 했습니다.
오빠에게 있어서 우선 순위 1번이 꼭 나일 필요는 없다고 고민해야하고 해결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살짝 우선 순위를 바꿔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열정=사랑이 아니듯 열정이 식었다고 사랑도 식는건 아니라고 믿음, 신뢰, 행복, 우정, 편안함, 의리(긍정적인 단어들의 대방출이었습니다.) 이게 다 우리의 사랑 아니겠냐고 했죠.
무엇보다도 취미 생활을 가져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집-회사-집, 휴일은 술. 이 반복되는 일상이야 말로 권태의 시작일테니 낚시도 좋고 등산도 좋고 뭐든 취미 생활을 시작해 보라고 했죠. 그 날 하루쯤은 저는 배제된 온전히 본인 혼자만의 취미 생활을요.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는지 아무말도 없더니 바로 잠 들더라구요. 그리고 그날 밤에 정말 한달만에 둘이 꼭 끌어 안고 잤습니다. 잠결에도 등 돌리고 자던 사람이 먼저 팔을 뻗어 오더라구요.
아직 온전히 예전의 남친 모습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그게 어디 하루 아침에 될 일인가요. 아주 처음 맘 고생하고 매일매일이 눈물이었던 날들을 생각하면 저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사합니다.
시간이 약이다. 이 말이 정말 불변의 진리인것 같네요. 이별 징조 혹은 권태기로 고민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예쁜 사랑들 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