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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이 되었다.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아니, 사실은 죽을 것 같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며
하루하루 세고 또 세어 딱 한 달이 되었다.


혹시나 정신 놓고 연락할까봐 술 한 번 마시지 않았고
이별과 사랑에 대한 책들, 그리고 오빠는 싫어하던 자기계발서들을 열심히 읽었고
헬스장을 끊어 하루에 2시간씩 꼬박 운동을 했고
동아리 선배들, 학회 사람들,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가족들을 만나 약간의 민폐를 끼치며
잊으려고, 아니 그것보단 스스로 괜찮아지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다 보니 한 달이 되었다.

어디서 들은 얘기로는 여자는 헤어지고 나면 계속 슬퍼하다가 한 달이 되면 해방감을 느끼고
남자는 헤어지고 나면 직후엔 해방감을 느끼다가 한 달이 되면 힘들어한다던데.
이제 더이상 닿지 않는 오빠이기에 남자의 경우는 모르겠지만
여자인 나는 어느정도 맞는 얘기인 것 같다.

이제는 혼자 잘수도 있게 되었고,
눈에 보이는 오빠의 흔적들도 다 지웠고,
언제 그랬냐는 듯 밥도 잘먹고 먹고싶은 것도 떠오르고,
계절학기를 무사히 패스했으며,
내 미래를 위한 시험 준비도 시작했다.


헤어지던 날, 내가 오빠를 잊을 수 있을까라는 내 울음섞인 질문에
오빠는 울면서 잊을 수 있다고 했지. 친구들 많이 만나라고.
사실 사랑한다고 영원히 지켜준다고 했던
그 까만 눈, 하얀 얼굴, 빨간 입술로 어떻게 그런 말을 하는지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별은 사람을 성숙하게 한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내가 온실 속 화초로 시련 없이 자랐다고,
이별도 금전적 어려움도 모르고 자라 걱정된다던 오빠는
그 말 마지막에는 항상 그래도 헤어짐은 모르게 할거라고 했었잖아.
오빠가 첫사랑이었던 나는 그말을 정말 굳게 믿었다.
내 마음이 그렇듯 나에 대한 오빠의 마음도 영원할거라 믿었었다.

그래서 딱 한달 전에,
헤어지는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오빠가 울면서 미안하다고만 말하고 갔을 때도,
끝까지 헤어지자는 네 글자 말은 하지않은 오빠와 끝났다는 실감이 나질 않았었다.
내가 잘못한게 뭘까 계속 생각하면서 이걸 고쳐서 오빠를 잡으면 오빠가 돌아올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보냈든 한 달이 지나고 나니까
2년 4개월 동안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사랑을 했지만
우리의 연애도 다른 사람들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연애였다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더라.

더불어 영원히 사랑할거라던 오빠의 말은
그 당시에 날 그만큼 사랑한다는 거였다는 것도,
날 사랑으로 바라보던 오빠의 까만 눈동자도 더이상 볼수 없을 거라는 것도.


많이 힘들었지만 오빠가 밉거나 원망스럽지는 않다.
스무살 철부지가 단순히 호기심에 휩쓸리는 연애가 아니라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었으니까.
마음껏 표현하고 마음을 다주어도 아깝지 않다는게 어떤 것인지,
나보다 누군가를 더 사랑한다는게 어떤 것인지,
진짜 사랑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줘서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이제는 헤어지던 날 오빠의 눈물도 이해가 된다.
헤어지고 억지로 나갔던 소개팅에서 애프터를 받았었다.
단 두 번 만난 그분께 거절하는 마음을 표현하면서도 그렇게 미안했는데
오빠는 2년이 넘는 시간을 보낸 나에게 헤어짐을 고하며 얼마나 나에게 미안했을까.
그렇게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 자신이 했던 말을 저버리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금 오빠가 나에게 가지는 감정은 옛사랑에 대한 미안함
딱 그것 뿐일테니
그 미안함이 조금 가벼워질 때쯤,
서로 다른 사람 옆에서 행복할 그때쯤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첫사랑, 그때까지 정말 잘 지냈으면 좋겠다.

솔직히 한 달전 헤어질때 나름 담담하게 하려고 노력했던 인사는
어디선가 들은 "잡지 않았을때 돌아오더라"는 말에 억지로 했던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고,
이렇게 한달이 지나서야 진심으로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녕 내 첫사랑.
잘가. 고마웠어. 밥 잘 챙겨먹고, 건강하고, 행복해.
추천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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