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열심히 살려고 했지만 많이 힘들었어. 머릿 속이 뒤죽박죽이었어. 잠을 충분히 자고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했지. 우울하지 않으려고. 괜히 슬픔에 잠겨 비련의 여주인공인양 울고 짜고하는 꼴은 나도 내가 싫은거야.
그리고 정리해보려고 노력했어. 너를 지운다거나 그리움을 잊으려고 했다기 보다 뭔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한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약간의 서러움... 그리고 이상하게도 너의 상태와 약간 다른 것 같은 많은 무력감... 이게 뭔지 궁금했어. 그리고 내 안에 발생한 이 회오리같이 복잡한 마음에 집중하는 게 다른 무엇보다도 내 현재에 집중하는 거라고 여겨졌어.
그러다가 아는 언니의 집들이에 가려고 들린 이마트에서 스치듯 지나치다 책을 한권 만나서 곱씹으며 읽어내려갔어. 인간의 감정들을 분석하고 점검하게 해주는 책인데 읽다가 사실 많이 놀랐어.
자긍심이나 경탄, 사랑, 박애, 영광, 감사 와 같은 아름다운 감정 뿐만 아니라
비루함, 경쟁심, 야심, 탐욕, 당황, 회한, 경멸,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사랑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란 사실에. 참, 놀랐지. 그리고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도 새롭게 보게되었어. 한번에 한 챕터씩 아끼듯이 읽고 생각했지. 나를, 너를. 옛사랑과 느꼈던 감정들을, 그리고 지금 이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의 신호들을 점검해보면서....
이렇게 오롯이 내 감정에 집중한 적은 처음이었어.
일단 마음이 많이 가라앉더라.
그 가라앉은 뒤에도.
너를 생각하면 여전히 뿌듯해. 지금도 계속 감사하고 뿌듯해하고 있어.
너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으로 바라보고 배려하는 사람. 삶의 작은 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서 서로에게 따뜻함을 느끼는 것.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에 관심을 갖는것.
그게 내가 살고 싶은 삶이고 되고 싶은 사람이지. 말하자면 우리는 삶을 향한 시선이 같은 거야. 그리고 살면서 느끼는 니 마음씀의 깊이를 나는 배우고 존경하고 감탄하고 그런 시선을 나에게 베풀어 주는 것에 감동하고. 밖에 드러내지 못하는 작은 순간이지만 짧은 순간이지만 언제나 뿌듯함을 느끼고 행복함과 자긍심을 느꼈어.
넌 그런 큰 기쁨을 주었던 사람이니 내 새로운 연애에 네가 걸림돌이 되는 건 아마 맞을꺼야.
너는 자신을 만나 내가 때를 놓치고 그 나이에 해야할 일들을 못한다고 걱정하지. 그래서 거리를 둔거잖아. 나도 그말에 십분 동의하고 그렇게까지 나를 배려한 너에게 고마워하지.
나도 모진 마음을 먹고 이 남자와의 데이트를 계속하면서 그래 얘를 사랑해봐야겠다. 얘한테 최선을 다하고 이렇게 빨리 결혼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적도 있어. 그런데... 일단 이 사람은 아마.. 내 인연이 아닌것 같아.
그 책에서 이런 구절이 있어...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사람과 만나 시간을 보낼 수 밖에 없을 때, 우리는 자꾸 타인을 배려하는 섬세한 마음씨를 떠올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 소중한 정신적 태도가 떠오를 수록, 우리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사람 자체를 무시하고, 심지어 부정하게 된다. 이런 우리의 마음 상태는 어떤 식으로든지 겉으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럴 때 상대방은 우리가 자신을 경멸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직감하게 된다.>
<누군가를 앞에 두고서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것, 혹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경멸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시체옆에 있는 느낌을 얻는 경험은...>
나는 이 사람과 만나는 매 순간이 불편해.
내가 조심스럽게 그 사람의 다정하지 않음을 지적하면 이사람도 이야기해. 사람이 바뀔 수는 없다고. 때론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응석을 부리면 그게 나에게는 마음을 확인하는 방식인데 그걸 받아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어. 하지만 본인은 그걸 모르지. 그래서 너무 외롭고 괴롭고 힘이 들어. 그러다가 알게된거야. 그 사람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와 너무도 다른 사람이라 삶의 지향이 다른거란걸. 사소한 습관 한두가지를 고쳐서 될 것들이 아닌거지. 내가 하나뿐인 자신의 소중한 삶을 경멸한다는 걸 그가 알게 되면, 그리고 그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게 되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이 어딨을까. 그래서 나는 그사람과의 스킨십이 좋지도 않고 그와 같이 있기조차 힘든거야. 그래서 조만간 마무리를 지으려해. .. 뭐.. 새로운 인연이 나타나겠지.
넌. 나와 거리를 두어 이제 조금은 무거운 짐을 덜어낸것 같니?
지금와서 말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어. 하지만 계속 나와 있으면 네가 무거운 짐을 지고 괴로워 하게되는데 그걸 또 내가 어떻게 보겠니? 그러니 니가 니 상황에서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쓰럽고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서운하고 조금 미워지려 했어. 또 그렇다고 내가 너를 어떻게 미워할 수 있겠니? 난 너를 미워할 수 없는데. 그래서 나는 그걸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 방식으로 표출했지. 내가 너에게 짐이라는게 너무 자존심 상하고 미안하다고... 그렇게 아마 마지막에 너에게 자꾸 자책의 말들을 쏟아놓았었나봐. 너 불편하게.
하지만 알고 있어. 그리고 그래서 여전히 미안해. 너의 처절한 무력감과 가책과 네가 일군 세계를 부정하는 것만 같은 존재인 내 자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당황스러움을 내가 이해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싶어. 네가 나를 만나고 돌아간 후 늘 사랑과 함께 당황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네가 생각하는 스스로와 실제로 현실에서 반응하고 욕망하는 너 사이의 간극에서 니가 너무나 괴로워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둘다 너야. 나는 그 둘을 다 사랑했었고 지금도 그래.
너에게 내가 줄 수 없는 다른 행복, 다른 존재감, 다른 자긍심을 주는 상황과 환경이 있다는 걸 알아...그래서 나는 더 다가갈 수는 없지만. 늘 여기에 있을게. 나에게도 그런 존재들이 생기길 바라지만... 너의 사랑도 나에겐 소중한 사랑이고 소중한 내 감정이라 그것 마저 끊어낼 수 없어. 소유할 수 없지만 부정할 수 없는. 영원히 지켜내고 싶은 사랑이야 너는.
너를 사랑하는 걸 그만둘 수 없는 것은. 내 자신과 내 삶의 지향들을 지켜내는 걸 그만둘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 나는 가끔 네가 사진에다 써주는 니 글씨체조차 가슴이 떨리고 와르르 내려앉는것처럼 이뻤어. 그 장난스러움이. 소소한 것들을 특별하게 만드는 네 모습들이 못견디게 이뻤어. 그걸 좋아하는 내 마음을 멈출 수는 없는 것 아니겠니. 널 보면 마음 속에서 마구 튀어나오는 감탄사들과 느낌표들을 누를 수 없듯이.
우리 둘의 감정선은 늘 닮아있었잖아. 그래서 내가 조금은 알고있다고 생각하는 너에게 하나만 부탁할게...
나에 대한 마음이 커질때 무조건 괴로워하거나 누르려고 하지마. 역할이 많고 꿈도 많아 바쁘게 정신없이 살아야 하는 네 삶에 비집고 들어와 당황스럽고 걸리적거린다고 할지라도.
부정하지말고 네 안에 살아 숨쉬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줘. 그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너를 그나마 덜 괴롭게 하고 너일 수 있게 하는 길일거야. 이 세상에 우연한건 아무것도 없대.
거리를 두어주어서 고마워.
정말로 덕분에 알게 되었어. 너는 멀리서도 늘 나를 나답게 해주는 사람이란걸.
하늘이 파랗다. 우리 같이 걷던 길 위로 이 파란 하늘이 이제야 눈에 들어와.
니가 멋지게 사는걸 보는건 참 좋을 것 같아. 멋지게 살수 있을까? 난? 모르겠어. 하지만 아름답게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