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1학년 여학생입니다.
현재 제가 학교생활에 너무 맞지않는 사람인것 같아서 자퇴를 생각합니다.
제가 어려서부터 조금 정상과는 멀게 자라왔습니다.
아빠의 외도와 주사 가정폭력으로 인하여 부모님은 이혼을 하신 상태이고
엄마 혼자서 저와 4살어린 동생을 키워오셨습니다.
다행히도 엄마가 능력이 있으신 분이라 경제적으로는 문제없이 자랐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어렷을적 많은 형제들 때문에 공부를 잘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 진학을 못하신 분이여서 그런지 저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시키는 대로 공부만하고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조금 머리가 컸다고 자부하던 초등학교 5학년 때에 사춘기를 심하게 겪어 공부에 질린 저는 학원을 밥먹듯이 빼먹고, 가출하고, 거짓말을 하고, 온라인 상으로 이상한 사람들과 문자를 하는둥 엇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 것을 막고 싶으셧던 엄마는 저를 아예 학교가 끝난후 학원간다고 하고 나도는 것을 막기위해 집에만 있게하셧고 컴퓨터를 막고 핸드폰을 부수셨습니다.
제가 엇나가면 엇나갈 수록 엄마의 체벌은 심해져 평소에 매를 이용하여 때리던 엄마는 잡히는 대로 들어 때리거나 던지시기 시작했고 심지어 발로 채이고 머리채를 잡혀 벽에 박힌적도 있었습니다.
한번 뿐이였지만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였습니다.
그 무렵에 저는 엄마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매우 커서 수업시간에 엄마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수업시간중 울정도로 많이 돌이킬수 없는 아이였고, 어느순간부터 조용히 혼자 자책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며 죽고싶다는 생각도 한적이 있었고, 집에서 조용히 칼이나 샤프로 손목을 그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던 12살 말 명절때문에 시골에 내려갔습니다.
저는 매우 뚱뚱한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가끔 번호를 바꾸어 아이들이 욕을 하던 문자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것을 시골에 있었던 저보다 6살정도 많은 사촌언니가 발견하고 화를 내며 번호를 추적하겠다며 일일히 화를 내주었고 저는 친척들에게 '이 사람들은 엄마처럼 공부공부만 하지 않고 나를 사랑해줄거야'라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그들에게 엄마를 좋지 않게 말하였고 제가 자살기도를 했던것 까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제가 그런 행동을 햇음에도 약바르고 자라고 했다고 거짓말까지 했죠.
사실 제 손목에 피가 날 때 제가 자해 하는 걸 엄마가 본 것이 아니고
제가 엄마에게 '엄마 나 피나' 이렇게 말하고 보여줬을 때
엄마가 바쁘셔서 피나면 소독하고 약바르고 자라고 한것인데 말이죠.
그리고 피가 많이 뚝뚝 난것도 아니고 약간 많이 긁혀서 피가 맺힌 정도였는데 말이에요.
아무튼 고모는 그런 내용을 글로 적으라고 하였고 아빠에게 살려달라 아빠가 날 키워야 내가 살 수 있다 라는 내용을 적으라고 하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아빠가 잠시 고모집이 아니라 나가계셨고 저는 그냥 모든 일을 적고 시키는 대로 적었습니다.
그 내용은 엄마가 아무 남자나 만나고 집에 데려오고 나한텐 공부만 시키고 관심이 없는 여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엄마가 나이가 많지 않았을 때여서 엄마도 남자친구를 만날수 있는거였고
집에 데려온적도 있지만 모두 저에게 의사를 물어보았으며 자고가거나 그런적은 몇없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사람들이 제 편을 들어주면 해서 더 과장해서 썼었고 저는 그대로 할머니 집에서 동생과 아빠와 같이 살게 되었습니다.
처음 몇달은 저는 엄마와 아무런 연락도 하지 않았고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신경을 써줄줄 알았던 친척들은 모두 각자의 일로 바빴고 저는 남는 시간에는 컴퓨터와 친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애니와 보컬로이드라는 것들에 빠졌었고 안그래도 저의 상황에 알고 계셨던 당시 담임선생님은 저를 시골이라 일주일에 한번씩 내려오는 시교육청 상담사와 상담을 하게 했고
처음엔 상담에 소극적이였던 저는 점차 상담선생님에게 마음을 열고 제 이야기를 하게되었고 점차 저는 생각을 깊게 하게되어 엄마에 행동을 그냥 미워하려고 하지만 말고 이해하려고 엄마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려고 노력했고 나중엔 엄마에게 연락도 하였습니다.
엄마와 몰래 연락을 하면서 저는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2달 남겨두고 과연 중학교 가서 내가 머리만 믿고 공부를 잘 할수 있을까 내가 커서 뭐가 될까 농사나 짓고 소나 키우며 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가 있는 도시에 가서 학원도 다니고 엄마의 감시도 받으면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될수 있겟지 라는 생각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내용을 아빠와 할머니, 고모, 작은 아빠께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저에게 엄마가 양육비를 받기 위해 너와 동생을 데려가려는 거라면서 못가게 하였습니다.
엄마를 따라 가고 싶다면 엄마에게 양육비 포기 각서를 쓰라고 말하라고 하였고 엄마는 아무리 그래도 여자 혼자서 저와 동생을 다 양육비 없이 키우는 것은 무리라면서 쓰지 못하셨습니다.
그런것을 보며 친가사람들은 그것보라며 돈때문에 너를 데려가려는 거라며 저에게 말했지만 저는 그런 것 보다도 이미 엄마에게 갈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굳혔습니다.
어느날은 고모가 저에게 전화를 여러번 하고 불렀지만 이미 친가사람들에게 마음을 돌린 저는 전화도 받지않고 피했습니다. 그러나 같이 살던 사촌동생은 저의 위치를 말하고 저는 어쩔수 없이 고모가 계신 동네 미용실로 갈수 밖에 없었습니다.
고모는 화가 나 계셨고 저에게 엄마에게 못간다 각서 쓰기전까지 넌 여기있어야 한다며 소리를 지르셨고 저는 갈거라고 똑같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러자 덩치가 큰 고모는 저를 소파에 세게 밀치시고 저의 성씨는 자신의 성씨와 같으니까 가족이고 너는 같은 가족끼리 살아야한다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러면 호적에서 파버리라고 나도 이 성씨가 싫다고 하면 안되는 말을 하고 고모에게 소리를 질렀고 고모는 뺨을 때리셨습니다.
미용실이였던 만큼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친척이 아니지만 친척처럼 같이 지냈던 아저씨도 있던 그 장소에서 저는 말로 형용할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고 그자리에서 나와 2키로가 넘는 뚝방길을 걸어 할머니집에 도착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잠을 잤습니다.
그날 이전부터 저는 친척들을 맞대는게 싫어 집에선 아무것도 먹지않고 잠만잤고 고모와 싸운 그날부터 열흘 좀 안되는 시간동안 저는 7키로나 빠지는등 많이 힘들었습니다.
결국 저는 학교 수업시간중 엄마가 몰래 데리러와서 빠져나가기로 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동생이 그사실을 알렸고 저는 친척들에게 잡히고 말았습니다.
고모는 이건 납치라며 경찰에 신고했지만 제 의사가 중요하다며 경찰들은 제가 엄마에게 갈 수 있게 해주었고 고모가 뒤에서 차로 치여 죽여버릴 거라는 말과 폭언을 하자 에스코트까지 해주며 저는 엄마에게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그런 친척들에게 겁을 먹어 시골에 남아있었지요.
그리고 엄마에게 왔을때 그제서야 엄마를 제대로 볼 수 있었고 엄마는 1년새 많이 늙고 여위여계셨습니다.
저는 그모습에 심한 죄책감에 휩싸였고 그 이후로 엄마에게 죄책감으로 인한 복종을 하고 살아왔습니다.
막 도시에 왔을 때는 아빠가 제 친권을 가지고 계셔서 초등학교 6학년 1달 좀 넘게 마무리를 못하고 흐지부지 졸업을 하게 되었고 제 학교문제 때문에 엄마는 법원에 가서 아빠와 싸우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제 친권은 엄마에게 왔지만 아직 시골에 있는 동생때문에 엄마의 동생 양육권은 아빠에게 가버렸습니다. 싸우는 몇달동안 제 동생은 시골에 있는 친척들에게 세뇌를 당했는지 저를 따르지 않았고 저를 배신자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아 꼬질꼬질해진 제 동생의 머리를 묶어주려고 다가간 저에게 동생의 말은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빠도 엄마도 아닌 동생이였으니까요.
후에 들어보니 친척들은 저를 동네 공인 쌍년으로 만들었다더군요.
그래서 오고 나서 한번도 시골로 내려가본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근처 중학교로 진학하였고 1년간 열심히 공부하여 전교 30등안에 드는 나름 우수한 성적으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제가 엄마에게 온 1달은 정말 편안했습니다.
엄마는 제가 엄마의 교육때문에 그렇게 엇나갔다고 생각하셔서 저를 그냥 쉬게 하셨고, 언제 고모와 아빠가 저를 해코지 하려 올줄 모른다는 불안에 살던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그러나 곧 엄마는 저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며 여기저기 빡세기로 유명한 학원들을 알아오셨고 저는 힘들었지만 엄마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여 초등학교 6학년동안 아무것도 안하고 쉬던아이치고 전교 10이라는 등수까지 찍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2학년때 저는 학교에서 심한 두통과 구토를 하였고 놀란 엄마와 종합병원에서 검사를 한후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려있다는 말을 들은겁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머리가 아팠지만 그당시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말하지 않고 매일 학교에서 보건실에서 약을 먹고 자는 생활을 했었고 시골에서는 공기가 좋고 스트레스를 덜 받아서 그런지 덜하긴 했지만 자주 두통을 호소하고 양호실에 갔습니다.
그런식으로 두통을 무시했더니 제 병의 상태는 조금 심각한 상태였습니다.
저는 바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을 하고 9시간의 수술을 하고 나왔습니다.
첫수술이 끝나고 저는 학교에 다시 가게되었고 다른 반의 나를 모르는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싫었지만, 착한 같은반 아이들과 단짝친구 덕분에 좋은 생활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수술이 하면 바로 완치가 되는 병이 아니기때문에 오히려 수술 직후 한달간은 더 힘이 들엇고 저는 시험을 망치고 말았습니다. 난생처음으로 100등을 넘어간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수술에 제 퇴원날짜는 시험의 1주일 전이였습니다.
엄마는 저에게 입원실에서 문제를 풀게 하였고 다행히도 이번엔 80등이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가 저의 몸상태를 위해서 공부에 매달리게 하지 않으실 줄 알았고 제가 많이 아팠지만 그점에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나름 욕심이 있었지만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면 더 하기싫어지곤 했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예상과는 달리 엄마는 제가 퇴원후 1달이 지나자 다시 조금씩 저에게 공부를 시키셨고 저는 이제는 포기하는 심정에 제 병원비때문에 힘들어 하는 엄마모습을 보며 또 다시 자책하였습니다.
그러나 제 수술후에 동생이 오랜 설득끝에 엄마에게 와서 다시 같이 살게 되었고 저는 기운을 차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곧 다시 엄마에게 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용히 그냥 제가 정신이 너무 나약해서 그런거라며 저를 탓하고 정신차리길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엄마는 사귀던 남자와 살기위해 좀더 넓고 이모와 가까운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이사가 결정난 후에 엄마와 사귀던 남자는 헤어졌고 그냥 이사를 온것처럼 되었지요.
저는 이사로 인해 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잦은 자책탓에 스스로에게 자신감이 없었고 건강으로 인해 학교생활을 잘하지 못해 거의 은따처럼 지냈고 3차 수술까지 받았습니다.
중학교 3학년이니까 1년만 버티면 된다는 심정으로 중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친하다고 맘 편히 말할수 있는 친구 하나 없이.
저는 갈수록 우울해 졌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죠.
사실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저는 엄마에게 1년을 쉬고 학교를 들어가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제 스스로 건강이 학교생활을 하기에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제 정신상태로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말로하면 감정이 섞여 엄마와 싸울수도 있다는 생각에 장문의 손편지를 썼고 엄마는 그것을 읽고 받아들이시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엄마는 곧 주변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셨고 아직 어린 저의 의견보다는 들은것도 많고 배운것도 많고 나이도 많은 그런 사람들이 더 맞다며 진학을 하라고 대뜸 결정하셨고 저는 할수 없이 그냥 입학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요즘 죽고싶다는 생각을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제가 싫고 저 스스로를 싫어하지 않기 위해 엄마를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하면 저에게 폐륜아라고 했던 엄마의 목소리가 떠올라 결국 제 스스로를 한심하게 느끼고 죽이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저는 솔직히 제 동생 때문에 삽니다. 제 동생도 엄마에게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처럼 심각하게 우울해지고 위험하고 그렇진 않습니다. 타고난 성격탓일까요.
무튼 제가 죽어버리면 동생을 막아줄 사람이 없어서 걱정이 되서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동생은 저를 진심으로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아침마다 두통에 시달리며 제대로 일어나지 못합니다.
운동을 하면 쓰러질 수도 있다는 말에 체력관리도 못해서 체력은 바닥이구요.
그러나 엄마는 다른 아이들은 제시간에 학교가서 야자까지 다 하고 오는데 너는 매일 조퇴에 집에와서 아프다고 잠만 자냐고 화를 내십니다.
저는 학교를 가기 위해 링거를 거의 매일 맞고 타이레놀등의 진통제를 달고 살았습니다.
링거를 오른손으로는 연필을 잡거나 인강을 들어야 해서 왼손 손등에만 맞아서 왼손 손등에는 주사를 맞은 곳에 굳은 살이 박혀 한 부위만 딱딱해졌습니다.
타이레놀은 너무 오래 먹어서 조금 큰 크기의 약도 2알이상 먹어야 효과가 있고 진통제를 너무 많이 먹은 저는 위장장애까지 와서 자주 토를 하고 미식거리는 지경까지 왔습니다.
결국 병원에서는 학교를 쉬엄쉬엄 가면서 약도 링거도 다 끊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일 아침 엄마의 신경질에 학교에 꾸역꾸역 가는 생활을 하고 엄마는 아파도 공부를 해야하는데 어떡하냐며 약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이 지경이 되자 저는 그냥 다 하기 싫고 죽고만 싶습니다. 그러나 자살을 하면 제 동생에게 가는 피해가 너무 크기때문에 죽지는 못하겠고 그냥 적응해서 사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를 가는것 자체에 저는 너무 심한 스트레스르 받습니다.
그냥 학교는 상관이 없었습니다. 아프면 쉬라고 배려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고 괜찮을 때에는 저도 욕심이 있기때문에 수업도 들으려고 했기때문입니다.
그러나 학교에 가기 전 엄마의 소리가 너무 힘이 들고 스트레스로 오자 이제는 학교자체가 싫어졋습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게 됬고 친구관계 또한 한명있던 친구를 멀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살아보려고 자퇴를 원합니다.
자퇴를 하면 어떡게할지 계획도 다 짜놓았습니다.
그러나 엄마에게 말을 못 꺼내겠습니다.
엄마는 분명 자퇴라는 꼬리표에 안된다고 하실겁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런 말을 어떡게 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신병원에 가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너무 싫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다가 엄마 말대로 대학도 못가고 가더라도 취업도 못해서 엄마 등골 빼먹는 실패자가 되버리고 결국 자살해버릴 것 같고 너무 힘듭니다.
제가 나쁜생각 안하고 엄마랑 원활하게 지내려면 정신과부터 가보는게 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