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년 전,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대학에 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줄줄이 초중고 입학을 앞둔 4명의 동생들을 바라보며, “공부 안할래요. 취업하고 싶어요” 라고 말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고,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그 시절, 물어물어 한 대기업 생산직으로 취업했습니다. 그리고, 이른 새벽 짐을 챙겨서 구미로 향했습니다. 말 붙일 사람 하나 없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간다는 두려움에, 어서 돈 많이 벌어 우리 엄마 호강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는 설렘에 창 밖의 해가 일렁였습니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쉬지 않고 일 했습니다. 그렇게 아침, 저녁으로 일을 하고, 주식이 뭔지도 모르지만, 사두면 좋을 것 같아, 조금씩 사주를 모았습니다. 어느덧 꽤 경력이 있는 사내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큰 키에, 훤칠한 이목구비에, 공단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그 사람의 모습에 설렜고, 가슴 뛰었지요. 보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내게 다가와서는 기댈 곳 하나 없는 그 곳에서 말벗이 되어주는 그 사람에게 점차 문을 열고 마주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나도 이제 내 가정을 이루는구나, 이 사람을 닮은 예쁜 아이를 품에 안겠구나. 상상만으로도 행복하고, 웃음지어졌습니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게, 인생이라는 게 내가 꿈꾸는 대로 펼쳐지지는 않았습니다. 말끔한 옷을 입고, 내 친구들의 선물까지 사다주며, 내게 힘이 되어주던 그 사람은 또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하는 말은 모두 거짓이었고, 심지어 살을 섞은 다른 여자도 있었습니다. 지금이라면 그 사람에게서 돌아섰을텐데, 그땐 어찌나 어리석었는지 나로 인해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시집을 간 날을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고운 한복을 입고,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시댁에서 제가 처음 본 장면을 말입니다. 시아버지는 만취해 상을 엎어버렸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하다’며 우시던 시어머니는 끌려 다니고 있었습니다. 처음 시댁을 찾은 그 날, 나는 시아버지가 던진 유리를 피해 아랫방으로 도망쳐야했습니다.
그리고, 내 결혼생활은 그 때 그 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참아보자 되뇌이며, 살아냈고, 예쁜 딸과 잘생긴 아들을 연이어 낳았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달라질까 하는 내 기대는 여느 때처럼 말뿐인 기대였습니다. 기적은 없었습니다.
반복되는 생활고와 그 사람의 괴롭힘...... 그 사람은 하루 15시간 일을 하고 돌아온 나를 잠조차 자지 못하게 했습니다. 버틸수가 없었습니다. 아이들 급식비도, 준비물 살 돈 주차 챙겨줄 수 없는 현실을. 12살이 되어서도 엄마 손을 잡지 않고는 잠 못드는 딸을 두고,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노는 아들을 두고 나는 그 사람의 지옥에서 혼자 나왔습니다.
혹여나 그 사람을 만날까 숨어 살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습니다. 나중에 내 새끼들이 찾아오면 대학 등록금이라도 손에 쥐어줘야지 싶었습니다. 이미 못난 어미지만, 나중에라도 만약 만나게 된 내 아이들이 나를 더 못나게 생각하지 않도록, 꾸중물에 손을 담그고, 일만 했습니다.
8년 만에, 먼저 연락이 온 아이들은 참 많이 커있었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미안했고, 또 미안했습니다. 바르게 자라주어서, 착한 어른이 되어 있어서 감사하고, 미안했습니다. 8년이 지나고, 처음 지어준 밥을 먹으며, 맛있다고 웃는 아이에게 나는 평생 죄인입니다.
지나간 그 사람에 대한 미련은, 상처는 없습니다. 어떤 핑계를 대도, 변명을 해도 내 죄는 없던 일이 되지 않음을 잘 압니다. 내가 없는 시간, 아이들의 가슴에 남은 생채기를 헤아릴 수 조차 없습니다. 그럴 자격조차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났고, 사랑했고, 내 아이를 품었습니다. 지나간 그 사람에게 꼭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사랑한 것이 너무도 후회스럽지만, 당신 덕에 내 새끼들을 품을 수 있게 되어 고맙다고.⌟
이 이야기는 저희 엄마의 이야기를 딸인 제가 써본 것입니다.
엄마를 처음부터 이해한 것은 아닙니다. 나이가 드니, 또 엄마의 '그 사람'인 아빠 곁에 살아오다 보니 알게 되었습니다. 엄마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음을.
그때의 엄마의 선택 덕에 그래도 지금 내가 행복함을.
나중에 만나게 될 엄마를 생각하며 더 바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엄마를 다시 만나,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은지 이제 4년째입니다.
엄마의 지난 시간이 너무도 아프고, 가슴이 아립니다.
지나온 세월, 그 누구에게도 보상받을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에 감사하며 살아가려합니다.
엄마의 지난 사람, 세월, 눈물이 이젠 행복이 되고 웃음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