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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으로 죽은 지독한 사랑

김면수 |2014.09.19 10:01
조회 205 |추천 0

시놉시스

 

남자는 대학에서 함께 문학 강의를 듣는 한 여학생을 마음에 둔다. 그리고 기말시험을 앞 둔 어느 날 남자는 여자에게 시험공부하기에 좋은 필기노트 복사본을 건네며 관심을 드러냈다. 여자도 남자의 관심이 싫지 않았다. 이후 두 사람은 극도로 가까워지고 뜨거운 사랑을 하게 된다. 남자에게는 여자를 향한 자신의 관심이 두렵기도 했지만, 이 또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여자 또한 남자를 향한 관심은 뜨거웠다. 급기야 두 사람은 술 한 잔을 마시고 넘어서는 안될 선을 넘고 만다. 그 이후 여자의 행동은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하는데...남자는 그런 여자의 마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그렇게 한 여자를 향한 남자의 관심은 결국...

제목 : 침묵으로 죽은 지독한 사랑

감정 I

 

그리움이라는 것은 목마른 자의 전유물로 생각했습니다. 순간 스치운 것에 많은 의미 두면서 운명까지 거론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우스울 수가 없었습니다.

삼류코미디처럼 사랑을 말하고 이별한 순간에도 그저 그렇게 "그 때는 그랬었지" 라는 의미 없는 말을 토하면서 덤덤한 시선 가누며 또 다른 그리움의 주체를 찾아 나서는 사람들이 다른 세상 사람들로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잊고 사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타협할 수 없고 종속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어쩌면 혼자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어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아름다운 것을 잊고 살아야 하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지만 잃어버리지 않아 다행입니다. 가슴 속 작은 꽃봉오리 안에 짙은 향이 베어있어 한 사람 기다리고 있었다 생각하니 하루하루 나는 아름답다 못해 행복하기까지 합니다.

내일은 수 십년만에 닥친 가뭄을 해갈이 하듯 전국에 많진 않지만 단비가 내린다 합니다. 여느 때와는 다르게 우산을 준비해야 하고 여느 때와는 다른 복장을 준비한 다음 외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햇살이 눈부시기만 합니다. 가끔 틀리는 일기예보 속 아나운서는 아무래도 날을 잘못 잡은 듯 합니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 가득하고 쭈뼛쭈뼛 타 들어가는 벼이삭들이 곳곳에 가득한데 단비가 웬말입니까? 맨 손에 그리 무겁지 않은 가방을 멘 사람들이 온통 교정을 채우고 있는데 하얀 구름 뭉게뭉게 이는 모습이 가관이기까지 합니다. 인문관 501강의실 5층까지 오르는 두 발이 불쌍합니다. 수강신청의 잘못된 판단으로부터 한 학기 내내 팔자에도 없는 오르막길을 올라야 했으니 두 발 가엾기까지 합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교수님의 열강보다는 낮잠 자는 이의 우렁찬 콧노래가 열강을 자축합니다. 이제 지칠 때도 됐는데 역사와는 전혀 무관한 종교 이야기가 교수님 딴엔 재미있나 봅니다. 가끔은 역사교수가 아닌 신학교수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습니다. 다종교에 관한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니 어쩌면 그런 생각 전혀 무리도 아닐 것입니다. 내 앞과 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들처럼 잠을 청합니다. 오지 않는 잠이고 이제 지칠 만큼 재운 몸인데 신학 보단 오히려 억지 잠이 나는 편합니다. 팔을 고이고 고개를 숙여 바닥을 보는 척 하면서 두 눈을 지그시 감습니다. 가끔 들려오는 낯선 소리도 있지만 교수님 나를 부르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눈을 감아도 보고 두 팔에 얼굴을 묻어도 보지만 좀처럼 오늘은 잠이 오질 않습니다. 여느 때처럼 알게 모르게 잠들거라 생각했지만 그러다 보면 이 수업이 종강으로 치닫을 거라 생각했지만 오늘은 그런 날이 아닌가 봅니다. 고였던 팔을 풀어 턱을 고입니다. 두 팔은 정면을 향하고 시선은 습관을 따라 수 사람들을 쳐다봅니다.

내 실패한 것을 보란 듯이 콧노래와 함께 진침을 바닥에 흘리는 사람과 역사와는 무관한 종교이야기에 심취한 나머지 백지 채우길 주저하지 앉는 사람 그리고 핸드폰 열쇠고리 손 틈에 끼고 빙빙 돌리며 안절부절못하는 사람 등 수 많은 사람이 두 눈 가득 담아집니다. 그리고 너무 낯설다 못해 아름답기까지 한 사람이 내 뒤에 있습니다. 수 사람과는 다르게 반듯한 자세로 교수님 열강에 초점 가누고 있는 사람 가끔 악보인 듯한 책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며 고개 기우뚱하며 커다란 눈을 깜박이는 사람 그 사람 지금 내 뒤에 있습니다. 조금 떨어진 그래서 내가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없는 거리에 있습니다. 붉은 옷을 입었다면 장미의 이름을 씌워도 무색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사람 그러나 붉은 것과는 다르게 검은 옷을 입어 그윽한 향기를 전해주는 사람.... 함께 듣는 이 시간이 나는 너무도 좋습니다. 한 강의실 안에서 호흡하는 모든 것이 나는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교수님 조선사의 희․비극을 이야기하든 유대교의 창조론과 신․구약을 이야기하든 그 사람 오늘 마주한 시간부터 내게 곧 역사이고 종교 같은 사람입니다. 잠 청했던 시간보다 훔쳐보는 시간이 빨리 갔고 지루한 시간보다 설레임 안은 시간이 어느 새 두 시간을 가득 채웠습니다. 더 긴 수업이길 바랐고 종강이란 낯선 말보다 보강이란 말을 간절히 원하고 싶었습니다. 꿈 속에서 조차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지금 내 앞을 지나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좀 더 일찍 만나고 우연 같은 필연으로부터 한 마디 건네볼 것을.

운명

비가 내립니다.

해는 서산마루에 가득 고여 가느다란 실선을 이렇게 토하고 있는데 한 두방울 비 불쌍하기만 합니다. 고이기도 전에 다시 하늘에 올라 또 다시 수일을 기다려야만 내릴 수 있는데....언제 내려 고일지 모르지만 오늘 내리는 비는 분명 축복 아닌 슬픔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잠기지 않은 방문을 열고 젖지 않은 옷을 벗어 던집니다. 혼자이기 때문에 윗도리를 벗든 바지를 벗든 언제나 자유가 있습니다. 처음 쓸쓸하다 못해 외롭기까지 했던 방안이 어느 날 화려한 색으로 도배되어졌고 던져진 옷들 사이에서 내 좋아하는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혼자라는 거 알고 보니 그렇게 지나다보니 결국 만드는 것안에 의미가 있었습니다. 빈 냉장고를 채우고 고정되어 있는 CD를 한 번씩 번갈아 주고 흩어진 방안을 조금 깨끗하게 정리하고 쌓였던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에 넣어 새벽에 내 놓으면 분명 혼자라는 거 알고 보니 별 것 아니었습니다. 씻은 쌀을 조그만 밥통에 넣고 보온이라는 따뜻한 글귀보다 취사라는 조금은 차갑게 느껴지는 글귀를 선택 눌러야 합니다. 또 다시 취사와 보온이란 글귀의 생소함에서 생밥을 자처해서는 안되니 이제는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어머니 챙겨주는 밥이 그저 식사 때면 도깨비 방망이 소원 들어주는 것처럼 쉽게 되는 줄만 알았는데 결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쌀은 세 번 이상 씻어서는 안됩니다. 영양소가 파괴되고 밥맛은 맹맛이 됩니다. 야채는 신선할 때 바로 해서 먹어야 하고 그렇지 못할 때는 신문지로 감싸 건조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혼자 있다보니 스스로 터득한 지혜 아닌 지혜를 자처합니다. 찌개를 끓이고 조미료는 되도록 피하면서 입맛을 맞춥니다. 한꺼번에 많이 넣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만들기 전에 조금씩 서서히 넣으면서 간을 맞춰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 가지 일에 충실하면서 이루라 하지만 식사 준비하는 과정만은 예외입니다. 우선 밥통의 밥은 취사로 되어 살살 익어가고 있으며 찌개의 물은 서서히 끓고 있습니다. 책 상 아래 놓인 밥상을 꺼내 좁은 방안에 펼쳐놓고 숟가락과 젓가락을 가지런히 놓아도 시간은 충분합니다. 찌개 물이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 김치를 넣어 조금 낮은 온도를 유지합니다.

그 시간에 계란을 꺼내 후라이를 해도 전혀 조급한 시간이 아닙니다.

졸작이나 찌개가 완성될 때쯤엔 밥은 벌써 보온이 되어 내 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식사를 마쳤습니다. 밖은 조금 어둑어둑 해졌지만 밖과 방은 전혀 다른 세계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밖이 소란스러울 때 방안은 잔잔한 음악의 선율이 흐르고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의 핸드폰을 울려 안위를 묻습니다. 방 안 가득 행복이 서려있습니다.

어제와 다른 음악을 들어야 했습니다. 무언가에 끌려 번거롭게 CD를 갈아 끼운 것이 아닌데도 오늘은 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싶었습니다. 너무 이르나 형광등은 이미 불빛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도 오늘은 덜 합니다. 오지 않는 잠을 청해도 보지만 이내 단념합니다. 온통 한 사람 생각으로 방 안 가득 빛을 갈망합니다. 검은 옷과 빨간 핸드폰 그리고 옅은 갈색 머리 단발 흐릿하나 악보와 함께 들려있던 길다란 가방 무엇인지 모르나 가슴이 압박되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 본 사람이고 한 마디 건네보지 못한 사람인데 우둔한 생각으로부터 상사병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머리를 흔들고 죄없는 머리카락을 움켜도 보지만 떨칠 수 없는 사람이 결국 생기고 말았습니다. 또 다시 사랑이란 낯선 단어를 올리고 말았습니다.

열대야 현상과 열섬현상을 거론하면서 전국적으로 단비가 내린다합니다. 갈라진 논바닥에 해갈이로는 부족하지만 많게는 이십에서 삼십까지 비가 내린다 합니다. 외출하실 때는 우산을 준비하고 가벼운 복장이 나을거라 거듭 강조하면서 다른 시간 그 때 그 아나운서가 말합니다. 백퍼센트 믿어서는 안돼는 일기예보에 반신반의 우산을 들지 않았습니다.

농학관 506 강의실은 인문관 501 강의실 교수님 못지않게 문학과는 전혀 무관한 사생활을 주제로 이어집니다. 들릴 듯 말 듯한 출석호명에 결국 마이크를 들어야 하고 두 시간의 강의보단 한 시간 침강이 어울릴 만한 이름에 수업입니다. 열강 이십 분이 지나면 대여섯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삼십 분이 되면 탈출 모색했던 사람들은 복도 끝 저 만치서 환희의 담배를 물고 웃음 발아하기 시작합니다. 나름대로 두 다리는 고통을 호소했고 책상머리에 올린 두 팔이 호된 말을 들어야 했지만 오늘 문학이라는 것도 종강을 고할 테니 그리 아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한 편으론 대견한 생각까지 듭니다. 결석 한 번 없이 한 학기를 이어 온 지금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전 보다 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이 십분 삼십분 그렇게 사십 분이 지났는데도 떠나는 사람은 고정된 수명의 정예요원들 뿐 수많은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정예요원이 빠져나간 빈 자리에 한 사람이 들어와 앉습니다. 별 관심없이 친구와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시험이라 특별히 공부할 것도 없고 교수님께서 들려주는 힌트만 캐치하면 됩니다. 그래도 성적은 그런 대로 봐줄 만 하니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친구와 이야기하는 와중에 심장이 멎을 듯한 우연을 보았습니다. 우연이기엔 너무도 모호한 한 사람을 곁눈질로 담았습니다.

친구와 주고받던 말이 무엇이고 교수님 힌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순간 잊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입과 귀를 막아야 했습니다.인문관 506 강의실 가슴과 눈을 멀게 만든 사람이 저 만치 떨어진 곳이 아닌 바로 내 옆 내가 볼 수 있는 거리에 와 있었습니다. 꿈은 아닌지 행여 환영으로 잘 못 본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무릎을 꼬집어보고 억지 기침을 해 봅니다. 꿈은 아닙니다. 염려했던 병이 시작된 것도 아니고 환영으로 불러모은 사람도 아닙니다. 분명 한 걸음도 아니 되는 거리에 그 사람이 와 있었습니다.

친구와 주고받던 이야기를 접어야 했고 교수님 이어지는 사생활 이야기에 귀 아닌 눈을 집중하면서 그 사람을 조심스럽게 바라보았습니다. 하늘 색 조끼를 입었고 검게 도색 되어진 악보에 시선 가누고 있었습니다. 고인 두 팔을 움직일 때마다 옅은 향이 전해져 왔고 듣지도 맡지도 못한 바람이 코끝을 간지럽혔습니다. 순간순간 볼을 꼬집고 기침을 해보지만 분명 그 사람은 내 옆 현실 안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일었던 기쁨이 또 다른 설렘을 재촉했고 설렘은 말없는 벙어리로 만들었습니다. 우연이기엔 너무도 기구한 그래서 운명까지 생각하게 만든 사람입니다. 길게만 느껴졌던 교수님의 열강도 어느 새 침묵을 고수하기 시작했고 얼마 있으면 종강할 것 같은 불안함마저 엄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 두리번거리며 어떠한 정보 얻길 바라도 보지만 선뜻 말하기 두려운 가 봅니다. 양손을 끼었다 빼고 악보에 시선 두었다 거두어도 보지만 이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펴봅니다. 아는 사람이 나 만큼이나 없나봅니다. 맑은 두 눈에 아쉬운 빛이 역력합니다. 교수님께서 강의를 하는 동안 처음으로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저... 죄송하지만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시험범위 복사... 좀 하면 안될까요? 금방 할께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시나무 떨 듯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길지 않은 그 한 마디에 얼굴이 붉어지고 거절할까하는 조바심에 차마 그 사람을 볼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이요?

"네... 지금 복사실 갔다 금방 올께요."

여자가 건네주는 노트를 급히 받아들고 종강한다는 말보다 더 빨리 복사실로 향했습니다. 가뿐 호흡을 연신 토해대면서 순간 복사실로 내려왔습니다. 세 부의 프린트를 부탁하고 사랑의 여신께 드릴 캔 음료를 집어 들었습니다. 한 부는 말 많은 친구 것이고 한 부는 말없는 내 것이고 나머지 한 부는 말 한마디 건네 보지 못한 그 사람의 것이었습니다. 프린트 세 부 값을 지불하고 또 다시 역으로 순간 이동했습니다. 송골송골 이마에 땀이 맺히는 듯 했지만 개의치 않고 달렸습니다. 다행히 교수님 사생활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오늘만큼 교수님이 존경스러울 수가 없었습니다. 노트와 함께 캔 음료를 전해주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감정 II

그 사람 그토록 내가 간절히 바라고 바랐던 사랑의 시작입니다. 매 순간 행복에 겨워 가누지도 못할 웃음을 흘리우면서 그 사람과의 사랑을 나는 마냥 행복한 시간으로만 생각합니다. 아침 창 사이 비집고 들어선 햇살에 괜한 웃음을 보였고 무언가를 해주기 위해 분주한 발걸음을 옮긴 뒤에야 겨우 잠 들 수 있으니... 그 사람 하늘이 내게 내려준 단 하나의 사랑이고 삶이라 생각합니다. 시절인연이 다하여 만났나 봅니다. 그토록 가슴 시린 날을 지나서야 만날 운명이었나 봅니다. 그 사람 지금 내게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지만 이제 믿어야 합니다. 그 사람 이제 사랑이라 불러야 합니다. 단 하나뿐인 내 사랑이라 불러야 합니다.

플라타너스 잎사귀가 5층 창 밖까지 올라와 손짓하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꿈틀대는가 싶어 바라보니 커다란 잎사귀와 함께 유리창엔 가는 선이 그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인가 싶더니 이내 무수한 선들로부터 창이 고여지기 시작합니다. 밝게만 보였던 하늘은 순간 검게 그을려져 있었고 조용하기만 했던 교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단비가 마른 대지에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가깝게 보였던 먼 들녘이 어둑해졌고 저 만치 보이는 사람들도 하나 둘 우산 펼치길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열변 토하시던 교수님도 창 너머 보이는 비 소리에 사생활을 접고 종강을 하려합니다.비 소리의 설렘만큼이나 이제 내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주체할 수 없는 맥박은 심장에서부터 전해져 오는지 손끝에서부터 심장으로 전해지는지 머리까지 혼란스럽습니다. 남은 프린트 한 부를 전해주며 한 마디 건내보기가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차라리 한라산부터 백두산까지 왕복으로 달리라 하면 차라리 그 편이 나을 법도 했습니다. 왜 그렇게 가슴이 떨리고 입은 떨어지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심한 교수님은 시험공고와 함께 종강하고 무척이나 가볍게 강의실을 나갑니다. 오늘 아니면 언제 다시 마주할 지 모릅니다. 이렇게 크고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다시 볼 수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한 마디 건네지 못한 무수한 사람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될는지도 모릅니다. 손바닥은 진 땀 배이기 시작했고 가슴은 여느 때보다 더 심한 펌프질을 해댑니다.

사랑은 쟁취하는 자의 것이고 미인은 용기 있는 자의 사람이다라는 말은 많지만 정작 용기 내려 할 때쯤엔 거절할까하는 두려움이 잔재하기 마련입니다. 괜한 말

을 꺼냈구나하며 씁쓸한 나머지 등을 보여야 할 는지도 모릅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남은 한 부는 내 것이 아닙니다. 경우야 어찌되든 처음 가졌던 생각처럼 전해줘야 했습니다.

"시험 공부하는데 도움될 거예요 교수님이 말씀하신 힌트도 적혀있고.... 아는 사람 없는 것 같아 걱정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서 한 부 더해왔어요."

멀쩡히 뜨고 있는 두 눈에 그 사람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시선은 이미 외워버린 프린트에 고정했고 더 많은 말을 하다가는 행여 언청이로 오인할까 말하길 그만두었습니다. 할 말은 다했고 이제 거절하지 않고 받아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고마워요 정말로... 사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거든요 그래서 한 참을 망설였는데..

이렇게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거절하진 않았습니다. 그렇게 조마조마하게 기다리고 바랐던 만큼 차가운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이마의 맺힌 땀도 빛을 잃었고 굳게 닫혀 있을 것만 같던 입도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두 눈 가득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 사람 들려주

는 소리가 깊은 산골 산새소리보다도 더 맑고 아름답게 두 귀를 울렸습니다.

"괜찮아요 하는 김에 한 부 더한 건데..."

"그래도 제겐 큰 도움이거든요 정말 고마워요"

"역사 수업도 듣고 계시죠?"

"네! 아까 친구분하고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저하고 같이 듣는 것 같았는데?"

"네 전 봤는데..."

"저요?"

"네 저번에 검은 옷 입고 계셨었는데....?"

"맞아요 그런데 전 한 번도 보질 못했어요?"

"전 거의 뒤에 앉거든요."

"저도 그런데..."

"아무튼 친구가 아는 사람 통해서 역사노트 빌린다고 했거든요 괜찮으면 제가 복사해서 드릴께요?

"미안해서...."

"괜찮아요 시험 잘 보면 좋지요?"

"그래요 아무튼 여러모로 고마워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정면으로 보진 않았지만 웃는 모습도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쉬움 남겨둔 채 강의실을 나가려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그런데 연락처?"

만나 전해줄 수 있는 방법을 미처 남겨두지 못했습니다. 경황없는 말투와 행동으로부터 머리가 쥐 난 듯 그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보다못해 입을 열었고 연

락처를 물어왔습니다.

"아...적어드릴께요."

그 사람 가방 뒤적이려 하자 성급한 마음에 프린트 후면에 번호를 남겼습니다. 잘 나오는 볼펜이고 깨끗한 종이인데 숫자는 전과 다르게 흐트러져 있었습니다. 결국 떨리는 마음을 하얀 백지에 담아 고스란히 보냈습니다.

"한 4시정 도에 전화하세요 그 때쯤이면 친구가 올거거든요 그 때 드릴께요."

"........."

"그 시간 안돼요?"

"네... 제가 레슨 할 시간이거든요 5시이면 끝나는데....?"

"그래요 그럼 그 때 드릴께요."

"저 때문에...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 저도 이 근처가 집이니까요."

"그래요 아무튼 정말 고마워요 그럼 제가 5시 정도에 전화드릴께요."

"네."

떨린 감정을 추스르고 고인 땀을 닦았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건네기조차 설레었던 사람에게 수 단어 펼쳤다는 마음이 스스로를 대견하게 만들었습니다. 현관을 나왔고 비 내리는 교정을 우산도 없이 걸었습니다. 젖은 옷이 싫을 법도 한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닿는 촉감이 마냥 좋았습니다. 비를 피하기 위해 뛰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늘이 내려준 축복에 감사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었습니다. 뛰면 방금 전 그 사람 웃음과 기억이 일순간에 흐트러질까 조심스러웠습니다. 행여 지워질까 두려웠습니다.

기다림 I

초침과 분침이 멎었나?

분명 시간은 가고 있는데 너무도 더디게만 느껴졌습니다. 비 소리도 멎은 듯 하고 돌아가고 있던 CD도 멎었습니다. 창 너머로 하나 둘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고 자동차 경적소리도 붐비게 울려대고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4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벽시계와 자명종 그리고 핸드폰을 번갈아 보면서 시간을 대조해 보지만 차이는 없었습니다. 늦은 잠이나 청하면서 한 시간 금방 넘길까도 생각해 봤지만 한 번 깊은 잠에 빠지면 일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만 두었습니다. 접어 두었던 책을 펼쳐 읽어도 보지만 딴 데가 있는 마음 추스르기엔 늦었습니다. 그렇게 이것저것에 관심보이다 보니 5시를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빛을 기다리고핸드폰 멜로디 울리길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10분 15분 20분이 지나도 벨은 무색 그대로였습니다. 매 1분이 지날 때마다 길고 힘들기까지 했습니다. 누군가를 이렇게 기다리긴 처음이기에 두려운 마음은 늘 가슴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멈춰있던 CD의 음을 빌어 눈을 감았습니다. 잘 하고 있는 것인지 통제할 수도 없는 감정으로부터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우연을 인연으로 결부지어 또 다시 힘든 사랑을 말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 자꾸만 두려웠습니다. 두려운 나머지 음악을 빌어야 했고 부를거라 약속한 사람을 한 번쯤 기다려야 했습니다. 약속했으니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 생각했습니다. 울리지 않을 것 같은 벨이 작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음악에 섞여 들려오는 또 다른 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가뭄에 콩 나듯 기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볼륨을 줄이고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습니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큰 소리로 불러보았지만 수화기는 이미 차갑게 내려졌고 기다렸다는 듯 짧은 신호음이 그 뒤를 잇고 있었습니다. 핸드폰을 접어 충전 대에 올려놓고 가만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벨 소리를 기다렸습니다. 다시 올 거라 생각했고 분명 그 사람일거라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충전 대에 놓인 핸드폰을 들고 안테나를 길게 세운 뒤 폴더를 열었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대방 목소리는 분명 여자였고 그 사람이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

잠시 침묵이 이어졌고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세요?"

또 다시 끊길까하는 조바심에 많은 말을 했습니다.

"저...아까 문학 수업 들었던 사람이거든요?"

"네 알아요 어디세요?"

"저...미안해요 저 레슨 6시쯤에 끝날 것 같아요."

처음과는 다르게 작은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왔습니다. 5시 아닌 6시이든 6시 아닌 그 이후의 시간이든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

다릴 수 있습니다. 수 시간이든 수일이든 올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면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끝날 때쯤에 전화주세요 그럼 제가 나갈께요."

"정말 미안해요 그럼 어디에서 볼까요? 아시는데 있어요?"

"VOGUE 찻집에서 만나죠? 거기 알아요?"

"네 학교 아래 있는 찻집? 아닌가요?"

"네 맞아요 그럼 거기서 만나기로 하고 레슨 끝날 때쯤에 다시 전화주세요 기다리고 있을께요."

"정말 고마워요 그럼 레슨 끝나고 전화 드릴께요."

"네."

기다리던 사람이 불러 주었습니다. 어쩌면 오지 않을 것 같은 전화가 울려주었고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자꾸만 그 사람이 좋아지려 합니다. 무엇으로부터 이 감정이 일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듣고 말하고 마주할 때면 어린아이처럼 가슴이 뛰기 시작합니다. 일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이 낯선 사람으로부터 나래를 피려 합니다. 움츠리고 있어 향기조차 없을 것 같던 마음이 한 사람으로부터 꽃 피우려 합니다.

좁은 길을 차와 사람이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무수히 다가선 사람들 사이로 경적소리 울려 퍼집니다. 가는 실선처럼 내려온 빗물은 바닥에 떨어져 작은 분수를 만들고 이내 허공 중에 산화됩니다. 그렇게 수 차례 반복되면서 하나 둘 멎어 고이기 시작합니다. 그 사람이 저 만치 보여옵니다. 하늘 색 우산을 들고 학교 앞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보이는 웃음이 금방이라도 빗물과 함께 할 듯 맑기만 합니다. 한 발한 발 내딛는 걸음이 빗물에 달라붙은 듯 무겁기만 합니다. 고개조차 쳐들 수 없어 고인 빗물에 수줍은 얼굴을 비춥니다. 그 사람 좁은 길을 지나 내 편으로 건너옵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붉어진 얼굴을 숨깁니다. 달아오르는 얼굴을 비출 수 없어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 사람이 붉어졌는지 그렇지 않은지 실은 잘 모릅니다. 먼발치 그 사람 알아보았을 때부터 떨리는 감정은 고개를 당기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함께 붉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이야기했으면 좋겠습니다.

"친구가 늦게 오는 바람에 복사를 못했어요 근처에 인쇄소 있으니 거기서 하고 드릴께요?"

"네 괜찮아요 받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마운데..."

하늘부터 뿌려진 빗물의 흔적을 따라 그 사람과 함께 걸었습니다. 골목을 돌아 또 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인쇄소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거리에서 함께 이야기하며 걷고 싶었지만 또 다시 떨리는 감정으로부터 밀려나고 말았습니다. 인쇄소 안에 그 사람과 들어왔고 주인 아저씨께 한 부를 부탁했습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동안 무슨 말을 해야할 것 같았습니다. 프린트 비용은 150원인데 주머니 속 가지고 온 돈은 2만원 지폐였습니다. 150원을 지불하기 위해 만원 내민다면 주인 아저씨 인상 찌푸릴게 뻔했습니다. 망설이다 못해 결국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저...프린트 비용은 아가씨가 계산하면 안돼요? 저 동전을 하나도 안 가지고 왔어요?"

2만원 있다는 말보다 150원 없다는 말이 더 하기 힘들었습니다. 150원보다 2만원이 몇 갑절 많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만원권 지폐 두장이 아니라 백원 짜리 동전 두 개면 충분했습니다.

"그래요 제가 계산할께요."

프린트를 건내주고 아쉬운 걸음이나 이제 헤어져야 했습니다. 차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 너무도 간절했지만 생각처럼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내리던 비도 이제 멎었고 사람들은 우산을 접어 한 손으로 흔들기까지 합니다. 인쇄소를 나와 그 사람과 함께 걸어온 길을 혼자 걸어야 했습니다. 아쉽지만 그래야 할 듯 싶었습니다.

"그래요 그럼 시험 공부 열심히 하시고요..."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 멎은 빗물 사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저 너무 고마운데요....식사 하셨어요? 안 하셨으면 제가 사 드릴께요?"

"식사는 했어요 방금 전 했거든요 아가씨는?"

"전 아직 생각이 없어서요...."

"그럼...식사말고 커피 사 주시면 안돼요?"

"그래요 그럼 제가 사 드릴께요."

"아는 곳 있어요?"

"아는 곳? 음...."

"그럼 VOGUE 찻집으로 가요? 그 곳 괜찮거든요."

"그래요 그럼."

빗물을 따라 함께 걸었습니다. 사람들을 지나고 이른 빛 발하는 네온싸인을 지나서 함께 걸었습니다. 길다란 그림자는 놓이지 않았지만 곳곳에 서린 빗물에 서로를 비추면서 그 사람 나와 함께 마주할 수 있는 곳을 향해 한 걸음씩 내 딛었습니다. 행여 고인 빗물이 튀기지 않을까 조심조심하면서 거리를 두고 걸어야 했습니다.

대화 I

또 다시 좁은 길을 찾아 왔습니다. 한 폭의 거리를 두고 작은 소리에도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이로부터 낯선 말들을 주고받았습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내어놓는 말에 굳었던 얼굴이 금새 환해지기 시작합니다. 느껴보지 못한 감정으로부터 너무 많은 웃음을 보입니다. 그렇게 흘리운 이야기를 따라 푸른 커튼이 있고 하얀 조개껍질로 장식되어진 찻집 앞까지 왔습니다. 좁은 계단 위로는 붉은 카페트가 펼쳐져 있고 계단은 노오란 등에 비쳐져 사뭇 신비한 마음마저 들게 합니다. 한 걸음 옮기자 그 사람 뒤를 따라 오릅니다. 곧게 이어진 계단을 타고 잔잔한 음악이 문 앞까지 나와 반깁니다. 갈라진 음악을 잡기 위해 작은 문을 열었습니다. 짙은 밤색 소파와 함께 샹들리에의 투명한 구슬은 빛에 반사되어 구석진 곳으로 아름다운 이탈을 시작하고 반사된 빛은 유리창에 사람을 그리고 촉촉이 젖은 화분 위를 소리 없이 거닙니다. 밤색 소파에 앉은 사람들처럼 한 자리를 골라 그 사람과 마주 앉았습니다. 또 다른 침묵과 함께 붉어지기 시작합니다. 무슨 말을 할까? 함께 걷는 동안 수없이 생각하고 되내였지만 결국 잊혀지고 말았습니다. 테이블을 보고 방금 점원이 가져온 물 잔을 기울입니다. 소리 없이 들이키면서도 타는 입은 갈증 아닌 갈증을 호소합니다. 그 사람 옅은 미소와 함께 두 눈 가득 나를 비춥니다. 비춰진 모습은 수줍은지 이내 고개 떨구고 그 사람 웃음과 함께 조그만 입을 엽니다.

"고마워요 그 쪽 아니었으면 저 시험 거의 포기했을 텐데...이렇게 해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가는 웃음을 보이며 겨우 한 마디 그 사람 앞에 내어놓았습니다. 가슴은 전처럼 요동하기 시작했고 입안은 방금 마신 물이 무색하리만큼 더 한 갈증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물 잔을 기울이려 하자 점원은 메뉴판을 들어 내밉니다.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제가 살께요."

커다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 사람 메뉴 판을 펼쳐 보입니다.

"먼저 고르세요 전 골랐거든요."

"그래요 음...전 아이스 티요."

"전 헤이즐넛 주세요."

돌아선 점원을 보고 그 사람 유리창에 비친 현란한 네온에 시선을 고정합니다. 옅은 미소를 유리창 가득 새기고 살며시 고개 돌려 바라봅니다.

"참 신기해요! 그렇게 많은 교양과목 중에 두 과목을 함께 들었다는 게...그리고 왜 한 번도 못 봤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래요 그래도 종강하기 전에 만났으니 다행이네요."

"저 처음에 그 수업 안 들으려고 했거든요 수강신청 너무 늦게 해서..."

"..........."

"그런데 종강할 때쯤 좋은 사람 만나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네."

그 사람 말하는 순간 순간마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이 베여있었습니다. 무엇인지 모르게 모든 소리가 웃음을 만들고 눈을 맑게 했습니다. 떨리는 가슴과 붉어진 얼굴도 차츰 희미해져 갔고 그 사람보다 먼저 말을 하고 그 사람보다 먼저 웃어 보였습니다.

비취빛 서린 두 잔 가득 헤이즐넛 향과 아이스티 향이 원색 모난 테이블에 놓여졌습니다. 짙은 향 테이블 위로 오르다 이내 형태도 없이 사라지길 반복합니다. 그 사람 하얀 김 오르는 아이스티 잔을 들어 가만히 입에 갖다댑니다. 그리고 가늘고 긴 눈썹을 파르르 떨며 지그시 웃어 보입니다.

"전공이?"

"음악이요 플롯 전공하고 있어요."

그 사람 둥근 크리스탈 잔을 테이블에 내려 놓았을 때 잔을 들어 물었습니다. 그리고 헤이즐넛 향이 코끝에 멎었을 때 그 사람을 보았습니다. 들리지 않는 웃음소리와 함께 옅게 그어진 미소는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환하게 핀 꽃보다 오므린 꽃이 더 아름다운 것처럼 그 사람 그랬습니다.

"몇 학년인데요?"

"4학년이요 그 쪽은요?"

"제가 한 참 동생이네요 전 이제 2학년이거든요."

그 사람 전과는 다르게 어깨를 들어 웃어 보입니다. 그 사람보다 어리다 생각하고 큰 소리로 웃어 보이는 듯 합니다. 그 사람 아무래도 괜찮습니다. 활짝 웃어 보이는 웃음 따라 함께 웃어 보입니다.

"그런데 제가 나이는 훨 많을 거예요 군대갔다 왔거든요."

"정말요? 몇 살인데요?"

커다란 눈을 뜨고 들었던 잔을 내려놓으며 그 사람 조심스럽게 물어 왔습니다.

"25살이요 너무 많이 먹었나? 아무튼 그래요."

"아...전 저보다 어리게 봤어요 학년 묻기 전에 제가 누나일거라 생각했거든요 미안해요."

"아니 괜찮아요 사람들이 생각보다 어리게 보거든요 어떻게 보면 좋은 거죠."

"네..."

펼친 어깨를 또 다시 움츠립니다. 내려놓은 잔을 양 손 가득 움켜주고 희미한 미소를 테이블 아래 흘립니다. 움켜쥐고 있던 잔을 들어 또 다시 작은 입술 사이로 가져갑니다.

"커피는 아가씨가 계산하고 저녁 식사 괜찮아요?"

찻잔 사이로 놓여진 작은 침묵을 깨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 잔을 내려놓으며 두 눈을 맑게 깜박입니다.

"배고프진 않는데...좋아요 그런데 미안해서...."

"괜찮아요 차 사줬으니 식사는 당연히 제가 대접해야죠."

"아무튼 여러모로 고마워요."

빈 찻잔과 함께 밤색 소파의 따뜻한 온기를 남겨두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들어 온 것처럼 좁은 계단은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사람 나란히 걸어도 좋지만 좁은 계단 아래에선 서로가 힘듭니다. 한 사람은 기다리고 한 사람은 그 사람에게로 오는 것이 어쩌면 좁은 계단 오르는 현명한 방법일 수 있습니다. 나란히 걷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그 사람 기다리는 것에 조금 더 익숙해지면 그만입니다. 원목으로 된 카운터에 그 사람 잠시 멎어 계산하고 있지만 혹 잘못된 계산으로 주인과 긴 시간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결국 계산이 끝나면 이 좁은 계단아래 기다리고 있는 한 사람 찾아 내려올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마주하며 식사를 하고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풀어헤칠 것입니다.

대화 II

고전적인 멋과 현대적 인텔이 구성으로부터 편안한 마음 불러일으키는 레스토랑을 찾아 걸었습니다. 처음과는 다르게 가까운 거리에서 이야기하고 바로 볼 수 없는 붉어짐도 조금 나아졌습니다. 가끔 볼 안 뜨거워지는 것도 느꼈지만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며 잊었습니다. 이른 저녁인데도 거리는 벌써 휘황찬란한 네온들로 가득했습니다. 삼삼오오 무리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다정한 연인처럼 팔짱끼고 걷는 사람들도 눈에 보여왔습니다.

"좋아하는 곳 있어요?"

"아뇨 없어요 그냥 친구들하고 아무 데나 가거든요 자주 가는데 있어요?"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곳은 있거든요 인테리도 깔끔하고 무엇보다 사장․사모님이 좋거든요 어때요 그 곳으로 갈래요?"

"그래요 어딘 데요? 가까워요?"

"네 저기 보이죠? 2층 마츄피츄라고 써 있는데..."

"아...저도 거기 가봤어요 깨끗하던데요 그럼 거기로 가요?"

삼삼오오 몰려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다정한 웃음에 팔짱 낀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혼자 걸을 때면 혼자라는 무안함을 벗기 위해 울리지 않는 핸드폰 고리를 이리저리 흔들고 전화박스 안에 들어가 갑자기 떠오르는 이름을 골라 괜한 벨을 누르며 이야기를 자청했습니다. 아는 사람들 틈에 부대껴 횡설수설 많은 이야기를 널려 놓고 싶었고 그렇게 많은 여자 중에 아무나 사랑하고 다정하게 걷고도 싶었습니다. 하지만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은 늘 제한되어있고 여느 사람과 다르게 만남이라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쉬운 만남에 즐기고 쉬운 이별에 아쉬움조차 없는 사람들 틈에 함께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외롭고 혼자라는 이유로 가서는 아니 되는 길을 걸어서는 안되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술 잔 기울고 죄없는 담배 죽여도 보지만 힘이 들고 지치는 것은 외로움이고 자신입니다. 그런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데...아직은 침묵하고 기다릴 때입니다. 주어진 기회가 없고 만든 기회가 없었습니다. 사람들 웅성거림에 함께 할 수 없어 외롭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한계가 있고 발전 진화합니다. 시절인연이 다하지 못했습니다. 아직은 자신을 사랑할 때입니다. 자신 사랑이 다한 뒤에 만날 사람... 분명 있습니다. 있기 때문에 살아있고 그리워 할 수 있었습니다.

마츄피츄

커다란 유리관을 타고 시냇물처럼 흐르는 물이 있습니다. 관을 타고 흐르는 물은 테이블마다 놓여진 조명에 산란되어 천장 위 커다란 벽화를 연신 비춰댑니다. 3층으로 이어진 계단은 융단으로 포장되어 또 다른 손님을 기다리고 흐르는 음악은 곳곳에 놓인 화분에 푸름을 더합니다. 이름만큼이나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한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먼저 인사드린다 했습니다. 늘 따뜻하게 감싸주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준 사모님께 소개한다 약속했었습니다. 오늘 그 사람과 함께 융단빛 계단을 밟으며 신비한 이름의 마츄피츄 한 테이블에 앉았습니다. 들리는 음악만큼이나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너무 아름다워 손끝처럼 가슴 떨리게 만든 그런 사람입니다. 밖이 내려다보이는 보라 빛 소파에 앉았습니다. 테이블에 놓인 벨을 누르고 메뉴 판을 펼쳐 보일 때까지도 그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여긴 어떤 게 맛있어요?"

"네...?"

"추천하고 싶은 음식 없어요?"

"음..여긴 다 맛있어요 깨끗하고.... 특별히 추천할 만한 게...."

"오빠는 어떤 거 좋아하는데요?"

"저요? 돈까스!"

"그럼 저는 김치 볶읍밥 먹을께요 다 먹지도 못할 것 같고 오빠가 조금 먹으면 되죠?"

"그래요 그럼."

주문을 하고 하늘 빛 잔 가득 담긴 물을 마셨습니다. 또 다시 갈증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 말 꺼내지 않으면 침묵할 지 모릅니다. 먼 산 보듯 유리창 너머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자꾸만 떨려오고 먼저 말하면 금방이라도 말더듬이가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 오빠보고 잘 노는 사람일거라 생각했어요 여자도 많고...

아무튼 그럴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말하는 거 보고 솔직히 놀랐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 많아요 그래서 조금은 불만이고 조금 이상하게 생기고 그랬으면 그런 말 안 하겠지요 처음 보는 사람은 바람둥이 같이 생겼다고 하거든요 아무튼 사람은 겉만 보고 평가하면 안된 다니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하다니 까요 어떻게 같은 수업을 두 개 듣고 종강 할 때쯤에 겨우 만났는지...정말 신기해요."

"의미를 두게되면 그렇죠! 그렇지만 솔직히 신기하긴 해요! 그렇게 많은 사람 있고 수많은 과목이 있는데 거기서 두 과목을 함께 듣고 만났다는 게..."

"맞아요 보통은 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오빤? 저 한테 궁금한 거 없어요?"

"궁금한 거야 많지요."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라도 하듯 주문한 식사가 테이블에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았고 없을 것 같은 감정 일게 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서서히 다가가고 싶었습니다. 쉽게 이어지면 쉽게 끊어질 것 같아 순간순간 조심스러웠습니다.

"정말 맛있네요."

"그래요 많이 먹어요 맵진 않아요?"

"아뇨 괜찮아요 조금 드실래요?"

"아뇨 전 돈까스로 충분해요 생각보다 많이 나왔어요."

"음...근데 오빠 물어보고 싶은 거...?"

"음...있잖아요?"

"네..."

가볍게 웃음보이며 아무렇지 않은 듯 가슴을 진정했습니다. 달아오른 볼 살이 들킬까? 붉어진 가슴 눈치챌까? 평범한 듯 묻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만큼 평범하게 묻지 못하고 결국 웃음과 함께 몇 마디 더듬고 말았습니다.

"남자친구 있어요?"

"아뇨 아직 없어요. 오빠는요? 있을 것 같아요."

안도의 한 숨과 함께 그 사람 물어오는 말이 너무도 따스했습니다.

"없어요 있는데 이렇게 앉아있으면 안되죠! 안 그래요?"

"맞아요."

찻집에서 보다 많은 이야기를 풀어 헤쳤습니다. 오래 된 사람처럼 느껴졌지만 떨리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 어떤 목소리를 가지고 있으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너무도 궁금했습니다. 그 사람 어떤 생각 안아 살아가며 과거에 무엇을 했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영원히 잃었다 생각했던 사람에게 가르쳐 준 단 한 사람... 지금 내게 중요한 단 한 가지 이유인 것입니다.

시험 I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되고 철학자가 된다 합니다.

늘 오가던 길도 아름다워 보이고 들리는 소음조차 행복으로 느껴진다 합니다.

작은 것에 의미를 두게되고 자꾸만 그리워 밖을 서성인다 합니다. 사랑할 운명으로 마주했으니 어느 곳을 가더라도 마주칠 거라는 생각에 자꾸만 바라게 된다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나 봅니다. 두 눈을 감고 다른 일을 해 보아도 온통 그 사람 생각뿐입니다. 작은 머리 속 채울 것도 많은데 오직 한 사람 생각으로 가슴 저며옵니다. 결국 사랑을 가슴에 안고 말았습니다.

인문관 501강의실 그 사람 처음 만난 곳이고 가슴 떨려 숨 죽였던 곳입니다. 한 주를 기다렸습니다. 마주할 수 있는 시간 잡을 수 없어 오늘을 기다렸습니다. 뒤늦게 강의실에 도착하고 시험보기 위해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 사람 찾으려 고개도 돌려보지만 수많은 사람 중에 찾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습니다. 공부하지 않았다면 보여줘야 하는데... 그래서는 안되지만 어떻게든 도움될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앞사람은 애타는 마음 모르는지 받아든 시험지를 차갑게 넘깁니다. 한 문항 선택 하에 아는 만큼 기술하라 말씀하십니다. 여러 문항을 기술해도 소용없고 자신 있는 문제만 골라 기술하라 합니다. 자유로운 방식의 문제이나 아직 난감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어쩌면 그 사람 이 문항에 대해 잘 모르고 있을 수도 있는데...인터넷 검색하고 자신 있게 공부한 것인데... 될 수 있다면 찾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옆에 앉은 친구는 그런 대로 써 나가지만 영 자신 없는 것 같습니다. 눈치로 부족한지 손짓발짓하며 간청합니다. 아는 문제지만 백지처럼 멍하기만 합니다. 그 때였습니다.

옆 눈으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옅은 갈색머리 단발에 알 수 없는 향기를 가득 날리 우는 사람... 그토록 간절히 바라며 찾았던 사람입니다.친구보다 그 사람 옆으로 시험지를 돌려 잘 볼 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합니다. 각도와 앉은 자세를 이리저리 이해하면서 보이기 쉬운 방향으로 글을 보입니다. 교수님 주위를 돌아보며 철저히 감독하시지만 이미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완벽한 감독도 무용지물이 되고 맙니다. 한 시간 동안 이어진 시험은 그 사람과 함께 제출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고마워요 오빠 아니었으면 저 또 큰일날 뻔했어요."

"그러니까 공부 좀 하죠! 어째 안 했을 것 같아서 한 참 찾았어요 모르죠?"

"바로 옆에 앉았는데요?"

"나와는 한 참 떨어진 곳에 있는 줄 알았죠! 뭐! 알고 보니 바로 옆에 있을 줄은...."

순식간에 5층 계단을 내려왔고 현관 앞에 기다리고 있는 친구를 보았습니다. 조금 먼 곳에 있길 바랐는데 그 사람 이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았습니다.

"친구 기다리고 있어서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네."

"어디 갈 건데요?"

"모르겠어요 강의실 좀 들렸다 가려고요."

"그래요...."

"그럼."

"잠깐만요 이거... 전 읽은 책이라 없어도 되거든요 한 번 읽어보세요 가슴이 따뜻해 질 테니까요."

"네...고마워요."

등뒤에 숨기고 있던 한 권의 책과 밤 새 그어댄 편지를 전해 주었습니다. 그 사람 작은 손에 받아 든 책과 함께 행복해져 옵니다.

그렇게 망설이고 수 만번 생각을 더한 뒤에 겨우 마음을 옮겨 적을 수 있었습니다. 새벽 가는 비 내릴 때 몸 뒤척이면서 한 자한 자 지우고 지워 수 단어를 옮기운 것입니다. 마주하며 말할 수 있는 것도 제한되어 있지만 하얀 백지 위 가득 마음 옮기 우기엔 너무 여리고 수줍은 사람입니다. 매 순간 조심하고 추스르지 못하는 감정 조절하면서 그렇게 바라고 간절히 바랐던 사람입니다. 조그마한 실수로 돌아서면 안되기에 진실하고 진지한 마음 시간가는 것만큼이나 더디게 바라온 사람입니다. 행여 깊은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많은 것 보일 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니 많은 시간 사랑할거라 아직은 자신하지 말라 말하며 쓰디쓴 독백 토하는 사람입니다.

시험 II

궂은 비 내리는 날에도 마음은 언제나 맑고 평안합니다. 붉은 태양으로부터 땅이 갈라지고 초목이 빛을 잃어 탈색되어지는 날에도 마음은 푸르고 기름집니다. 그 사람 하늘같은 사람으로 주위를 서성이며 가슴 가득 그리움 발아케 하는 사람입니다. 늘 가까운 곳에서 함께 호흡하고 마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그 사람 하늘같은 사람입니다. 내겐 그런 사람입니다.

농학관 506강의실 눈부신 햇살을 거두고 플라타너스 잎사귀로부터 빗물 고인 축복되어진 곳입니다. 짙은 우연에 운명이란 거대한 의미를 씌워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만큼 그런 감정일게 해준 사람 자리했던 곳입니다. 그 사람 오늘 지나면 약속 아닌 뒤에야 만날 수 없는 곳입니다. 줄을 따라 시험지가 배포되기 시작했습니다. 가득 메워진 사람들 사이로 그 사람 찾아보지만 전보다 더 어렵습니다. 구석구석 살펴보면서 갈색 단발머리 찾아보지만 좀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친구는 옆에 와 앉고 바닥에 놓인 답지를 펼쳐 손이 쥐가 나도록 옮겨 적습니다. 닫힌 출입문을 열고 그 사람 급히 들어옵니다. 빈자리를 찾아 교수님 눈치를 살피며 겨우 앉기 시작하는데 애타는 마음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지를 받아 듭니다. 조교와 교수님 눈치를 살펴 적당한 때 그 사람 옆자리로 가려 했습니다. 기회다 싶을 때 책을 들었고 몸을 숙였습니다. 그 때 누군가 강한 힘을 주어 옷깃을 잡았습니다.

"왜? 공부 안 했어? 내가 보여줄게."

답지를 보며 문제지 빼곡이 채우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아..아니! 눈이 잘 안보여서 앞으로 갈려고..."

"내가 읽어줄게! 어..."

"아니 그냥 앞으로 갈게."

친구의 간곡한 청을 뿌리치고 책상과 책상 사이를 지나 그 사람 옆으로 왔습니다. 옅은 눈웃음을 보내고 채우지 못한 문제지를 그 사람과 함께 채우기 시작합니다. 조교와 교수님은 좁은 틈 사이로 날카로운 시선 가누며 감독하시지만 아직 잡아내기엔 역부족입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이미 발아하고 꽃 피우려는 땅에 그 누구도 침범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이 나를 반기지 않는 한 내 사랑은 아무도 막지 못합니다.

그 사람 나를 저버리지 않는 한 떠나지 않겠습니다. 여린 마음이고 지친 몸이지만 그 사람 나를 떠나지 않으면 쓴 눈물 감추며 돌아서지 않겠습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주어져 함께 할는지 모르는 것이 세상사라지 만 주어진 매 순간마다 그리워하고 사랑하겠습니다. 주어진 시간만큼 사랑하다 지쳐 행여 나를 저버려야 할 때 아쉬운 마음이고 쓴 눈물이나 보이지 않고 흐르지 않는 가운데 조용히 사랑했던 것처럼 그 사람 떠나겠습니다.그럴 리야 없겠지만 그 사람 어쩔 수 없이 내가 떠나야 한다면... 그런 날이 있어 떠나야 한다면 내 사랑이 죽고 내가 죽었던 그런 날일 것입니다.

그리움 I

따사로운 햇살은 방학처럼 자유분방합니다. 아침 창 사이부터 넓은 대지까지 곳곳에 스며 빛을 여미옵니다. 갈라진 논바닥이 그러하고 단추 풀어헤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아침빛과 저녁 빛은 참겠지만 정오로 치닫다 내려온 빛은 참으로 고역입니다. 붉게 타오르는 빛 사이로 단비가 내려 반겼으면 좋겠습니다. 아지랑이 이는 대지를 식히고 마른 잎 떨구는 나무를 적시면서 그리움 이는 내 가슴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아닌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안양 간다는 말과 함께 이 틀 동안 연락이 두절되었고 기다리며 초조해질수록 걱정은 앞섭니다. 이미 마음을 보였습니다. 어떤 감정이라 명확한 단어를 빌어 전하진 못했지만 충분히 납득하고 받아들인 듯 했습니다. 불러 들려주는 소리도 많았고 웃는 모습도 전 보다 더 밝았습니다. 그래서 두려웠습니다. 숱한 사람들 들려주는 것처럼 그 사람에게 그저 형식적인 사람으로 치부되어져 잠깐 이는 감정에 함께 한 것은 아닐까하는 바보 같은 생각에 두려워했습니다. 말과 함께 행동이 둔해졌고 기다리다 지쳐 서글픔 마저 들었습니다. 아침을 거르고 점심을 거르고 그렇게 깊은 잠을 청했습니다. 깊은 잠에 취하고 나면 하룻밤 꿈처럼 괜찮아 질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감싸 안으며 침묵해야 했습니다. 일어나 또 다시 음악과 함께 깊은 잠을 청하려 두 눈을 감았을 때 전화벨이 어둠 속에서 반짝이며 울어댔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저예요!"

"네 어디예요?"

"아..정말 미안해요 안양에서 어제 내려왔는데 어머니 오셔 가지고 함께 있었어요."

"네... 식사는 했어요?"

"오빠는요?"

"전 아직 안 했거든요 안 했으면 함께 할래요?"

"배고프지 않은데...오빠 먹는 거 볼께요."

"그래요 그럼."

"어디서 만날까요?"

"제가 집 앞으로 갈께요."

"그럼 오셔서 전화해요!"

"알았어요 그럼."

"네."

한 통의 전화가 또 다른 기쁨을 주었습니다. 염려했던 마음도 행여 두려웠던 마음도 어느 순간 사라지고 믿을 수 있다는 마음을 소생케 했습니다. 가슴에 찡한 여운이 자리하면서 그 사람 그리워 서둘러 나가야 했습니다. 헝클러진 머리를 바로잡고 주섬주섬 흐트러진 옷을 주워 입었습니다. 구부정한 운동화를 가는 솔로 깨끗이 단장하고 가벼운 걸음과 함께 잠든 웃음을 깨워 그 사람 집 앞으로 나갔습니다.

전통술집

현란한 불빛 뒤 가로등을 지나오면서도 가슴 떨림은 여전했습니다. 걱정한 마음을 구구절절 청승맞은 행동과 생각들 모아 들려주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사랑이라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 틀이란 긴 시간을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깊은 곳까지 그 사람이 들어와 그리움이 무엇이고 말하지 못했던 그 감정이 무엇이며 기다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해 준 조각되어진 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리움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기다림을 말할 수 없고 사랑은 사랑이라 말할 때 생명이 다하는 것처럼 차마 입밖에 낼 수 없어 삼켰습니다. 삼킨 뒤에 또 다시 그리워 할 수 있었고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그 사람 내가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어스름하게 보이는 길을 따라 물레방아 돌아가는 전통술집 마루에 앉았습니다. 연인인 듯한 사람이 술잔을 부딪히고 모임인 듯한 선후배들이 웃음을 토해냅니다. 그 사람 마냥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립니다. 그럴 때마다 그 사람 커다랗고 맑은 두 눈에 백열전구 빛이 가득 서립니다. 한 소녀가 물과 함께 조롱박에 빼곡히 쓰여진 메뉴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드시고 싶은 거 있어요?"

"음..전 아무래도 좋아요 오빠는요?"

"전 소주만 빼고 다 잘 먹어요."

"먹어 본 것 중에 맛있는 거 없어요?"

"음...백세주가 괜찮은데...아침 일어났을 때에도 속 괜찮고... 어때요?"

"그래요 그럼 백세주 먹어요."

"안주는 뭘로 할래요?"

"음...간단한 거 하죠?"

"그래요 파전? 파전 어때요?"

"좋아요."

구석구석에 놓여있는 지게와 절구 그리고 장고 등이 향토적인 멋을 자아냅니다. 토담과 함께 걸려있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옛 물건들과 함께 통나무 테이블은 운치를 더하고 창 밖 물레방아 소리는 저 만치 멀어져 버린 고향을 그리게 합니다. 따뜻한 국물과 함께 술은 테이블 구석에 놓여집니다.

"자 받아요."

백열전구 아래 흐릿한 미소 담은 그 사람은 조그마한 술잔에 미소를 채웁니다. 술을 받아 든 그 사람 이내 빈 술잔을 채우고 다물고 있던 입을 엽니다.

"저 술 잘 마셔요! 웬만해서 누구한테 안 지거든요."

"그래요 전 잘 마시긴 한데 거의 안 먹거든요."

"건배!"

그렇게 술 잔 부딪히길 수 차례하고 흐트러질 것 같은 정신을 바로 잡았습니다. 술이 들어가고 가슴 떨림이 누그러들자 오래된 연인처럼 편해졌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가슴에 고이고 삭혀 이제는 쓴 눈물 될까 아쉬운 마음에 조심조심 입을 열었습니다.

"이런 감정 처음이라는 거 말하고 싶어요 너무 낯설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모르겠고 지금 보이는 행동이 혹 피해주는 건 아닌지... 말하고 싶은데 말은 못하고 꿍하고 있는지... 자꾸만 걱정이 앞서요..."

"그런 거 없어요 저도 오빠 좋아요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하며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런 생각하지 말아요."

"다른 사람하고는 분명 달라요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아마 다를 거예요, 나 보다 다른 사람 입장 먼저 생각하고 그래서 간혹 남한테 이용당할 수도 있어요, 사람을 너무 잘 믿고 악한 사람보다는 그래도 선한 사람이 많다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거든요."

"알아요 그래서 자꾸만 신기해요 순간 멎다 가는 그런 사람은 아닌지... 그래서 저도 솔직히 걱정돼요."

"그래요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난 그런 사람 아니라 말하고 싶어요, 아니 달가운 말을 하면서 장담하기 보다 노력한다 말하고 싶어요! 처음 만났던 그 때 그 감정, 하루하루 간직하면서 조심조심 소중하게 할거라 말하고 싶어요, 사람 약속하고 깨지는 것이 다반사인데 내겐 그러치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이용당하고 아파할 만큼 다른 사람 아프게 하지도 않았고 이용하지도 않았어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드리고 하는 것들이 부담되면 말해요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도 용기라 하니까 저...분명 그럴 수 있을 거예요, 최소한 사랑하는 사람.... 사랑했던 사람에게 피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 잘 알고 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 나와 함께 할 수 없다면 그 사람 이해할 수도 있어요 아니 이해합니다. 그래서 바보 같은 사랑 바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

"정말 좋은 사람으로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무어라 말은 못하지만 하는 행동과 말에서 느꼈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줍은 말이나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저도 그러고 싶어요."

취하지 않은 술과 함께 용기를 빌어 이야기했습니다.할 말이 많았지만 정작 다하지 못하고 끝내 그 말은 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순간 아니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 그 말을 아직 들려줘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소중한 것입니다. 행여 술김에 그 말을 하면 술에 내 목숨을 맡기는 것과 매 한가지입니다. 아직은 그래야 합니다. 아무리 취하고 인사불성 되어 정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지경이라 해도 중요한 것은 그 사람과 그 한 마디입니다. 때가 되면 종속되어 함께 할 수 있다 약속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때 그 한 마디 들을 수 있는 그 사람...당신이길 진정 바랍니다.

기다림 혹은 절망수첩 9편

허락

하늘 날으는 새도 이 보다 행복하고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심해의 고기들은 꼬리 흔들며 더 깊은 곳을 향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깊은 곳을 알 수 없습니다. 비 내리면 흠뻑 취할 수 있어 좋고 햇살 가득하면 밝게 웃을 수 있어 좋습니다. 하늘보다 높은 그녀가 바다보다 깊은 사랑을 안고 달려와 안아 주었습니다.

자욱한 어둠 위로 새벽은 내려앉으려 몸을 뒤척입니다. 화려한 등 사이로 사람들 하나 둘 멀어져 가고 구석구석 고여있던 잔잔한 음 역시 새벽과 함께 사라져 갑니다. 벌써 수병을 비웠습니다. 그녀보다 더 많은 술잔을 기울였는데 흐트러진 사람은 내가 아닌 그녀였습니다. 그러나 바로 보는 눈빛만은 맑다 못해 날카롭기까지 했습니다.

"술 취했어요?"

"아뇨! 오빠보다 더 잘 먹는다고 말했는데...오빠가 취했죠?"

"취하지 않았으면 됐어요."

"더 먹을 수 있어요."

"아니 됐어요 그만하면 잘 먹어요."

"........"

"생각해 보면 어렵게 만난 거잖아요, 전에도 말했지만 쉽게 이어진 만남은 결코 아니잖아요! 서로 순간 감정에 치우친 것도 아니라 말했고 앞으로가 중요해요, 서로에게 상처되지 않을 사람이라 약속해요, 아직은 당신 잘 모르지만 최소한 당신께 해가 되는 사람은 되지 않을께요!잘할께요 아직 프로포즈하지도 못했는데...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프로포즈 준비하고 있었는데... 당신이 먼저 그렇게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요. 약속할께요! 오빠 영원이란 말보다 살아있는 동안 당신 사랑한다 약속할께요."

"그래요 오빠도 저 힘들게 하면 안돼요, 저 고집도 세고 심술도 센데... 오빠가 이해해줘야 돼요? 힘들어도 서로 이해하면서 그렇게 이어지는 거...약속하는 거예요!"

"네 약속할께요! 그런데 내일 당신이 기억하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 아침 되면 술김에 그랬다 말하고 다른 사람 보듯 피하면....?"

"걱정하지 말라니까요! 오빠보다 술 세고 하나도 안 취했어요! 오빠부터 챙겨요!"

"그럼 다행이고요! 아무튼 서로 존경하면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게 노력해요."

"네 약속할께요."

차갑게 버려졌던 볼에 그녀가 양 손을 감아 따스한 체온을 전해줍니다. 피가 역류하듯 온 몸이 달아오르고 붉어집니다.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돌려도 보지만 그녀 하는대로 가만히 있습니다. 볼에 닿은 촉감이 목을 타고 심장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집니다. 말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녀 손끝을 느끼고 싶었지만 너무 소중한 나머지 상상조차 기피했던 사람입니다. 양 손 가득 쥐어진 얼굴은 어쩔 수 없이 그녀 시선에 가 멎습니다. 그녀가 지그시 눈을 감고 입을 마주합니다. 어쩌면 여느 사람처럼 대하는 그녀일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너무 이른 입맞춤에 행복과 두려움이 교차됩니다. 그녀를 가슴에 안았습니다. 그리고 간절히 빌고 빌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없던 나를 일으켜 세워준 사람입니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행여 그럴 리야 없겠지만....떠나지 않게 함께할 수 있는 영광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십시오... 또 다른 힘듦의 짐 아직 남아있다면 내게 이런 감정 영원히 거둬 보내주지 마십시오....이익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탐욕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단지, 내가 사랑해도 좋을 단 한 사람을 간절히 바란 죄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함께 할 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일장춘몽

그리운 것을 그립다 말할 때 진정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형언의 것을 알지 못하나 기다리고 바라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행복일 것입니다. 한 참을 기다리고 한 동안 그리운 사람을 환영처럼 그려 사랑한다 말할 때, 들려주지 못한 가운데 사랑은 있습니다. 사랑 하냐고 묻는 질문만큼 어리석은 질문은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한 그 시간은 이미 사랑이 퇴화되기 시작한다는 흔적일 수 있습니다. 듣고 싶은 마음 간절하나 그 소리, 인내하며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 당신 진정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처음 만났던 그 날의 단비처럼 대지는 촉촉이 젖어가고 있습니다. 어제처럼 행복한 날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지고 안을 수 있다는 것이 이토록 큰 행복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그녀 사랑스런 이유를 하얀 백지에 적어보았습니다. 맑게 빛나는 두 눈 작지만 자신 있어 보이는 목소리 플롯연주자 커다란 키 가느다란 귀등등 처음엔 이런 것이 그녀 사랑하는 이유인 줄 알았습니다. 수 십가지를 적으면서도 또 다른 생각을 이끌어 내면서도 그녀 사랑하는 이유는 그런 부수적인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녀 사랑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의미? 의미 두게 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니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그녀의 모든 행동이 아름다워 보이면서 결국 내 삶까지 의미 두게 되는 사람.... 그녀 사랑하는 단 한 가지 이유였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거든요."

"네..."

"어디 있어요?"

"안양 집....에 가고 있...어요."

"네...."

"저 지금 바쁘거든요 다음에 전화할래요!"

"그래요 잘 다녀와요."

"네."

그렇게 그녀와의 통화는 짧게 끊겼습니다. 기차 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듯 했지만 기차속도 만큼이나 짧게 수화기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조금은 무거운 걸음이나 웃음 띤 얼굴로 걸어왔습니다.

기다림 II

하루 이틀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삼일을 기다립니다.

자꾸만 두렵다 못해 서글픔 마저 밀려오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녀가 부르지 않습니다. 전화를 하면 끊겨져 있고 자꾸만 음성 메시지를 재촉합니다. 아무 말 없이 돌아와 이 멜을 보냅니다. 수통의 멜이 가고 수 만통 그리움 보내보지만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지쳐갑니다. 삼일 째 되는 날 결국 긴 신호음이 이어집니다. 그녀가 받으면 무슨 말할까? 조금 화도 내보고 싶었는데 신호음 길게 이어지자 걱정하는 마음이 앞섭니다. 긴 신호음과 함께 수화기를 들었나 봅니다.

"여보세....?"

수화기가 내려졌습니다. 수신하는 와중에 끊긴 거라 생각하고 다시 동전을 넣어

기다립니다. 몇 초 되지 않아 나 역시 수화기를 내려놓고 경직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고객의 사정으로.... 없으니....남겨 주십시오」

한 약속에 한 사람 바란 죄 밖에 없습니다.

사랑이란 서툰 감정에 조금도 가식적이지 못했다.... 죄라면 그게 죄입니다. 다시는 이런 감정.... 순간은 행복에 도취되어 삶이 아름다우나 남은 삶 살아

가기에 힘겹습니다. 그러니 다시는 이런 감정.... 제게 보내주지 마십시오. 바라는 것도 없고 이길 자신도 없습니다. 그러니 제발....주지 마십시오!

1주일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한 통의 멜이 전달되었습니다.

수신확인!

제목 즐거웠어요....

; 미안해요 그런 사랑을 원한 건 아니에요!

; 그리고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 오빠 좋은 사람이고 우리 좋은 추억으로 기억해요!

; 어떠한 감정이었던 그래도 즐거웠으니 다행입니다!

; 어느 사람을 좋아한다는 거....전 아직 모르겠어요!

; 물론 사랑이라는 것도 믿지 않고....

; 건강하고 하시는 모든 일 행복하길 빌어요!

편지쓰기!

제목 (Re) 즐거웠어요....나 또한 그래요 그럼!

.....

그녀라는 말은 내게 낯설기만 합니다.

아직은 그녀라는 말을 준비하기엔 부족한가 봅니다.

그 사람이 편합니다.

조심스럽고 아직 오르지 않아서 그 사람....

내겐 오히려 편합니다.

그러나 그러고만 싶습니다.

슬픈 약속이지만....

그 사람...

부르고 싶지 않습니다.

의미 두기엔 자신이 너무 여립니다.

그래서...

간혹 감당할 수 없는 짐에

무척이나 힘들어합니다.

그러니

다시는...

그 사람 내게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슬픈 약속이지만....

지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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