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몇년이구나..
지금은 결혼해서 벌써 1년 3개월 차.
남편이랑 투닥투닥 거리면서 알콩잘콩 잘 살고 있음에도
가끔은 옛날 생각이 간혹 날때도 있다.
근데 그게 진짜 그립거나 보고 싶은 아련한 감정이 아니라..
"잘 살고 있나? 뭐하고 사나? 죽지는 않았나.." 이 감정
유난히 연애에 운이 없었다.
이유는 외모 컴플렉스.
엄청 못생긴 얼굴도 아니고, 엄청 뚱뚱하지도 않은데
항상 남보다 덜 예쁘다고 생각하고, 딱 그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다.
그래서 여자인 나를 동성으로 생각하는 남자 친구들도 많았고,
남자 애들이랑 같이 어울리는데 거침 없었다~
그렇지만 항상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약해지곤 했다.
너무 약해지는게 탈이였다.. 노예같은..?
근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 정말 매력없다.
또 한차례 찐한 짝사랑을 끝내고 회복되어 가는 중 어느 날..
친한 남자사람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다~
원래 남녀 사이 우정에 거침없는 성격이였기 때문에,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잘 웃고, 얘기 잘하고~
명랑 소녀 성공기에나 나올만한 환한 웃음을 날리고 있는데,
어떤 키 크도 어깨도 떡 벌어진 상 남자같은 아이가 말을 걸었다.
"전화 번호 좀 알려줄래?"
오..마잇..갓!
나에게도 이런 날이?
항상 외모 컴플렉스에 시달렸던 나는..
남자는 친구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내가 웃는게 예쁘고, 밝고 명랑한게 좋아 보인다는 한 사람이 생겼다.
전화번호를 넘겨주고, 조금 있다가 집에 간다고 나오니
옷을 주섬주섬 추스려 따라 나온다.. 그 사람.
집 앞에 데려다 주더라...
그게 첫 만남이었다.
첫 만남 후 진짜 첫 데이트는 마포 순대촌이였다.ㅎ
분당에서 버스를 타고 먼 신촌까지 따라가면서 너무 설레였다.
데이트 다운 데이트는 처음이였기 때문이다.
그 때가 26살 겨울이였다.. 12월..
잠깐 회사를 그만두고 전문 자격증 공부 중이였기 때문에
거의 독서실에서 은둔 생활을 했었다.
그 아이와 만난 후에는 무미 건조한 시간에 설레임의 순간들이 많아졌다.
첫 눈 오는날.
첫 눈이 오면 꼭 봐야 한다며 독서실 앞까지 찾아온 그 아이와
은은한 가로등 아래에서 첫 키스를 했다.
아주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내가 그 이미지를 미화 시켰을 수도 있지만,
그 순간..은은한 조명..휘날리는 눈 발..그리고 첫 키스.
정지된 영상은 내 머릿 속 작은 공간에 단단히 새겨져 있다.
점차 시간이 지나자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전문대 졸업 후 직장이 없었고, 본인 스스로의 조건과 환경에 대한
자격지심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직장이 없었기 때문에 돈은 없었고, 취직을 안하는 이유는 박봉으로 일하는 게 싫어서이다.
그 때 그 아이가 다니던 학교 교양학부 교수가 있었는데,
현실 보다는 꿈을 심어주는 스타일이였나 보다.
그 교수님은 현실에 방황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그 아이에게 어느 대학에서 진행하고 있는
철학 프로그램을 들어보라고 권유했다.
여름방학 동안 여러 대학 학생들이 모여 유명한 강사들을 섭외해 1년에 한번 씩
철학 특강을 몇 주간 했었던 걸로 안다. 거기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집행부에 들어 정말 열심히 활동 했던 것 같다.
문제는 거기 참여하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명문대 출신이나, 본인은 전문대 출신이기 때문에
의견이 받아드려지지도 않고, 발언 기회도 적다고 어떤 컴플렉스를 또 갖게 된 것이다.
세상은 정말 불공평하다.
그러나 노력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다.
나는 당시 명문대 대학원을 졸업하고, 전문 자격증을 준비하는 사람이였기 때문에,
그 아이가 가고자 하는 꿈과 현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학점 은행제 커리큘럼을 짜주고, 편입에 대한 정보를 알아봐 주고, 같이 공부해 줬다.
그러나 또 그 아이는 노력하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듣는 학점 은행제 수업은 항상 뒤쳐져 있었고, 꼭 따야하는 자격증 시험은
접수만 해두고 시험 공부를 하지도 않고, 보지도 않았다.
떨어지는게 죽기보다 싫어 시험을 안본다고 했는데 모든 자신없는 거에 회피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학점 은행제 수업을 대신 들어주고, 시험도 대신 봐주고, 레포트도 써줬다.
어느 순간 나의 첫 연인이라는 생각보다 잔소리 엄청 많이 하는 누나 혹은 엄마같은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그 당시엔 내가 정말 엄마였던 것 같다.
그 아이의 내재된 가장 큰 컴플렉스는 엄마가 없다는 것이였다.
엄마가 없다..
엄마가 없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주 어릴 때 엄마는 이 아이를 두고 떠났고,
아빠와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고 한다.
나는 더 크고 잘 될 사람인데 내가 지금 이런 시궁창 같은 현실에 살고 있는건
엄마가 없어서 그래.
...
그래서 엄마 역할을 대신 해주기로 했다.
잔소리 하고, 대신해 주고.. 뭐든 해주고..
그러면서 관계는 변했다.
그 아이 역시 나를 엄마같은 마음으로 대했던 것 같다.
절대 아들을 떠나지 않은 엄마처럼..
자기가 갖아보지 않았던 그럼 엄마의 모습을 나에게 기대했던 것 같다.
화가 나면 화를 냈고, 내 잔소리에 윽박으로 대했다.
그러면서도 조금 시간이 흐르면 먼저 연락을 해왔다.
너무나 많은 시간들과 신경이 온 통 그아이에만 있었기 때문에,
어렵게 합격한 1차 시험을 놔두고, 2차 시험 준비중에 취직을 했다.
이제 나는 돈을 벌기 때문에, 밥도 사줘야 하고, 책도 사줘야 했다.
책임감이 생긴것이다.
물론, 조금 다른 사랑이였지만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 맞다.
부산 출장 갔다 오는 날 새벽 우리 집에서 40분 거리였던
그 아이가 알바하던 편의점에 우유를 사다줬다.
부산에는 우리가 흔히 볼 수있는 서울우유가 아닌
부산우유가 팔았는데, 그게 신기해.
우유 종류별로 몇개 씩 챙겨 그 새벽에 갔다줬다.
부산에서 저녁먹고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새벽에 도착할 수 밖에 없었지만,
집에 가는 대신 그 아이가 알바했던 편의점으로가 우유를 건네주고 왔다.
니가 신기해해던 우유야..
그렇게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질수도 없는,
연인이라고 하기엔 로맨스는 부족한 관계로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28살 겨울..
2년의 시간동안 변한건 없었다.
나는 조금 더 바빠진 직장인이였고, 그 아이는 여전히 현실과 꿈의 차이에서 괴로워 했다.
그리고 여전히 연인같지 않은 연인으로 지냈다.
그러는 시간동안 많이 싸우기도 했고, 싸운 후 핸드폰을 두고 시골 할머니 댁에 가 며칠동안
있다 오곤 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소리 지르던 모습과 달리 부재중 100통..
마음이 약해져 또 다시 시작된다. 그 관계.
그러던 어느날
친한 친구가 그 아이가 다른 여자아이와 손을 잡고 가는 모습을 봤다고 한다.
제법 친한 사이인듯 허리도 두르고, 웃으면서 스킨십도 한단다.
처음엔 너무 화가났다. 어찌할 줄도 몰랐다.
그땐 네이트 판에 종종 글도 썼던 시기였기 때문에 네이트 판에 글을 쓰고,
다른 모르는 타인의 위로가 받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내 글이 네이트 판 첫 페이지도 올라왔다.
몇 백개의 댓글이 왔다갔다..
대부분 내가 바보다..ㅄ 같다 라는 말이였고, 맞는 말인거 알면서도 상처받아
글을 내렸다.
그리고 마음을 추스리고 전화를 했다.
너 내친구가 너 봤다고..
그리고 그렇게 인연은 끝이 나는 줄 알았는데...
그리고, 8개월이 흘렀나..
전화가 왔다.. 얼굴 한번 보자고.
지금의 남편이랑 막 처음 만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궁금했다. 너는 왜 나를 찾니? 좋은 일이 생겼니?
웃기지만 반가운 마음에 만났다.
엄청 멋있어져 있었다. 살도 많이 빼고, 얼굴도 많이 좋아지고..
나에게 꼭 살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연락했다고..
잘 지냈냐고 물었다...
지금의 남편은 정말 그 남자아이와 달랐다.
나에게 너무 헌신적이였고, 내가 노력할 필요없이 본인이 노력했다.
처음엔 별 마음 없었지만, 점점 고마움이 생겼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을 만나는 중간중간 그 아이도 만났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한 거다.
아마 지금의 남편을 좋아하기 시작한 순간이였던 것 같다.
그러다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이 왔다.
자기 인생에서 나는 동화였다고..
자기 인생이 너무 시궁창 같아서 더 못되게 하고 밀어냈다고..
엄마처럼 투정 부릴 수 있어서 고맙다고...
내 머릿속엔 아직도 그 아이의 번호가 있다.
가끔 생각나지만 절대 전화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항상 속으로 생각한다.
정말.. 니가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항상 자살을 생각한다고 했던 것 처럼 너무 감수성이 예민했기에..
제발 자살 같은거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잘 풀려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
나보다 더 잘 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