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에 관한 글을 올렸던 '17세 여고생'이라는 분께 부탁이 있습니다.
우연히 그 글을 보고, 거기에 써 있던
무수한 댓글들과 응원의 메세지를 읽으며 뜻밖의 위로를 받은 한 사람입니다.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보신다면
댓글들만이라도 남겨달라는 부탁을 드립니다. 본인의 글이 거짓이었다고 해도 그 안에서 위로해 주고 저처럼 위로 받았을 많은 사람들은
진심이었을거예요. 그 '17세 여고생'이 걱정 되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지만, 거짓이었다면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할게요. 그러니 할 수만 있다면, 본인 글은 지우더라도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은 남겨주세요.
아래에 쓴 글은 몇 시간 전에...적어둔 글인데 여기에 같이 남깁니다. 그냥 제 경험과 생각입니다. 생각은 많은데, 정리는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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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이 글을 보고, 댓글들도 다 읽어보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큰 위로를 받아서, 처음으로 저도 글을 남깁니다.
중학교 1학년 때 시작해서 3학년 때 까지 이어진 '왕따'에서 제가 겪은 일들 하나 하나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나는게 새삼 신기하네요. 눈길만 마주쳐도 큰 소리로 욕하고, 뒷자리에서 끊임없이 비난하고 조롱하고, 신경성 장염으로
고생하던 어느 날, 조퇴하는데 문 까지 따라와 박수를 치면서 웃고...언제부터인가 툭하면 점심도 굶었어요. 어린 나이였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어서 혼자 먹긴 싫었나봐요.^^
1학년 때에는 너무 갑작스럽고 힘들기만 해서 매일같이 울었어요. 저와 집
방향이 같아서 등하교를 같이 하며 친해진 친구까지 괴롭히며 왕따를 시키려고 해서 결국 그 친구를 멀리했는데, 하루는 혼자 집에
가는 길에 학교에서 좀 떨어진 전봇대 뒤에서 숨어서 저를 기다렸다가 같이 집에 가자고 나오는 그 아이를 보고 길에서 주저앉아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2학년 때에는 더 심해져서 부모님까지 들먹이며 괴롭히길래 더 이상 참지 않고 싸움닭처럼
싸웠어요.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었나봐요. 키도 작고 힘도 없던 제가 저보다 훨씬 키도 크고 힘있던 아이들을 상대로 악을 쓰면서
싸웠으니까요. 폭력을 수반한 왕따가 심한 지금처럼 그 때 저도 맞고 그랬다면 아마 수치심과 우울감에 죽었을지도 몰라요...
그 때 왕따를 주도하던 세 명은 지금
해외 봉사활동을 다닌 경력으로 공공기관에서 일 하고 있고
한 명은 소위 '대기업'에 다니고
또 한 명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참
이상하죠. 나를 그렇게 천사처럼 대해 주었던 친구는 고등학교를 어디로 갔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고, 내 이름만큼이나 흔한 이름을
가져서 아무리 인터넷으로 검색해도 찾아지지가 않는데, 기억에서 잊고 있던 그 사람들은 특이한 이름 때문에 인터넷에서, 신문에서,
혹은 누군가의 SNS에서 그렇게 인상좋게 웃는 얼굴로 나타나니 말이예요!
저는 그 때의 일을 주도한 당사자들이
저에게 사과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혹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별로 심하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며 살지도 몰라요. 하지만 괜찮아요. 사과는 받는 사람이 용서할 마음이 있을 때 하는게 맞겠죠.
그들을 어디에서 마주치지도, 그들에 대해서
듣고싶지도 않고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여기 글들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언젠가 꼭 한 번 마주쳐서, 그들이 먼저 나를 아는
척 하고 말 걸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말 해 주고 싶은 말이 있거든요.
"19년 전에 나를 죽여 놓고 지금 내가 네 눈에 보이니 이 살인자야."
지금 생각해 보면, 당하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제일 힘든 것 같고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것 같기 때문에 '나중에 더 잘 될 것이다, 결국 그 사람들은 후회하게 될 것이다'등의 위로가 마음에 잘 와 닿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지옥같은 시간을 견디고 다 극복한 뒤에 미래에 마주하는 현실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나를 괴롭힌 이들이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 보고싶었는데 너무 잘 살고 있고, 커서 사귀게 된 친구에게 어렵게 자기의 왕따
경험을 이야기 했는데 오히려 나를 멀리 하거나 측은하게 다루고 '뭔가 너한테 문제가 있었겠지' 하면서 조롱할 수도 있고, 여기
많은 분들이 썼듯이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왔는데도 직장에서 동료를 괴롭히며 왕따를 시키고 있고 등등, 참 냉정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너무 당연한 말 같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구와도 상관없이 내가 나 자신에게 더 크고 무한한
관심을 주면 좋겠어요. '나를 괴롭힌 이들에게 보란듯이 성공해서 복수하겠다' 그런 생각은 사실 타인을 중심에 둔 것이니까요.
성공의 의미는 생각보다 다양해요. 좋은 대학, 돈과 명예, 외모 등이 목표가 되면 내가 그것을 성취하지 못했을 때 마치 내가
실패자가 된 것 같지요.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노력해서 이루었을 때에는 그것이 꼭 학벌이나 다른 대가로 이어지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물론, 그것이 마치 전부인 듯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 해
주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은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내가 원해서,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잘 하고 싶어서'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요. 이렇게 나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기적인 것 과는 아주 달라요. 이미 오랜 시간 자책감과 낮은 자존감으로
고통받았잖아요. 누군가가 밉다고, 질투난다고,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그 사람을 괴롭히지 않았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나은
사람입니다.
이 판에 있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수 많은 분들의 응원과 공감하는 글에서 보듯이 '나는 왕따를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지만, '그들'은 그럴 수 없어요. 혹시라도 지금 그 일을 겪고 있다면, 그래서 그 누구보다 힘들 분들, 꼭 행복하시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