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 엄마는 중학교때 어머니를 여의셨는데
큰딸이라 줄줄이 달린 5명의 동생을 다 키워야 했어요.
없는 살림에 애들 보면서 다행이 고등학교까지는 마치시고,
서울 사는 이모할머니가 일자리 주선해주셔서 상경하셨는데
양품점 일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서 근처 태권도장에 일하고 있던
울 아빠님께서 엄마의 미모에 홀랑 반하셔서 후딱 낚아채셨죠!
엄마는 전라도 여자, 아빠는 경상도 남자.
처음으로 시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엄마의 마음속엔
지역감정에 대한 걱정보다...
어미 없이 자라서 본데없이 군다고 할까봐 두려우셨대요.
그런데 저의 할머니께선 엄마 사정을 들으시곤
아유 이 불쌍한 것 아유 이 불쌍한 것
하시면서 구들장 아래 쌈지돈도 쥐어주시고
내 아들이 속상하게 하면 밥상을 엎어 버리라면서 ^^;
엄마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기로 하셨어요.
흔히 시어머님들이 하시는 딸처럼 여기겠다는 말,
하지만 할머니는 그 말씀을 정말 지키셨어요.
아니 오히려 진짜 딸인 고모들보다 엄마를 더 이뻐하셨어요.
엄마가 첫째(저의 언니)를 임신하자
할머니는 한달음에 서울로 달려오셔서
몸 풀 때까지 엄마를 돌봐주셨어요.
아빠는 사업을 시작하셔서 밖으로 많이 도셨고
친정 어머니도 없는 엄마에겐 구세주였죠~
20시간 넘게 진통을 하고 첫째딸을 낳았을때도
양수가 터진줄도 모르고 있다가 급히 잡아탄
택시에서 애를 낳을뻔한 때도 (예, 저예요 -_-)
연달아 계집애를 낳았다고 집안 어른들은 물론
아버지도 실망을 감추지 못하시던 그때도
할머니 만큼은 엄마 곁에 계셨대요.
할머니가 어찌나 잘 챙겨 먹이시고 하셨는지
우리 엄마는 친정에서 챙겨준 사람들 못지않게
완벽한 산후조리로 지금도 건강하시답니다 ^^;
고모들한테도 안 주시는 참기름이며 들깨가루며
모래속에 숨겨놓은 알밤, 마당에 주렁주렁 홍시도
엄마가 시골에 가는 날만, 우리에게만 따주셨어요.
시골 마루에 누워서 할머니가 수저로 퍼주시는 홍시를
낼름 낼름 받아먹다 변비에 걸렸던 기억이 나네요 ㅋ
그런데 그렇게 좋으신 할머니께서 너무 일찍 떠나셨어요...
제가 5살이 되기도 전에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지금도 할머니 제사 지내는 날이면
금방 눈 앞에서 부모 여읜 사람처럼 너무너무 서럽게 우세요.
그래서 어릴땐 고모가 엄마를 때리나보다 했어요 ㅠㅠ
지금도 가끔 할머니가 울 엄마 꿈속에 나타나시면
꼭 뭘 주렁주렁 들고 나타나셔선 울 엄마한테만 주신대요.
몇 해 전에는 할머니 산소에 차례지낼때 뿌려놓은
술 냄새를 맡고 멧돼지들이 비석 밑을 파놓았는데,
아무도 몰랐는데 울 엄마 꿈에 나오셔서 알게되었어요.
어쩌면 피 한방울 안 섞인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저렇게도 서로의 영혼을 가깝게 느낄까,
두 분은 전생에 무엇이었을까 싶기도 해요.
엄마랑 TV를 보다가 가끔 잃어버린 가족 찾는 프로그램 보면
엄마가 그러세요. 그래도 저렇게 살아있으니 찾기라도 하고,
만나서 왜 날 버렸냐고 화라도 내고,
너땜에 내인생 망했다고 원망이라도 하지...
나는 어머니 두 분이 다 돌아가셔서 고맙다고 하고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 ㅠ.ㅠ 그럴때 엄마는 너무 쓸쓸해 보여요~
물론 이런 고부관계는 흔치 않고 (사실 거의 없고;;)
대개의 경우 시어머니가 마음 써주시면 써주실수록
오히려 불편해지고 눈치보이는게 며느리 맘이긴 하지만 ^^;
이것도 내가 살면서 맺은 인연 중에 하나인데
서로 부족한 건 가엽게 여기고 넘치는 건 고맙게 여기면서
저의 할머님과 엄마처럼 애틋하게 살면 좋겠어요.
마무리가 안되네요 ㅎㅎㅎㅎ 맛있는 점심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