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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오해

닉넴 |2014.11.20 01:11
조회 96 |추천 0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이혼하셨다. 내가 아직 어린이집도 다니지 아닐 적에. 그러고 7살 때 쯤 부터 어머니는 재혼을 하셨고,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마음 없이 그저 두 분의 일일뿐 하며 대수롭지 않아했다. 비록 새아버지와 그 자녀들과 같이 지내면서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것역시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고 중학교때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아버지가 중국인과 결혼을 했고 중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 새어머니먼저 중국으로 넘어가고 그 후에 아버지가 중국으로 가는 것이 계획 이였다. 그러고 나는 새어머니와 같이 먼저 중국으로 갔다. 중국으로 가기 전에 두려움이 있었던 나는 처음엔 중국에 가는 것이 싫었다. 어머니는 자식이 유학의 길을 걸어 세계적인 인물이 될 것이란 기대감을 가지고 나를 설득하셨고 어머니의 설득에 나는 작은 다짐을 하고선 중국으로 갔다. 나는 학교에서 공부도 착실히 하고 친구들과 사이도 좋고 선생님도 한국 애들은 전부 우수한 학생이라는 인식을 안겨줄 만큼 나는 열심히 생활했다. 하지만 그때 나의 노력은 나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을까. 그래도 내가 중국 유학을 실패하고 왔을 때 변명거리는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버지가 만난 그 중국여자가 문제였다. 그 여자의 사상은 내가 생각하는 정상이 아니다. 나라가 달라서 사상이 다른 것 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라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그여자는 착실하게 유학생활을 잘하는 나를 이쁘다고 칭찬했다. 그러면서 그여자는 우리 어머니가 나를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아버지에게 나를 넘긴 것이라고 했다. 한번 두 번 .... 그 말을 들었을 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중학교 3학년이 될 때 까지 고생하며 키우셨으니. 부모 둘 다 살아있는데 자식을 같은 시간에 돌보지는 못하더라고 같이 책임지는 일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 아닌가. 난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다. 어머니를 미워해야 하는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러고 그 여자는 어느 날 자신의 희끗희끗한 흰머리를 베란다에서 염색을 하며 말했다. 우리 부모님이 이혼한 이유를. 나의 아버지는 돈을 많이 못 벌 때 어머니는 배짱을 부리며 계속 카드를 긁었고 나중에는 여유 있는 남자와 바람이 났다고 했다. 바람을 피면서 나와 아버지는 집에 두고 나보다 7살 많은 오빠와 같이 모텔에 가서 그 바람난 남자와 잤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이해를 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 오빠가 얼마나 충격을 먹었을까. 오빠를 걱정했다. 이런 식으로 2년 동안 그 여자는 나에게 계속 좌절감을 안겨주었다. 나에게 우리 어머니는 너무나 나쁜 그런 사람 이였다. 그러고 중간에는 갓난아이였을 시적의 나와 이쁘디 이쁜 어머니가 같이 웃고 있는 사진을 불태웠다. 그 여자는 나에게 어머니와의 인연을 끊으라고 했다. 과거의 나를 모두 지우라고 그랬다. 그래서 그동안 한국에서 친구들과 주고받은 모든 편지들 가족사진들 모두 다 버렸다. 그때는 그 행동이 얼마나 후회될지 몰랐다. 그 뒤로 나는 내 마음을 구석으로, 구석으로 몰았다. 슬펐다. 그러고 점점 나는 방황했다. 방황의 끝은 그 중국 여자로의 버림 이였다. 어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으로는 부족했는지 나중에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 치욕감을 주는 행동, 나를 뻔뻔한 사람을 만드는 행동, 세상에는 아무도 없이 나 혼자라는 것을 좌절감을 통해 알려주는 그런 여자였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의 17년 인생은 이리도 고달플까 항상 고민했다. 그러다 마음에 병이 왔다 정신에도 병이 왔고 몸에도 병이 왔다. 난 아직 20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앞으로 중국에서의 2년만큼 더 힘든 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평생.

내팽겨쳐진 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으로 다시 가는 날까지 그 중국 여자는 어머니를 욕했고 2년전과 달라진 것은 나를 같이 욕하는 것 이였다. 죽고 싶었다. 용기가 부족했다. 지금은 그때의 겁에 감사하지만. 그러고 한국으로 온 뒤로도 1년이 넘도록 어머니를 미워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마땅히 지낼 곳 이 없어 이곳저곳 얹혀 지내면서 나는 나중에 커서 절대로 어머니 같은 부모가 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수도 없이 다짐했다. 그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어머니를 이해하지 않을 것 이지만 미워하지는 말자’ 라는 생각을 할 때 쯔음 우연히 이모와 대화를 했다. 시작은 할아버지 이야기였고 흐르고 흐르다가 어머니 이야기 까지 나왔다. 중국에서 그 중국 여자에게 들었던 그이야기들을 했다. 이모는 분노하며 눈물을 흘렸다. 모든 것이 내 오해였다. 중국에서 2년 동안 그 중국여자가 어머니와 관련된 것 외에 나에게 정상인은 할 수 없는 행동을 한 적 이 많아서 미친 여자라고는 알고 있었다. . 미친 여자인 것을 알았을 때 어머니를 원망하는 것을 그만 두었어야 했다. 2년 동안 바보처럼 쇄내 당해서 내 인생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을까 후회된다. 그 미친 여자가 나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을 때 내가 더 힘들기 전에 부모님에게 말해서 한국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부모님이 날 믿어주지 않고 가슴 아파하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둘 것 같아서 말하지 못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던 때에는 그 미친 여자가 날 한국으로 보내서 어쩔 수 없이, 차마 버리지 못해 받아 주는 줄만 알았다. 난 정말 불효자다.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옛말로 보쌈 당해서 결혼을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셨고 어머니는 그 사랑이 힘겨웠다. 두 분이 이혼하신 이유는 다만 둘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아버지는 그 시절 철이 없으셧고 어머니는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혼 후 어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어머니는 힘겹게 견뎌 내셨다. 그러다가 지금의 새아버지를 만났는데 새아버지가 집착을 하셨다. 어머니는 재혼할 생각이 없으셨다. 그래서 어머니는 멀어지길 원했지만 그 남자는 어머니의 가족을 들먹이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고 바보 같은 우리 어머니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셨다. 그리고 그 남자의 자식은 나와 우리오빠와 같은 또래, 딸 둘이였다. 안쓰러운 마음이 든 것이다. 그러고 재혼을 했다.

나의 어머니는 삶은 고생이 많았다. 그 순간순간 가장 이상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어머니는 날 한번도 사랑하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아버지와 이혼을 하시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힘들었을 때에도 나를 포기한 적이 없으셧다. 내가 중국에서 어머니를 서서히 미워하던 그 순간에도 나의 어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딸 자랑을 하시면서 두 눈이 반짝이셨다고 한다. 왜 나는 중국에서 그 미친 여자의 이간질을 들으면서 어머니를 믿어보려 하지 않았었을까. 왜 나는 중국에서 미친 여자의 말이 사실이냐면서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따져보려 하지 않았었을까. 그랬다면 달라지지 않았었을까? 후회만이 가득하다.

그러고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오해와 나쁜 감정들은 이모와의 대화로 사라졌다. 어쩌면 내가 중국에서 힘들었던 시간을 어머니 탓을 하고싶은 마음에 여태 피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는 다짐했다. 어떻게든 크게 성공 할 것이라고. 꼭 성공해서 어머니 호강시켜 드려야겠다고 말이다. 앞으로는 어머니가 가슴이 아파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내가 그렇게 할 것이다.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이시점부터 하지않고 사랑한다는 말과 고맙다는 말만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내가 글재주가 없어서 나의 생각을 온전히 글로써 전하는건 어렵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멍청한 여자라고 비판 하는것도 좋지만 나는 이 글이 무언가에 도움이 되는 글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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