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방탈 죄송합니다. 여기가 사람들이 더 많이 볼 것 같아서요.
최근에 어린아이와 비행기에 탑승하면서 미리 사과하며 승객들에게 캔디와 귀마개를 나누어준 아기엄마의 글이 뜨는 걸 보았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개념있다고 칭찬을 많이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것에 대해 미국 Today Parent 라는 유명 웹사이트에 Rebecca Dube 라는 시니어 편집장이 글을 올렸는데요.
이렇게 이야기를 한 사람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어서 흥미로워서 퍼왔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번역 이해해주세요 ^^;;
아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줄 지도 모르는것에 대해 미리 사과하며 같은 비행기 승객들에게 구디백(사탕과 귀마개)를 나누어준 두 초보 부모의 착한 행동이 요즘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친절하고 사려깊다. 또한 잘못됐다.
아기들은 아기들이고 어쩔땐 울기도 한다. 모두가 그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이 러블리한 초보 부모들에게 악의는 없다. 친절한 행동을 했고 사람들을 웃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위험한 트렌드의 일부이다.
사람들이 아이가 있다는것에 대해 사과하거나 사과해야 하는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 말이다.
초보 부모들, 내 말을 믿어도 좋습니다. 당신들은 당신 아이들의 삶동안 그들의 행동에 대해서 사과하고 올바른 매너를 보여주고 공손함을 가르쳐야 할 정말 많은 기회들이 있을겁니다.
아직도 목소리를 낮추는 법을 배우고 있는 말썽꾸러기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엄마로서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쓰게 될 일은 아주 많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기를 데리고 비행기에 탈땐, 괜히 기대하지 마세요.
내 가족과 비행기를 같이 탔다는 이유로 사탕을 받게되지 않을겁니다.
귀마개를 원하시나요? 가방에 챙기고 다니세요.
제 가방에는 제 좌석밑에 쑤셔넣을수 있도록 20키로쯤이나 되는 아기용품들이 꼭 눌려있어요.
소음 제거 헤드폰의 개념을 이해하는 어른들을 위한 캔디는 포함되있지 않죠.
단지 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을 주진 않아요.
여기에 부모가 책임이 있다는건 사실입니다.
비행기에서 제 아이가 울지 않을 수 있도록 난 최선을 다 할거에요. 정말이에요, 제 아이 우는 소리는 당신보다 제가 더 싫어요. 게다가 바로 내 귀에서 십센치 거리거든요.
아이를 달랠수 있는 저의 요령을 다 써버렸을때 나는 아이를 안고 통로를왔다갔다 하거나, 아이를 흔들어주거나, 흥얼거릴겁니다.
나와 눈이 마주친다면, 전 당신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어쩔수 없네요 하는 사과의 미소를 보낼것이고, 당신은 나에게 괜찮아요, 힘내요. 하는 동정의 눈길을 보내면 됩니다.
이걸 사회계약 (사회적 합의) 라고 부르죠. 당신이 대신 눈을 굴린다거나 째려본다면 당신은 이 사회계약을 깨는겁니다.
왜냐하면 아기는 어쩔 수 없으니까요. 어쩌면 아기는 귀가 아프거나, 이가 나고 있거나, 스카이몰이 무섭거나, 아님 이 고철통에서 4시간이나 있는게 질렸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굳이 뭔가 말을 해야할것 같으면 “아, 아기 불쌍해. 도와드릴게 없을까요?” 가 좋은 선택입니다. “저 애기 왜저래요?” 가 아니구요.
누군가 나에게 초콜릿같은게 담긴 봉지를 준다면 정말 신날거에요. 난 공짜캔디를 거절하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떤 부모들은 개념없이 식당 한가운데 아이 똥기저귀를 놔두고, 또 어떤 부모들은 정상적인 아이의 행동에 사과를 하고 다니는 극과 극의 이상한 문화 속에 있습니다. 여기에 타협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상식이라는 거죠.
초보 부모님들,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공익 광고입니다.
아이들의 삶동안, 당신의 아이들은 울고, 부적절한 때에 떼쓰고 주변사람들 보기에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냄새를 풍기고, 가만있지못하고, 너무 어린애같은 행동을 할겁니다.
고개를 드세요. 미소를 지으며 정중하세요. 그러나 사과는 하지 마세요.
아이가 없는 사람들에게:
모두가 나만큼 내 아이들을 예뻐하지 않는다는걸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할 필요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우리를 너그럽게 봐줘야 하고 기본적인 인간 존중의 마음으로 우리를 대해야해요. 내가 캔디를 주지 않더라도요.
아마, 구디백을 받는 것 대신 당신도 한때는 우는 아기였고, 당신의 엄마도 한때는 당신을 안고 돌아다니고, 흔들어주고, 노래불러주고,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동정하고 있는지 아님 경멸하는지 눈치를 보며 지금의 나와 같은 처지에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수 있겠죠.
말을 좀 직설적으로 하긴 했지만
이 분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는지는 이해가 되는데요.
한번쯤 읽어볼만한 기사가 아니였나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