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 장훈.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쌓아올린 기록은 어마어마하다. 일본 프로야구 23년간 통산 2752경기에 출장해3085개의 안타와 504개의 홈런, 1676타점을 기록했으며,일본 프로야구 명예의 전당에까지 헌액되었다.
그러나 그는 평생 일본의 끊임 없는 귀화 제의에도 끝내 고개를 저었다. 일본에 사는 그의 현재 국적은 그래서 한국이다. 그가 귀화 제의를 거절함으로써 걸어야 했던 길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이었다.
단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죽 한 번 먹지 못하고 죽어가는 누이를 피눈물을 흘리며 바라봐야 했고 자신 일생의 고교 시절 소원이었던 고시엔의 꿈을 한국 국적이라는 이유로 접어야 했다.
'조센진(조선인) 따위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우승할 수 있다'는 감독의 결정으로 일생의 꿈이었던 고시엔 출전이 끝내 좌절되던 날, 밤새 양손에 살갖이 벗겨져 피가 범벅이 되도록 분노의 방망이를 휘둘렀다.
어린시절 오른손에 화상을 입어 손가락 두 개가 붙어버린, 야구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장애를 피나는 훈력으로 극복했고, 중고교 시절 '조센진'이라며 멸시하는 일본인들을 주먹으로 두들겨패며 '단바라의 깡패'로 악명을 떨치기도 했다.
일본 프로야구단에 입단을 하며 거액의 계약금을 안겨드렸지만 '귀화를 해야만 야구를할 수 있다'는 소식에 "편하게 살자고 조국을 버리는 그따위 짓을 하려거든 당장 야구를 때려치고 히로시마로 내려와라!"고 호통을 치시는 어머님 박순분 여사의 뜨거운 민족애는 그를 만든 자양분이었다.
일본인들은 그런 장훈의 당당함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들은 장훈 선수가 타석에 서기를 기다렸다가 "조센진 꺼져!"라고 외쳐댔다.
한 두 명이었던 그 목소리는 순식간에 관중석 전체에 울려댔고, 결국 장훈 선수는 배트를 내려놓고 다시 대기석으로 들어가야만 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잠시 후, 관중석이 잠잠해지자 장훈 선수가다시 타석에 섰다. 그리고는 말했다. "그래, 나 조센진이다. 그게 뭐 어떻다고?"
그리고는 날아오는 공을 향해 배트를 날렸다. 딱! 그 순간, 모두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장외 홈런이 터졌다. 그는 자신을 조센진이라고 욕하는 일본인들을 향해보란 듯이 통쾌하게 한 방을 날린 것이다.
'조센진'에게 고의사구를 줄 수 없다며 오기로 승부를 걸어오는 투수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결과는 비참했다. 결국 장훈은 이후 4년 연속 고의사구를
가장 많이 얻어냈으며 투수들이 가장 기피하는 타자로
그 명성을 떨치게 됐다.
선수생활 거의 마지막 시기였던 1976년부터 일본 야구의 심장이라 불리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장훈은 전무후무 한 대기록 3000안타를
불과 30여개 남겨두고 롯데로 트레이드 된다.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드였다.
장훈이 있는 동안 요미우리는 두 번의 우승을 해냈다. 요미우리에서 뛰는
4년 동안 왕정치와 함께 'O.H 타선'을 이끌며 세 번이나 3할 타율을
기록하는 등 우승에 큰 공을 세웠고
팀을 위해 부상까지 참고 경기에 나섰던 장훈이었다.
그러나 장훈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팀에서 박수를 받으며
대기록을 세우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요미우리는 한국인 장훈이 일본의 심장에서 대기록을 세우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요미우리가 장훈을 트레이드 시킨 곳은 한국인 구단주가 있었던 롯데였다.
" 그곳에서 대기록을 세우는 것이 자네에게도 그리고 모두에게도 좋네. "
하세가와 요미우리 대표의 말은 이미 노장이 되어버린 장훈의 가슴속에
비수처럼 꽂혀왔다.
20년을 넘게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어왔지만 여전히 자신은 철저하게
이방인이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난 수 십 년 동안 당해온
일인데 그다지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는 결국 롯데에서 그의 선수 인생 통산 3085 안타를 친 후 은퇴했다.
세계 야구 역사에서 통산 타율 3할 500홈런, 300도루 이상을 달성한 건
장훈과 미국 메이저리그의 윌리 메이스밖에 없다.
이런 장훈을 향해 이제는 일본 야구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스즈키 이치로조차도 존경한다고 밝히고 있다.
(오마이뉴스 이정래 기자의 글과 http://blog.daum.net/munandcom/17436468을 토대로 정리하였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