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안 가족들과 함께 유럽 여행 다니던 중 일식당에서 어이없는 일을 겪어 글을 씁니다.
피렌체에 도착했을 때였습니다.
여행 중반부였고 아빠 혼자 운전을 계속 하셨기 때문에 지쳐있던 중이었습니다.
피자랑 파스타만 먹기도 질리던 차였고 뭔가 뜨거운 게 먹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던 중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에서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로 가는 길목 가운데에 일본 라멘가게가 있더라구요?
근데 저녁 7시부터 10시까지만 영업한다고 쓰여 있길래 일단 기억해두기로 하고 하루 종일 관광을 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날 무렵 배가 슬슬 고프길래 아침에 본 라멘가게에서 오랜만에 뜨거운 국물 먹자~ 하면서 아빠와 저 둘이서 라멘가게로 향했습니다.
일과를 마친 시간이 좀 늦은 시간이어서 라멘가게에 도착하자 시간은 저녁 8시 50분경이었습니다.
라멘 가게에 발을 들이려 하자 종업원이 주문을 더이상 받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영업시간 종료까지 한시간도 더 넘게 남았는데 벌써 주문이 마감되었다는게 잘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외국이니까 한국에서처럼 모든게 빨리빨리 처리되지는 않으니까 그럴만도 할거야 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때까지는 영업시간도 짧고 가게 안에 사람도 많아 보였기에 얼마나 맛있는지 궁금하다는 승부욕도 조금 타오르기도 했고요.
다음날 저녁 이번에는 엄마랑 저 둘이서 라멘가게로 향했습니다. (아빠는 동생이 라멘 먹기 싫대서 다른 식당에 가느라 못 가심)
어제처럼 퇴짜 맞을까봐 일부러 영업시작시간보다 좀 일찍 가서 줄서서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저희 말고도 사람이 많아서 오 여기 진짜 맛집인가보다. 어제 우연히 찾은게 운 좋은거였나보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테이블에 앉아 미소라멘과 미소차슈라멘 그리고 교자를 주문했습니다.
근데 저희의 주문을 받는 여주인의 표정이 상당히 찡그려져 있더라구요.
주문도 굉장히 성급하게...점심시간대의 패스트푸드점에 온 줄 알았어요.
오픈하자마자 손님이 몰려 그렇겠거니 하면서 가게를 두리번거리는데 저희가 오고 나서 도착한 일본인 손님들의 주문을 받는 여주인이 보였습니다.
환한 미소로 응대하는 여자를 보며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모국인 손님이니 반가울 수도 있겠거니 하면서 넘겼습니다.
그런데 다른 서양인 손님의 주문을 받는 여주인의 얼굴은 역시 환했습니다.
내가 너무 소심해서 그렇게 안좋게 느끼나보다 라고 생각하는 사이 음식이 나왔습니다.
약 20~30분정도 기다렸습니다만...
그정도 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것치고는 솔직히 정말 맛이 없었습니다.
미소라멘의 국물은 미적지근하고 미소된장이 제대로 풀리지도 않은 것같은 이상한 맛이었고
제가 주문한 차슈라멘의 차슈는 딱딱하기가 족발 살점을 먹는 것같았습니다.
일식을 무척 좋아해서 이런저런 가게에서 많은 종류의 라멘을 먹어봤지만 차슈가 이빨로 뜯기지 않아서 젓가락으로 분리해야 했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국물에 담가져 나온 양배추도 너무 딱딱하고 두꺼워서 잘 씹히지도 않았구요.
정말 불만족스러웠습니다만 엄마랑 같이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식사를 거의 끝마친 때에 또다시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엄마가 잠시 화장실에 가시며 카메라 가방을 놓고 가셨습니다.
혹시라도 고가의 카메라가 도난당할까 두려워서 식탁 아래에 놓고 가셨는데
갑자기 여주인이 인상을 쓰면서 다가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무슨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자 가방을 치워달랍니다.
식탁 아래에 놓았는데...라고 말하자 가방끈이 삐져나와 서빙하는 직원들에게 방해가 된대요.
아 그러냐, 알겠다 하고 가방끈을 잘 갈무리해 바닥으로 흘러내리지 않게 고쳐올렸는데
30초도 지나지 않아 더욱 인상을 쓰며 다시 다가오는 여주인...
그렇게 식탁 아래에 놓지 말고 의자 안쪽으로 치워달랍니다.
솔직히 정말 어이가 없었습니다.
의자 안쪽으로 치우면 좁은 가게 특성상 다른 손님 테이블하고 거의 한 테이블처럼 맞닿아있는데 다른 손님 짐을 밀어내면서까지 우리 가방을 놓을 정도로 공간이 넉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자리에 앉아계실 때에는 아무 말 없다가 왜 지금 와서 큰소리인지...?
흡사 어른이 자리를 비우니 그나마 어린 제가 만만해보여 이런 소리를 하는 것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가방을 원하는 대로 치워주고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데 바로 옆의 서양인 여자들이 앉은 테이블로 가서 언제 큰소리를 쳤냐는 듯이 환하게 미소짓는 여주인...
정말 이중인격이 따로 없더군요.
그 여자들 배낭도 상당히 크고 직원들 통로 가까이 놓여있는데 거기에 대해선 할말이 없었나보더라구요.
먼 타지 와서 이탈리아 현지인한테도 당한 적 없는 인종차별을 같은 동양인인 일본인에게 당하고 있자니 정말 열받아 죽는 줄 알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그동안 일본인이 더 좋냐? 중국인이 더 좋냐? 라는 질문에 일본인이 조용하고 예의가 발라 좋지 않느냐...하는 식으로 생각해왔습니다.
어릴 때 아버지 해외연수로 일본에서 1년 넘게 현지인 학교도 다녀봤고 일본에서 좋았던 기억이 많기 때문에 이 일이 있기 전까지는 일본인에 대해 상당히 우호적인 태도를 가져왔고요.
먼나라 이웃나라 보며 일본인의 혼네 다테마에 이런게 말이 돼? 사람은 다 겉마음 속마음 있는거지 굳이 일본인의 겉마음 속마음을 가지고 국민성이라고 하는건 솔직히 과장 아닌가ㅋㅋ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번 일 겪고 나니 일본인의 두 얼굴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인듯합니다.
같은 동양인에게만 친절하고 서양인에게는 불친절해야한다...라는게 아니라
동양인이건 서양인이건, 손님한테는 친절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자기들이 무슨 서양인인 양 동양인 손님을 무시하고 깔보는 모습이 꼭 국사 시간에 배운 일본인들의 탈아입구 정신 같아서 정말 기분 더러웠습니다.
(탈아입구: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구라파)에 들어가자)
몇년 일찍 근대화가 된 거 가지고 아직까지도 유세 떠는거 보면 정말 역겹습니다.
그동안 은근히 중국인들에 대한 편견을 가져왔던 저인데 반성해야겠습니다.
중국인들이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오히려 그게 솔직하고 좋아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적어도 일본인처럼 교활하게 인종차별을 한다던가 기분나쁘게 차별대우를 한다던가 하지는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