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이병은 머릿속으로 방금 전 상황을 되짚어보았다. 박 병장이 훈계 비슷한 얘기를 마치고 들어가서 자라고 한 것까지는 여기 있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누가 들어갔냐고 묻는 대답에 당연하다는 듯이, 그래서 어이없다는 듯이 박 병장이라는 대답을 꺼내어 놓을 수는 없었다. 사실이 어떻든 간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 건 무엇인가에 굉장히 화나있어 보이는 강 일병이었기 때문이다. 아득한 기분 기저에 있던 맨 정신을 다시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때 강 일병이 다시 입을 뗐다.
“윤정현”
“이병 윤정현.”
“너 대기 어제까지 아니였냐?”
“예.. 맞습니다.”
“근데 오늘 왜 인원파악 안 해?”
강 일병의 입에서 나온 ‘인원파악’이라는 단어에 윤 이병의 기억회로는 아침 점호를 끄집어내고 있었다. 오늘부터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애매했던 탓에 주저했고 그게 마음에 걸렸던 인원 파악의 문제가 화근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신발 내가 일일이 너 뭐 해야 한다 안 해야 한다 아직도 얘기해 줘야 돼?”
“죄송합니다.”
“2주씩이나 상전 노릇했으면 이제 알아서 좀 해. 짜증나니까.”
“예.”
윤 이병의 당황은 자신이 처음으로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보다, 이제껏 본적이 없던 표정, 말투, 제스처로 자신을 대하는 강 일병의 태도에서 비롯되었다. 내심 늘 어떻게 변할까 했던 불안함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할 때에 느끼게 된 충격의 감정이 윤 이병을 감쌌다.
“성재원. 문혁주? 니네도 눈치껏 알아서 행동해. 알았어? 같은 분대 아니라고 관리 안 하고 그런 거 없어 난. 어디서 어떤 식으로든 소대 욕 먹이는 고춧가루 들어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특히 문혁주 너. 나 행동 굼뜬 거 조카 싫어하거든? 알아서 잘 해라.”
“예.”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 말을 조목조목 다 하는 강 일병의 모습에 윤 이병은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그리고 앞으로 그와 함께 해야 할 시간이 그리 녹록치만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하지만 분명한 예감이 들었다.
“이등병이면... 이등병답게.. 알아서 기어. 내일부터 본다.”
간단하지만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기고 막사로 들어가는 강 일병에게 불쾌하고 당황스러운 기분과는 상관없이 ‘편안한 취침 되십시오.’라는 인사를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환멸을 느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여기는 군대였고, 내일도 해는 뜰 것이었기 때문이다.
출처 : 네이버 웹소설 [청춘잔혹사 군대유감] http://novel.naver.com/challenge/list.nhn?novelId=3871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