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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열도의 무쌍난무....

콜로라도 |2015.03.27 09:47
조회 3,729 |추천 10

 

후나사카 히로시

별명 살아 있는 영령, 불사신 분대장.


할힌골 전투 당시 소련군의 압도적인 화력지원에 밀리자 부하들과 소대장에게 엄호를 부탁한뒤

몰래 뒤돌아 서는 소련군 분대 하나를 군도 하나로 괴멸 시켰다.

앙가울 섬 전투에서는 척탄병과 화포로 200명 이상 사살했고

전투 3일째 부상을 입었으나 그 다음날 회복을 해서 권총 3발로 미군 3명을 사살했고 뺏은 기관단총으로 다시 3명을 사살했으며

검으로 1명을 찌르고 다시 기관단총으로 1명을 사살 시켰다.

그외에도 투항한 포로를 어떤 부하가 칼로 참수를 하려고 하자 그 부하를 아이키도로 목을 꺾었다고 한다.

 

그외에도 일본군의 위안부 상황을 제보하기도 한 일본군 중 몇안되는 개념인이다. 그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도 관심과 죄책감을 항상 가졌고, 자신이 전쟁 중에 목격했던 위안소들의 위치를 직접 조사하여, 이를 언론에 제보하기도 했다
그래서 우익들로부터 배신자 혹은 거짓말쟁이로  멸시받았으나 죽을때까지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는  민간인이나 포로를 죽이는 행위를 매우 경멸하였고, 이와 관련하여, 난징 대학살에 대한 소식을 듣고 무고한 인명을 학살한 것에 대해 비판을 가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 서점을 경영하면서, 팔라우와 일본 간의 화해를 촉구하는 운동을 벌이는 한편, 자신이 전투를 수행했던 팔라우의 앙가우르 주에 전사한 미군과 일본군을 추모하는 위령비를 건립하기도 하였다. 동시에 일본의 소설가인 미시마 유키오와도 친분을 맺었으나, 그가 파시스트로 전향하자 이를 한심하게 여겨 그와 의절해 버렸다. 이후 미시마 유키오가 할복했을 때 한 말이 걸작인데 소식을 들은 그는 "한심한 작자 같으니라구. 차라리 이 칼로 야쿠자나 베지 그래? 뭣하러 자살하냐?"며 비꼬았다. 그리고 후나사카는 이 칼의 이름을 자살밖에 못 하는 칼이라 지었다.

 

http://ko.wikipedia.org/wiki/%ED%9B%84%EB%82%98%EC%82%AC%EC%B9%B4_%ED%9E%88%EB%A1%9C%EC%8B%9C

군도로 혼자 소련군 1개 분대 전멸....
https://mirror.enha.kr/wiki/%ED%9B%84%EB%82%98%EC%82%AC%EC%B9%B4%20%ED%9E%88%EB%A1%9C%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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