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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에 한 발 담근 인생 넉두리 좀 하고 갈게요.

익명으로 |2015.03.30 23:33
조회 287 |추천 0

안녕하세요. 반오십 인생 평균이하 남 입니다.

최근에 들어 자꾸 이 지긋지긋한 인생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서 넉두리라도 해서 마음 좀 풀어볼까 합니다..
(글이 아주 깁니다.. 쓸모없는 넉두리이니 안보실 분은 그냥 넘어가주세요__)


일단, 분명 세상에, 또 국내에 저보다 못하고 더욱 힘든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그분들이 열심히 살고 노력하고 있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좋은 결과가 있길 기원합니다.

일단 가정 배경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일단 저희 할아버지께서는 6.25전쟁 후 38선이 그어지기 직전에 이남하여 내려오신 분입니다. 아버님의 말씀으로는 증조 할아버님께서 북쪽에 계실 때 금광사업을 하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당신의 아버지 서재에 서랍을 열명 손톱만한 금들이 데굴데굴 굴러다닌다고 얘기하셨죠, 하녀랑 인부들도 몇 거느리시고 도련님 소리 들으면서 자라셨다고 하네요.
남북전쟁이 일어나면서 증조할아버지는 재산이 아쉬워 가족들을 먼저 내려보낸 후 재산을 챙겨 이남하려 했지만 38선이 그어지면서 한푼 쥐어든 것 없이 남쪽에 덩그라니 남아 가족들을 보살피셨다고 하시네요.

하지만 그 달콤한 인생을 맛보신 분이 바닥부타 시작하는게 쉽지는 않으셨죠. 그래서 나중엔 알콜중독에 빠지셨다가 간암으로 돌아가신 걸로 알고있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은 53,57년생이세요. 나이가 상당히 있으시죠. 그 시절에(1975년 쯤) 아무 대학이나 나오면 먹고 살만하다고 하는 시절인데.. 아버님은 명석하셨지만(지식이 아주 해박하세요) 명예에 집착하셨고 고집이 강하셔서 때문에 IMF때 기업에서 나오시면서(실 상은 쫓겨나고) 전전긍긍하시다가 중국의 진출을 꿈 꾸셨네요.
어머님은 사리사욕이 강하시고 명석하신 편이지만 지식은 적으시고 고집은 누구보다 강하시고 눈은 너무 높았죠.

제 위로 2살 차이나는 형님이 5학년 때, 전 3학년 때 부모님은 이혼을 하십니다. 대판 싸우고 욕하며 아주 안좋은 감정으로 헤어진것으로 기억하고 아직도 안좋은 감정이 있긴하지만 상종 못할 정도는 벗어난 상태입니다. 재결합은 꿈도 안꿔요.

아무튼 이혼 후에, 양육권은 아버지에게 넘겨졌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보는 것을 조금도 용납 안했고, 결국 제가 5학년을 마치고 중국으로 사업을 시도하면서 저희도 데려갔습니다.
알고보니 양육비가 너무 많이 들고 아버지는 양육비를 보낼 여유와 능력이 안되니, 양육권은 포기(여자는 양육비를 안줘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음. 적어도 당시엔), 그리고 보고싶을 땐 언제든지 보고, 다 자라면 데리고 오려고 생각했다 하더군요. 나중에 이 소리 듣고 기도 안차고 어머니한테 정은 있지만 큰 감정은 없어진것 같내요.

그렇게 무엇도 모르고 중국어를 배우며 기초교육과 중고등교육을 중국에서 다 마치고 지금은 한국에 들어왔는데. 유학하면서 거의 8~9년을 어머님을 못 봤었죠. 어머님을 만나게 하는게 싫어서 한국도 안보내신 아버지입니다.

입시가 끝나고 나이가 차서 여권 만료 때문에 안 보낼래야 안보낼 수 없으니 결국 한국에 나가야하는데 사업도 여러 번 말아먹어서 직접 어떻게 할 수도 없으니 차라리 어머니와 컨택되서 신세지는 쪽이 낫겠다라고 생각하셨는지 점차 유들해지신건지 한국에 있는 동안 어머니한테 가있으라고 하더군요. 8,9년 만에 고향 땅을 밟으니 감회도 새롭고. 어머님 얼굴을 생생히 기억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머님 얼굴은 기억보다 많이 다르더군요.

그래도 나쁜 길로 안빠지고 열심히하여 명문대에도 입학하지만 수석 차석할 수준의 머리가 아닌지 번번히 장학금도 채택이 안되더라구요.

돈이 없어서 군것질도 못하고, 한국과 달라서 아르바이트도 못하고, 대학가기 전까지는 과외는 꿈도 못 꾸었죠. 일주일에 50위안~100위안(당시 한화 7500~15000원, 지금 9000~18000원)으로 애들이 다 같이 놀때 눈치보며 빠지고, 사춘기에 그 무엇보다도 비참할 때죠.

대학교 들어가니 더 가관이더군요. 명문대이니 기본이 중상층 아이들,
아예 상류층으로 비리 쳐바르고 들어오는 자재들까지... 극소수의 저와 비슷한 아이들 그래도 저보다 못사는 아이는 못 본듯하군요 ㅎㅎ

이 글을 본 여러분들이 그래도 넌 어찌어찌해서 잘 배우기도하고 그러지 않느냐? 하실수도 있습니다. 저도 인정합니다. 저기 정말 죽도록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사람들에게 비하면 축복 받은 것이지요...
그런데 전 그런 생각도 들어요.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으면, 그냥 저 아래에 생활하면서 하루하루 전전긍긍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았으면...
어디가서 어쭙잖게 본 것은 많아서 돈 많은 놈들, 잘 나가는 놈들, 인생과 사회는 원래 불공평하다는걸 톡톡히 알려준 그 상류사회들이 사는 모습이 어떤지 보고나니까 더더욱 기분이 더럽고 비참하더군요.
꿈과 이상은 높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은 가졌는데, 현실은 하루하루 벌어먹기위해 정말 물류알바도, 폰팔이도 해보고 여러 아르바이트하고 있자니 본건있고 고학력 고급인력되려고 투자한 학자금이 아깝고 비참하고 처량하더군요. 그나마 번 돈도 빚 갚고 나니 교통비 쓸 돈도 없네요.

정말 돈돈돈... 이 지긋지긋한 돈 문제에서 벗어 났으면 좋겠어요.. 연애는 꿈도 못꾸고 좋다고 하던 아이도 잠깐 만나다 너무.미안해서 매몰차게.보냈네요.

이제 드디어 마지막 졸업반이지만, 아버지한테 빚이 좀 남아있고, 돈 갚기 위해 쉴새없다보니 군대도 못 다녀왔네요.

아버지는 나이가 차서 어디 들어가서 일은 못하셔서 휴학이나 군대가봤자 소용이 없었고, 어머님은 도대체 그 10여년 간 뭘 했는지 아버지는 아들 2명 양육비와 교육비, 할머님 양로비까지 다 버셨는데, 집 보증금 정도만 모아놓으신 것 같더군요...

이 인생.어떻게 흘러가련지... 이렇게.넉두리나마 하고나니 잠잘 시간이네요. 자면 그나마 생각은 없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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