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수능보고 졸업식을 한 학생입니다.
수능. 지치죠. 힘들죠.
짜증나고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나
이젠 그런 생각이 미치도록 들 겁니다.
특히 고3은 대학생활에 대한 환상과
마지막 학년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제일 공부를 놓게 되는 학년이기도 하죠.
아닐 것 같죠? 고3은 공부만 할 것 같죠?
겪어보세요.
공부하다가 문득문득 드는 내 화려한 대학생활과
알바, 술집 출입 자유, 이성 친구,....
나정도 되면 서울 중상위는 가겠지하는 막연한 자신감....
공부? 네 3월 4월까진 그나마 하죠.
모의고사 보고나죠? 그 다음부터 다 풀어집니다.
특히 여름 되죠? 최고입니다. 더워 쪄 죽죠.
이건 저 혼자 열심히 하자고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반에서 5명 빼고 전부다 놀자판인데
그 분위기에 안 휩쓸릴 자신 있으세요?
그 까짓거 귀 막고 하면 되지?
해보세요.
복도에 나와서 공부한다고 나와도
또 공부한다고 나온 애들끼리
어느새 떠들고 앉았습니다.
우리 반만 있나요?
옆 반 복도에 나와 있는 애들도 있죠.
그럼 어느새 1반애들부터 저 끝 반 애들까지
동시 다발적으로 함께 어울려 놀죠^^
수능 때 기본 1등급은 다 떨어진다고 보셔야 합니다.
조금씩 튼튼히 주춧돌을 세우지않고서
1,2달전부터 벼락치기한다고 될 것 같나요?
모의고사 성적 좀 올랐다고,
수능도 그렇게 나올 것 같나요?
천만에요.
수능엔 재수생들, 과고, 외고생 전부 다 있습니다.
일단 수능 끝나죠.
수능 성적표 나오기 전까진 애들 날잡았다놉니다.
알바 알아보고, 술 마시고,
놀러 다니고,컴퓨터 하고
학교에서도 영화나 틀어주고 단축 수업하고,
여기저기 수험생 할인,세일 이런거 붙고.
아주 지상낙원이죠
근데요, 수능 잘 본 사람들 아니시면
놀아도 노는 기분이 아닌거 아실겁니다.
분명 지금 편해요
그래서 웃고 있고,친구랑 놀고 있고
근데 그 마음 깊은 한 구석에 묵직한 게
뭔가 덜어지지 않은 듯한 그 똥 싸다 만 기분아세요?
수능 끝나면 마냥 후련하실 것 같죠?
그렇지도 않습니다 절대
그냥 기분이 딱 그래요.
시한부가 죽을 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즐겁게 노는 기분?
성적표 나오죠.
애들이 비명 지르면서 받습니다.
저 조용히 짐 싸서 몇 주동안
할머니 집에 피신해 있었어요.
아빠 얼굴 보기가 도저히 무서워서...
수능 성적표 잘 안 나오죠?
그 때부터 살얼음판 시작입니다.고문이죠
학교 입학전형 볼 때마다
정말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마치 인터넷 홈페이지가 너의 성적표를 보라고
채찍질하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원서 넣었죠.
그때부터 또 정시 합격발표 나기 전까지 놉니다.
그 땐 부모님들도 뭐라 안하세요.
자기 자식들은 붙을 거라는 부모님들의
기대감?자신감?확신?이런거죠.
대학발표가 나면
생각보다 예비번호 받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아실 겁니다.
예비100번 넘어갔습니다.
대학입시는 항상 변수가생깁니다.
외면하고 싶어도 똑바로 눈 뜨고 잘 보고
직접 발로 뛰세요.
어떻게든 되겠지?
그 생각하다가 제가 지금 이렇게 됐죠.
저 지금 사이좋던 아빠랑 대화도 안합니다.
서로 얼굴보면 싸우고 헐뜯고
얼굴 마주치기도 싫은 사이가 됐죠.
마주치면 또 이젠 어떡할거냔 소리
재수 해야지 뭘 어쩌겠냔 소리 나오니까요.
저도 꼴에 자존심 있어서
바락바락 잘했다고 대들지만
저 정말 미치기 딱 일보 직전입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죽을까 그냥 그생각합니다.
저만 이런 생각 하는 거 아닙니다.
이런 일이 본인에겐 안 일어날 것 같으신가요?
저희 엄마, 아빠는 제가 수능을 망해도
이해해주실 줄 알았습니다.
늘 저를 이해하셨고, 사랑하셨고.
저도 그랬거든요.
근데 3년동안 저에게 걸었던 막연한 기대감이
현실 앞에 무너졌을때
부모님의 그 비참함은 저희가 감히 가늠할 수 없죠..
자업자득.
제가 꼭 해드리고 싶은 충고는
저처럼 공부에 대한 의지는 강하지만
내가 항상 나에게 져서
내가 한심하고 바보같다는 분들.
절대로 자신에게 채찍질 하지마세요.
그건 도리어 역효과입니다.
공부해라. 해야한다. 이것만 견디면 된다. 난 할수있다?
토하고 있는데 꾸역꾸역 음식 밀어넣는 꼴이죠.
그냥 화선지에 물 젖어가듯 천천히 공부하세요.
천천히 시작하세요.
갑자기 명언 이곳저곳 붙여놓고
전혀 안 하던 공부계획 짜서 스파르타로 공부하고
새벽에 공부하는 시간 늘이겠다?
절대 하지마세요.
천천히 시작해서 조금씩 가속을 높이세요.
가장 중요합니다.
갑자기 벼락 맞은 듯이 오늘과 내일이
다른 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조그만 것을 습관으로 만드세요.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30분씩 집중하는 것, 책을 읽는 것
컴퓨터 시간을 10분씩 줄이는 것
영어지문 3개 풀어서 다 맞추기.
하루에 꼭 해내고야 말 일 하나를 적어서 실천하는 것.
친구들이 대학 예비받아서 똥줄 타고 있을 때
여유롭게 알바 구하러 다니고 부모님께 효도하는
당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절대 부모님들 마음 아프게 하지마세요.
지금 놀면 몇 달 후의 고통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저만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