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섯살 때 일이었다. 그는 동네 철길에 고장으로 서있는 기차에 올라갔다. 동네의 형들은 이미 기차에 올라가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기차가 출발하며 '덜컹'했고, 어린아이였던 그는 손을 놓치며 떨어졌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기차 바퀴에 빨려들어갔다.
그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으나두 다리와 한쪽 팔을 잘라야 했다.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 온 그의 어머니는 피투성이가 된 그의 몸을 보고 그 자리에서 혼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제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며 학교에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어머니는 매일 그를 자전거에 태우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빗길에서 버스를 피하던 어머니의 자전거가넘어졌다. 순식간에 어머니와 그는 동시에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당신의 상태는 신경도 안 쓰고 그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 결심했다. 넘어지는 일에 겁내지 말자고. 넘어졌다가 일어서는 일에 지나치게 슬퍼하지 말자고. 다시 일어서면 그뿐이라고.
그러나 그에게 인생은 쉽지 않았다. 특히 의족과 '동거'하기는 너무 힘들었다. 의족과 닿는 살갗에는 물집이 가실 날이 없었다. 또한 사춘기 시절에는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너무 힘들었다. 여학생도 짝사랑만 가능했다.
결국 이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그는 죽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친한 친구에게 돈을 주고 약국을 돌며 수면제를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차마 친구의 청을 거절 못해 수면제를 사러 갔던 친구는 곧 되돌아와 "야! 몰라. 네가 알아서해"라며 돈을 내던지고 달아났다.
대학에서 행정학과를 전공한 그는 졸업 뒤 수십번 이력서를 냈으나 어떤 직장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공무원 시험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마침내 9급 공무원 기능직 시험에 합격해 지역 도서관에 배치됐다. 그의 장애를 감안한 배치였다.
그는 밤에 대학을 다니며 사서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2009년 첫 중증장애인 사서 특별채용에 응시한 그는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일만 한 것은 아니다. 그는 뉴욕 마라톤대회에 출전해 풀코스를 10시간이 넘는 기록으로 완주도 했다. 장애인 전국체전 수영대회에도 출전해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백두산에도 올랐다.
7급 공무원 신명진 씨. 그는 이렇게 말한다. "포기하지 않으면 희망은 있어요. 비록 왼팔 하나밖에 없지만 비장애인들보다 더 즐겁고, 의미있게 살 수 있어요.전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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