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 3
별당의 안쪽은 약간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아직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각이었기 때문에,
내일 아침까지 뜬눈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낼 생각
을 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별당의 건물 자체는 꽤 낡았고, 벽에는 곳곳에 틈이 생겨 있어서,
우리가 있는 깜깜한 공간 속으로 간간히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 빛에 의지해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이렇게 다른사람과 얼굴을 마주대고 앉아서
아무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은 태어나서 처음 이었다.
괜찮다 라는 의미를 싣고 A와 B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보았고,
그 둘도 나에게 고개를 끄덕여서 대답해
주었다.
하지만 조금 있으니 서로의 얼굴을 보는 횟수도 점점 줄었고,
급기야는 서로 다른쪽 방향으로 달아앉아 있었다.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답답함과 함께, 앞으로 얼마정도 시간이 남았는지
감을 잡지 못하는 우리는 그냥 멍 하니 새카만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들었던, 사방이 하얀색의 방에 사람을 가둬두면 한달만에 미쳐버린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 방 안이라면, 일주일, 아니 이틀만 있어도 미칠 자신이 있었다.
나는 어제부터 미치지 않도록 정신줄을 꽉 잡고 있었다.
1억 2000만 일본인들 중에 미치지 않도록 이렇게 노력 해 본 사람은 나 말고도 몇 명이 있을까?
이런저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보니 꽤 시간이 많이 흐른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주위를 둘러 보았지만,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걸 보니 해가 지려면 아직 먼 것 같았다.
갑자기 A가 있는 쪽에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짓을 하는건지, 허튼짓을 하는 것이면 그만두게 하려고 A가 있는 쪽으로
다가가서 자세히 보앗다.
A는 손에 들고있던 종이와 펜을 우리에게 보였다.
A는 스님의 말을 듣지 않고, 몰래 펜 하나를 호주머니에 넣어 온 것 같았다.
종이는, 우연히 주머니에 들어있던 껌에서 벗겨낸 껌종이였다.
이놈이 뭐하는 짓일까
한순간 그렇게 생각 하였지만, 우리는 서로 말을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극한까지 겁을 먹은 분위기에서, 그것을 못하게 할 수는 없었다.
아니, 차라리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었다.
어떻게 제대로 표현은 못하겠지만, 종이와 펜을 본 순간 굉장히 마음이 편해 졌다.
틈새로 들어오는 햇빛에 의지해서 A는 먼저 자신이 무엇인가를 써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모두들... 괜찮아?'
다음으로 내가 펜을 받았고, 나는 최대한 공간이 많이 남도록 글씨를 작게 해서 썻다.
'나는 아직까진 괜찮아. B는?'
B에게 펜과 종이를 건넷다.
'나도 괜찮아. 아무것도 안 보이고, 들리지도 않아.'
종이와 펜은 다시 A에게 돌아갔고, A는 그 위에 썻다.
'껌은 4개 남음. 은박까지 종이는 8장. 밤이 되면 이야기를 못하니, 지금 하기.'
까지 쓰고는 펜과 종이를 나에게 건넸다.
'몇시쯤일까?'
B는 한참 펜을 이마에 대고 생각하더니, '네시 다섯시쯤?' 이라고 썼다.
'우리 여기 들어올때가 한시쯤 이었어.'
'길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스다보니, 첫 번째 껌종이가 빽빽이 차 버렸다.
두 번째 종이를 앞에 놓고는, 아무도 펜을 가져가려 하지 않았다.
불안하고 무서웠지만, 정작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려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해가 져서 빛이 없어지기 전에 둘에게 꼭 해야 할 말을 적었다.
'무슨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잘 해보자.'
응 펜을 B에게 넘기자 B가 자신없는듯한 필체로 대충 대답했다.
'A는 나 비명 지르면 어저지?' 라며 농담가지 하는 걸 보니 조금 여유를 찾은것 같았다.
나는 '입에 양말이라도 쑤셔 넣어 둬라.' 라고 쓰고는, 아까부터 꼭 하고 싶었던 말을 섯다.
'절대 아무일도 없을거라고 믿자.'
A와 B는 그 글을 읽고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그런 둘을 보고, 내가 지금 무슨말을 해 버린건지 깨달았다.
겨우 잊고 있었던 불안감에 다시 휩쌓이게 해 버렸다.
스님은 아무 일도 없을거라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부터 무슨 일이 생길거라는 암시와 함께 그것에 대한 충고까지 해 주었다.
우리는 시간이 일초라도 빨리 흘렀으면 하는 생각이 컸지만, 한편으로는 밤이 오는게
죽을만큼
무서웠다.
밤 뿐만이 아니었다.
지금 이렇게 있는것도, 정신줄을 놓아 버릴만큼 무서웠다.
유일하게 다행인게, 지금은 서로가 그곳을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 할 수 있다는 점.
나는 내가 쓴 한마디 때문에 무거워진 이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글을 계속 썻다.
'무슨 말좀 해. 시간아까워.'
라고 쓰곤 A에게 펜과 종이를 떠넘겼다.
맞다. 나는 A에게 책임 전가하고 도망친 것이다.
A는 머뭇거리면서도, 뭔가를 적었다.
'집에 가면 뭘 할까.'
그걸 본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좋네. 난 우선 비디오가게.'
그걸 본 B가 펜을 집었다.
'왜?'
'DVD 반납하는거 잊고 있었어.'
'넌 집에가면 또 지옥이구나.'A가 썼다.
거짓말이었다.
DVD따위 빌리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분위기를 바꿔 보려고 한 거짓말 이었다.
결과적으로 분위기는 좋아졌고, 우리는 한참을 돌아가면
무엇을 할것인지 농담섞어서 이야기 했다.
벽의 틈새로 비춰 오는 빛의 색깔이 붉어지고, 종이도 은박지 한 장밖에 남지 않았을 때
B가 펜을 들었고, 무언가를 써써 우리쪽으로 보여주었다.
'나는 스님이 말한건 꼭 지킬거야. 죽고 싶지 않아.'
나도 A도 B의 마지막 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라는 말을, 이렇게 애절하게 한 사람을 눈 앞에서 보는건 처음이었다.
A도 나와 같겠지.
우리는 죽는다는 생각따윈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죽음을 곧 경험할 거란 생각따위 해 본적도 없기 때문이었다.
그걸 지금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와서 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그 사실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나는 B의 눈을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는 종이도 떨어져서 아무 이야기도 하지 못했지만,
이상하게도 더 이상 고독감은 느끼지 못했다.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우리는 점점 해가 져 가는 것을 느꼈다.
아무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니, 매미의 울음소리가 매우 시끄러웠다.
산 속인데다가 해가 지기 전에 마지막 스파트를 올리는 듯이 울어제꼇다.
하지만 별당에 들어왔을때부터 몇시간 동안이나 듣고 있자,
귀가 적응이 되어서 별로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뭔가 찝찝한 이 위화감은 뭘까.
귀를 기울이면 매미 울음소리에 섞여서 다른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뭘 들은것도 아닌데 온 몸이 경직되는것 같았다.
온몸의 신경이 귀에 집중되었다.
그것은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느꼈다.
그 숨소리 였다.
B쪽을 보았다.
이미 약간 어두워 져 버려서 인지, 제대로 보이진 않았지만
B가 그 소리를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B에게 들리지 않는것일까?
그러고 보니, B가 숨소리에 대해 말한적이 있던가?
혹시 숨소리는 들었던 적이 없을까?
아님 지금 못 듣고 있는것 뿐일까?
머리가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이런저런 생각들로 가득 찼다.
내가 몸이 경직되어서 이상한 분위기를 내보이자 B가 그것을 느낀 것 같았다.
B는 약간 심할 정도로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그러더니 B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어 졌다.
내 어깨너머의 벽을 뚫어지도록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의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지만, B가 눈을 크게 뜨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것은
알 수가 있었다.
A도 B의 그런 행동에 눈치채고 B가 바라보고 있는 내 뒤쪽 벽을 쳐다보았지만,
A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것 같았다.
나는 무서워서 차마 뒤돌아 보지 못했다.
그래도, 그 숨소리는 귀에 들어왔다.
그것이 내가 기대고 앉아있던 벽의 바로 뒤에서 부터 들려왔고,
그것과 나 사이에 그 얇은 나무 벽 한 장밖에 없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목에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것은 그곳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그 끔찍한 숨소리만 내고 있었다.
후우...훅...후우욱...훅...훅...후욱...후욱...
[자료 출처 : http://cmzntlak.tistory.com/m/post/1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