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3년 째 미국에서 생활 중인 대학생 여자입니다. 제가 얼마나 답답한지 인턴 중인 회사에서 한글 키보드를 다운 받고 네이트에 가입하여 글을 쓰고 있네요.
전 남자친구와는 헤어진지 어느새 11개월이 다 되어가네요. 우와, 스스로도 손으로 몇 달이 지났는지를 세어보며 놀랐어요. 시간 그렇게 빠르네요.작년 9월부터 올해 5월까지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안 울고 넘어간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너무 힘들어서, 숨을 쉴 수가 없어서 작년 가을, 학교를 중간에 휴학하고 한국 집으로 가기까지 했었지요. 우울증이 정말 심했어요. 지난 2년 간 졸업 후 미국에 남으라고 저를 설득하던 남자, 너와 내가 함께 아이를 낳으면 참 예쁠 거라며 날 보고 방긋 웃어주던 남자, 그렇게 항상 내 미래의 일부분이었던 남자와의 이별은 당연히 쉬울 수가 없었지요.
전 남친은 미국인이었어요. 제가 아무도 없는 미국에 홀로 정착했을 때, 마음을 털어놓고 나눌 수 있었던 첫 친구였어요. 저에게는 베스트 프렌드나 다름 없었어요. 같은 기숙사를 살면서 늘 밥도 같이 먹고, 공부도 같이 하고, 놀러도 함께 다니고.. 그러다 사랑에 빠졌네요. 평소에는 얼마나 무뚝뚝한지 몰라요. 자기 마음 표현하는 것은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라면 눈물도 없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지요. 그래도 저한테만은 항상 따뜻했어요. 제가 힘들어하면 절 위해 저보다도 더 많이 울던 사람이었어요. 제 전 남친의 아무리 친한 친구들도 (고등학교 친구든 대학 친구든)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우는 모습을 못 봤다지만, 저는 여러 번 봤어요. 말로 모든 걸 설명할 순 없지만, 우리가 헤어진 뒤 그 사람이 얼마나 모질게 굴었든 얼마나 저에게 상처를 주었든, 단 한 가지 제가 말할 수 있는 건, 이 남자, 좋은 남자였어요. 저희 엄마,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반대라던 분이셨는데, 제 전 남친을 직접 만나보시곤 "그래, 이 애라면 엄마도 괜찮을 것 같아. 완전히 허락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해볼게. 더 잘 만나봐."라고 하셨을 정도니까요.
무튼 헤어지고는 위에서도 말했듯이 죽지 못해 살았습니다. 우울증 때문에 병원에 입원도 하고, 비가 무척이나 추적하게 내리는 밤엔 집을 뛰쳐 나가기도 하고.. 그런 저의 가장 슬프고, 아프고, 또 약했던 나날들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친구들은 제가 같이 살던 룸메이트들이었죠.
전 세 명의 미국인 룸메이트들과 살았었어요. 그 셋 다 제 전 남친과도 친구였네요. 물론 제가 전 남친과 헤어졌던 때에는 그 셋 다 제 전 남친과 친한 친구는 아니었구요. 대학 1, 2학년 때에는 룸메이트 1은 제 전 남친과 매우 친한 사이였었고, 그러다가 3, 4학년 때에는 결국 멀어지게 된 사이였어요 (멀어지게 된 이유도 있구요). 전 룸메이트 1은 제 전 남친을 통해서 알게 되었구요.룸메이트 2는 룸메이트 1과는 베프이고, 제 전 남친과는 저를 통해 친해지게 된 사이였지요. 저와 제 전 남친이 사귀기 전에도 둘은 대충 아는 사이였지만 서로 번호도 없고, 오고 가다 마주쳐도 인사할 사이는 아닌, 그렇게 아는듯 모르는 사이였지요.
무튼 제 룸메이트 1, 2는 제가 전 남친과 만나고 헤어지고, 헤어지고 나서도 여러 문제로 얽히고 아파하는 모습을 모두 본 사람들이었어요. 그 룸메이트들도 제 전 남친도 지난 학기에 졸업을 했고, 모두가 같은 도시에 직장을 찾아, 혹은 대학원을 찾아 정착했네요. 룸메이트 1과 제 전 남친은 그 도시 출신이었고, 룸메이트 2는 도시가 좋아서 자신의 고향인 매우 작은 동네를 벗어나 이사를 결심한 거였구요. 저도 마침 그 셋과 같은 도시에 인턴십 때문에 거주하고 있구요. 게다가 이번 인턴십이 잘 되서 내년에는 졸업해서 이 곳에 취직하기로 했구요.
이번 주말에 오랜만에 룸메이트 1, 2를 만났어요. 만나서 얘기하던 중, 제가 룸메이트 2에게 집 문제에 관해 물었어요. 그 친구가 아직 도시에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거든요. (현재는 자신 동생 친구 집에 월세 내고 8월까지 머무르기로 했구요.) 원래는 룸메이트 1, 2가 같이 집을 구해서 함께 살기로 했던 상황이었는데, 룸메이트 1이 이미 학자금대출이 많은데다가 앞으로 대학원 때문에 더 많은 빛을 지게 될 상황인지라 본인 부모님 집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결심한 상황이었고, 그렇게룸메이트 2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버렸구요. 이런 상황에 대해 몇 주 전에 들었던 저는 걱정되는 마음에 룸메이트 2에게 집 문제는 잘 해결되었는지 물었는데, 잘 해결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누구랑 사느냐고 물었지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충격적이었어요.
친구 1 (제 전 남친의 가장 친한 친구), 본인, 그리고 제 전 남친이라더군요.
전 그저 속으로 "Wow.."라고 어이 없이 외칠 수밖에 없었네요. 집에 돌아와서 주말 내내, 그리고 오늘 월요일 내내 생각을 해보는데 정말 화가 나요.
집 얘기를 하면서 룸메이트 1은 2에게 집의 정확한 위치가 어디냐며, 자기 학교랑 가깝지 않느냐고 묻더군요. 그러면서 자기 수업 끝나면 매일 놀러갈 수 있겠다며, 그 둘은 좋아라 까르르 웃고 신나하더라구요. 저 빼고 제 남친, 그 룸메이트 1, 2, 그리고 제 전 남친의 가장 친한 친구 넷은 항상 파티하고 이 거 하고 저 거 하고 계획 세우느라 바쁘더라구요.
제가 과민반응인 걸까요? 아님, 제가 화가 나는 게 정상인 걸까요? 전 남친은 다 잊었다고 생각한지 이제 두달, 싱글이지만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한 때가 없었다고 다시 느끼게 되었네요. 그런데 룸메이트 2에게 이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듣고나니 다시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아무리 미국이라지만, 미국인들은 원래 그렇게 "cool"한 건지 3년이나 되는 시간동안 전혀 몰랐네요.
제가 룸메이트 2에게 화를 낸다고 해도, 서운하다고 말을 해도 달라질 거 없다는 거 압니다. 사이만 틀어지고, 넌 여전히 그 남자 못 잊었냐며, 또 절 전 남친에 미친 여자 취급을 하겠지요. (제 뒤에서 룸메이트 1, 2가 저 미친 여자 취급하는 문자 봤어요. 전 남친 못 잊어서 저런다고, 집착 심해서 저런다고.. 제가 한창 힘들어하던 시기에 둘이 문자 주고 받은 걸 우연히 봤거든요.) 모든 사람은 각자의 단점이 있지 않습니까? 룸메이트 2는 리더십 좋고 항상 재밌는 계획을 세워서 이 거 하자, 저 거 하자, 정말 재밌는 친구에요. 하지만 굉장히 이기적이죠. 남을 배려하는듯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이득 챙기기에 항상 바빠요. 심지어 같이 술 마시고 2시에 집에 가야 하는데, 운전하면 10분 거리, 걸으면 40분인 거리를 (미국이라서 운전할 때와 걸을 때 시간 차이가 많이 나요. 도로 상으로.) 자기 집 방향이랑 정 반대이니 데려다주지 못 한다며 걸어서 가라고 하는 아이거든요.
룸메이트 2는 집을 구하면서도 자신은 꼭 셋이서 사는 집을 원한다더군요. 자신을 제외하고 둘 중 한 사람이 바빠서 집에 없을 때면 다른 한 사람이라도 집에 자신이랑 남게 되니 자신이 외롭거나 심심할 일은 없다구요. 룸메이트 2, 제 전 남친, 제 전 남친의 가장 친한 친구, 그 셋 중 도시를 떠나 다른 도시에서 주말마다 일 할 사람은 제 전 남친의 가장 친한 친구 뿐입니다. 그 말은 제 전 남친과 룸메이트 2 둘이서 집에 남아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말 아닌가요?
룸메이트 2는 물론 1과도 인연을 끊어야 맞는 건지, 아니면 필요하니 그냥 꾹 참고 옆에 두어야 하는 건지 고민이 됩니다. 미국에서 홀로 생활하면서 친구가 있는 건 정말 중요하거든요. 앞으로 이 도시로 1년 뒤에 옮기게 되면 제가 이 곳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 룸메이트 1, 2와 이 둘을 통해 만나게 된 친구들이 전부인데, 그럼 저는 이 도시에서 혼자 외로워지겠죠. 미국에서 이럴 때마다 가족 없고, 같이 자란 중, 고등학교 친구들이 없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지 모르겠어요.
조언 부탁 드려요.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