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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몰래 납치 당한 여자

검객 |2015.08.05 03:27
조회 1,576 |추천 5



나는 1921년 1월 30일 전라남도 나주군 삼도면에서 출생하였다. 12살 나던 해인 1933년 부모들을 따라 중국의 금주성으로 살길을 찾아 떠났다. 

 

그 후 중국의 연주시 동향초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 생활을 하던 중 1942년 일본군에 강제 납치되어 금주성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위안소"의 독방에 감금되어 하루 10여명의 일본군인들을 상대할 것을 강요당하였다. 

  

자주 정신을 잃고 쓰러지곤 하였다. 깨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불복할 경우 사정없이 때리고 차곤 하였다. 머리와 팔에 부상을 입는것이 보통이었다. 

 

더는 견딜 수 없어 1944년 가을에 도주하여 중국 동북지방의 산골에서 지냈다. 그러다가 1945년 12월, 조국이 해방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1946년 1월 평안북도 운전군으로 나오게 되었다. 

 

중국 동북에서 헤어진 남편은 그 후 생사여부를 알지 못한다. "종군위안부" 생활의 결과로 아이도 낳지 못하고 과거를 감춘채 남의 집 후처로 들어가 생활하였다. 

 

10년전 남편이 사망한 후 혼자 살고 있는데청춘을 빼앗고 가정을 파괴한 일본놈들을 생각하면 이가 갈려 견딜 수가 없다. 

 

자기처의 생사도, 행적도 모르고 애를 태웠을 남편을 생각하면, 어린 딸자식을 홀로 두고 눈도 감지 못하고 죽은 부모들을 생각하면 정말 원통하기 그지없다. 

 

제나라 사람도 아닌 수많은 조선여성들을 끌어다 성노예로 만들라는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죽어서라도 이 원한을 기어이 갚고싶다. 
-----------------------------------------------------위 글은 위안부 피해자인 강영숙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충분한 배상을 했다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고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경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이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에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니

전체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안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올해에만 벌써 7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한국에 남은 생존자는 48명입니다. 

추천수5
반대수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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