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은 많은데 졸리고, 짜증나고, 일이 하도 손에 안 잡혀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정신지체 5급 전무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맨 첨엔 짜증 나고 한 판 없을까 했는데 종교의 힘으로 정신지체 5급 장애인이다 생각하니
맘이 평안해 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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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에 전무님이 한 분 계십니다.
42년 생이고, 컴퓨터 전원도 못 켜시는 분이십니다.
하루 종일 인터넷 바둑 두고,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약 먹고 한 달에 500만원 받아 갑니다.
아, 가끔 들어오시는 회장님 비위 맞춰드리는 일도 꼭!! 합니다.
커피 타는 거야 제가 어리고, 여직원이기도 하니까 뭐 하루에 수십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약국 가는 것도... 뭐... 그까이꺼 하면서 갈 수 있지요. 그래도 가끔 약사한테 의사 처방전에 나온
약이 어떤 성분이고 어떤 치료제인지 써가지고 오라고 하면 진짜 속 뒤집힙니다만, 뭐 못 할 거 뭐있습니까. 두 눈 꼭 감고 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 짜증났던게 있었는게 그건 다름 아닌 '은행 심부름'이었습니다.
회사 일도 아니고, 순전히 전무님 개인적인 일이었죠.
자기 동생한테 보내는데 통장하고, 도장만 던져 주면 그만입니다.
인터넷 뱅킹이나 텔레 뱅킹 같은 그냥 앉아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음에도
굳이 남의 손에 제 통장을 맡기는 건 뭡니까. 자기 돈 많다고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네, 한 몇 십만원이야 뭔일나도 제가 책임진다 치지만,
한 번은 각종 통장과 도장을 주시면서 국민은행에서 오백만원, 하나은행(전무계좌) 오백만원,
하나은행(전무부인계좌) 천만원, 우리은행 삼천만원해서 오천만원을 기업은행의 자기 동생 통장으로 입금하는 일을 맡기시더이다. 100만원 넘는 금액을 찾게 되면 대리인의 이름과 주민번호도 기장해야 하는데, 암 상관도 없는 인간 때문에 제 신원을 밝혀야 하는 기분 정말 더럽습니다.
통장이랑 도장 주면서 " 조심히 갔다 와라. " 이 한 마디가 전부 입니다.
이 한 마디 안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죠. 한 마디로 강도 당해서 자기 돈 없어지면 저보고 책임지라는 뜻이지요.
속으로, ' 이 병신아, 내가 조심하면 강도 안 당하는 거니? 생각이 없냐. 이 때까지 은행에서 강도 당한 사람들은 다 조심안해서 당한 거냐, 니 일은 니가 좀 해라. '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지만, 42년 생 자기 혼자선 암 것도 할 수 없는 정신 지체 5급인 할아버지다 라고 생각하며 참고 또 참아야만 했지요.
제일 짜증나는 일은 암 상관도 없는 전무 돈 때문에 저의 신원이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00만원이 넘거나, 수표일 경우, 대리인의 신분증과 이름, 주민 번호를 밝혀야 하니까요.
진짜 짜증 나더이다. 그래서 짜증 한 가득 표를 내는 데도 이 단순한 전무는 제가 심부름 하는 걸
싫어한다고 생각하더이다. (갠적으로 단순한 생각하는 넘들이 젤 싫습니다. 누리꾼 중에 더러 있긴 있더군요.)
저희 회사는 아날로그 회사라서 컴퓨터가 차장님 전용 컴퓨터 1대랑 공용 컴퓨터 1대 이렇게 있거든요. 제 책상에 컴퓨터가 없다보니 업무상 공용 컴퓨터를 써야 할 때도 눈치 살피며 전무가 인터넷 바둑 두다가 잠시 쉴 때를 이용해야 했지요. 에혀~~~
그런데, 제가 한 마디 불평 조차 못한 이유가 있었으니, 바로 제 위의 차장님이 계시더이다.
전무님은 회사차를 끌고 다니셨는데요, 토욜마다 아침에 차장님 책상위에 열쇠를 툭 집어 던지시면서 "기름 넣어와" 하십니다. 전무님 사는 곳이 반포인데, 거기서 서초까지 오면서 주유소가 없나요? 자기가 끌고 다니다가 기름 넣어서 영수증 청구하면 될 것을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되더이다. 차장님은 거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고 계신데, 토욜 대부분을 전무 차 기름 넣고, 세차해 주고 정리해 주는데 시간을 쏟지요. 한 번은 전무 손자 MP3 사는 것, 고치는 것 까지도 암 상관 없는 차장님 시키더이다. 심지어, 전무님 집에 비디오를 연결했는데, 비디오와 TV 연결하는 것도 수지에 사는 차장님 불러서 잭 연결했다고 하더이다.
울 회사 현장은 충청도에 있는데, 전무님이 내려가셨답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차장님께 전화해서는, 아직 일도 안 끝났는데, 자기 현장에 있다고 자기 데릴러 내려오라고 까지 하셨다네요.
진짜 세상에 이렇게 편하게 돈 버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부럽더라구요. 회장 비위 맞춰주고, 인터넷 바둑 두고, 커피 마시고, 잠깐 졸고, 5시면 칼 퇴근하고 한달에 오백만원씩 가져가시다니...
전무님 그만 두시니, 보름 마다 한 번씩 떨어졌던 커피 (100개 들어있는) 1봉지가 두 달이 되니,
떨어지더이다.
고객 회원이랑 막 소리지르고 싸우고 나서는 자기 '차장'이라고 거짓말도 하십니다. 그 때문에 '차장'님은 본의 아니게 나쁜 이미지가 되는 거죠.
전무님 고향가는 열차 시간도 알아봐 줘야 하고, 손수 용산 가서 표도 끊어줘야 하고,
1942년 생, 67세인데 이 정도면 정신지체 5급 장애인 맞죠! 그래도 운전은 잘만 하고 돌아다녀요.
그럼, 4급인가?
전무님 짤리자 마자 사무실 구조 바꿔서 전무님 자리부터 없앴답니다.
전무님 쓰던 물건 다 버렸구요. 20년을 근무했는데 존경은 커녕 아쉬운 거 하나 없으니,
진짜 인생 저렇게 살지 말아야 겠다, 느꼈습니다.
전무님 자체가 할 줄 아는 일이 없으니, 인수인계 받을 것도 없구요.
여튼, 짤려서 천만 다행입니다. 안 짤렸으면 전 진짜 안하 무인이 되어 욕 날리며,
막 쏟아 버렸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