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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든 장교에게 성폭행당한 여자

검객 |2015.10.01 20:38
조회 3,444 |추천 13



나는 1924년 경남 하동에서 다섯 형제 중 외동딸로 태어났다. 우리집은 엄청난 부자는 아니었지만  어릴 때 부터 배고파 고생하고 크진 않 았다. 

  

내가 만으로 열 일곱살이었던 1941년.어느 날 40대쯤 되어 보이는 일본 여자가 집으로 찾아와서, 아버지께 좋은 직장이 있으니까 딸을 보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어린 여자애를 어떻게 멀리 보낼 수 있느냐시며 한사 코 안된다고 하셨다. 여자는 잠시 나가더니, 누런 전투모를 쓴 일본인 남자를 데리고 왔다. 
그가 오더니 내게 한번 나와 보라고 하면서나를 억지로 끌고 갔다. 아버지께서 걱정이 되셔서 따라 나오시면서 어디를 데리고 가느냐고 하니까, 그 일본인 남자는 어디 나쁜데 데려가지 않으니까 괜찮다고 하면서 아버지를 밀쳐버렸다. 지금도 아버지가 뒤로 주저 앉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거리 같은 데로 가니까 나처럼 끌려온 여자들이 많았다. 동네에서 마구잡이로 처녀들을 끌고 온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검정옷에 하얀띠를 두른 세라복 차림에 머리를 양가락으로 묶고 있었다. 
열차를 타고 마산 을 거쳐서 부산으로 갔다. 그리고는 거기서 일본으로 가는 연락선을 탔다. 여행 내내 남자들이 우리를 줄곧 지켰기 때문에, 화장실에 가는 것 외에는 출입이 부자유스러웠다. 
일본에서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밤낮 주야로 한달을 갔다.그렇게 도착한 곳이 파푸아뉴기니의 라바울이라는 곳이었다. 

 

우리는 트럭을 타고 몇 시간 을 산 속으로 달려서, 허허벌판 같은 자갈밭에 이르렀다. 그곳에 일본군 부대가 있었다. 앞은 섬도 하나 안 보이는 망망한 바다였다. 
야자수를 가지고 만든 열 다섯 칸의 방. 그곳이 우리가 머물 숙소였다. 우리들은 저녁에 같이 모여서 여기 죽으러 왔나 보 다 하면서 부둥켜 안고 또 울었다. 

 

사흘 뒤 에 높은 장교들이 왔다. 세상에 아버지같은 놈이... 내 몸을 마구 범했다. 생각하면 끔찍하다. 뭐가 뭔지도 몰랐다. 그는 전신을 밤새도록 주무르라고 했다. 
군인들이 오는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사병들은 평일날 4시까지, 그리고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에 왔다. 하사관과 장교들은 평일 오후 4 시 넘어서 저녁 시간대에 왔다. 
보통 하루에 20-30명씩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 토요일 일요일엔 군인들이 하도 많이 와서 도살장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게 참 죽는 일이지, 정말 못 죽어서 살았다. 

 

억지로 그 짓을 하면서도 돈을 받은 적은 없다. 다만 가끔씩 원 피스, 양말, 속옷, 화장품을 사다 줘서 받은 게 다였다.  
병원에 가서 일주일에 한번씩 검진을 했다. 몸이 안 좋으면 606호라는 독한 주사를 맞았다. 그리고, 거기는 열대 지방이라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다. 스무날씩 혹은 한달씩 40도가 넘는 고 열에 시달려야 했다. 
일본의 패전과 함께 우리는 큰 미국배를 타고 부산으로 귀국했다. 집에서는 내가 죽은 줄만 알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떠난 뒤로 화병이 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어느 겨울에 돌아가셨다. 

 

나는 시집갈 생각이 없었으나 이모님들의 성화로 삼천포에 있는 어느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 결혼생활을 14년 했지만, 궂은 날이면 내가 몸이 아파서 미치겠고 양심에 가책도 되어서 사는 것 같이 살아보질 못했다. 
서른 여섯에 집을 나와서 그 길로 서울에 와 가지고 20-30년 동안 혼자서 안해 본 게 없다. 시장에서 가판대를 놓고 장사도 하고 공장에 밥을 지어 나르기도 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자궁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고, 1992년 가을 강남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지금도 나는 조금만 움직이면 막 붓고, 가렵고,바늘로 쑤시는 것 같이 아파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다. 
지금도 일본 정부가 우리들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증언을 하노라면 속이 뒤집히고 성질이 난다. 

 

----------------------------------------위 글은 위안부 피해자인 손판임 할머니의 증언입니다.


아직도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 매춘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미 충분한 배상을 했다고,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었다고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서경덕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대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이 이미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에 충분히 배상했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한 나라의 지성이라 할 수 있는 대학생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정도이니

전체 일본 국민들의 생각은 어떤지 안 봐도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는 올해에만 벌써 8명이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남은 한국인 생존자는 47명입니다. 

추천수13
반대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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