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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하루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가리비땅콩 |2015.10.07 18:43
조회 148 |추천 1

딱 하루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 월스트리트의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볼 수 있다는 것은 틀림없이 축복이다. 나는 앞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불행으로 여긴 적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을 너무 낙관적으로만 본다는 말을 나는 수없이 들어 왔다. 심지어 내가 시력을 잃은 시기도 적절하다고 생각할 정도다. 백일도 되기 전에 녹내장에 걸려 시력이 좋지 않긴 했지만, 그래도 만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다른 아이들처럼 구슬치기, 딱지치기, 전쟁놀이 등을 하며 평범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눈 수술을 받느라 병원에서 자주 생활한 것을 제외하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어린아이의 삶이었다. 이후 녹내장에 걸린 왼쪽 눈의 시력이 아주 약해지고, 오른쪽 눈에는 망막박리까지 생겨 결국 아홉 살 때 시력을 완전히 잃었다. 볼 만큼 보고 시력을 잃었다기보다는, 많은 면에서 예민해지는 시기인 10대 이전에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아온 나도, 앞을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마음 아팠던 적이 있다. 처음으로 속상했던 때는 서울맹학교에 입학한 아홉 살 때였다. 시력이 나빠지고 있는 것도 모른 채 계속 뛰어다니다가 넘어지고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다 보니, 무릎 성한 날이 드물었다. 이를 눈여겨본 한 선생님이 언젠가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잘 보이지 않으니까, 천천히 조심해서 걸어 다니라고. 꼭 필요했던 그 충고가, 어린 마음에 참 슬프게만 느껴졌다.


두 번째로 슬퍼했던 적은 어느 날 내 머릿속에서 엄마의 얼굴이 지워진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나처럼 시력이 전혀 없는 사람은 항상 어둠 속에서 생활한다고 많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않다. 눈이 보였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내 머릿속에는 항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보이는 듯하다. 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할 때면, 내 앞에 아내 그레이스가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아들 데이비드가 앉아 있는 모습이 그려진다. 또 아내가 아이에게 빨리 먹으라는 말을 할 때면, 입속에 든 음식을 씹지 않은 채 한가득 물고만 있는 아이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내가 한 안과 의사에게 이런 말을 했을 때, 그는 왜 내가 항상 앞을 보고 사는 것 같은 착각을 하는지 가르쳐 주었다. 내 눈은 해야 할 일을 못 하고 있지만, 두뇌는 계속 그림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사진이 오래되면 색이 바래고 세세한 윤곽이 흐려지듯이, 언젠가부터 내 머릿속에도 형태만 겨우 알아볼 수 있는 희미한 영상만 계속되고 있다. 그 모든 것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희미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엄마의 모습이, 특히 그 얼굴이 희미해진 것은 완전히 시력을 잃은 지 2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봄날이었다. 스물 두번이 넘는 수술을 받으면서도, 안대를 걷어 낼 때면 항상 처음으로 보였던 엄마의 얼굴을, 두 달 동안 부산병원 환자실에서 나란히 놓아 붙인 의자 몇 개를 침대 삼아 생활하면서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엄마의 그 얼굴을, 더는 그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받은 충격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세 번째로 내가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했던 것은 아내의 솔직한 한마디 때문이었다. 언젠가 아내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볼 수 없는 사람과 삶을 같이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중에서도 내가 자신의 눈빛이나 표정을 볼 수 없는 게 가장 힘들다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말이 필요 없는 이해’라는 것이 있다는데, 그런 것이 우리에게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무척 미안하면서도 슬펐다.


마지막으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슬펐던 적은, 결혼 생활 9년 만에 태어난 데이비드를 안고 흔들의자에 앉아 재우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이 아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아이의 머리가 내 왼쪽 어깨와 얼굴 사이에 있었는데, 그때 비로소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아주 크게 내 마음에 와 닿았다. 순간 가슴 속에서 무언가 뭉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내의 얼굴을 봐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면서 안고 있는 이 아이의 얼굴은 그렇게 보고 싶다니. 아이의 땀인지 나의 눈물인지, 어느덧 내 왼쪽 눈가에 맺혀 오는 물기를 의식하면서, 나는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30여 년만에 처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잠시라도 눈을 뜨고 세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는 그녀에게 볼 수 있는 날이 사흘만 주어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면서 수필을 썼다고 한다. 보면서도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이 수필을 읽었을 때, 나는 이런 엉뚱한 생각을 했다. 사흘은 너무 길지 않은가! 내가 정말 보고 싶은 것은 하루면 충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나에게 시력이 주어지는 24시간을 내 뜻대로 계획할 수만 있다면, 이렇게 하루를 보내고 싶다. 어느 초여름 날 아침 해 뜰 때부터 그다음 날 해 뜨기 전까지 딱 하루만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난 그날만은 일찍 출근하지 않을 것 같다. 뉴욕 근교 뉴저지 한 동네에 자리 잡고 있는 자그마한 내 집 뒷마당에 서서, 떠오르는 해와 39년만에 돌아올 나의 시력을 기대하며 하루를 시작할 것이다. 해가 과연 어떻게 뜨는지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뒷마당에 있는 나무들과 여러 군데에서 울기 시작하는 새들, 또 왔다 갔다 하는 다람쥐 등을 보면서 아침 풍경을 즐기겠다.


아들이 깨기 전에 집 안으로 들어가, 자는 아이의 얼굴과 몸, 자세와 표정 등을 사진 찍듯 머릿속에 세세히 담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아이가 눈을 뜨고 일어나는 모습, 그리고 아빠가 자기를 보고 있음을 깨달을 때의 표정을 머릿속에 담겠다. 아이의 눈망울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정말 어른들의 그것보다 맑은지 관찰하겠다. 또 2014년에 새로운 가족이 된 여자아이의 잠든 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들이 이 아이와 내가 많이 닮았다고들 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을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우리 동네를 구경할 것이다.


아내와 같이 오붓하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19년간 함께 살아온 이 여인의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선을 볼 때처럼 조심할 필요는 없겠지. 아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겠다는 것이 아니니까. 그녀의 모습을 고해상도 사진을 찍듯이 자세히 들여다보고 머릿속에 넣어 놓아야, 얼마 동안이라도 기억할 수 있을 테니까. 또 식사 후 집 안에 있는 모든 사진첩을 모아 놓고, 가족들과 친구들의 옛 모습을 보면서 아내와 대화를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결혼식 비디오를 보면서 그때의 우리 모습과 친척들의 얼굴을 보고 싶다. 점심을 아내와 같이 먹고 나서 나는 뉴욕발 기차를 탈 것이다. 물론 항상 가지고 다니던 흰 지팡이는 집에 놓고 갈 것이다. 창밖을 내다보며, 내가 사는 뉴저지 북부와 뉴욕을 구경할 것이다. 정말 뉴저지가 ‘가든 스테이트(Garden State)’로 불릴 만큼 푸르른 곳인지 내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리고 내가 17년 가까이 다니고 있는 회사로 갈 것이다. 나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상상했던 것과 현실이 얼마나 다른지 볼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피부색이 얼마나 희고 검을 수 있는지, 정말 사람의 머리가 빨갈 수 있는지 확인할 것이다. 또 컴퓨터 앞에 앉아 일도 할 것이다. 흑백텔레비전의 기억만 남아 있는 내게 인터넷에 연결된 총천연색의 컴퓨터 스크린은 어떤 자극으로 다가올까. 처음에는 여러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가 볼 것이고, 거기에는 틀림없이 한국 텔레비전 생방송 페이지도 포함될 것이다. 적어도 처음에는 말과 점자로 스크린을 읽어 주는 스크린리더를 사용해야 할 것이다. 글을 알지 못하니까.


회사에서 두세 시간을 보내고 나오는 길에 바로 앞에 있는 9·11테러 현장에 가 볼 것이다. 비행기 두 대가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그날, 나도 가까운 빌딩에서 그 큰일을 경험한 사람 중 하나였다. 업무적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들도 죽고, 피난민처럼 걸어서 월가 지역을 벗어났던 그날의 일을 기억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때 희생된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그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을 묵묵히 지켜볼 것이다.


그 다음에는 계획한 대로 부모님들을 뉴욕에서 만날 것이다. 나를 낳고 키워 주신 한국의 부모님, 그리고 열다섯 살 때부터 돌봐주신 미국인 대드(Dad), 그리고 장인, 장모님과 아내, 아이와 함께 근사한 뉴욕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관광객처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 올라가 뉴욕 야경을 감상할 것이다. 또 42번가 타임스퀘어에서 얼마 동안 사람 구경을 하고, 서클라인 유람선을 타고 맨해튼 섬 주위를 돌며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의 모습과 표정을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몇 시간 잠을 잔 후, 해가 뜨기 전에 교회로 가서, 볼 수 없을 때나 볼 수 있을 때나 항상 함께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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