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데... 상당히 부끄럽네요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쓴 글이 아니라 대부분 추측성의견을 짜집기 한 정도라...애당초 천방지축마골피 라는게 성씨를 말하는건지 직업을 말하는건지 아니...천방지축마골피라는 말 자체가 출처와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근본도 없는 말이라는거죠
그나마 당장 알 수 있는 사실 한가지는 일제강점기를 사셨거나, 일제강점기와 가까운 시절을 사신분들중엔 맹신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는거죠.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일제강점기 일제에 의한 왜곡된 역사중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역사적 기록에 의해 전해져오는 이야기가 아닌 언제 어디서 생겨났는지는 모르지만 마치 진짜 있었던 것 같은 이야기들 대부분은 일본이 그 시초이거나, 일제에 의해 조작된 이야기인 경우가 많죠
우리가 어릴적 무심코 하던 놀이, 부른던 노래 대부분이 일본이 시초인 것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고려시대에 늙은 부모를 버리는 고려장이야기가 실제 존재했던 문화라고 받아들였지만, 일제에 의한 조작이었다고 밝혀졌죠
축씨와 골씨 문제로 천방지"추"마골피다 라는 의견도 있습니다.추씨는 무슨죄가있다고... 추씨는 송나라에서 고려로 건너온 성씨고, 고려인종때 문과에 급제한 추엽이 시조입니다.
골씨는 조선시대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축씨에 관해선 중국에 축씨가 존재했다 정도 외엔 조선에 축씨가 있었다는 자료는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천방지축마골피가 성씨를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에 힘을 실어주고 있고,이에 반박하는 의견으로 천방지"축"이 아닌 천방지"추" 다 라는 말이 간간히 들려오는 것이죠
뭐 이러나 저러나 중요한건,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한 역사적 증거따윈 없다는겁니다.
백정에 관한 부분을 추가하자면1899년 조선에 방문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백정의 모습을 묘사한 글에 의하면그들은 눈동자가 회색이나 푸른색 혹은 갈색이었고, 머리칼이 붉으며 키가 180cm정도에 체구가 매우 좋았다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조선왕조실록 에는 "우리나라에는 특별한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이들은 호적에 등록된 일반 백성과 다르고 이들을 백정이라고 한다." 라고 적혀있죠
고려시대엔 이들을 양수척 혹은 달단이라고 불렀으며, 달단은 타타르족을 일컫는 말입니다.즉 전형적인 동양인의 모습이 아닌 서양인의 모습에 가깝다는걸 알 수 있죠
한국인중 유독 서양인의 외형적 특징이 나타나는 사람들중 이들 양수척 즉 백정의 피가 섞여있을지도 모르는겁니다.게다가 유전형질이라는게 잠복해있다가 세대를 거슬러 나타나기도 하죠내 외모가 지극히 동양적인 외모라 할 지라도 내 몸속에 양수척의 피가 흐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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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ann.nate.com/talk/328672798
방금전 보고서 열심히 댓글을 썼지만... 여자들만 쓸 수 있다니...
대충 요약하자면 글을 작성한 여성분 성씨가 "피"씨라는 이유로 남자의 아버지가 결혼을 반대한다 뭐 이런내용입니다.
천방지축마골피 흔히 말하는 상놈 즉 천민성씨라고들 알고계시죠?저희 연세많으신 큰어머니도 항상 봤다하면 빼놓지 않고 하시는 말씀이 "천방지축마골피"만 아니면 된다. 라는 것입니다. 좀 부끄러운 얘기죠 21세기에 신분제라니...
그냥 듣고 웃으면서 한귀로 흘리기는 하지만, 제가 언젠가 결혼하고픈 여자가 위 성씨중 하나가 될 수도 있는건데 단지 천민성씨라는 이유로 왕래가 그리 잦지도 않은 친척의 빈정을 듣고싶진 않아서 알고있는 내용인데
위 링크 글의 댓글 중 다들 욕은 하지만서도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정리해 드리고자 글을 써 봅니다.
천방지축마골피 딱 들어보면 천, 방, 지, 마, 피 씨는 다들 한번씩은 들어보셨을거에요하지만 축씨와 골씨가 있나?... 찾아보니 있긴 있답니다~~다시 찾아보니 1985년 성씨를 조사한 결과 축씨와 골씨는 없었다고 하네요골씨에 대해서는 조선시대에 강화골씨가 있긴 했었답니다.
우선 적으로 위 성씨들의 족보를 검색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족보가 나옵니다.물론 족보라는게 한국전쟁때 많은 족보들이 유실되어서 뒤늦게 복원을 한 족보들도 많습니다.정말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족보는 진짜 몇 안될 겁니다.
어쨌든 족보가 있다는 말은 천민은 아니란 얘깁니다. 족보가 있다고 양반가문이냐? 그것도 아니죠과거 족보를 사고 팔던 시절도 있었고, 노비가 모시던 양반가문의 성씨를 이어쓰게된 역사도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볼때 조선 신분을 그대로 세습하고자 하면 사실상 불가능해지게 됩니다.어떤 성씨에 천민들이 스며들어있는지 알 수 없기때문이죠
하지만 천방지축마골피 이 성씨는 확실하게 족보가 있는 명문가들이라는 겁니다.그럼 왜 천방지축마골피에 대한 차별이 생겨났느냐 하는 것인데
간단하게 말해 "천방지축마골피"는 성씨를 얘기하는게 아닙니다.천 = 무당, 방 = 목수, 지 = 집과 묫자리를 봐주는 쉽게말해 풍수사, 축 = 소백정, 마 = 말을 다루는 백정, 골 = 뼈를 다루는 백정, 피 = 가죽을 다루는 백정(가죽세공사)이렇게 직업을 뜻하는 말입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하죠? 네 귀천이 없습니다. 모두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일 뿐이니깐요하지만 현대에도 귀천을 따지기도 하죠, 현대의 귀천으로 따지면 위 직업들중 천하다고 여기는 직업은 몇 안됩니다.
세상이아무리 좋아졌다해도 무당은 역시 차별을 받고있죠, 하지만 다르게 보면 종교적인 직업을 갖는 사람들도 "천"의 직업에 해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과거엔 왜 이런 직업들이 천대를 받았냐? 바로 신분때문이었죠 천민... 그들은 성을 가지고 있지않았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부르는게 이름이었고 인간이지만 가축과도 같은 취급을 받았습니다.
우선 백정에 대해 먼저 알아보죠백정은 단군의 후손인 (고)조선의 후예가 아닙니다. 북방오랑케민족들이었죠 그들에겐 조국이 없습니다. 유목민이라고 하죠떠돌이 생활을 하며 사냥등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민족입니다. 체격이 좋고, 사냥을 잘하며 고기와 가죽을 잘 다루는 이방인들이었죠
북방오랑케의 침략을 받았던 우리 선조들에겐 어쩌면 우리안에 섞여있는 낯선 이방인들이 곱게 보이지 않는게 당연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에 흡수되기보단 자기네들끼리 모여살기를 택했고, 왜구를 가장해 노략질을 하거나, 오랑케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곤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아마 이런 이유로 이들이 천대받게 된 계기가 아니었을까 추측을 합니다.
세종때 이들을 양민화정책을 펼치지만 양민들과 양반들의 반발로 법적으로는 양민이지만 천민들과 다를바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죠, 세종의 양민화 정책을 거쳐 이들도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백정이라는 말이 백성이라는 말이었으나 세종이후 백정은 이들을 지칭하는 단어가 됩니다.
이들은 사냥술이 뛰어나고 축산, 도축기술이 농민들에 비해 뛰어나고 일정한 곳에 모여사는 것이 특징입니다.
세조때는 백정이 도적이 되기도 하며 포도청에서조차 이들에게 손을 떼버릴 만큼 통제를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릅니다.
뭐 조선사회의 차별과 멸시때문인지 그들 원래 성향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이들에 대한 인식이 좋게 흘러갈 수가 없었겠죠
얼마전 판에 올라왔다 사라진 백정각시놀음 역시 그 자체만 보면 부끄러운 선조들의 만행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시대적 상황을 놓고 볼때 이해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마치 지금 동남아 외노자들과 같은 경우겠죠, 그들중엔 성실하고 착한 사람들도 많겠지만일부 심각한 사회범죄를 저지르고 이들이 통제가 되지 않기때문에 외노자들에 대한 안좋은 인식이 쌓여가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들 백정들은 병역의 의무나 납세의 의무가 없었기때문에 형편이 어려운 양민들은 스스로 백정이 되기도 하였고, 세금을 내지 않았기때문에 부자들이 많았으나, 의복부터 주거까지 법적으로 제한이 있었기때문에 돈을 쓸 곳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구한말~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삶이 어려워진 양민들의 분노가 이들 백정들에게 향해졌고, 자녀의 학교 운동회에서 백정각시놀음으로 치욕을 느낀 여성들이 자살하는 사태가 빈번히 일어나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백정각시놀음에 관해 잠깐 올라왔다 사라진 판 에서는 차별받는 백정을 일제가 구원해 줬기때문에 그들이일제에 편에 섰다 라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
일본에 백정들과 비슷한 개념의 부라쿠민이라는 계급이 있었고, 이들역시 일본사회에서 심한 차별을 받던 계급입니다.
그 부라쿠민들은 여전히 차별받는데 조선의 백정을 일제가 도왔을까요?일제는 민족분열정책의 일환으로 이들에 대한 차별은 더 심해집니다. 게다가 당시일본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말그대로 최 하위나 다름없었죠 여성은 전쟁을 나가는 남자를 생산해 내는 가축 쯤이었습니다. 여성은 아무데서나 펼치면 이불처럼 되는 천을 둘러입고 마주치는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져야만 했습니다. 후에 아이를 낳은 여성은 아비의 성을 몰랐기때문에 관계를 맺은 장소를 성씨를 쓰기 시작했죠그래서 중국과 한국의 성씨와 다른 일본만의 성씨가 생겨납니다.
뭐 이런이유로 조선내 백정들의 박해는 더 심해졌고, 특히 여성들에 대한 박해는 상상을 초월하게 되죠, 백정각시놀음이라는게 조선시대부터존재해오던 악습이지만, 일제강점기에 들어 더 빈번히 그리고 악랄하게 이루어 졌습니다.
백정은 일제가 조선주민등록부에 도부 라고 표기할 만큼 일제역시 조선의 백정을 멸시했다는 증거들이 존재합니다.
그럼 왜 일제가 그들을 도왔다고 했을까요? 간단합니다.일본편에선 앞잡이들은 일본이 편의를 제공했기때문입니다. 즉 일제가 백정들을 해방시켜줘서 고마움을 느낀 백정이 일본편에 서게 된 것이 아니라일본편에 서야 박해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에 앞잡이 노릇을 하게 된거죠게다가 조선인들에게 그동안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일본앞잡이들이 어떻게 같은 민족을 팔아먹고 고문하고 했는지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백정의 삶이라는게 백정의 입장에서 보면 박해와 멸시의 역사를 산 수난의 민족이면서도조선민족 입장에선 고려시대엔 도적/오랑케 앞잡이, 조선시대엔 도적, 일제강점기엔 일본앞잡이라는 인식이 깊게 박힌 만큼 이들에 대한 인식이 좋게 느껴지지 않는것도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수모의 역사를 가진 백정은 한국전쟁당시 수많은 족보들이 유실되고, 백정마을이 전소되는 등 사실상 더이상 백정과 양민을 나눌 그어떤 흔적도 남지 안게 된 겁니다.
그러나 역시나 그들이 하던 직업에 대한 멸시는 백정에 대한 오랜 인식만큼 끈질기게 남아 지금도 내려오고 있지만,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기아는 생계를 위해 양반들도 일을 해야 했고, 신분에 관계없이 살기위해 어떤 일이라도 해야했기때문에 사실상 직업이 신분에 대한 차별로 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죠
그럼에도 여전히 도축업자들을 백정이라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이쯤이면 왜 백정이 오랜역사동안 멸시받아야 했는지 아시겠죠?
천방지축마골피는 과거 천민들의 직업이었습니다.이들 천민들의 중심엔 백정이라는 이방인들이 있었고, 이방인들과 한민족의 갈등은 까마득히 먼 과거 고려시대 어쩌면 그 이전부터 존재해 오던 것들입니다.백정은 백정 나름대로 조선민족은 민족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었기에 누가더 나쁘다 라고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들에 대한 멸시는 민족 정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오랜 역사를 가졌습니다.
어느 한순간에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죠, 현재는 모든 한국인들이 저마다의 성씨를 가지고 있으며, 그들 하나하나 모두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직업이 과거 신분을 말해 줄 수 없을만큼 모든 계층에 두루두루 분포되어있고, 이제는 돈이 신분을 말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과거 백정의 일이라는게 현재는 전문성이 필요한 전문직의 일종이죠 인정받는 직업입니다.
그럼 왜 직업을 뜻하는 천방지축마골피가 성씨를 뜻하는 말로 와전이 되었을까?
그야 모르죠... 어디선가 흘려들은 얘기로는 돈을 주고 족보를 산 천민들이 족보와 성씨는 가졌으나 여전히 돈주고 산 신분이라고 법적인 제제에서는 자유로웠으나, 주변의 시선들로부턴 자유롭지 못한 new양반들이 비교적 수가 적거나 입지가 낮은 양반가문을 천민들의 성씨라고 와전시켰다는 얘기도 있고, 돈주고 양반족보를 사서 신분은 상승했으나, 지식이 부족해서 직업을 뜻하는 한자어 천방지축마골피를 성씨라고 와전시켰다는 얘기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어쩌면 일제의 민족분열정책으로 왜곡된 것들 중 하나일지도 모르죠고려장 이야기처럼 유서깊고 덕망있는 양반가문을 내리 깎기위해 왜곡했을 수도 있는거니깐요
게다가 천민들이 돈을 주고 족보를 사거나, 성씨를 가질 수 있게 될때 일부러 천민들끼리 천민임을 증명할 만한 성씨를 만들거나, 사진 않았을겁니다.신분세탁을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죠, 기왕이면 좀더 유명하고 위엄있는 성씨를 택할겁니다.대표적인게 김, 이, 박 이죠 일단 많으니 누가 천민출신인지 성씨만으론 판단할 수 없으며 한때는 다들왕족이었던 성씨고, 특히 이씨는 조선왕조의 성씨였으니 기왕 신분세탁을 할 거라면 나 천민출신이요 하는 성씨로는 할 필요는 없겠죠
노비가 모시던 양반들의 성씨를 그대로 쓴다고 했을때 역시, 가장 많은 성씨에 가장 많은 노비들이 스며들어가는것도 당연한 거겠죠
그리고 임꺽정역시 대표적인 백정중 하나입니다. 어머니가 천민이고 아버지가 양반이지만 아들을 거둬주지 않아 아버지 성씨를 사칭했다 뭐 이런 얘기도 있지만,어쨌든 임씨중엔 대표적인 백정 임꺽정의 후손도 있을겁니다.
천방지축마골피가 성씨를 지칭하는게 아니라고 주장하는 내용중에 "천"씨과거 어느민족이든 하늘은 높은 권력과 덕망의 상징이었고, 신을 상징하며 왕가를 상징했었습니다.
성씨에 사용되는 天자는 하늘천자로 천한사람이 쓸 수 있는 성씨가 아니었다는 것이죠천방지축마골피에서의 천자 역시 하늘 천자죠
天 즉 하늘을뜻하는 말로 하늘과 관련된 직업 뭐 현재에는 비행기 조종사도 있고 하늘과 관련된 직업이야 많겠지만... 과거에 하늘과관련된 직업은 역시 무당이죠
정리하자면 "천방지축마골피"는 과거 천하게 여겨졌던 직업을 뜻합니다.이중 다수의 직업이 백정 즉 천민들의 직업이었고, 이들은 오랜 역사동안 멸시를 받아왔으며,이들이 멸시를 받게 된 배경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고로 앞으로 "천방지축마골피"(축과 골씨가없다하니 천방지 마 피)성을 가진 분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차별을 하지 않았으면 하고,또한 위 성씨를가지신 분들은 주변 몰상식한 분들의 신분드립에 상처받지 말고 조목조목 얘기해서 역관광 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