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에 가려졌던 고바야시 마사모토(小林正元·66·사진)씨가 처음으로 조선비즈에 포착됐다. 한일 롯데 경영권 분쟁의 주 무대인 일본 도쿄 신주쿠 롯데홀딩스 빌딩이 아닌 서울 강남구의 한 빌딩에서다.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은 21일 조선비즈와 만나 “동생(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쓰쿠다(일본롯데홀딩스 사장), 고바야시가 힘을 합쳐 지난 1월 나를 먼저 자른 다음, 7월에는 아버지(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를 경영진에서 몰아냈다”며 “고바야시가 각본·상영을 맡은 쿠데타”라고 말했다.
▲ 20일 오후 6시 30분. 고바야시 마사모토 롯데캐피탈 대표가 승용차에 올라타고 있다. / 박원익 기자◆ 일본 신주쿠 아닌 강남서 활동 중인 롯데 일본인 그룹의 지휘자 10월 20일 밤 6시20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롯데 캐피탈 빌딩 9층. 굳게 닫힌 유리문이 열리면서 각진 턱에 짙은 눈썹, 철테 안경을 쓴 고바야시 한국 롯데캐피탈 대표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흰 와이셔츠에 감색 정장 차림. 큰 키는 아니었으나 딱 벌어진 어깨를 가진 우람한 체격이었다.
기자가 다가가자 잠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조선비즈 기자임을 밝히자 이내 시선을 피한 채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했다.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신격호 총괄회장이 신동주 전 부회장을 지지하고, 광윤사 지분을 넘긴 것에 대한 생각은?“
“…”
“당신을 포함한 일본인 임직원들이 신동빈 회장을 계속 지지합니까?“
“…”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신격호’, ‘신동빈’ 같은 이름이 나오자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하지만 굳게 닫힌 그의 입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신동주 전 부회장에 대한 평가. 경영권 분쟁에 대한 질문에는 손사래를 치며 등을 돌렸다. 그는 임직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검은색 승용차에 올라타고 어둠이 짙게 깔린 테헤란로로 황급히 빠져나갔다.
◆ 매출 90조 롯데 쥐고 흔드는 숨은 실세
‘한·일 롯데의 실세 중의 실세.’ 소문은 무성하지만, 정작 그는 한·일 재계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베일 속의 인물이다.
롯데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일본롯데홀딩스 6대 주주(6%)인 임원지주회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린 여섯 명 가운데 한 명. 일본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 정도가 알려진 것의 전부다.
일본롯데홀딩스 핵심 관계자는 “고바야시는 임원지주회를 장악했을 뿐 아니라 롯데홀딩스 2대 주주(27.8%)인 종업원지주회를 움직이는 인물”이라고 했다.
조선비즈 취재 결과, 그는 2004년 12월 이후 한국 롯데캐피탈 대표로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2010년부터는 일본롯데홀딩스 CFO를 겸직, 한일 롯데그룹의 경영권 향배를 쥔 인물로 부상했다.
▲ 롯데홀딩스 지분구조. /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 SDJ코퍼레이션 제공◆ 히토쓰바시 법대 출신 정통 금융인, “신동빈 회장이 직접 발탁” 일본 재계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일본 히토쓰바시(一橋)대학 법학부 출신인 그는 산와은행, UFJ은행을 거친 정통 금융인이다.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산와은행은 도쿄미쓰비시·스미모토·다이이치간교·사쿠라· 후지은행 등 일본 ‘메가 뱅크 6개사’ 에 포함되는 대형 은행이다. 지방은행에서 도시은행으로 성공적으로 변모한 최초의 은행으로 꼽히며 2002년 도카이은행과 합병, UFJ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
고바야시 대표는 2000년 산와은행 기업금융부장, 2002년 UFJ비지니스 파이낸스 상무를 지낸 뒤 2003년엔 UFJ은행 고문을 끝으로 퇴사했다.
일본 금융계를 떠난 그는 2003년 신동빈 회장에게 발탁, 한국 롯데캐피탈 상무에 임명된 뒤 2004년에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롯데캐피탈은 자본금 1665억원 규모로 롯데그룹 계열사 중에선 존재감이 미미한 회사다. 1995년 11월 ‘부산할부금융’으로 설립됐다가 2000년 3월 지금의 롯데캐피탈로 사명을 변경했다. 2014년 영업이익은 985억원.
한·일 롯데그룹의 운명을 좌우하는 일본인 핵심 실세가 이름 없는 그룹 계열사 대표로 활동 중인 이유는 뭘까?
재계의 한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경영권, 자금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 신동주 전 부회장 “롯데 경영권 쿠데타, 고바야시의 작품”
신동주 전 부회장은 “종업원지주회 대표는 원래 신격호 총괄회장 사람인 히라노였지만, 주주총회를 앞둔 지난 7월 전격적으로 다른 인물로 교체됐다”며 “그룹 경영권의 열쇠를 쥔 일본인 임직원들이 신 총괄회장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든 이가 고바야시”라고 말했다.
다른 롯데홀딩스 핵심 관계자는 “고바야시에게 롯데 그룹 핵심 업무를 맡긴 사람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라며 “그가 롯데홀딩스 CFO에 오른 2010년부터 사실상 경영권 다툼이 시작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