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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이도루 |2015.11.02 07:58
조회 1,223 |추천 0

꽤 오래전에 있었던 일인데,
지금도 나를 괴롭히고 있는 이야기야.
내가 고등학생일 시절에 여자친구가 있었어.
그렇게 예쁘다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누가 봐도 '참한 규수'같은 느낌이었는데,
임신을 해버린거야.



우리가 그나이에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것 같아?
결국 우리는 아이를 낙태시켰어.
나에게도 큰 책임이 있었으니까 병원까지 같이 가긴 했는데
대기실에서 느낀 그 분위기를 지금도 잊을 수 없어.


거의 모두 내 여자친구의 나이쯤 되보이는 어린 여자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도 입을 열려고 하지 않고 있었어.
그중에는 아예 모자에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풀장비를 한 아이도 있었고,
누가 봐도 폭력에 시달린 듯한 상처를 입고 있는 아이도 있었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그 대기실의 유일한 남자는 나였다는 거야.
여자들이 남자가 대기실에 들어왔단 걸 알아차린 순간
정말 피부 위로도 엄청난 살의가 느껴지더라고.


내가 모든 여자들의 적이라는 마냥
정말 죽일 듯이 째려보더라.
그중에 어떤 여자아이랑 같이 온 아주머니는
대놓고 나한테 쌍욕을 하기도 했어.
정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기는 했지.
상담을 받을 때도 여자친구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나와 의사선생님의 일방적인 대화가 오갔어.
수술실까지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수술실의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감정들은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 힘들은,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면서도 찝찝하고 울고 싶은,
그런 고등학생이 견뎌내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감정이었어.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어.
아니, 사실 한 생명을 지워버리는 수술을 했는데 '성공했다는' 표현을 써도 될까
수술실에서 나온 여자친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어.
그렇게 몇시간이나 전철을 타서 가야 했던 병원에서부터 
또다시 몇시간동안 그녀와 함께 돌아갔지.
서로 아무 말도 못했어.
그런데, 전철에서 내려서 다시금 헤어지기 직전에 
학교 앞에서 그녀가 얼굴을 든 순간
정말로 시선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내 여자친구는 그때 나를 몇십번이고, 몇천번이고 죽이고 또 죽였을거야.
그런, 증오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눈동자로 나를 노려본 후
이 말을 뒤로 하고 내 인생에서 사라져버렸어:

"널 평생 저주할거야"



그 후로 연락을 취하려고 해도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아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어.
그렇게 마음속에 커다란 흉터가 생긴 채 난 어른이 되어갔어.
그러다 마음이 맞는 여자를 만나고, 결혼까지 이르렀지.
아내에게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지 못했어.
정말, 신혼기간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어.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그녀가 나를 피하기 시작하는거야.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지 않았어.
내 앞에서 살갗을 드러내는걸 극도로 꺼리기 시작했고,
평소에는 러브러브하다가도 '그런' 분위기가 되버리면 그녀는 바로 후퇴해버렸어.



처음에는 여자들의 그 기간인가, 라고도 생각했고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으니까 무리하고 싶지 않은 거라고 단정지어버렸어.
그런데 그렇게 몇달동안 지속되니 아무리 나라도 의심이 가는거야.



혹시 그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지 않은 건가, 라는.
숨겨진 애인이 남겨둔 자국같은게 있어서 
내 앞에서 제대로 벗지도 못하는 게 아닐까?
이미 나와는 관계조차 맺기 싫어진 게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안고있으면서도, 난 그녀에게 대놓고 물어보지 못했어.




왜냐하면 우리들은 관계만 가지지 않은 것뿐이지, 누가 봐도 정말 금슬 좋은 부부였거든.
아내에게 추궁함으로 인해서 우리의 관계를 뒤틀어버리고 싶지 않았어.
난 결국 겁쟁이었던 거야.
그렇게 불안과 행복을 동시에 껴안고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아내는 휴일인 기간에 내가 출장을 가야 하는 일이 있었어.
그녀는 물론 같이 휴일을 즐기며 릴랙스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일 열심히 하고 오라'고 말해줬어.
그냥 듣기에는 마음넓은 부인의 응원같았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녀가 애인을 집으로 들일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처럼 들려왔어.


난 정말 가고싶지 않았지만, 이번 출장은 
나의 승진에 커다란 영향을 주는 이벤트라서 어쩔 수 없이 가기로 했어.
그런데 출장 당일, 아침에 출근해서 약속장소에 도착을 해보니
거래측 회사에서 사고가 일어나 출장을 연기하겠다는거야.
난 얼떨결에 그날은 쉬라는 명을 받아서 몇시간만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됬어.
일단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어서 싱글벙글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는데,



봐버린거야.
우리집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자동차 몇 대를.


그녀는 오늘 누군가를 초대한다는 말 따위 하지 않았었어.
그래도 실수로 깜빡했을 거라면서 스스로에게 되내이며 현관문을 열었어.



신발을 벗는 곳에는
그녀의 신발 외에
모르는 남자의 신발들이 몇켤레나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어.



그리고 우리방의 윗층에서부터 침대가 삐걱이는 소리가 들려왔어.



끼익--
끼익
끼익-....
귀를 긁는 듯한 쇳소리.
그런데 병신같은 나는
그때조차 '지금 도로 나가면 이건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어'라는 형편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렇게 몇초동안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고 있자
침대의 스프링에 무리를 가하는 그 쇳소리가 점차 빨라지는 걸 알아차렸어.
끼익끼익끼이익끼익끼익-
그리고 기분탓이었을까, 아내의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어..



그걸 들은 난 결국 결심했지.
그녀가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해도,
난 이미 알아버렸는데. 그렇게 되버린 이상 이런걸 계속 하면 안된다고.
썩히는 것보다는 부셔버리는 게 나을거라고.
막상 그걸 정하니까
갑자기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거야.
어떤 새끼가 내 침대 위에서 남의 아내와 더러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걸까, 라는 분노 섞인 의문이 내 머릿속을 꽉 채웠어.


난 신발도 벗지 않고 복도를 가로질러 계단을 올라가기 시작했어.
꽤 커다란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침대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아내의 신음소리는 전혀 작아지지 않았어.
끼익-끼익..끼이익--끼익끼이이익-..
'..---아-....'
안방 앞까지 단숨에 도착하고, 굳은 결심을 하고 문을 열어제꼈어.
그때 내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저 뭔가를 어떻게 해버릴거라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그리고 침대 위의 광경을 보자마자
난 뼈저리게 후회했어-...


차라리 그녀가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있는 장면을 발견하는 게 나을 뻔했어.



그녀는 침대 위에 두발 두손을 묶인 채 침대 위에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침대 주변을 둘러싼 여러 명의 남자들은 각각 묵주를 손에 쥐고 있었어.
내 아내는 입에 거품을 문 채 알 수 없는 언어로 무언가 필사적으로 소리지르면서
남자들에게 상처를 주려고, 온몸을 비틀고 있었어.
그런 그녀를 흔들림 없는 눈으로 응시하며, 남자들은 그녀에게 끊임없이 기도를 외워댔어.



맞아, 안방에서는 제령의식을 치르고 있었던 거야.
내 아내를 위해서.



난 정말 그때 넋을 놓아버려서 몇분동안 그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어.
그때 몸부림치던 내 아내는 나를 알아차린 순간,
마치 다른 사람처럼 입술을 비틀고 내쪽으로 침을 뱉었어.
그걸 본 스님들은 내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처음에는 놀라더니, 이내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어.
그중에 한 명이 내쪽으로 걸어와서,
"놀라셨겠지요? 아내분께서 말하지 말라고 해셔서 인사를 드리지 못했군요. 이렇게 봐버린 이상, 모든 걸 설명하겠습니다."
라고, 매우 침착한 톤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어.
내가 얼떨결에 방에서 나오기 전에 문득 아내의 몸을 봤었는데,
얇은 드레스(가운인가?)만 입고 있었던 그녀의 온 몸에는
수많은 새빨간 손자국 모양의 피멍이 들어있었어.



더이상 뭐가 뭔지 알수 없어져버린 난 날 거실로 데려와준 스님을 멍하니 응시하고 있었어.
그는 내가 진정했다고 생각했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줬어.



"당신의 아내에는 엄청나게 강한 원혼이 붙어있습니다.
몇달 전부터인가,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해 와서
남편분이 집에 계시지 않을 때 우리쪽으로 오거나 우리가 아내분의 집으로 가서
그 원혼을 떼어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죠.
슬프게도 원혼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데다가, 아내분이 당신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셔서 자주 뵐 수가 없었습니다."



"...원혼이라뇨? 그녀가 과거에 나쁜 짓을 했었나요?"
소름이 좌악 돋았었어. 내가 모르는 그녀의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마치 내 고등학생 시절처럼?



내 질문을 들은 스님은 한참 동안 미묘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열었어.

"아뇨, 그녀에게 붙어있는 원혼은 당신을 저주하고 있는 겁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서는 고등학교 시절에 사귀고 있었던 여자친구의 마지막 한마디가 울렸어.

--너를 평생 저주할거야--

"아마도, 그 원혼은 당신이 아닌 당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지인들에게 해를 가할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욱 그것에게 시달리겠지요.
이 사실을 아내분에게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정말 죄송하지만, 당신도 아내분이 소중하시다면,
이혼을 하는 것이 그녀의 목숨을 살리는 것일지도 몰라요."
눈물이 차올랐어.
헤어지고 싶지 않았는데, 그녀와 멀어져야 한다니.



나의 아내는 
나와 같이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온몸이 다쳐가면서까지,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은 채
몇달동안 그렇게 꿋꿋히 홀로 참아왔던 거야.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집은 그릇세트를 자주 깨뜨려서 새로 사야 했었던 일이 많았어.
어째서 그렇게 자주 깨뜨리냐, 라고 물어봤었지만
그녀는 그저 자주 허둥대서 그런거라고 얼버무렸었지.
생각해보면 그녀는 내 앞에서 그릇을 떨어뜨린 적이 없었어.
내가 없었을 때 발작을 일으켜서 들고 있던 그릇들을 내팽겨쳐버린 거야.
더이상 '그녀'가 아니게 되버린 '그것'은,
나를 평생 저주할 심산이었어.
그것도 질이 매우 나쁜 저주.
'그것'의 저주로 인해,
난 평생 홀로 외로워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거잖아.
정신을 차린 내 아내는, 거실에 아무 말 없이 앉아있는 날 발견하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미안하다며, 
이혼하자고 말했어.
이혼절차를 어떻게 치뤘는지는 기억나지 않아.
그저, 정신차려보니 난 도로 원룸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어.
그 후로 난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했고, 휴일날에도 본가로 돌아가지 못했어.



언젠가 술에 취해서 전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서 애걸복걸 한 적이 있는데,
한참 내 타령을 들어주다가 그녀는



"미안해. 정말 미안해. 당신은 너무나 사랑하는데,
당신의 그 저주는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라고 말하고, 살짝 울먹이는 목소리로 안녕을 고한 후 전화를 끊었어.
그 이후로 난 그녀에게 전화를 하지 않게 되었지.
난 이렇게 결국 홀로 죽어버리는 걸까? 아무도 나를 기억해주지 않은 채.
너무 두렵고 슬퍼서 매일 밤에도 잠을 설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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