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설기 이야기 1화 - 부제 : 얼짱백구's Story

테이루아 |2016.02.10 10:49
조회 491 |추천 2

앞서서...

우리 집은 개를 무척 좋아하는 애견가족이다. 내가 기억하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우리 가족들은 항상 개와 함께 생활을 해왔고 우리 집을 거쳐갔던 견들은 모두 우리의 가족이었다. 지금 생활하는 녀석들이 몇 마리째인지도 정확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견들이 우리와 함께 했었다.

 

설기가 우리가족으로 왔을 때 총 세 마리의 견공(犬公)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작은 요크샤 테리어 퐁이, 그리고 외갓댁에서 데려온 믹스견이었던 해피(스피츠+푸들 추정)였다. 그 세 견중에서도 진돗개 설기는 굉장히 특별한 녀석이었다. 그것은 그 동안 발바리 종류의 작은 견들만 키워왔던 우리 가족에게 첫 중형견이었기 때문일 뿐 아니라 굉장히 영특하고 똘똘하였으며 풍부한 감수성으로 가족들에게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추억과 에피소드를 만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명확히 혈통을 검사해본다면 설기는 순종의 진돗개는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설기가 순종이냐 짝퉁(...설마)이냐를 떠나 우리 가족들이 설기를 단순한 하나의 애완동물로써가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써 인정하고 함께 생활했었다는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예측이 아니라 확신하건데 앞으로 최소 50년 이상이 남았을 내 인생에서 그 어떤 반려동물과 인연이 되더라도 설기같이 정겨웠던 녀석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설기와의 인연이 다하고 다른 견을 가족으로서 받아들였을 때 그 녀석에게 설기만큼의 정이 갈는지 또 그로인해 설기가 점점 잊혀져 갈 것이 두렵다.

 

필자와 우리 가족들은 설기가 우리 집과 인연(人煙)을 맺게 된 것이 단순히 복받았다거나 땡잡았다는 표현으론 말할 수 없는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인연이자 하나의 운명의 전기이며 즐겁고 행복했었던 때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너무나 아쉬운 것은 설기가 우리 가족과 처음 가족이 되던 해 설기의 어린시절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점이다.

 

이 이야기는 예전부터 한번쯤 정리하려고 했었다. 설기와 너무도 즐겁고 정겹게 지냈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적어도 언젠가 다가올 설기와 인연이 다하는 날 슬픔을 털어내고 즐거운 추억만을 기억하며 꼭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 그리고 설기를 앞으로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펜을 잡게 되었다. 아울러 이 글이 개를 좋아하는 애견가들 뿐 아니라 개에게 좋지 않은 기억이 있거나 개를 싫어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작으나마 하나의 파문과 변화 그리고 작은 울림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또한 자랑스럽고 훌륭한 우리의 토종견(土鐘犬)인 진돗개에 대한 좋은 인식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쓰고자 한다.

 

2016년 2월 9일 조 성현 씀

 

 

 

1화 - 허여멀건 놈이 오다!

 

그 녀석이 우리 집에 처음 오던 때는 대한민국(大韓民國)인이라면 누구나 다 기억할 월드컵으로 유명했던 2002년도 이다. 시간이 좀 흐른지라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2월 14일로 기억한다.

 

그 당시 나는 사회복지사로써 수원에 소재한 작은 복지생활시설에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의 근무 체계는 격일제 근무여서 근무를 마치고 집에 퇴근하니 부모님은 공주에 계신 아버지의 옛 친구(군대 동기)를 만나러 간다고 하셨다. 아울러 어머니는 아버지 친구 분이 키우는 진돗개가 강아지를 순산해서 한 마리 분양받아 올 거라고 꼭 이쁜 여아로 데려올 거라고 얘기를 하시면서 갔지만 여아보단 남아를 원했던 나는 그 말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우리 가족들의 지나간 이상한 편견에 대해 한 마디 얘기를 하자면 지금껏 많은 견공들이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했지만 그것은 별로 중요한 점이 아니다. 그럼 뭐가 문제일까? 그것은 설기 이전에 우리 집에서 함께했던 견공 중에는 남아가 단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이다.

 

참고로 필자는 여아보단 남아를 더 선호한다. 내 아래로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다지만 여자 형제들 있는 남성분들이라면 아마 어느 정도는 공감하리라 느낀다. 아무리 친한 남매간이라 하더라도 남녀 간 어느 정도 생각의 차이가 있게 마련...더구나 다소 까칠한 성격인 여동생과 말없고 무뚝뚝한 내 성격은 물과 기름정도까진 아니어도 여간해선 공감대가 형성되기 힘든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나는 나와 같이 어울릴 만한 남자형제를 원했지만 이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울 어머니 왈 나 같은 놈 하나만 더 있으면 투병투쟁 하신단다--.) 넘어갈 수밖에 없고 그러니 끽해야 강아지라도 형제처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에 나는 남아를 선호 같은 이유로 동생은 여아를 선호했던 것이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오는 견공들 중 남아는 내 담당으로 여아는 동생 담당으로 결정이 됬던 것이다.

 

그러면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우리 집에 남아 견공이 없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대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도통 근원을 알 수 없지만 남아들은 집 안팎을 안 가리고(그것도 고급 카펫, 이불, 소파 등등 일거리 크고 힘든 것에만) 무조건 뒷다리 들고 찍(?)이라는 희한한 논리를 들어가며 키우기 힘들고 피곤해 죽겠다는 그 이상야릇하고 희한하기 그지없는 편견을 근거로 우리 집에 오거나 아주 어쩌다 태어났던 남아는 무조건(!) 다른 집으로 입양됬던 것이다.

 

아무튼 설기가 집에 오기 전에 우리집에는 두 마리의 견공이 있었다. 한 마리는 요크셔 테이어 암컷으로 어릴 때 부터 키워왔던 퐁이라는 녀석이고 그 녀석 전에 90년도 즈음에 외갓댁에서 키우던 마르티스 견종의 믹스견 암컷인 해피라는 녀석이 있었다. 이 해피에 대해서 또 한 마디 안하고 넘어갈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는 이 녀석은 우리 가족들과 함께 생사를 넘나든 녀석인 것이다.

 

혹시 90년대 초반에 수원이나 그 인근에 거주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할는지 모르지만 91년도 우리 동네인 정자2동에는 화공약품 유출사고로 인해 주민 세 명이 사망하는 큰 사건이 있었다. 우리 가족도 그 간접적인 피해자인 셈인데 온 식구가 곤히 잠들어 있던 밤 11시 경 그날 오후 6시 쯤 페놀성분의 화공약품을 싣고 가던 트럭이 전복되는 바람에 하수도를 타고 인근 온 가정으로 유독가스가 유입되었던 것이었다.

 

당시 부모님이 빨리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온 가족들도 정신없이 사지(死地)를 겨우 벗어났던 그 순간에 아버지는 키우던 개를 죽일 수 없다며 그 유독가스 안을 뚫고 다시 들어가 당시 키우던 개 해피를 구조해온 것이다. 당시 다른 주민들을 개를 생각할 만큼 경황이 없던 탓에 사고 이후 동네에는 한 동안 개들이 다 죽어서 없었었다.

 

그러나 워낙에 독한 가스였던 탓(나중 조사에 의하면 염산성분)에 당시 해피는 입천장과 혀가 모두 벗겨져 두 달 정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우리 가족들 역시 거의 한 달 동안 호흡기에 문제가 있고 성대에 문제가 생겨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도 없었다. 특히 아버지는 가스 유입이 많았던 탓에 거의 반 년 이상을 성대이상과 호흡기 질환으로 고생하셨던 기억이 있다.

 

그런 사연이 있는 두 견을 키우고 있는데 2001년 연말에 아버지가 갑자기 개를 한 마리 더 키우자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어머니는 반대(실제로 견 관리하는 건 거의 어머니들 몫이니)하셨지만 아버지는 이미 마음을 굳히신 듯 했고 이번엔 큰 개인 진돗개를 키워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껏 발바리 종류나 소형견들만 키워왔고 예전 안양 살적에 키우던 견이 진돗개에게 한번 된통 물려 사경을 헤맸던 안 좋은 기억이 있는 가족들은 그렇게 큰 개를 문제없이 잘 키울 수 있을까...싶은 생각에 불안하기만 했지만 아버지는 뭐가 그리 신나는지 진돗개 여아 이쁜 녀석으로 데려오겠다며 호언장담을 하셨다.

 

그러던 2002년도 나도 모처럼 휴일이고 온 식구들이 집에 있는데 개를 분양한다던 아버지 친구(군 동기) 분이 집으로 왠 박스 하나를 들고 찾아오셨다. 그 박스 안에는 하얗고 동글동글하며 까만 눈동자만 똥그랗게 뜨고 있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 동기 분 왈 “아따 암놈 주려고 했는디 다섯 마리가 그냥 수놈만 나와부렀어. 그래서 내가 제일 눈 크고 예쁜 놈으로 데리고 왔당께.” 하시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아가 올 줄 알고 별 기대를 안 하고 있던 나는 그 얘기에 강아지에 급 호기심이 생겼고 당연히 여아를 기다리던 어머니와 여동생은 청천벽력 같은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 동기 분은 차 한잔 하시고 빨리 출발해야 된다며 오래지 않아 ‘그 녀석’만 두고 가버리셨고 그제서야 가족들은 아직도 박스 한가운데서 그 큰(어린데다가 눈이 동그래서 그래 보인 듯) 눈만 굴리고 있는 녀석을 자세히 볼 수가 있었다. 털이 보송보송하고 하얘서 눈만 아니라면 털 뭉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동글동글했다. 이제 그 이름을 지어야 하는데 딱히 별다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가족들이 논의를 거듭하고 있던 중 식당에서 백설기떡을 먹고 있던 동생 왈 “이야~쟤 딱 백설기네 백설기.” 라고 하는 것이었다(여동생과 어머니는 떡순이 모녀라 불릴 정도로 떡을 좋아해서 늘 떡을 입에 달고 살았던--;). 그 순간 모든 가족들의 눈은 그 하얀 녀석에게 집중됬고 어이가 없었다기보다 만장일치로 무언의 공감을 했다. 하얗고 흰 털 그리고 그 중간에 까만 눈동자. 뭔가 너무나 딱 맞지 않는가?

 

그리하여 2002년 2월 14일 겨울날 우리 집에 왔던 허여멀건 불청객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설기라는 이름을 얻어 정식으로 우리 가족이 되었던 것이다. 또 이제까지의 불문율에 의해 이 녀석이 수놈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녀석의 주인은 당연히 나로 결정되어 버렸다.

 

뭐 사족이긴 하지만 나중에 이름에 하얀 눈의 기운(白雪氣)라는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아무리 그래도 견 이름을 떡(음식?) 이름으로 할 수 없다는 내 주장이 반영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제껏 우리 집에서 견을 많이 키워봤어도 필자는 이제껏 견에 대한 사육이나 관리를 거의 해본 적이 없었다. 미숙하기도 했거니와 부모님들이 거의 전담하셨기에 나나 내 동생이 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부러 그러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본의 아니게 나는 견 양육을 처음으로 해야 될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당시 부모님은 다음 날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 동생은 대학MT 등등으로 이튿날 집에는 나와 견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마침 3일간의 휴가였던 나는 편하게 집에서 쉬려 했건만 그것은 말 그대로 내 희망사항일 뿐이었던 것이다. 큰 개들이야 어머니가 미리 해놓고 가신 개밥을 주면 되겠지만 문제는 설기였다.

 

그래도 내가 직접 양육해본 적은 없지만 부모님이 강아지들 사육할 때 본 것처럼 작은 접시에 우유와 견 사료를 불려서 먹이고 그냥 마루에서 재우면 별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건만 밥 먹이고 내 방으로 들어와서 느긋하게 온라임 게임을 즐기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이 녀석이 낑낑대며 울어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어려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낮선 환경에 부모와 떨어져 혼자만 있어서 그런 건지 녀석은 울음은 30분이 넘도록 그치질 않았고 견디다 못한(...이라기 보다 양심상) 나는 녀석의 임시 보금자리인 박스를 통째로 내 방으로 옮겨놓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는데 이 녀석이 이번엔 내가 시야에서 안 보이자 또 울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체 뭘 어쩌라는 거냐...싶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어쩔 수 없이 밥을 먹이고 의자에 있던 내 무릎위에 녀석을 눕히고 몇 번 쓰다듬어 녀석이 졸다가 잠이 들자 나는 다시 조용히 온라인 게임을 즐겼는...아니 즐기고자 했는데 밥을 먹어 그런지 졸린 표정으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내 무릎에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얼굴을 부르르 떨더니(?)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아...이 표정을 신경썼어야 했는데 나는 녀석이 잘 자니 이제 됬다 싶어 안심하고 게임을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무릎이 뜨뜻해지는 느낌과 뭔가 익숙한(?) 고향의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응? 왠 고향의 냄새? 게임을 하던 중 난 설마...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보니 녀석이 내 무릎에 큰 것, 작은 것 실례를 거창하게 해놨던 것이다(ㅠㅠ)! 경악하며 그 와중에 황급히 허벅지를 모아서 의자까지 참사(?)가 퍼지는 것을 막고 아직도 비몽사몽인 녀석을 들고 황급히 욕실로 뛰었다. 일단 따뜻한 물로 녀석을 잘 씻기고 수건으로 대충 수습한 다음에야 급히 참사(?) 부위를 정리하고 퍼뜩 게임 생각이 나 다시 게임을 보니 내가 한참 몸빵하며 몹 몰던 와중에 생긴 일이지라 파티가 다 전멸하는 참변(!)이 발생(...)해 있었다.

 

...너무나 황당한 사태에 넋이 나가 말을 잃은 내 PC화면에는 게임에서 내게 대체 무슨일이냐고 묻고 뒤이어 무슨 상황인지 알길 없는 내 상황과 행태에 분노하는 파티원들의 채팅만이 위로 흘러가고 있었다. 허탈한 마음 추스르고 문득 설기를 보니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 채(...당연히) 태평스럽게 새근새근 잘~자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내 머릿속에는 대체 이 녀석이랑 어떻게 지내야 하나? 라는 걱정 아닌 현실이 예감 아닌 사실로 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추천수2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