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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인생의 1/5이 통채로 날아가 버린 것 만 같은..

ICYLV |2016.02.20 23:17
조회 375 |추천 0

아니, 5년이라 하기엔 조금 애매한 사연이지만 말입니다..

 

저와 여자친구는 7년 전, 모 온라인 게임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당시 저의 나이는 18세, 여자친구는 14세였습니다.)

네,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모닥불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그 게임 말이죠.

 

처음에는 그저 길드의 지인으로 알고 지내다가 시간이 흘러 그녀의 개인사를 듣게 된 저는

여자친구의 부모님이 저의 부모님과 많이 비슷했으며, 그로 인한 고민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공감대로, 저와 여자친구는 게임 외 적으로도 아주 긴밀한 사이가 되었지요.

 

권위주의 부모의 전형적인 실패의 결과물인 저는, 아빠의 쓴소리에 침묵하고, 도피하기 바빳지만

하지만 그녀의 부모님들은 저의 부모님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듯, 아주 올곧게 자라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올곧게 자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언제부턴가 동경을 품게 되었습니다.

 

5년 전 여름의 어느날, 잇단 불화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가출을 감행 한 저는

3주동안 서울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가진 돈을 탕진하였습니다.

삶을 비관하고,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신경정신과를 전전하며 모은 수면제를

입안에 털어 넣으려던 그 날, 여자친구의 전화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겁니다.

 

수화기 너머로 느껴지는 그녀의 느낌은, 평상시완 다른 것이었습니다.

묘하게 우물쭈물 하며 말을 못하는 그녀.

평상시처럼 장난스럽게 "왜그러는데~?" 라고 물어본 저에게 들려 온 말은

"그냥.. 좋아한다구" 였습니다. 네. 저는 그토록 동경하던 그녀에게 고백받았습니다.

 

어쩌면 당시엔 어린 마음에, 자신에게 잘 해주는 사람에게 호감이 일어 한 말일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 한마디에, 포기와 절망으로 무뎌져버린 무언가가 돌아오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직 살아있어도 될 사람이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시간이 몇분정도 지났을까요

저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동안 모은 수면제를 모두 변기에 내려버리고

그녀의 마음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습니다.

잘못 들은게 아님을,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대로의 뜻임을

확실하게 다시 전달한 그녀의 목소리는, 5년이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구원입니다.

 

그리고 다시 집으로 들어간 저는, 아버지의 등쌀에 군에 지원했고

군 입대 이틀 전인 10월 08일, 코엑스 아쿠아리움에서 첫 데이트를 하였습니다.

첫 데이트라 일정을 잘 짠 건지도 모르겠고, 긴장도 많이 했지만

굳이 시간을 맞춰 간 것도 아닌데 마침 방어 쇼가 시작되었다던가 하는 행운으로 인해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군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저는, 입대 3개월만에 본부에 호송되어 1개월간 보호받고, 그린캠프에 보내져

6개월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만 있다가 심신미약 판정으로 공익을 선고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 보다도, 저는 훨씬 더 나약한 인간이었던 것이죠..

 

그렇게 공익으로 빠지게 되니, 그때가 2011년, 4년 반 전의 여름이었습니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들어갔고, 학업이 바쁘다는 이유로 연락은 점점 뜸해졌습니다.

(그와중에 데이트도 한번 하긴 했었지요)

(이쯤에서 말하자면, 저는 충남 예산, 그녀는 인천 부평에 살고 있었습니다. 직선상으로 120.1km)

그리고, 완전히 연락이 끊어진 지 한참이 지나고서야, 저는 이대로 사그라들어 끝나 버린건가

하며, 슬슬 미련을 버릴 때 즈음이었습니다.

 

2014년 11월, 수능 다음날.

그다지 울릴 일도 없는 저의 전화에 톡이 날아왔습니다.

그것은 그녀였고, 그동안의 인내와 노력에 비해서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약해진 상태였습니다.

 

반가우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그녀를 다독여주었지만

그녀는 다시 침묵하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1월 포기할 때 즈음 나의 앞에 다시 나타나놓고

다시 조용해진 그녀에게, 저는 처음으로 불만을 표출하였습니다.

 

"내 얼굴과 목소리라도, 기억은 하고 있는거니.."

 

아니나 다를까, 역시나 그녀는 제가 많이 낯설어졌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기다려줘서 너무 고맙고, 확실하게 대답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는 그녀에게

저는, 무슨 대답을 하더라도 직접 만나서 이야기 할 것을 부탁하였고

이에 수긍한 그녀를 다시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당시는 1월이었지만, 저의 계약직 만료는 7월이라 그때까지 기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5월 18일. 한번은, 도저히 만날 용기가 안난다며 미안하다고 한 적도 그녀가 얘기했었지요.

그래도 전, 다시 생긴 기회를 놓치기 싫었습니다.

 

"천성의 약함을 핑계로 도망치지 마. 그건 너무 비겁해"

"설령 거절당한다 해도 좋으니까, 직접 나를 마주하고 얘기 해 주세요"

 

그리고 7월달이 되었습니다.

거의 2년 반만에 다시 보는 그녀는, 너무나도 아릅답고, 청초하게 성장 해 있었습니다.

'내가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나도 그녀같은 기운을 가졌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따듯하고, 눈이 부셧습니다.

차일까 하는 걱정 같은건 보는 순간 저 멀리로 날아가버렸습니다.

다시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만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을까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서로를 조용히 끌어안았습니다.

그 길로 저는, 상경을 핑계로 가진 돈을 몽땅 가지고 나와, 부평에 월셋방을 잡고

여름방학동안 시간만 되면 서로를 만났습니다.

 

주말에는 봉사활동, 주중에 두번은 스터디를 갈 정도로 바쁜 그녀였지만

시간이 비는 날은 어김없이 나를 만나러 와 주었습니다.

 

그녀와 함께 한 여름은, 너무나도 빠르게 흘러갈 정도로 행복한 시간들 뿐이었습니다.

그녀가 오는동안, 스위츠 탑을 쌓아 숨겨 두었다가 꺼내주기도 하고

알콜을 쓰지 않고 집에서 만들 수 있는 칵테일 등을 마시며

더위에 지쳐 에어컨을 틀어놓고 늘어지기도 하고

직접 밥을 해 주기도 하고..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입을 맞추고

격렬하게 사랑을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의 마음속에 다시 들어온 그녀의 자리는, 너무나도 커져갔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는 다시 예산으로 돌아왔고, 그녀 역시도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지난 여름날의 추억들만이, 그녀를 또 보고 싶다며 계속 아우성 치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엇을 해도, 마음속의 제일 첫번째는 그녀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녀의 마음 속 1위는 때에 따라서 수시로 변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기쁠때도 힘들때도 항상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힘들때엔 그 누구도 찾고싶지 않아하였습니다.

 

저는 그녀와 사귀고 있음을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고, 온 일가친척들이 다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남자친구인 저의 존재를 꿈에도 몰랐습니다.

 

커플 프로필 사진은 그녀가 하지 않았을 뿐더러

저에게도 허락되지 않았지요..

 

하지만, 전 그걸 탓하려고 이 글을 쓰는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상한 것은 제 쪽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병적일 정도의 집착이, 끝내 저와 그녀의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갔습니다..

 

결정적인 촉매는 작년 12월 말에 있었던 일입니다.

유난히 연락이 없던 며칠, 저는 그냥 호기심과 궁금증에 그녀의 카카오 스토리에 들어갔습니다

(물론, 카친은 아니었습니다만..)

 

몇개 안되는 전체공개 기록들, 그 기록들의 대부분은

저와 연락이 안되던 2년 반 공백기간 동안의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어리석게도 저는, 그곳에 딱봐도 동갑은 아니며 그렇다고 친척뻘도 아닌듯한

남자들의 이름만 보고서 불안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

제가 모르는 그녀의 모습이 있다는 것이 있다는것이, 이상할 정도로 신경쓰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그녀는, 생전 한번도 안내던 화를 내었습니다.

누가 봐도 뒤를 캔 거 아니냐며, 불같이 화를 내는 그녀에게

저는 그저 미안하다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의도야 어쨋든, 빼도박도 못할 사실이었으니..

 

이틀에 걸친 사과 끝에 저와 여자친구는 관계를 회복하였고

서로 다시 잘 지내는 듯 하였습니다..

아니,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한 건 저 혼자였을지도 모릅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그녀에 대한 제 마음은 너무나도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습니다.

하루만 연락이 안되어도 너무나 불안하고, 손에 잡히는 일이 없었지요

그리고 나흘 전부터 세 번, 생전 안그러던 그녀가 낮부터 친구와 밖에 나가

술을 마시고 0시를 넘겨 들어오는 일이 지속되고, 그나마도 평상시라면

잘 달래줬을 그녀가, 대놓고 저를 귀찮다는 듯이 대하자, 저는 징징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빠 결국 또 울어. OO니가 며칠씩이나 이런저런 친구를 만나고

늦게 들어와서라는 단순한 이유가 아니라

오빠가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지 알고 있을텐데

불안을 지워주긴 커녕 피하는 모습으로 보이니까.."

 

"아파.. 정말로 너무 아파..

지난번에 말한대로, 오빠 마음속에서 OO니가 계속 커지고

너무 커져버린 바람에, 자꾸만 기다릴 수 있는게 짧아지는 것 만 같아.."

 

"오빠가 왜 이러는걸까.. 이러면 OO니만 더 힘들어지는데

그나마 남아있던 어른스러운 부분도 깎여나가는 것만 같은 느낌이야.."

 

"부탁이야.. 힘들어하는건 채여니 친구 뿐만이 아니야.."

 

그리고, 한참 뒤에 돌아 온 대답은

 

"하...."

 

"진짜...."

 

이 두마디였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11시간 전, 0시.

 

이젠 내가 싫어졌냐는 물음에.

그녀는 긍정했고, 제발 그만 좀 집착하라고, 이젠 놔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실 12월 말의 그 일도, 여전히 용서하지 않은 채였습니다.

그대로 용서하지 않기에는, 제가 너무나도 약해져있었기에.

마음속으로 삭이며 한번만 더 기회를 주려고 한 것이겠지요..

 

이 이후의 말들은 이곳에 다시 쓰기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파 차마 쓰지 못하겠지만

그 모든 아픈 말들이, 저의 어리석은 고집과 집착으로 인해 생겨났고

그녀 역시도 제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있어

차마 맨정신으로는 말을 못하고 술의 힘을 빌려 이야기 해야 할 정도로 힘들어했음을 생각하니

심장이 통채로 뜯겨나갈 것 처럼 아파옵니다..

 

그녀에게도 힘든 일은 있었을텐데

누군가에게 얘기 하는 타입이 아니라, 혼자 있고 싶어 해서

나에게조차 얘기를 안하고 끌어안고 있었을텐데

저는 그 속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의존하려 들어 그녀를 힘들게 만들어버렸고

그 결과가 결국은 이것이라 생각합니다..

 

재기의 희망은 없습니다.

평생을 속죄해도 모자라겠지요.

그래도 저는, 그래도 용서받고, 다시 곁에 설 날을 기다리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마 이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하러 오신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슬픔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라면

저의 행동을 책망하고, 잘못되었다고 확실히 얘기 해 주실지 언정

저의 마음을 아예 이해 못하진 않으시리라 믿고 있습니다..

 

네, 사실 기다리겠다고 잘난듯이 말해놓고, 결국은 오늘도 너무나 견디기 힘들어

다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습니다.. 어머니께서 그런 저를 보고

참으로 여성적인 성격이라고 핀잔을 주면서도, 딱하게 여겨 다독여주시더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행복했던 시간을 시작하길 원하시는 분들, 새로운 만남을 찾고, 기다리시는 분들

모두 좋은 인연 있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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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OO나, 오늘 자고 일어나면 2박 3일 간 OT겠구나.

너도 마음이 너무나 아파 잠 못 들고 있을 걸 알아..

그 원인이 나라는 것도 알아..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되기는 커녕, 너를 더 힘들게만 할 것도 알아..

그래서 더 괴로워..

 

비록 OO니 네가 더이상 오빠를 보고싶어하지 않고

오빠를 미워한다 해도, 난 여전히 OO니 하나뿐이야..

 

다시 곁에 설 수 있을 날을, 반성하며 기다릴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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