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상희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어제 상희와 전화 통화한 후 창하는 가끔 기억 속에서 꺼내어보던 10년전으로 돌아가 있었다.
군대를 가 본 남자라면 살아 숨쉬고 잇지만 자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그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외로운지 알 것이다. 졸병 시절엔 고참에게 시달리랴, 군 생활 몸에 익히랴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지만 고참의 대열에 서서히 다가서면 시간이란게 더디게 흐르는 법이다. 그런 창하의 군생활엔 그녀가 있었다. 대학에 들어가서 같은 강의를 들으면서 알게 된 그녀는 어느새 그와 커플이 되어 있었고 그들 커플에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군대를다녀와야 했을 때 친한 선배가 권유해준 의경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그리 멀지 않은 원주로 발령이 났고 그녀는 거의 매주 면회를 와주었다. 그녀의 면회도 창하의 군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러니까 그 해 3월 그녀는 그 토요일에도 그녀는 어김없이 면회를 왓다. 평소와 다름이 없던 그녀는 헤어지는 자리에서 말했다.
"창하씨, 나 다음주부터 못 올것 같아. 미안해. 나 그동안 힘들었어."
그게 전부였다. 그리고 그녀는 그 약속을 지키듯 면회를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애를 만났다. 첫인상이 그 큰 눈을 안경 속에 감추고 환하게 웃던 그애를..
방범과에 새로온 아가씨라고 이순경이 소개를 시켜 주었다. 힘든 의경 생활에서 형처럼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환하게 웃으며 대답하던 그녀의 말투엔 강원도 특유의 사투리가 배어 있었다.
"네. 안녕하세요?"
토요일 오후 창하는 상황실에서 근무를 서고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데 누군가 경찰서 문을 나서고 있었다.
'아직 퇴근 안한 사람이 있었네. 누구지?' 그애였다
어쩌다 창하가 쳐다볼때마다 환한 웃으면서 일을 하곤 했었다. 그 아이에겐 세상은 핑크빛으로만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퇴근하는 그 아이의 뒷모습은 너무 외로워 보였다.
"최이경, 바쁘냐?"
"아닙니다. 손수경님"
"나 부탁이 있는데"
"말씀하세요."
"저기 창밖에 가는 사람 보이지. 왜 지금 막 약국 옆을 지난..."
"예"
"가서 112로 손수경한테 전화 좀 하라고 해 줄래?"
"예"
최이경이 상황실을 나가자 '내가 왜 이러지" 생각했다.
잠시 후 최이경이 돌아오고 곧이어 그애가 전화를 했다.
"네 원주경찰서입니다"
"저, 죄송한데 손수경님.." 겁먹은듯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접니다. 놀라셨죠. 원래 이렇게 전화하면 안되는데.." '그럼 난 왜 전화를 하라고 했을까?'
"예`"
"혼자 퇴근하시는 뒷모습이 너무 외로워 보여서요." '아니 이건 또 뭐야'
"예" 그렇게 전화를 끊었던 것 같다.
'내가 왜 그랬지? 혼자 가는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다고.. 손창하 너 제정신이 아니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 헤어짐의 아픔이 내 가슴에 자리하고 있었나 보다. 그 아이 뒷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것 같았다. 차고에서 기타를 치고 있어도 이제 그녀는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신이 먼저 그녀에게 연락을 할 수도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전화 이후 그 아인 나를 보면 더 환하게 웃곤 했다. 그 아이 특유의 강원도 사투리와 그 환한 웃음을 볼때면 이별의 아픔 같은건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다. 뭐가 바쁜지 큰 키에 항상 뛰어다니는 그 아인 복도에서 매점에서 자주 마주칠 수 있었다. 직원들 눈치에 같은 의경들 눈치에 많은 이야긴 못했지만 그 아인 참 따뜻한 느낌이 드는 아이였다. 그 애는 몰랐지만 그 아이는 의경들 사이에 꽤 인기가 있었다. 만날 수 있는 여자가 몇 안되는 환경탓도 있었겠지만 그 아이의 환한 웃음은 보는 사람을 즐겁게 해주었다.
외출허가가 나고 달리 만날 사람도 생각나지 않던 그 날 그 아이와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