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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받고 싶어 끄적이는 글 입니다.




4살 무렵, 지금으로썬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유아기 시절,

내 부모님은 이혼을 해 버렸다.


부모님 입장에선 -이혼을 했다- 로 표현 되겠지만,

엄마와 아빠의 손길을 타다가, 어느 날 부터 강제로 한 쪽의 손길을 떠나 보내고 한 쪽의 손길만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내 입장에서

그들은 이혼을 해 버린 것 이였다.


4살 때 부터 친척들이 나에게 주입시킨 우리 부모님이 이혼을 해 버린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니 애미는 나쁜 사람이야'

'왜요?'

'그런게 있어, 너 버리고 도망간 년이야'



훗 날 커서는 어느 정도 용기가 생기는 바람에, 그리고 정말 나쁜 사람이였는지 궁금해져서

이십 몇 년 간 한번도 꺼내지 않은 엄마와의 이혼 해 버린 이유를 물었다.


"근데 정말 왜 이혼 했던거야?"


아빠는 말했다.


우리 엄마는 게을렀던 탓에 아빠가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청소나 설거지가 제대로 되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럼 일을 하고 피곤한 상태에서도 엄마가 하지 않은 집안 일을 대신 했다는 것,

그게 아빠가 말해준 이유의 전부 였다.


솔직히 나는 겪어보지 않아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왜 설득해서 고쳐 볼 생각은 안한걸까?

마음 속으로 질문했다.


더 묻고 싶었지만 처음으로 엄마와의 이별 이야기를 물어서

당황한 아빠의 표정을 보니 더 이상 묻고 싶지 않아서

그 질문은 마음속에 묻었다.



나는 명절 때 항상 큰집에 가서 제사 준비를 돕고 함께 제사를 지낸다.

갈때마다 늘 큰엄마,큰아빠는 나에게 묻는다.

"엄마 안 보고 싶어? 아직도 엄마가 밉니?"

"네, 안보고 싶어요."

"으이구 매정해라"

"안 본지 20년이 넘었는데 뭐가 매정해요?"


나는 어릴 때 부터 모든 친척들이 엄마는 나쁜사람이고 널 버리고 간 년이라고 말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엄마를 보고싶어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매정한 년도 아니고 불효막심한 년도 아니다.

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는.




"사실은 너희 엄마가 널 버리고 도망간 게 아냐.

내가 기억하는 너희 엄마는 푼수끼가 좀 있고 철이 없어서 그렇지

너와 아빠를 정말 많이 사랑했어. 근데 고모들과 할머니들이 쫓아낸거야."


내 나이 20대 중반이 지나고 큰 엄마가 말해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집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이 시작했지만,

엄마가 가입 해놓은 청약저축으로 운좋게 아파트에 당첨되어

600만원에 17평짜리 아파트에 세 식구가 입주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아파트에는 우리 셋만 살았던게 아니다.

할머니와 막내고모도 함께 살았다.

그 좁아터진 집구석에.


할머니는 자기를 모시고 살 사람으로,

본인 말이라면 뭐든지 다 듣는 우리 아빠를 선택한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 좁아터진 집이라도 가지려던 심산이였을지도.

그리고 시집 안간 막내 고모는 덤이였다.

왜냐면 그들은 집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우리 세 식구는 할머니와 막내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런데 욕심쟁이 할머니 눈에는 시집온 지 얼마 안되어

서툰 솜씨로 살림과 육아를 하는 둘째 며느리가

그렇게 미워 보였나보다.


아빠에게 늘 우리 엄마의 험담을 하며 이혼하라고 강요를 하셨다.

'쟤가 할 줄 아는게 뭐있어! 엉?'

'살림을 잘해 애를 잘 키우기를해!'



할머니에 꿈쩍 못하던 우리 아빠는 그렇게 철없는 우리 엄마를 사랑으로 감싸주지 못한 채

함께 살림을 꾸린 지 4년만에 이혼을 해 버리고 말았다.


결국 엄마 덕분에 얻은 그 집은,

그 곳에 있어야 할 엄마가 떠나고

할머니와 고모와 아빠와 내가 살게 되었다.


우리 엄마가 가입한 청약통장으로 당첨된 집이지만 우리 엄마는

푼수때기 바보같은 엄마라서 나가라면 나가야 하는 줄 알고

친정집으로 쫓겨나 버렸다.



그 여파로 인하여 우리 엄마와 아빠는 아직도 싱글이며,

우리 엄마는 그 여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과도한 우울증으로 인하여

아직까지 정신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산다.


그 여파는 그 뿐만이 아니다.

나에게도 문제가 있다.


엄마를 내쫓아 버린 그 나쁜 할머니와 막내 고모와 살던 시기에,

막내 고모는 나를 아주 많이 때렸다.

유치원도 다니지 못해서 더하기, 빼기, 곱하기도 잘 모르는 내게

학교 시간표를 외우지 못한다며, 풀스윙으로 내 머리를 때려 쓰러진 적이

한 두번이 아니였다.

막내 고모는 내가 자길 무서워 하는 것을 보고

본인을 호랑이 고모 라고 지칭하면서

말 잘듣는 어린이로 만들기 위해선 본인 같은 사람이 교육시켜야 한다며

호랑이 고모, 호랑이 고모, 호랑이 고모라고 여기저기 친척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



그러다 막내 고모는 시집을 가고, 할머니는 노환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고모가 시집을 간 이듬해 돌아가셨다.

(막내 고모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았지만 본인의 딸은 나처럼

풀 스윙을 날려 때린다거나 소리를 질러 다그치는 교육을 일체 하지 않았다.

그것은 나에게만 사용하던 교육법이였던 것이다.)


그로 인해 초등학생인 날 돌봐줄 사람이 없어 우리 아빠는 부득이

친척집에 날 맡기고 일을 다니셨다.


초등학교 3학년~4학년은 둘째 고모네서 지냈다.

둘째 고모는 욕쟁이 고모라서 나에게 욕을 자주 했다.


한번은 큰 고모가 둘째 고모네 집에 놀러와서 며칠 쉬게 되었다.

큰 고모는 아침 일찍 등교하는 나에게 밥을 차려 주었다.

허겁 지겁 먹는 날 보며 큰 고모는 말했다.

'둘째 고모가 아침 안차려줬어?'

'네'

'왜? 이렇게 잘 먹는데?'

'제가 안먹는다고 했어요'


나는 오랜만에 먹는 그 맛있는 밥을 홀랑 다 먹고 기분좋게 학교에 갔다.

그러나 학교를 끝마치고 돌아온 건 큰 고모가 일터로 돌아가고

집에 홀로 남은 둘째 고모의 불호령 같은 목소리 였다.


'이 __이, 큰 고모한테 내가 아침 안 차려줬다고 했냐?'

'니가 안 쳐먹는다며, 이 개 같은년이 내 입장을 이렇게 만들어 버려?'

'이 신발년아"

하면서 물건을 던지고 쌍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9살 초등학교 3학년이 였다.


우리 아빠가 맨 입으로 나를 친척집에 맡긴 건 아니였다.

그 당시 매월 30만원 씩 양육비를 지급하긴 했었다.

물론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아무 댓가 없이 들어가서

밥을 축내고 욕먹을 짓을 한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 일이 있고난 후 둘째 고모와 나는 말을 잘 하지 않았다 .

그렇게 2년을 지내고 난 또 다시 큰아빠네로 옮겨져서 지내기 시작했다.

그 집에는 언니들이 두 명이 있었는데, 언니들은

처음엔 잘해주었지만, 큰엄마 큰아빠가 나를 불쌍히 여겨

잘해주시는 것을 보고 질투를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건 성인이 되고난 후 나에게 미안하다며,

질투심에 그랬다고 언니들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다.)

질투하면서 부터 언니들은 나를 구박하고

내가 잠들면 나를 욕하며, 본인 생일엔 집에 친구들을 불러 파티를 하면서

친구들 보란 듯이 나에게 상 차리는 것과 심부름을 시켰다.

'야 부엌가서 컵 좀 가져와'

'야 쥬스 좀 더 가져와'


큰 아빠네 들어가기 전만 해도 언니들과 나는 매우 친한 편이였다.

서로 장난도 잘 치고 누가 봐도 우린 편한 사이 였으나,

내가 그 집에 들어간 이후로 나는 항상 언니들에게 주눅이 들어 있었으며,

내 머리를 때리거나 일어나라며 발로 차는 장난을 쳐도, 내 욕을 해도

나는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그 집에서 말썽을 부리거나 시끄럽게 떠드는 편은 아니였다.

늘상 주눅들어 있었기 때문에 학교에 다녀오면 어지럽힌 적은 절대로 없었으며,

늘 빗자루로 방을 청소하고, __로 방을 닦았으며 자잘한 설거지들은 도맡아 하고

빨래를 널고 개고 숙제를 하고 잠드는 게 그 당시 내 일상 이였다.

나는 그 일상을 겪으면서 아빠가 너무나 그리웠다.

구박이 심해질수록 나는 주말마다 아빠를 보러 갔다.

아빠를 보러 가려면 1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야했기 때문에

난 금요일이면 하교 후 허겁지겁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쓸고 닦아놓고

부리나케 아빠를 보러 달려갔다.

그렇게 아빠와 금,토요일을 보내면 일요일 저녁에는

다음날 학교에 가기위해 큰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큰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너무 서러워 버스에서 엉엉 울곤 했다

물론 그 나이에도 내가 우는 걸 보이면 우리아빠는

더 마음 아플 것을 알고, 혼자있는 버스에서만 엉엉 울곤 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 지옥같던 1년 반이 익숙해질 무렵,

나는 이제 혼자서도 밥을하고 먹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큰집을 벗어나 엄마가 남기고 간 그 아파트에서

아빠와 단 둘이 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나는 혼자 밥을 지어먹고 때로는 라면을 끓여 먹었으며,

먹고난 설거지는 곧바로 하곤 했다.

힘든 일을 하고 돌아오는 아빠를 위해 청소도 곧잘 해놓고

이쁜짓을 그렇게 했었다...


그렇게 나는 아빠와 둘이 살면서,

그래도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지금처럼

무사히 아무 탈 없이 착하게 자라났다.

착하게, 바보처럼...너무나 멍청하고 바보같이 말이다.

늘 눈치를 보며 살아온 어린시절은 날 바보로 만들었다


이렇게 엄마와 아빠의 이혼의 여파는 내 어린 시절을 바꾸어 놓았다.

이혼의 여파는 내 어린 시절만을 바꾸어 놓았지만,

내 어린 시절의 여파는 나의 인생, 나의 성격, 내 모든 것을 바꾸었다고 자부한다.


누군가는 그랬다. 어릴 때 구박 받았다고 해서 자존감이 낮고, 남의 눈치를 잘 본다는 나에게

'솔직히 핑계 아니야?

어릴 때 안 겪어본 사람이 어딨어, 이미 십 수년도 지난 일인데 벗어날 수 있으면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지, 니가 남 눈치 보고 할 말을 잘 못하는 걸 괜히 그 당시 탓으로

돌려서 니 자존감 낮은걸 합리화 시키는거 아니야?'

라고 말한다.


그건 맞는 말이다.

내가 구박받고 남의 눈치 보며 산 것도 7살 때부터 인 것 같다.

그리고 친척 집에 맡겨진 3년 반 동안 그것은 더욱 극대화 되었지만,


이미 수십년이 지난 오래된 이야기이기에

성인이 된 나는 마음을 독하게 먹으면


벗어날 수 있었다.

내 의견을 말하라면 말 할 수 있었고,

하고싶으면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마음이 그게 안되는 걸...

나도 당당하고 자존감 높은 사람들 처럼 자기 의견 스스럼 없이 말하고,

남 눈치 안보고 살고 싶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내 의견을 입 밖에 내기도 전에, 내 눈은 이미 다른 사람의 표정을 읽고

이 말을 해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며 상대방을 간파하고 있다.


혹여나 말을 꺼내고 상대방의 표정이 좋지 않으면 어떻게 그의 기분을 풀어주어야 하나 하고

입 바른 소리를 계산하게 된다.


자존감 없고 남의 눈치를 잘 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잘 하지 못하는 이러한 나의 문제는

도대체 어디서 부터 생긴 걸까.


물론 그렇다 해도 지금은 애인도 있고, 친구들과도 원만하고, 회사 사람들과도 잘 지내며

낯선 사람들을 만나도 낯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과 이야기 할때도 나는 상대방의 표정을 읽기 바쁘다.


겉으로 보기엔 두루두루 잘 지내 보이는 것 같지만,

그러나 마음 속 한 켠에 있는 아무도 모르는 내 어두움과 원망은 사라지질 않는다.


나는 지금 돌아가신 할머니와 고모들이 너무나 밉다.

그리고 날 홀로 키우느라 고생을 많이 했지만 젊었던 우리 엄마를 할머니로부터 지켜주지 못한

젊었던 우리 아빠도 참 밉다.


오늘은 문득 그런 자존감 낮은 내 모습이 결코 내 탓이 아니라고 믿고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은 나 자신의 부족함을 어린 시절 탓으로 돌리는 나의 합리화 이다.

그리고 그 여파에서 이제는 벗어나서 내 삶에 좀 더 당당해 지고 싶은 나의 바램이

투영된 글이다.


이제는 당당해지고 싶다.

내 삶에 있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우위이고 싶다.


그리고 지금까지 잘 해왔다고 위로받고 싶다.



마지막으로 남의 위로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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