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이별 통보 받았네요.
되돌아갔으면
|2016.05.15 02:19
조회 264 |추천 0
연애경험이 많은 건 아니지만 국적 때문에 차이니 멍하네요.
저는 우연찮게 해외기업에 입사하여 현재 싱가폴에 거주 중인 30살 남자입니다.한국 떠날 때만 해도 귀양가는 느낌이었는데 어찌어찌 적응하니 지낼 만하고또 회사에서 숙식이나 공과금을 전부 지원해주니 신경쓸 것도 적어 그냥저냥 살아가고 있습니다.
뭐 회사마다 케바케지만 보통 해외근무하는 직원에게는연차 외에 정기적으로 휴가를 주는데요...결혼하신 분들은 물론 한국으로 가지만저는 싱글이겠다 가족이랑 살가운 편도 아니라 여행 갈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유럽이든 아시아든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한번은 앙코르와트를 보러 캄보디아로 갔다가 날짜가 많이 남아육로로 해서 베트남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여친...이제는 전여친이네요. 여섯살 어린 그녀를 호치민에서 만났습니다.
베트남 사람...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는 너무 예뻤습니다.피부도 하얗고 한국인에게는 흔치 않은 커다란 쌍꺼풀에 화사한 미소까지.처음에는 딱히 어떻게 해보자는 의도도 없었습니다.중간에 길을 잃어 헤매던 와중에 그녀를 보았고, 기왕이면 이쁜 여자에게 물어보자 싶어말을 건네게 됐지요.
베트남은 택시기사도 영어 한 마디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인데그녀는 영어도 곧잘 했습니다. 물론 발음은 쫌 로컬스러웠지만요.길만 물어본다는 게 세 마디 네 마디 이어졌고 그냥 그녀가 웃는 걸 보는 게 너무 좋았네요.
어찌어찌 연락처를 따고, 커피를 마시고 그러다 함께 데이트도 했습니다.출국 전날에는 날 가이드 해주겠다며 메콩 투어까지 따라왔고상냥하게 저를 챙겨주는 모습에 반해 고백했습니다.
그렇게 사귀게 되고 이후 제 휴가지는 베트남으로 고정됐습니다.정기휴가는 물론이고 연휴라도 끼어서 3일 이상 시간이 나면연차 어떻게든 붙여서 사비로 호치민으로 날아갔어요.
대략 두달에 5~6일씩 만난 거 같네요.떨어져 있을 때는 매일 밤마다 영상통화로 얼굴 보고 얘기하고그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2년을 사귀었는데, 지난 달에 이별을 통보받았습니다.지금 생각하면 여친은 저보다 훨씬 현실적이었던 거 같습니다.저도 어렴풋이는 느끼고 있었거든요. 과연 우리가 이 관계를 평생 이어갈 수 있을까.결혼할 수 있을까.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그저 여친과 만나고 얘기하는 게 좋아억지로 현실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한 달 뒤에 같이 호이안으로 놀러 가기러 했었는데, 그래서 여행코스 짜고 있었는데갑자기 울면서 그만 만나자고 하네요.내가 한국인이라서? 라고 물으니 그렇답니다.우리 관계는 미래가 없다면서, 이제는 끝내야 한답니다.
제발 다시 생각해달라고, 조금 전까지 행복하게 여행코스 잡고 있었는데 왜 그러냐고다그치듯 얘기하니 자기는 한국에서는 살 수 없답니다.
여친은 집이 잘 사는 편입니다. 자세히 얘기는 안 해줬지만 할아버지 대부터 의류사업을 제법 크게 하고 있는 모양이었어요. 현재는 아버지가 운영하고 있고요.사실 사귀는 중간중간 떠보긴 했는데 그때마다 여친은 부모님이 자기 딸외국 가서 고생하는 거 절대 못 볼 거라고 그랬어요.
특히 한국에 시집가는 베트남 여자들의 취급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면서,설상가상으로 친할머니는 다낭 출신인데 월남전 때 한국군에 피해 입은 적이 있어서아직까지도 한국인이라면 치를 떤답니다.
사귀던 당시에는 결혼은 우리끼리 하는 거지 부모 조모가 무슨 상관이냐 여겼습니다만,여친은 울면서 자기는 부모를 거스를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하...맞는 말이죠. 사업 잘 하고 있는 회사 사장이 뭐가 아쉬워서 귀한 딸 외국인에게 보내겠어요. 전 베트남 기준으로는 높을지 몰라도 한국 기준으로는 서울 집 한 채 살 돈도 없는평범한 직장인이니까요.
여친은 그래도 제가 미련을 못 버리자 저더러 베트남에서 살 수 있겠냐고 했어요.말문이 턱 막혔습니다. 제 가족, 친구, 한국에서 이뤄놓은 것들, 어렵게 구한 직장.모두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물론 여친의 뉘앙스는 자기가 먹여 살리겠다란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런 삶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고요.
그렇게 헤어지고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원래대로였다면 함께 호이안에 있었을 시기네요.
그냥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가슴이 공허합니다.틈만 나면 여친과 함께 찍은 사진만 돌려보고 있네요.
차라리 내가 너무 못생겨서, 돈을 못 벌어서, 성격이 더러워서라고 해줬으면증오심으로라도 잊겠는데제가 한국인이고 자긴 베트남인이라 안 된다며 너무 서럽게 울던 모습이아직도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만약 내가 싱가폴이 아니라 베트남에서 근무했다면 여친 부모님이 나를 받아들여 줬을까내가 한국인이 아니라 베트남 사람이었다면 맺어질 수 있었을까차라리 여친 집이 못 살았다면, 그래서 내게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면 나를 따라와줬을까정말 별별 생각이 다 드네요.
같이 유튜브 보면서 자기는 간장게장이 무슨 맛인지 궁금하다고꼭 한 번 먹어보고 싶다면서 노래를 불렀는데이렇게 헤어질 줄 알았다면 친구한테 부탁해서 국제배송으로 보냈으면 됐을 것을뭐가 그리 귀찮아서 그거 하나 못이고 헤어져야 했는지
시그널 재밌다고 매일같이 얘기하는거 어, 어, 그래 추임새만 넣었을 뿐바쁘다는 건 핑계였을 뿐 언제든 몰아서 보고 함께 대화나눌 수 있었는데하, 넋두리도 이 정도면 진상급이네요.
밤에 잠이 안 와서 끄적여 봤습니다.그냥..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