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6개월, 그 안에 나.
헤어지고 나서도 나는 변하지 않는다.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니가 싫어했던 피시방과 담배를 끊었었고, 자기 자신보다 마른 내 체형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던 기억에 운동을 시작했었다. 잠시나마 내 몸이 건강해지고 하루에 여유가 생기는걸 느꼈지만 그런 행동에서 너를 빼니 없어지는 의미. 니가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어리석게도 나를 비웃었고 나는 예전처럼 피시방을 가고 담배를 태우며 제 때 밥도 챙겨 먹지 않고 노는 것을 즐기는 어린 아이가 되어 있었다. 그건 널 만나기 전에 내 모습이였고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였다.
궁금한 너의 소식은 들려 오지만 애써 아닌 척 노력했다.
나는 매 시간 매 분 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누굴 만나는지 등이 궁금했고 거기에서 네가 내게 이별을 고한 이유를 찾을 수 있는지도 알아보고 싶었다. 나는 널 스토킹 할 정도로 개념없고 대담한 놈은 아니였기에 행동이 아닌 생각에서 그쳤다. 다만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의 소식은 어디선가에서 끊임없이 들려왔고 나는 때마다 상관 없는 척, 아무렇지 않는 척을 했다. 이를테면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직장을 어디로 옮겼는지, 심지어 단골인 가게에서 무엇을 시켜먹었는지까지 들려왔다. 우린 오래 만났고 그 만큼 겹치는 지인들이나 친구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궁금하지 않은 척을 하는것도 고문이다. 처음에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들었는데 자존심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가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나는 그냥 상관없어로 일관해 버렸고 그러고나면 다음 내용을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내 궁금증에 하루 종일 고생을 했다.
쓸데 없는 생각이 많아진다.
상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니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온다던가, 집에 돌아오니 니가 기다리고 있다던가 일끝나고 퇴근하는길에 회사 앞에서 너를 마주친다던가 하는 그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한다. 웃긴건 쓸데 없다는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되면 저렇게 행동해야지' 하는 등의 오지 않을 현실에 대해 수도 없이 상상하곤 했다. 또, 집에 아직은 남아있는 너의 물건들. 다시 말하자면 니가 버리고 간 물건 중 너에게 필요한 것들을 어느날 너에게 다시 돌려 보내면 니가 한 번쯤은 내 생각을 하진 않을까 하는 어이가 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내 자신이 한심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런 생각들을 멈추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행동에 옮겨지지 않은 것에 대해 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나는 살 수 있다.
쥐뿔도 없는 집에서 쓸데 없이 귀하게 자랐던 나는 빨래는 물론, 밥솥에 밥도 할 줄 몰랐다. 너는 그런 나를 한 번도 한심하게 본 적 없지만 나는 그런 내가 너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함께 있는 동안 빨래와 밥, 반찬, 설거지, 분리수거 등 집안 일은 니가 다했다. 난 그게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고 니가 없으니 난 밥 한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장애인이 됐다. 그런 나를 보며 너는 니 친구에게 눈물을 보이며 안타까워 했지만 알고보니 나도 다 할 수 있는 일이였다. 너랑 만나는 동안 세상은 전부 너인줄만 알았고 니가 없으면 망하는 줄만 알았던 나는 니가 없이도 시간은 흐르고, 아침이 온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니가 없는 넓은 침대에서 혼자 자는 방법도, 밥을 챙겨먹는 방법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시작은 우연, 결말은 인연
널 알게된건 우연이였다. 니가 날 좋아하게 된 것도, 그것을 알고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것 까지도 모두 우연이였다. 길을 가다 가끔 널 마주치는 우연이 오면 나는 뛸 듯이 기뻤지만 숨겨야 했었고 이상하게도 우린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지 않은 곳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다. 헌데 헤어지고 나니 거리에서도 자주가는 가게에서도 단 한 번도 널 마주칠 수가 없었다. 니가 날 피하는건지 모르겠지만 한 번도 동선이 겹친적 없었고 서로에 일정을 모르지만 뒷모습 조차 보기 힘들었다. 내가 주위에 무신경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은 참 잘보이는데 너는 보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내가 내린 결론은 우린 우연이 아니라 인연이였고 더이상 맺을 연이 없기에 마주칠 일도 없다는 것. 무슨 미신 신앙 따위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생각하기에 그랬다.
너를 잊은 것이 아니라, 그리워하지 않는 것
무슨 객기였는지 얼마 되지 않는 월급에 비싼 스케이트보드를 하나 샀었다. 너와 함께 큰 공원에 보드를 타러 나갔던 기억은 잊어버리지 않았지만 그 때가 그리운건 아니다. 너무 오랜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내가 너를 잊지 못할진 몰라도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 것. 다만 그리운게 있다면 그 때 그 시절 너를 순수하게 사랑했던 내 모습이 그립다. 이젠 그 때의 너는 없고, 그 때의 나도 없다.
사랑에 뒷면은 없다. 사랑은 사랑이였고, 이별도 사랑이였다.
내게 사랑이라는 기준은 상당히 단순하다. 다만 표현 할 수는 없다. 니가 어떻게 그렇게 매정하게 날 떠날 수 있었는지 난 몰랐었고, 사실은 지금도 잘 모른다. 너는 내게서 더 이상 설레임을 찾을 수 없다며 나를 떠나갔지만 나는 단한번도 너에게서 설레임을 느끼지 않았던 적이 없기 때문에 너의 그 감정 자체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냥 나는 여태 너를 사랑했었고, 헤어지던 날 마지막으로 너를 안아주던 나는 사랑이였고, 헤어지고 난 후에 너를 생각할 때도 나는 사랑이였다.
니가 내게 남긴건 추억이였다.
헤어지고 나서 일주일 가까이 회사를 나가지 못했다.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잠만 잤고 먹지도 않았다. 웃기지도 않게 집 안일 하나 똑바로 못하는 나는 회사에선 위치가 있는 사람이였고 정이 많은 사람이였다. 직원이 10명도 안되는 회사지만 나는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였고, 때문에 회사는 나를 이해해줬다. 마음을 다잡고 회사에 출근하던 날 저녁에는 회식이 있었고, 사장님께서는 세상에 여자는 많다며 나를 위로 했다. 나는 세상에 그런 여자가 또 있냐고 대꾸했다.
너에 대해선 솔직할 수가 없다.
최근에 그런 얘기를 들었다. 니가 나를 한 번 보고 싶어한다고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는건지 그냥 한 번 마주쳐 보고 싶다는건지 나 같은게 얼마나 잘 사나 보고 싶다는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손사레를 치며 됐다고 얘기했다. 나는 너무 멍해졌고 순간 당황해서 미쳤거나 정신이 나간거 아니냐며 우스게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 날은 비가 왔다.
작년 봄에는 꽃이 폈고, 이번 봄에도 꽃이 폈으니. 내년 봄에도 꽃이 피겠지
돌아오지 않을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만약 니가 다시 내게 돌아온다고 해도 예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그건 누구보다도 너와 내가 잘 아는 사실이다. 우린 너무 많은 실망을 했고,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으며 너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되돌아온 너를 놓을 수는 없다. 내년에는 이번 봄 보다 더 애틋한 꽃이 필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