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다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다. 장애인 아버지, 엄마라 불리는 친할머니. 굳이 따지자면 좋지 못한 가정 속에서 나는 정부의 지원 속에서 어렵게 살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어렵게 살아갔다고는 생각 안한다. 다른 사람들처럼 엄마와 아빠가 있고 집이 있다. 그건 내가 어렵지않다는 증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내가 우울증 판정을 받았을때는 정말 다들 아무런 말을 못했다. 두 눈을 감고는 조용히 고개를 숙이시는 아버지와 자신의 은공은 갚아야하지 않냐며 자꾸 나에게 채찍질하시는 어머니. 그 사이에서 나는 홀로 울기만 했던것같다.
아버지는 돈을 벌 능력이 없었다. 나의 친할머니에게 핏덩이였던 나를 데리고 와서는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는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나의 친모와의 이혼사유도 자신의 가슴에 묻어버리고 홀로 울기만하는 아버지를,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항상 은공을 갚아야한다며 말버릇마냥 말씀하셨다. 자신이 키워준 은공을 갚기에는 내 삶 전부를 주어도 부족하다며 혀를 치시는 분이셨다. 그런 분 밑에서 아버지는 무척 힘들어하셨다. 그러다 가끔 조금의 언성이라도 높이시는 일이 생기면 어머니는 대성통곡을 하시면서 친척과 동네사람들에게 아버지의 흉을 보셨다. 그런 어머니의 행동은 결국 어머니 자신의 평가를 깎아내렸지만 그것을 알기에는 어머니께서 너무나 연세가 많이셨다.
아버지는 나를 키우는데에 있어서 아무런 주장을 못하셨다. 자신과 딸을 맡아주신 어머니께 고개를 숙여야만했다. 그런 순간에 나의 친척들은, 정확히는 아버지의 형제들은 나의 육아를 약간씩 방해했다. 밖이 얼마나 뒤숭숭한데 얘를 놀게둔다는거야? 그러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집에서만 있어야했다. 오후 5시 이후에 집 바로 앞 골목에서 잠깐, 그것이 나의 유일한 낙이였지만 그 시간대의 아이들은 전부 집으로 돌아가버려서 항상 나 혼자 노래를 부르는 것이 다였다. 아버지가 무언가를 할려하면 항상 나라는 걸림돌이 아버지를 막았다. 덕분에 아버지는 아무것도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심근경색이 있으신 분이셨다. 두번? 세번? 정확한 횟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는 병원에서도 하늘이 도움을 줬다는 말은 할 정도로 여러번 심근경색을 이겨내셨다. 당시의 수술비용은 살아계셨던 할아버지가 내셨다. 그리고 약값은 정부의 도움 속에서 받아내셨다. 그리고 우리가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서 떨어진 순간, 아버지는 약을 드시지 못했다. 당시의 수술비는 어느새 어머니의 돈이라고 둔갑되어졌고 아버지의 약값 명목으로 받아낸 어머니의 돈은 사기를 쳐서 받아낸 돈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어머니의 입에서 시작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현재 약을 드시지 못한다. 동네 의원에서 약을 이리저리 바꾸고 조합해서 받는 가격도 3만원에서 4만원이다. 아버지는 돈이 없었고 이기적인 나는 나밖에 몰랐다. 어머니는 돈을 주지 않으셨다. 자신의 아들이 죽어감에도 항상 돈이 자신의 손에 없으면 울기만하시는 분이셨다.
나는 이기적이다. 이기적이게도 우울증에 걸려버린 나는 항상 울기만했다. 죽고싶은 마음에 자살기도도 여러번했다. 흉터는 사라졌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가끔 죽고싶은 마음에 홀로 울기만한다. 상담을 받고 치료를 하고 약물을 먹어도 달라지는건 없었다. 항상 나는 우울했고 의욕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를하면 잘리기만했고 집에서마져 자유롭지못했다. 어머니는 내가 조금만 늦으면 항상 전화하신다. 학교에서 남아서 작업해야하는 순간에도 나는 4시가 넘었다는 이유로 집에 들어가야했다. 아르바이트를 해도 결과는 같았다. 사장님들이 혀를 내두르고 그만두라고 말하는 일은 당연했다. 덕분에 나는 멍청하게도 의욕마저 잃어버렸다. 내 손에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 남는게 있다. 그건 우울증 약. 그 약을 먹으면 적어도 나는 조금의 살아갈 의욕은 갖게된다. 그러니 남는건 있다.
아버지는 친구분이 없다. 4시만 넘어도 전화로 소리지르시는 어머니와 헛소문으로 자신을 매도한 누이로 인하여 친구분이 없다. 그래도 남은 친구분이 계시긴 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분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전화로 소리지르시거나 헛소문으로 자신을 매도하는 가족만 아니라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말릴려고 여러번 시도했다. 하지만 연세가 지긋하신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오히려 내가 아버지의 편을 든다며 욕을 받고 아버지에게 화풀이하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며칠 전쯤에 어머니는 나에게 이유없이 화가 나셨다. 과제를 하느라 바쁜 내가 이유라면 이유였다. 결국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돈을 가져와야지 핏덩이를 가져오면 어쩌느냐"라며 화를 내셨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당연히 은공을 갚지도 못한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화가나서 소리를 지르셨다고한다. 그리고 이어진건 역시 "너는 내 은공을 갚지도 못하면서 소리를 지르느냐"라는 울음 섞인 말이였다. 어머니는 동네방네 전화로 아들이 자신에게 소리질렀다며 대성통곡을했다. 그리고 아버지를 자신이 어찌 키웠는데 그러냐며 뭐라 하소연을 하셨다. 사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면서 3번째로 소리를 지르신거였다. 20여년동안.
나는 그 사이에서 하하 웃으며 어머니의 비유를 맞추고 아버지의 비유를 맞춰야했다. 지치고 힘든 일이지만 내색하지않았다. 예전에 어머니가 하신 "애미없는 새끼는 키우는게 아니야"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런 어머니에게 웃는건 정말 힘든 일이다. 차라리 밖으로 나가고싶어도 아버지 홀로 남게되니 그것마저 허락치않았다. 나와 아버지는 서로가 서로를 막는 걸림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