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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본 일기-2

기록은 기... |2004.01.15 14:29
조회 815 |추천 0

좁은 골목길에 주차를 하고 그녀를 따라 곱창집에 들어섰다.

"아줌마~ 여기 볶음2인분하구요,  이슬이요~"

주방을 향해 주문만 내뱉고는 그녀는 다시 침묵이다.

이래서 싫다.

흑석동에 다녀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술잔을 기울이는 그녀.

주량이 센편도 아닌 그녀가 술을 입에 대는 것도 싫지만,  우울한 표정과 그녀답지 않은 침묵이 더 싫다.

곱창이 나오기도 전 소주를 세잔 들이킨 그녀는 훌쩍거리기 시작한다.

"기집애가 재수없게 왜 훌쩍 거려? 야, 밥맛 떨어진다.잉?"

항상 이런 식이다. 언제나  속마음과는 다른 말, 행동.

"시끄러. 한두번도 아닌데 익숙해질때도 됐잖아? "

"니 청승 지겹다. 꼴뵈기 싫어. 한 두번은 애교로 봐주겠다. 애교라고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구석구석 살피고 입고 있는 팬티까지 벗겨서 뒤집어봐도 먼지만 풀풀 날리고 씨알통만큼도 애교 비슷한걸 찾아볼 수 없는 너지만, 그래, 그렇지만 두번 정도는 눈 딱감고 애교로 봐준다고."

"뭐? 봐줘? 이게 누가 누굴 봐준다고?"

"더이상은 안돼. 그만 꼴값 떨라고. 소현이 죽은게 벌써 몇 년 째인데?그년 애새끼 수출해먹은 게 몇 년짼데? 그러니까, 그만해라."

"시간 지났어. 니 말 맞아. 하지만, 미국까지 입양보낸 소현이 아기가 눈 앞에 아른 거려. 같은 땅덩어리면 이렇게 애타진 않을꺼야. 좋은 부모 만났겠지하고 나 스스로 위로하면서 잊을수 있다고. "

"그래. 그러면 되지. 미국이라고 뭐 틀려? 소현이 그 독한 년이야 지 새끼버리고 지가 뒈져버린거 아냐? "

"미국이 잖아!! 거기서 유색인종이라고, 엄마 아빠랑 피부색 틀리다고 구박받구 크면 어떡해?"

  "기집애가!!야!! 너 답지 않게 왜이래? 너 언제부터 그런 부정적인 사고로 살았어? 니가 정경민이야? 니가 나냐구? 에이..씨팔"

"임마. 그만 하자. 집에 가자."

"기집애가 성질머리하고는."

"너 거기다 시집못간거 갖다 붙이면 죽는다."

"얼씨구? 알긴 아냐? 니 성질 머리땜에 시집못간거?"

"에이씨.."

"참, 너 진짜 신우형이랑 선 보냐? 이거 축하해야 되는지, 위로해야 되는지..."

"뭔 소리야? 몰라. 나 선 안볼거니까.엄마가 일방적으로 약속 잡은거야."

"왠만하면 노친네 소원 좀 들어드려라. 아니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던가. 너같은 딸 날까무서워서 장가가겠냐?"

"웃겨~.니가 왜 나같은 딸 낳냐? 아무나 낳는 줄아냐? 안그래도 지금 고민중이다. 니 말대로 노친네 말은 듣는 척은 해야될턴데, 맞선은 넘 끔찍하구. 안봤다간 굶길거구."

"하긴. 니가 내숭이란걸 떨어보는 시늉이라도 해봤어야지. 그런 자리가면 얼어서 말도 못하는게 큰소리는. 야! 걱정말고 선봐라. 어차피 넌 차일거 뭐 그렇게 신경쓰냐? 대충 시간이나 때워."

"몰라. 그러던가. 다음 주 토요일이던가? 그때가봐야 알지."

"그래?야.. 일어나! 기집애가 한번 엉덩이 붙이면 뗄 줄을 몰라. 가자."

그녀를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안에서 졸린 눈을 부릅뜨며 문자를 보냈다.

'임마. 바로 자지마라. 얼굴 붓는다. 끔직해.'

삐리릭~!

전송버튼을 누르기도 전에 그녀에게서 먼저 문자가 도착했다.

'야.졸다가 돌아가지말고 정신똑바로 챙겨.'

"역시 너무 잘 아는군..."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번졌다.

 

그녀와 흑석동에 다녀온지 벌써 3일이나 지났다.

내일이면 그녀의 맞선날인데 아직 아무런 연락조차 없는게 슬그머니 걱정된다.

'내가찾는아이 흔히 볼수 없지...'

그녀 번호로 저장해둔 핸드폰 벨소리에 움찔했다.

"어.뭐?"

"경민아. 선 볼 때 뭐 입어? 엄마가 정장 입으라는데."

"대충입어. 나이가 몇갠데.니 내키는대로 입어.그거 물으려고 전화했냐?"

"어. 넌 좀 아나했지.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잘난척만 되게 했구나?"

"어쭈? 니가 옷 까지 신경쓰는 거보니 여자같다?하하하. 웃기지도 않네.나중에 상황보고 해.끊는다."

"뭐?? 야! 정경민!!이 씹새!!"

"야! 나 아직 안끊었다. 어디서 씹새래?하하하. 진짜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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