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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골라당 관련 설교1-(삭제금지!)

 

 


니골라당

                             

2006년 4월 16일                                설교 본문: 요한계시록 2:5-7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계 2: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죽음을 이기지 못하는 인생이라면 어떻게 살아도 소용없는 짓이 됩니다. 오늘 본문 끝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라고 나옵니다. 결국 생명나무 과실을 먹지 못하는 인간이라는 인생 헛 살은 것이 됩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장수무병을 누려도 소용없는 겁니다.

사람이 생명나무 과실을 얻었다는 말은 곧 이제 죽음이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죽음을 이길 수 없는 생명이라면 생명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사람이 평소에 살아가는 모든 양상이 어떻게하든지 죽음을 지연시키고자 하는 행위들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지연시켜서 평소에 행위 하나하나에 이미 죽음 세력이 섞여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대해서 성도가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나무 과실은 교회에서만 주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만이 이 생명나무 과실이 제공됩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엮어진 교회에 국한해서 얻어집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과 엮어진 교회와 그렇지 않는 교회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엮이기 않는 교회는 반드시 사람과 엮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의 협동심이나 단결력에 의존하고 경쟁심이 유발해서 활성화 되는데 역점을 두는 교회가 바로 사람으로 엮어진 교회입니다. 거기에 비해 예수님과 엮여진 교회는, “왜 예수님께서 피를 흘러야만 했든가”라는 흔적을 자국자국마다 남기는 교회입니다. 즉 사람들이 왜 죄인일 수 밖에 없는가 하는 흔적을 오로지 예수님의 피 앞에서만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교회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이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죽음을 이길 수 없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도 인간의 죄의 흔적과 관련있습니다. 니골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서는 단 한번, 즉 사도행전 6장 5절에서만 나타납니다. 니골라오는 소위 일곱 명의 집사, 즉 공동체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며 그들을 내세움으로써 유다 그리스도들의 헬레니즘적 공동체는 예루살렘에 대해서 새롭게 조직되었으며 행정적인 일에 있어서 원시 교단으로부터 독립하였습니다. 

헬라주의자들은 대체로 그들에 의해 재촉된 선교 때문에 원시교단과 그리고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들과 불화가 있었습니다. 원시교단으로부터 그들이 추방당한 이후 그들은 사마리아에서 복음을 널리 알렸으며 그리고 페니키아 해안지대와 끝으로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헬라주의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차이점으로 인해 팔레스틴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한 가지는 그들은 율법을 다르게 해석한다는 겁니다. 그들은 다른 해석원칙들을 갖고 있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보다 덜 엄격한 경결규례를 지켰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의 전도에서 또다시 구약의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의미없는 일이라고 보는 겁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에 더 이상 성도들이 얶매이지 않기 위해서 오셨다는 겁니다. 

또 하나의 다른 차이점은 마지막 때의 대망에서 나타납니다. 헬라주의자들은 팔레스틴적인 분립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그들은 우주적인 구원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 때의 이방인들의 회개를 감안하고 있다. 즉 창세기 98장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가사에 대해서 이방인들도 동등한 자격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주 예수 내가 알기전 날 먼저 사랑했네”

하나님께서 이미 예정해 놓으신 사람들 속에는 언약적으로 꼭 유대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직 드러나지 않는 선택받은 이방인들을 찾아내는데 있어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구약 지키기’로 실시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 그리스도의 피의 복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겁니다. 이것은 새로운 언약에 합당한 선교방식이라는 겁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증거가 바로 성령께서 이방인들에게도 내려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헬라주의자들의 선교는 유대인을 상대로 한 선교보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는 경쟁자가 부각됩니다. 따라서 니골라에 대한 나쁜 평판도 자연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들에 대한 전도에 있어 거침돌을 알아서 철저해주겠다는 의도에서 ‘개종 불필요주의’로 나간다는 겁니다. 그러나 사실에 있어 이것은 니골라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중에 니골라당, 즉 ‘니골라를 추종하는 파’들의 주장인 것입니다. 이들에 대해 주님은 미워하십니다. 물론 생명나무 과실도 없습니다.

사실 이방인이든 유대인든 예수님을 믿겠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고 당나귀가 말을 한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것처럼, 그런 믿기지 않는 일과 같은 차원에 있는 것이 바로 ‘예수 믿기’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이 자신을 살리는 식으로 사는 인생을 청산했다는 말이 될 정도로 기적적인 변화입니다. 살아보겠다고 전력을 다해서 천사와 씨름했던 그 야곱도 새 날이 오기 전에 그만 천사 앞에서 와르르 그 자신의 모든 것이 무너져야 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죽음을 경험’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야곱으로서 살던 시절은 자신을 밤에 찾아온 그 천사 앞에서 그만 끝이 나야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벌써부터 죽어가는 자들입니다. 출애굽 당시, 애굽 사람들만 죽은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구원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역시 죽을 자들입니다. 만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 사람들보다 뭔가 나은 점이 있다면 결코 문설주나 문지방에 어린 피를 굳이 바를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서운 저주는 흠없는 어린 양의 피만 피해가지 그 외 어떤 방식에 대해서도 피해가지 않습니다. 즉 인간적인 경쟁으로 인한 교회는 더 이상 생명나무 하고는 상관이 없고 낙원하고도 상관이 없습니다. 2000년 전의 강도도 예수님의 피로만 구원받았듯이 2000년 후 오늘날 저희들도 예수님의 피로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럼에도 니골라당에 속한 자들은 교회 내에서 경쟁을 유발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6-7에 보면,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라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은 오로지 십자가에 나오는 능력 뿐입니다. 인간이 베푸는 세례식이 아닙니다. 어느 파당도 만들지 마세요.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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