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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도쯤 친오빠에게 8년간 몹쓸 짓을 당했다고 글 썼던 글쓴이입니다.

오랜만이에요 |2016.08.21 19:15
조회 56,232 |추천 205

http://pann.nate.com/talk/313912155

위에는 제가 작성했던 글 내용인데, 제가 작성했던 글을 찾지 못하여 다른 분께서 올려두신 글 주소를 올려두었어요.



안녕하세요.

2010년 ~ 2011년 사이에 친오빠에게 7년에서 8년간 몹쓸 짓을 당했다는 내용으로 글을 썼던 사람이에요. 어린 나이에 작성한 글이라서 두서없이 생각나는대로 작성했던 글이라 지금이라도 다시 작성할까 합니다.

제가 말을 잘하는 능력이 없어서,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처음으로 시작된게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전이네요.

당시 엄마와 이혼하신 아빠는 저와 오빠를 데리고 아주 작은 단칸 방에서 살았어요. 생활이 그렇게 넉넉치 못한 상황이었구요.

아빠께서는 일식집에서 주방장을 하셨고, 오후4시쯤 나가셔서 새벽에 귀가하셨던 것으로 기억해요.

반팔을 입고 있던 것으로 기억하니 아마 봄이나 여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아빠는 일을 나가신 상태였고, 저는 티비에서 나오는 세일러문이라는 만화를 시청하고 있었어요. 오빠는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어느 순간에 저를 불렀죠. 그리고는 자신의 바지와 속옷을 내리고는 저에게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잡고는 대신 자위 행위를 시키는 소위 말해서 요즘 말로 대딸이라는 것을 시켰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짧으면 하루 이틀 간격으로 많으면 하루에도 두 세번이나 그런 짓을 당해야 했습니다. 싫다고 하면 되지 않냐는 말들을 하실 것 같은데, 제 상황이 된다면 그런 말은 나오시지 않을 것 같네요.

그 어린 나이에 시키는대로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서 밥상 차리고, 전자렌지에 국 퍼서 돌리고, 밥 푸고, 고기 반찬이나 맛있는 온갖 것들은 다 오빠 앞으로 놔주며 저는 김치나 나물 종류들만 먹어야 했습니다. 아빠가 있는 날이나 겨우 고기를 먹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잘못해서 물을 엎거나 본인이 생각 했을 때에 심기에 거슬리는 짓을 했다면 뺨을 맞았고, 아파서 울면 울었다고 맞았어요. 복부를 발로 걷어 차이거나 머리끄댕이를 잡혀서 벽으로 내동댕이 쳐지고 , 뺨을 맞거나 단소로 손바닥을 맞는 것도 어느 새 제 일상 중에 하나가 되었어요. 하지만 맞고 맞아도 계속 아프고, 서럽고 죽을 것 같았어요.

그런 생활이 반복되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조금 넓은 집으로 이사 했어요. 투룸에 주방 겸 거실이 작게 있고 드디어 집 안에 화장실이 있는 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그때, 생각했죠.

아, 이제 맞는 것도 끝이구나. 그런데, 이건 제 혼자만의 생각이라는 것을 몇 일 안가서 깨달았어요.

당시 안방에서는 아빠와 제가 지냈고, 작은 방에서는 오빠가 지냈어요. 아빠랑은 정말 친구같이 서로 발로차며 크헝 배고파 심심해 이런 식으로 지내서 불편한 것도 없었어요.

아빠는 역시나 일을 나가셨고, 없을 것 같던 그 일은 다시 반복되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방으로 저를 불렀고, 저는 또 그 짓을 당했고, 옷을 벗고 누웠고 또 반복되었어요. 그리고 다음 날은 욕실로 들어갔고 벽을 짚고 허리를 숙이고 섰어요. 그리고 또 반복됬죠.

다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늘상 삽입은 안하고 제 두 허벅지 사이에 자신의 성기를 끼어서 혼자만의 성행위를 지속했어요.

그런 생활이 이어지고, 어느 새 군대를 입대한 오빠가 더 이상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휴가 때 마다 나오는 오빠는 위에 행동과 늘 같은 짓을 했어요. 다행히 군 제대 후에 손은 안댔고, 아빠는 똑같이 일을 다니셨지만요.

아, 그리고 도중에 신고를 한번 하려고 국민신문고에도 글을 올렸었어요. 제가 경찰서를 직접 갈 자신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담당 관할로 넘어가고 해바라기 아동여성 센터인가를 가자 두려웠어요.

아빠가 안그래도 뇌경색인데 퇴원한지 얼마 안됬는지 알면 어떡하지 아...이러면서 캄캄하더라구요.
그래서 도중에 하다가 담당 형사분께 "저, 못하겠어요. 안할래요." 라고 하니깐.

담당 형사분이 안된다고 "왜, 갑자기 그래." 그러시길래. "아니. 됬어요. 그냥 안할게요." 하고는 집으로 돌아왔죠.

하지만, 전 똑같이 지낼수가 없잖아요. 오빠가 무서웠고 두려웠어요. 그 밥 먹자라는 말 한 마디에 밥상을 차렸어요. 오빠껀 안방에 전 그냥 거실 식탁에서 먹었죠. 겸 상을 하기도 싫었어요.

그러자, 그러더군요. 같이 안먹냐고 거기서 먹을 것이냐구요.

밥 먹는데 더럽게 서럽더라구요. 왜, 아무도 내가 힘든 것을 몰라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요.

어느 날에 등교 준비를 하는 아침에 일이 터졌어요. 전 날에 저는 아빠랑 말다툼이 있었고, 오빠도 들은 상태였어요.

그 당시에 뇌경색으로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신 아빠는 일상 생활은 남들처럼 가능하시지만,예전처럼 칼을 잡으실수는 없었고, 결국 아파트 경비원직으로 일을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등교 준비를 하기 전에 나가셨구요.

일어나서 머리를 감고, 머리를 말리는데 오빠가 안방 입구에서 이런 식으로 말하더라구요.

"야, 아빠한테 말 그딴 식으로 할거냐?" 저는 무시했어요. "내 말 지금 무시하냐? 요즘 니가 안맞았지? 예전처럼 다시 쳐맞을래? __년이 진짜."

이 말이 기폭장치라도 된 것처럼 제가 참고 있던 모든 것들이 그때, 다 터져버렸어요.

울며 불며 소리란 소리는 다 지르면서 "대체, 내가 뭘 잘못해서 나한테 그래! __, 나도 더는 못참아. 너 __ 두고봐."

그리고 예전에 해바라기 여성아동센터 담당 여자 선생님께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더는 못참는다고 서럽게 울면서 전화했어요.

그 전화 한 통을 시작으로 몇 일 뒤에 다시 저는 센터로가서 여성 경찰관분과 함께 진술서를 작성했고, 오빠는 재판을 받게 되었어요.

엄마는 평소에 늘 아들만 아끼셔서 변호사 알아본다고 날리나셨고, 아빠는 그래도 자기 자식이라서 그냥 넘어가기는 그러셨는지 저 보고 항소문을 써달라고 하더군요.

제가 울면서 싫다고 왜 무작정 쓰라하냐고 하고는 어쩌다 보니깐. 고모가 집에와서 우는 저를 달래시면서, 그래도 너희 아빠는 자기 자식인데 어떻게 두고볼수만 있겠냐고, 한번만 이해해주자. 이러시길래 항소문을 써줬어요.

그렇게 1년 6개월 징역을 선고 받았던 오빠는 6개월만에 출소를 했어요.

그리고? 뒤늦게 작년인가 재작년에서야 아빠에게 들은 얘기인데, 엄마랑 아빠랑 이혼하려다가 제가 생겨서 이혼을 못했고, 엄마는 그런 저를 증오했데요.

뺨을 때리고, 미용실을 가는 날이면 제 머리끄댕이를 잡고 끌고갔었고, 아빠가 그런 모습을 보고 왜 애 머리를 잡고가냐고 하면서 너무 놀라서 할머니께 애 엄마가 애 머리끄댕이를 잡고 그러니깐. 할머니가 걔가 미쳤나보다고, 그러면서 놀라셨데요.

이혼하고나서도 그 단칸 방에서 살던 시절에 제가, 엄마를 외치며 운 적은 오로지 오빠랑 단 둘이 남아야하는 아빠가 출근하시고 엄마가 찾아왔을 경우에만 울었어요.

그 정도로 싫었어요. 저도 엄마가. 자기 아들이라고 그렇게 좋아 죽으려고 하는 모습이 저는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뒤늦게나마 제가 알았던, 그 사실이 엄마가 더 싫어지는 계기가 되었어요.

엄마는요. 처음부터 전부 다 모든 것들을 알고 있었어요.

제가 맞고 지내는 것도, 삽입 전까지에 성행위를 거의 8년동안 당했다는 것도 모든 사실을 다 알고 있었어요.

그저, 본인 자식이라서 본인이 그렇게 아끼고 좋아하는 아들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 것도 모르는 척 했던거에요.

제가 그 사실을 알았을 때에 얼마나 기분이 거지 같았는지 아무도 모를거에요.

그 당시에 그 누구도 저에게 괜찮냐는 말 한 마디를 안해주었어요. 심지어 아빠도요. 그래서 제가 한 번 우울증이 심해졌던 날에 아빠에게 통화로 울면서 말했죠. "왜, 나한테 그 흔하디 흔한 괜찮냐는 말 한 마디를 안했어? 잘못한건 내가 아닌데, 왜?"

아빠는 "니가 더 힘들어 할까봐. 말 못했다."라고 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서럽고, 괜히 제가 더 미안하더라구요.


글을 너무 의식에 흐름대로 써서 엉망진창이네요.

아, 위에 올렸던 글 주소에 댓글에 자작이 탄다느니, 피할수 없으면 즐기라느니 같은 아주 더러운 댓글들 이제와서 감사하다는 인사 드리네요. 덕분에 악바리 받쳐서라도 살았어요.

지금의 저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서, 이제는 21살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는 적응을 못해서 1학년 중간고사가 끝나고 자퇴를 했고, 이른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나름 사회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19살부터는 신규 오픈했던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20살에 매니저를 달았고, 21살이 된 올해 초에 점장이 아주 개뭣 같아서 관두고 백수 생활을 즐기고 있어요.

그리고, 몸이 원래 부실해서 그런지 기립성 저혈압을 달고사는 인생이네요. 요즘 들어서 부쩍 어지러움이 심해지기도 했구요.

참, 길고 지겨운 싸움이었어요. 힘들었고, 자살시도도 해볼까라는 생각도 여러번 하면서 살았지만, 더럽게 살아도 살아가니깐. 어떻게든 살게되더라구요.

언젠가, 내가 좀 괜찮아진다면 나 같은 년이 더러워도 살아가고 있으니깐. 당신들이 힘들더라도 나 같은 년도 사니. 당신들도 살아가라는 심정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냥. 그게 다에요.

+ 그리고, 지금은 아빠랑 저랑 단 둘이서만 살아요. 오빠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상황이에요. 오로지 몇 달에 한번 만나러 나가시는 아빠만 알고있을 것 같아요. 그나마 믿을 사람이 아빠 하나 밖에 없네요.


추천수205
반대수8
베플|2016.08.22 05:25
진짜 괜히 식구들 잘 때 집에 불 지르는게 아니구나... 뉴스에 나도 다들 속사정은 모르니까 안타까워하고 마는데 내가 이런 일 겪으면 진짜 집에 모아놓고 불질러 버릴듯.
베플ㅇㅇ|2016.08.22 08:53
이래서 남자들이 문제라니까. 발정난 남자들이 많아요. 욕구는 이성으로 누르는 게 사람, 인간 입니다. 님 오빠는 인간이 아니라 짐승 동물이죠. 동물들도 생명체라곤 하지만 솔직히 인간보다는 목숨이 하찮아요. 용기내서 오빠를 재판으로 넘긴 거 잘한 겁니다. 근데 항소서 쓴 건 아쉽네요.
베플ㅇㅇ|2016.08.22 09:06
한국남자들은 잠재적 성범죄자들이라던데 사실인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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