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생전 아빠한테 잘해드린것도 없다..
취업을 일찍 타지로 나와 살면서 나 혼자의 자유를 느끼느라 아빠한테 찾아가지도 않았고..
아빠와의 연락이 어색하다는 이유로 연락도 안하다 가끔 일이 힘들거나 아플때 찡찡 거리기만 한게 다였다..
그러다가 내가 22살때.. 아빠가 쓰러졌었는데..
나도 참..아빠 처음에 쓰러지고..연락받고 집으로 가는데
정말..울면서 제발 돌아가시지만 말아달라..
수없이 기도하면서 간것같다..
그래도 다행히 많이 좋아지시긴 했지만..
예전의 건강한 모습대신에 지팡이를 짚고 걸을수있고..
오른쪽마비때문에 말이 잘 안나와서 겨우 대화하는정도였다.
하지만..
그래도 살아계시니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지고 예전보다는 자주 아빠와 통화를 했다..
아빠는 자신이 약해진탓인지..언제부터인가 눈치를 보기 시작하였고..나를 어려워한것같다..
난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어떻게 더 잘해야할지 몰랐고 아빠는 바깥외출조차 하지않을려했다..
여름휴가가 다가오고 가족끼리 여행을 갈까 계획도 짜고
아빠가 좋아하는 낚시도 할려했지만..
아빠가 별로 원치 않아 무산이 되었다..
그리고 일년뒤..두번째로 쓰러지셨다
이번에는 더 심각했다..
뇌간출혈이였다..수술도 힘들다고 했다..중환자실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다행히 고비는 넘겼는데..
뇌의 90프로가 죽었다고 한다..
사지마비..정말 무서운병이다..내가 내 몸속에 갇히는 병이라고 한다..
무서웠다..아빠가 의식을 차리는게 두려웠던것같다
그 전에 자신이 장애가 있던것만으로도 굉장히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본인 의사도 얘기할수없고
그냥 누워있는것밖에 할수 없는데..그런 고통을 느껴야 하는 아빠가 불쌍했고 괴로웠다..
그러고 한달후..일반 병실로 왔지만
아빠는 눈만 겨우 깜빡깜빡하는 수준이다..
숨도 본인 스스로 쉬기힘들어서 목에 구멍을 뚫었고
콧줄로 식사를 했다..
그렇게 재활치료도 꾸준히 했지만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가끔 실수로 콧줄이 빠지거나 하면 다시 갈고..하루에도 몇번씩 가래를 빼줘야하기에 석션을 해줘야했는데..
그 고통이 어마어마 했던것같다..
아빠가 말은 못하지만 눈빛이 너무 괴롭다는것을 말해주었다..콧줄을 할때..석션할때 아빠가 흘린 눈물은
아직도 잊을수 없다..
너무 괴로워서 보지못하고 병실을 빠져나와서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냥 그건 내가 괴롭기 싫어서 도피한것이다..
그렇게 끝나지 않을것같은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고
아빠는 점점 말라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년간의 병원생활동안..
한쪽눈은 감기지 않아 테이브로 눈을 감겨 줘야 했고
수시로 안약을 넣어 줬지만 실명이 되었다.
아빠몸은 이제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석션도..콧줄도
더이상 반응하는 힘조차 남지 않아 눈만겨우 뜨기만 했다..
새벽에 아빠를 보면 눈을 뜨고 아빠가 밤을 지새는걸 보았다..
아빠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새벽에는 식은땀도 많이 흘리기에 수시로 땀 닦아주며
천천히 밤새 부채질을 해주었다..
아빠가 편히 잘수 있도록..
그렇게 피곤에 지쳐 모르고 잠들었는데..
다음날 아침..놀래서 일어났다..
내가 이렇게 잠들었는지는 몰랐기 때문이다..
역시나 땀범벅에..침대 시트를 만져봤는데..
축축했다..
소변봉지가 샌탓이다..아빠가 밤새 얼마나 꿉꿉했을까
정말 미안했다..
그렇게 재활병원에서 있다가..
병원에서도 더이상 재활도 안되고..그냥 요양병원을 모시라고 하였다..
친척들이 병원비를 많이 도와준탓에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이것도 계속 될순 없는것이였다..
저 상태로 몇년을 더 누워계실시 매달 몇백씩 되는 병원비도 더이상 도와달라기도 부담하는것도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지쳐있었다...
그렇게 친척이 아는 요양 병원을 추천받아 그곳으로 결국 선택하였고..3개월이 지났다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하게 병원을 찾아갔고..아빠가 요양병원에 있는동안 거의 찾아 가지 못했는데..
그 전보다 더 말라있었고 눈조차 뜨지 못하는 상태였다
대학병원으로 옮기고 그 병원의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기
위해 옷을 벗는 순간..
경악을 했다.
1년간 병원에서 누워 생활하면서 깨끗했던 아빠몸이
고작 3개월동안 어떻게 대우한건지..아빠 엉덩이쪽이 욕창이 뼈가 드러날정도로 심각한상태였다
끔찍했다..이 상태로 있을줄이야..
그냥 잘있겟지라고 나 혼자 합리화했던게 후회가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고통 스러웠을지..
그렇게 대학병원 2주동안 있으면서 병원비만 천만원이 나왔다.
괴로웠고 지쳤고..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어디까지 진행할껀지 물어왔다..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는걸 알기때문이다..
일년전..아빠가 살아계시기만 해달라고 했던 내 기도는 다시 바뀌었다..
아빠가 얼른 돌아가시게 해달라 빌었다
누군가는 아무리그래도..그런 생각을 하냐라고도 했다..
하지만 몇년간 옆에서 아빠를 지켜보면서
전혀 가망이 없는 아빠가..본인 몸에 갇혀서 아무 말도 못하고 겨우 생명을 유지하며 살고 있는데
아빠 모습은 그냥 뼈만 남은 송장같았다..
지금 이 모습이라도..이 상태더라도 아빠도 계속 살고싶을까?
나보다 아빠가 편안해지시길 바랬다..
그게 나의 마지막 기도였다..
그렇게..여러번 고비를 넘기시다..쓸쓸히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을 받고..엄마가 부리나케 달려가셨지만..엄마가 병원에 거의 도착했을쯤 돌아가셨다..
가족 중 아무도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렇게 외로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염을 하며 다시 한번 아빠를 마주했는데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동안 너무 많은 눈물을 쏟은 탓일까..
아빠가 오히려 편안해보였다..병원에서 매일 누워있다가
이제 아빠가 자유로워졌다는게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아빠를 기쁜 마음으로 보내주었다..
돌아가신지는 이제 몇달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기나긴 몇년동안의 병마와의 싸움으로 소중하고 빛날 나이인 20대에 모든걸 포기한채 지내왔다
아직도 그때 병원생활이 생각나고
그 때 받았던 트라우마가 나를 괴롭힌다..
정말 이제는 행복해지고 싶은데..지금도 행복하단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빠의 빈자리가 지금도 너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