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87년생 올해 서른입니다.
흠..어디서부터 설명을 해야할지 가물가물하지만...ㅎㅎ
저는 고등학교시절부터 서울역에 있는 베니건스라는 레스토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요리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여성동아 잡지에도 몇 번 나오신적이 있는 어머니의 영향이랄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요리사가 꼭 되고싶다는 생각에 대학교 진학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의 생각은 달랐지요. 기계공학 박사학위에 자동차 기술사까지 있으신 아버지께서는
절대적으로 장남은 공부를 해야한다고 하시는 터에...결국 대학교에 진학했습니다.
수학 나형 2등급을 제외하고는 올9등급...
저는 강원도 원주에 있는 조그마한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과도 아버지께서 정해주신 산업공학..
물론 첫 학기는 학교에 딱 5일나갔습니다. 학사경고를 받았죠. 그리고 군대에 끌려갔습니다.
해군으로...여기는 모병제이기 때문에 어찌하다보니 끌려갔습니다.
서해안...연평해전에 나왔던 같은 기종의 고속정을...연평해전의 주 무대인 서해안에서...
근무했습니다. 힘들었죠. 그렇지만 정신은 못차렸습니다. 군 복무 중 PC방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계획서를 써서 휴가기간 아버지께 찾아갔지만 혼났습니다.
그렇게 제대를 하고, 자의반 타의반 학교에 복학했습니다. 1-1학기 0.56학점이 나왔기 때문에
09학번과 함께 1학년 1학기를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저는 총 9학기를 다닌 셈이죠.
복학 후 1-2학기 4.5만점에 4.2, 3.9학점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습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나서 다시 서울에 잠원동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한다고...
학점은 겨우 3점대를 유지했습니다.
보통 월화수에 원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목금토일을 잠원동에서 일했습니다.
즐거웠습니다. 돈을 번다는 재미보다는...요리가 즐거웠거든요.
그렇게 4학년이 되고, 선택의 기로에 섰습니다. 요리냐...아니면 전공을 더 공부하고 취업이냐.
그 당시만하더라도 정규직으로 학업과 요리를 병행했기 때문에 저는 요리를 선택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해외에 한번 다녀오라고 하시더군요. 이 때까지 저는 해외경험이 없었습니다.
학업과 요리를 병행하다보니 정말 시간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필리핀에서 4개월을 보낸 뒤, 다시 호주로 무전여행을 떠났습니다.
무전여행에서 운 좋게 말레이시아인의 야채가게 오픈알바를 할 수 있었고,
파키스탄인 캐셔가 돈을 훔치다 저한테 걸려 그 돈을 제가 다 획득 했습니다.
(파키스탄 친구는 도망....)
새벽5시부터 오전11시까지 일했는데...주당 80만원씩 줬던걸로 기억합니다.
시급이...24달러였으니까요...
당시 첫사랑인 여자친구가 한국에 있었고, 참 행복했습니다. 매일 보이스톡으로 세시간씩...ㅎ
그렇게 해외에서 힘들게 일하고, 즐기면서 생각했습니다.
공부를 좀 더 해서 외식업 보다는 아버지처럼 일하면서 쉴 때 쉴수있는 일을하자.
그렇게 귀국을 했죠.
여러가지 생각을했습니다. 어차피 그 당시 제 실력으로는 어디든 받아주질 못했고,
학교 선배나 동기들처럼 교수님이 추천해주는 원주나 음성지역 자동차부품업체
품질파트로 갈 수밖에 없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토익점수가 중요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토익을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전공이 산업공학인 만큼, 전공기사인 '품질경영기사'를 공부하여 취득해서
전국에 있는 산업공학 학생들과 경쟁을 해보겠다는 큰 꿈을 품었습니다.
이 결정은 여자친구의 피드백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자신의 친오빠는 기사공부하는데 오빠는 그런거 안해? 이러더군요...ㅎㅎ
결국 도전하게됩니다. 영등포에 있는 오프라인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참...힘들었지만 운좋게 1차는 합격을 하게되고, 2차 실기는 떨어집니다.
이 시기...첫사랑인 여자친구와도 헤어집니다. 그녀는 취준생으로 매번 낙방하면서
힘들어 했는데...저는 그 때 취업이라는 고통을 잘 몰랐습니다. 잘 위로해줬어야 했는데..ㅎ
이 이별은 정말 길게갔습니다. 12년 12월에 헤어졌는데...14년 여름이 되서야 잊혀졌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다보니 학원 원장님도 도움을 주시더군요..ㅎㅎ
자신이 파트타임으로 강의를 하고있는 구로의 산업자원부 산하기관의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추천하셨습니다. 면접을 통해 40명의 교육생중 한명으로 뽑혔습니다.
이 기관은 시험 및 교정기관으로 제가 모르는...생소한 분야였습니다.
하지만 교육을 받으면서 점점 흥미를 얻고, 관심이 생기면서 다시 한 번 고민을 하게됩니다.
"공공기관의...계약직으로 들어가면 어떨까...?"
"중소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갈까...?"
한달정도 고민했습니다. 그렇지만 공공기관의 비정규직조차 입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교육생 40명중 대부분은 인서울...지방대라고 해도..부산대나 공주대등
지방명문국립대학교였습니다. 대부분 토익점수는 7~800점대...
그리고 이 친구들도 그 기관의 계약직으로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좌절하고, 품질경영기사 2차 실기 재시험에 몰두했습니다.
그리고 교육 막바지무렵...최종 합격을 했지요. 정말 기뻤습니다. 부모님도 좋아히셨구요.
누군가와 서류전형에 있어서 경쟁을 할 수 있는 자격증이 하나 생겼다는 것에 너무 좋았습니다.
그렇게 2개월이 더 흘러 교육은 끝나고 다시 백수가 되었습니다. 졸업유예를 해놓은게 만료되어
14년 8월에 졸업을 했습니다.
교육이 종료된 뒤에도 계속해서 비정규직을 뽑는 공고를 모니터링 하면서 지원합니다.
전공으 맞지않아도...지원했습니다.
그렇게 9월...중순 연락이 옵니다. 교육훈련을 받고, 타켓으로 삼았던..그 기관에서...
인생 첫 면접 잘 봤습니다. 열심히 하겠다고 했고, 방은 바로 구하겠다, 차는 있다고..거짓말..ㅎ
결국 붙었습니다. 1년계약으로. 고민없이 바로 입사했습니다. 통장에 월 220정도 찍히더군요.
돈보다 더 행복한 것은...좀 모자란 제가 이런 기관에서 일 한다는 것...
비정규직? 비정규직이라고 우울해 하지 않고, 많은 경험을 쌓고 나가겠다는 생각에
많은 장비를 다뤘습니다. 마침 제가 있는 기관은 정말 다양한 장비가 있는 부서라서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운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14년9월에 입사를 해서 1년 재계약을 한번 하고 이번 9월 21일이면 만2년입니다.
무기계약직의 기회가 따로 없을 것 같아서 이번에 나갑니다.
하지만 슬프지 않습니다.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2년동안 제 인생의 스토리는
지금까지 살아왔던 스토리만큼이나 길었기 때문에...ㅎㅎ
요새 한창 면접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사기업, 정출연, 공기업, 공공기관...
보통 자동차부품업체의 신뢰성파트에서는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더군요.(중견기업까지...)
하지만 저는 다시한번 비정규직으로 일 하려합니다.
경상남도소속의 기관에서 지금 하는 일과 똑같은 업무를..하려고합니다.
(공공기관에서 연구를 하시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서...아직은 힘들지만 공공기관에 남고싶은
생각이 많습니다.)
이번 기관에서는 자리 잘 잡아서 정규직이 되고싶네요.
"비정규직은 아무래도 지원자가 적습니다. 저는 이 점을 노렸습니다."
"사람인 같은 인력채용 사이트에 나오지 않는 기관들 많습니다."
"보통 이런 기관은 학연, 지연, 인맥등으로...입사를 하지만 입사는 공정합니다."
"정부출연기관은 인사제도에 감사가 늘 있기 때문에...ㅎㅎ"
이 곳 취업과 면접 판에서 활동하시는 분들 모두 잘되셨으면 좋겠어요.
- 글 못쓰는 공대출신...아저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