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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생때 헤어졌던 썰 .1(스압)

광주청년 |2016.09.11 17:35
조회 735 |추천 0
지금 방영하는 혼술남녀 2편을 보다보니 내 이야기가 생각나더라.저녁거리를 만들다가 우연히 예전 내모습이 생각나서 이곳에 이야기를 풀어내보고자 한다.이제는 오래 지나 추억이 된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쓴 남의 이야기를 읽다보면별것없는 저 남자도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지독히도 아픈 헤어짐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편의상 반말을 하는거니 독자분들은 이해를 해주시기 바란다.



건강한 사람은 사람을 가진 것이 가장 중요한 경험이라고 했다.연인을 만나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고, 모든 경험은 개인의 무너지지 않는 재산이 된다.어떤 연인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지만, 되돌아보면 나에겐 더없이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그랬다.나름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사람을 만났었고내 인생의 방향에 동기부여가 되었던 것은 항상 그녀들이었다.어쩌면 인생의 포인트가 되어준 것이었다.굳이 비유를 하자면 나라는 자동차에 탑승해준 훌륭한 드라이버였다고 할까나누구나 그렇듯 나에게 이사람들과의 이야기는 매우 극적이었지만그중 한 사람과의 이야기를 마치 인터넷의 여러 썰처럼 풀어보고자 한다.내가 나름 고시생때 겪었던 아픔을 이야기하면적어도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길 바란다.하지만 너무 나대지 않고 반응봐서 적당히 올리려고 한다.



교대를 가겠다는 첫사랑을 따라 철없이 공부해서 들어왔던 나는비록 첫사랑과 달리 지방교대에 왔지만 나름 즐겁게 학교생활을 했다.그때만 하더라도 나는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고처음으로 맛본 알콜섞인 대학물에 취해 캠퍼스를 비틀거리던 풋내기였다.성격이 활발한 편이라 여기저기 불려다니기 일쑤였고그런 풋내기가 으레 그렇듯 언행에 실수가 잦은 평범한 새내기였다.



그런 내가 2학년이 되었을때역시 헌내기가 된 새내기가 그렇듯 첫 후배들이 들어옴에 있어 굉장히 기대가 컸었다.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나간 첫 대면식에서 나는 너무나도 아름다운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차라리 눈보다 더 하얗고 예뻤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군계일학과도 같은 그 외모에 첫눈에 반했고 쑥맥이었던 나는 겨우겨우 친해져 마음을 고백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저..안될 것 같아요 오빠. 남자를 만나본적이 없어서 아직은 무서워요."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다시 바로잡아 나는 겨우 말을 꺼냈다.
"내가 싫다면 깔끔하게 물러날게. 하지만 남자가 무서운거라면 한번 더 생각해줘. 천천히 기다릴게."
그 말에 그녀는 대답을 보류하겠다고 했고 무려 3주라는 시간이 지났다.자취를 하는 그 아이를 바래다주고 기약없는 대답의 연기가 야속해 내가 사는 기숙사로 돌아오던 어느날 밤유난히 아름답게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는 매화를 보았다.내 마음에는 봄이 안와도 언제나 그렇듯 봄이 찾아오는구나 싶었다.그리고 그날 만나보자는 그 아이의 전화를 받고세상을 다 가진 사람이 되었다.그날은 유난히 매화향기가 가득했지만 그보다 아름다운 행복이 주변에 가득찼다.아침에 떨어지는 햇살을 받으며 바보처럼 웃는 나를 보고동기들은 웃으면서 놀려댔다.그렇게 그 사람은 내 마음속 한가운데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런 연애가 2년 가까이 되었다.만나는 동안 아침에 떨어지는 햇살마저 행복하게 느껴지던 나는어느새 그녀에게 잘못대하는 일이 많아졌고어딘가 손잡고 나가기도 귀찮아하기 시작했다.소홀히 대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하지만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스물 셋이 되었지만 스물 하나의 어린 모습에 멈춰있었다.비록 매일매일 그녀의 얼굴을 보는데 행복했던 나였지만 남자로서의 제대로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이런 어린 남자가 어느새 임용을 준비하는 4학년이 되었다.그런 그녀는 그런 나의 모습에 지쳤던 탓일까아니면 이런 사람을 믿고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일까평소와 같이 밥을 먹고 난 다음에 도서관에 돌아와 핸드폰을 켜보니짧은 카톡이 와있었다.그렇게 2년의 연애 마지막 과정이던이별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큰 일을 겪게되면 처음엔 패닉상태에 빠져 현실을 자각하지 못한다.마치 마취에서 깨어난 수술환자처럼 그로기에서 회복되고 나서야밀려있던 고통이 한번에 찾아온다.암기할 내용이 들어와야 할 내 머릿속이 강제로 텅 비워지는 느낌이 들어펜을 놓고 밥도 먹지 않은 채로 노래방에 갔다.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노래를 불렀다.이게 딱 일주일째 되는 날이었다.나는 아마 그때부터 이별의 마취에서 깨어났을 것이다.




만나는 동안 못해줘 미안하고 내가 행복해서 감사한 사람이었지만떠날 때 만큼은 그렇지 않았다.나중에서야 무엇때문에 그랬냐고 물어봤지만 헤어지는 이유조차 말해주지 않고 연락에 응답도 없던 그녀 때문에나는 열흘을 밥도 못먹은채 앓아 누워야 했다.남들은 한참 공부로 워밍업을 하던 시기에 나는 홀로 자취방에 엎어져 어떻게 하면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또는 그사람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그렇게 울면서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녀가 나간 아픔에 밥숟가락을 놓았고열흘이 지나자 10킬로가 빠졌다.단순히 계산해보면 하루에 1킬로씩 빠진 셈이다.운동을 했었던 사람이라 아침에 잰 몸무게와 점심에 잰 몸무게가 다름을 알았을 때는살기 위해 무언가를 억지로 입에 넣었고아픔에 쩔어 그걸 받아들이지 않던 내 몸은억지로 밀어넣었던 음식물을 이내 토해냈다.변기통을 부여잡고 게워냈을때 스스로가 비참해 울었다.10kg.. 내안에 자리잡고 있던 그사람 무게는 딱 그만큼이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미련하게 있을 때보다못한 내 친구들이 멀리서 찾아왔다.웃으면서 내 몰골 보겠다고 찾아왔다고 말했지만나중에 시간이 지나고서야 친구들은10년이 넘는 동안 나의 이런 모습은 처음 봤기에정말 죽을까 걱정되어 찾아왔다고 했다.집에서 나가야 했기에 그제서야 보게 된 거울속의 내모습은너무나도 비참하고 쓰러질듯한 모습이어서 스스로를 한참을 쳐다보게 만들었다.이런 내모습은 그사람 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싫어할 것 같았기에오랜만에 옷장에서 수트를 꺼내 입고 꽃단장을 했다.못난 얼굴이 이쁜 못난이가 되었다.괜시리 미소를 지어보았을때 왠지 웃음이 어색함을 느꼈다.아마도 언제 마지막으로 웃었는지 잊어버렸을 정도로 웃음을 지은지 오래됐기 때문이리라.




잡아도 잡히지 않는 그사람을 놓아주자고 마음먹게 된 것은 해외에 있는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고 나서다.아버지는 의류업의 특성상 중국에 나가계셨는데 나와 떨어져 산지는 꽤 오래되었다.그런 아버지는 내게
"돈 걱정 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잊어라. 지금 어설프게 공부할 때는 아닌 것 같다."
라고 하셨다.그렇게 여유가 생겼고, 조금 생긴 여유로 나는 무엇을 할지 고민했다.조금의 고민 끝에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친구에게 중고 카메라를 하나 구입한 것이다.그 낡은 DSLR에 담기 시작한 것은 의외로 간단한 것이었다.자취방 앞에 있던 들꽃 한송이, 공부하느라 바쁜 동기들 모습, 우리집 앞 거리의 모습, 가로등 불빛, 그리고 나를 생각나게 했던 그 매화...한사람에게 신경쓰느라 여태까지 보지 못했던 주변의 것들을 담기 시작했다. 내 주변에는 의외로 아름다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다.숨막히는 매화 향기 속에서 나는 여태까지 내가 놓쳐왔던 것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나를 되돌아보고 겨우 추스리고 있는 꽃향기 가득한 어느날 밤전화 한통화가 왔다.발신자 표시 제한어느 누구라도 이 타이밍에 이러한 전화라면발신자가 누구인지는 쉬이 짐작할수 있을터이다.나는 고민끝에 전화를 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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