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처럼 저희 집이 창피하고 차라리 내가 혼자였으면 하시는분 계실까요?
저의 못된 마음인거 알지만 가끔은 그냥 혼자이고 싶네요.
저희집의 불행은 아빠의 외도에서 시작됐습니다.제나이 11살쯤 아빠의 외도가 시작되었는데이건 드라마보다 더했습니다.
아빠회사의 유부녀 아줌마였고그 여자는 저희집 집들이, 회식 후 저희집에서 또 술을 마시고저희 엄마을 사모님 거리면서 조롱하고 있었죠그땐 몰랐습니다.나중에 외도의 상대가 그여자였단걸 안 엄마와 저희는 매일 눈물을 흘리며아빠와 그여자를 원망했습니다.
그여자는 뻔뻔하게 벌받을꺼라는 말을 하는 제게 너 학교에 벽보 붙고 싶냐고 너 얼굴도 못들고 다니게 해줘?라며 협박을 했습니다.지금 생각해보니 지 아들들도 옆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아빠는 이혼을 요구하며집을 때려부쉈고 폭행, 폭언을 서슴치 않았고정도가 심해져 더 이상 견디지 못했을때 일입니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저에게 엄마의 행방을 물었습니다.엄마는 그날 그년의 남편에게 당신 와이프가 외도를 하고 있고한가정을 망가트린걸 아느냐고 연락한 날이었다네요저는 알지 못했고 그냥 죽어버려야겠다며 또 집을 부수고 이젠 저의 손목을 끌고 가서는 이거 농약이라고그냥 다 같이 죽자라고 하더군요
그때 울며불며 너나 죽으라고 소리지르던 중에친할머니 할아버지가 알고 와서 겨우 제가 구출되고 너는 맨발로 할아버지댁 지하창고에 불도 못켜고 숨어서 그밤을 지샜습니다
다행히 동생은 어린이집에서 일박이일 놀러간 날이었고그 소식을 들은 엄마는 고모네 집에 있다가 새벽에 저를 데릴러 오셔서급히 옷만 챙겨 외가댁으로 가게됩니다.
거실에 저를 재우고 엄마는 있던 얘기를 털어 놓으며어쩌면 좋을지 모르겟다 아이들에게도 이제 해코지를 해서 걱정이다라고 하자이모부는 이곳에 마트 캐셔자리를 알아봐줄테니 먼저 자립해라애는 놓고와라그년 놈들 좋으라고 애들을 델코 나오려고 하냐일하나 할줄 모르는 너가 애들키우며 이 서울에서 살 수 있겠냐며자기네 방하나 내줄테니 당장 아이들은 그집에 놓고 나오라고 하더군요
자는척을 하며 듣는 저는 하염없이 울었습니다엄마가 우리를 버리면 어쩌지라는 무서운생각에,
엄마는 그때 외가와 인연을 끊고저희를 데리고 다시 내려옵니다
어린이집에서 놀러갔다와서 동생에게 아빠가 해코지를 할까 무서웠고이혼하더라도 애들을 놓고오라는 외가댁에 말에 엄마는 그때 차마 그럴 수 없었다네요
내려와서 엄마는 보증금없는 작은 집을 구하고 식당일을 나가며저희를 키웠습니다.아빠는 자기명의 집까지 팔았고우리가 더 이상 살곳이 없어지면 이혼해줄거라 생각했을 겁니다이러한 수모를 당하면서도 이혼하지 않은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하겠습니다우리가 어릴때라 이혼하라 말 한번 못한 저도 평생 후회가 됩니다.
한번도 일해본적 없는 엄마는 아침일찍부터 식당일을 해서저녁늦게 들어왔고 항상 저희에게 미안해하셨습니다.돈 받은날 1400원하던 짜장면 한그릇을 사서 동생과 나눠주며본인은 드시지 않던 엄마.
가난했지만 아빠의 퇴근시간에 맡쳐 무서움에 자는척하며 폭행, 폭언을 듣던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제가 첫째라는 이유로 엄마는 식당일을 해서 월세와 생활비를 내고 저에게 먼저 급식비를 주고동생은 급식비가 몇번을 밀리기도했고지금 생각해보면 동생도 얼마나 창피하고 힘들었을까요?그 사춘기 옷한번 못사입고 보증금없이 싼방으로 이사한 저희때문에동생은 어린나이게 학교를 버스 2번을 갈아타고 편도 1시간 반을 다녔고..
항상 저에게는 동생은 아픈 손가락입니다.
제가 대학을 가고 등록금과 생활비를 알바로 충당했고엄마는 힘들게 번 돈으로 동생을 사립대학에 보냈습니다.자취까지 하며 생활비를 대주었지만 동생은 취업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생을 아빠없이 자라던 그 순간부터내내 사춘기를 겪고 있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한번은 동생이 엄마에게 나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했다네요
엄마는 마음이 찢어질것 같았다고 합니다.좋지 못한 부모 밑에 태어나 사랑도 못받고 힘들게 자라서 그런가보다고...
저희는 둘다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습니다둘다 회사 사원아파트에서 생활을 하고 주말에 집에 갔습니다.
엄마는 며느리의 도리이고 너희 아버지니까 하며...그 수모를 당하고 20년가까이 남인지 아닌지 생사도 모르게 살면서도명절, 생신, 제사등 모든 아버지 집안일에 빠지신적이 없습니다.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손주들 얼굴을 보여야 하는건 마찬가지이고아빠가 어쨋든너희는 이집 손주라고..
답답하고 미칠것 같을때도 있었지만친가에서 엄마를 바보라고 생각하고 없이 여겨도 엄마의 뜻이기에 아빠가 쓰레기 같은 인간이여도 엄마가 우리를 이렇게 잘 키웟다고 보여주게끔 열심히 살았습니다
시간이 지나 아빠란 인간이 돌아왔습니다저희집에는 못들어오고 할머니집으로그동안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고 바람이 끝난건 아닙니다아직도 그 인간성은 어디 가지 않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자식이라고 저희 아빠라고 그런 인간을 다시 받아들였고엄마는 그냥 지금처럼살지만 아빠를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습니다
아마 그건 나중에 저희가 아빠없이 자란 자식들에 이혼가정이라는편견으로 힘들까 참고 사신듯합니다.하지만 저는 사실 아빠와 인연을 끊고 자랐다면차라리 속이 쉬원할것 같네요
하나있는 동생은저에게 아픈손가락이라대학다닐때도 제가 회사생활할때라서 용돈주며 다녔고자취를 하고 있어 한달에 한번가서 같이 장을 봐주고어린시절 옷한번 못사입힌게 한이 되서 쇼핑도 같이 다니며사고 싶다는거 다해주고좋은 기회로 좋은 회사에 취직시켜줄 수 있었고성실하고 머리는 좋은편이라서 회사에서 잘지낸다고 듣고 정말 했습니다.제가 취직했던 시작부터 동생 적금을 들었습니다. 큰돈은 아니지만 남자아인데결혼할때 어느 정도 돈은 필요하니까,, 부모대신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에,,그런 동생이 ..
엄마, 저, 동생 잘 살고 있었고 그닥 문제가 없었는데동생이 작년말부터 식구들과 인연을 끊었습니다.큰이유가 아니였는데갑자기 폭발해서는 이제 다 인연을 끊고 지낸다고 엄마에게 통보 하고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고집에도 오지 않고 살고 있네요
이번명절도 오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없이도 할머니댁에서 명절을 같이 준비했는데이제 할머니가 전화해도 받지 않고누가 뭐라 연락해도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동안 결혼준비를 이뤄졌고이번에 남자친구가 집에 인사를 온다는걸 말려둔 상태입니다.
남자친구는 그저 제가 평범한 집 딸이라고만 생각하지아빠가 저런 쓰레기 필요없는 인간인지.엄마는 힘들게 살며 서류에 이혼만 안찍은 콩가루 집안인지,동생이 가족과 연을 끊은지 1년이 되어 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저는 두렵고 무섭네요사실, 남자친구에게 아버지 일은 대충 말할 생각이였는데동생마저 이렇게 되니,제가 평범하게 살기에는 무리였나 싶네요
의지할수 있는 가족이 아니라서열심히 돈도 모아서 넉넉한 혼수와 여유자금을 들고 갈 수 있게회사생활하며 열심히 돈도 모았고학비 보태줄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아대학4년을 매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을 받고 다녔습니다.주재원으로 해외근무를 하며 석사도 취득했고회사에서 인정도 받고남자친구가 많이 사랑해주는데,,힘든 날을 이겨내고 남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엄마가 너무도 기뻐하는데,,
어느 하루도 열심히 살지 않은적이 없는데아무리 제가 열심히 살아도 저에게는 채워지지 않는 한가지가 있네요평범하지 않은 가족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