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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의 역사

완소혜교 |2006.11.15 13:01
조회 49 |추천 0

침대의 역사는 이집트의 고왕조(古王朝) 시대의 유구(遺構)가 남아 있으며, 서양에서는 고대 이집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전통이 계승되어 민족 ·풍토 ·생활양식 등의 여러 조건에 의해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이집트의 침대는 4개의 동물다리 형태로 지지(支持)하고 그것에 족대(足臺)를 붙인 형식이며, 귀부인의 침대에는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기 위한 머리받이도 비치되어 있었다. 특수한 것으로는 죽은 사람을 위한 호화스런 침대나 접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리스에서는 클리네라고 하는 4각식에다 헤드레스트(headrest)를 갖춘 간소한 침대가 유행하였는데, 이것은 또 식사나 사교를 위한 소파로서도 사용되었다. 로마에서는 상류계급저택의 식당에 청동이나 대리석으로 만든 헤드레스트가 달린 호화스런 침대가 놓여 있었다. 이것은 그 위에서 식사를 하기 위한 것이었다. 침대는 이와 같은 용도 외에 독서용으로서도 사용되었다.


중세의 영주(領主)의 저택에는 방구석에 보온을 위하여 천장에서부터 커튼을 내리고 그 안에 목제침대를 설치하였다. 그것은 대형 침대로 여러 사람이 잘 수 있는 것이었다. 14세기 후반에는 천개(天蓋)를 설치하고 커튼을 달게 됨으로써 침대에서 식사를 하는 습관은 없어졌다. 르네상스 시대에 귀족들 사이에서 사용된 침대는 사회적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우산 모양의 천개와 아름다운 무늬를 넣어 짠 커튼을 드리우고 헤드보드(headboard)에는 화려한 조각을 하여, 전체를 대좌(臺座) 위에 올려 놓은 호화로운 것이었다. 그것은 침실이 공적인 알현(謁見)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프랑스북유럽에서는 4개의 조각된 기둥으로 천개를 떠받친 형식의 것이 유행하였다. 바로크 시대의 군주(君主)는 ‘권위의 침대’라고 부르는 호화로운 장식 침대를 알현이나 회의시에 사용하여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었다. 또한 귀부인들을 위하여는 ‘공비(公妃)의 침대’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 살롱 생활이 유행한 18세기의 귀족들은 권위를 위한 침대보다도 우아한 형태의 침대를 좋아하였는데 ‘천사의 침대’ ‘폴로네즈의 침대’ ‘알코브 침대’ ‘왕관침대’라고 하는 것이 생겼다. 로코코 시대에는 대낮 휴식에 사용하는 데이베드 등도 유행하였다. 이 시대의 침대는 귀족들의 생활을 향락하기 위한 도구로서 아름다움과 잠자기 좋은 것에 중점을 두었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침대는 비로소 서민계급 사이에 보급됨에 따라 장식적인 면보다도 실용적인 면에 중점을 두게 되었다.

내용출처 : [기타] http://cleanall.co.kr/bbs/view.php?id=wise&page=3&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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